지난 5월8일 끝난 원아시아투어 제30회 GS칼텍스 매경오픈(총상금 10억원)을 한마디로 요약하면 ‘남서울 괴물’의 부활이라 말할 수 있다. 지난해 한국 남자골프 선수로는 처음으로 일본프로골프투어(JGTO) 상금왕에 오른 김경태(25·신한금융그룹)는 GS칼텍스 매경오픈(총상금 10억원)이 열린 경기도 성남 남서울 골프장을 안방처럼 여긴다. 2006년 남서울 골프장에서 열린 허정구배 한국아마추어골프선수권대회에서 15타차 우승을 차지한 적이 있다. 2007년 매경오픈에서도 역시 5타 차로 가볍게 우승컵을 들어 올렸다. 남서울 골프장에만 서면 그는 펄펄 힘이 나는 스타일이다. 물론 김경태도 남서울처럼 좁은 코스를 좋아하는 스타일은 아니다. 하지만 그는 다른 코스보다 머리를 많이 써야 하는 남서울 골프장에 서면 심리적으로 안정된다고 말한다.
“18살, 19살 아마추어 때부터 꾸준히 이곳에서 열린 대회에 출전했다. 그때마다 10위권 밖으로 나간 적이 없을 정도로 좋은 기억이 많다. 특별한 것은 없다. 하지만 심리적으로 안정감을 받는 것 같다.” 올해 GS칼텍스 매경오픈에서 김경태는 왜 자신이 그렇게 남서울 골프장과 궁합이 맞는지 확실하게 보여 줬다. 그의 코스 매니지먼트는 다른 선수들을 압도했다. 결과가 그 사실을 극명하게 말해 준다.
김경태는 21언더파 267타를 기록해 30년 대회 토너먼트 레코드를 새로 작성하며 우승컵과 함께 우승상금 2억원을 획득했다. 종전 토너먼트 레코드는 2002년 뉴질랜드 동포 이승용이 세운 20언더파 268타였다. 공동 2위(13언더파 275타) 김형성(31·팬코리아), 조민규(23·투어스테이지)와의 타수 차이인 8타도 대회 신기록이다. 종전까지 최다 타수차 우승은 1996년 박남신, 2007년 김경태가 세운 5타차였다.
21언더파로 우승한 김경태 선수.
2007년 신인왕과 상금왕을 동시에 거머쥐며 ‘괴물 신인’으로 떠올랐던 김경태는 이듬해 지독한 슬럼프에 빠졌다. 2008년 말까지만 해도 “티잉그라운드에만 서면 가슴에서 쿵쾅쿵쾅 뛰는 소리가 들렸다”고 말할 정도였다. 하지만 지난 해 일본투어에서 3승을 거두며 상금왕에 올라 완벽하게 부활했다. 그래도 그에게는 국내 대회 우승컵이 너무 간절했다. 국내 대회에서는 2007년 7월 삼능 애플시티오픈 이후 3년 10개월 동안 25번 도전장을 내밀고도 우승컵과 인연을 맺지 못했기 때문이다. 지난 해 초 일본프로골프투어 다이아몬드컵에서 우승했을 때도 눈물을 글썽이며 “하루 빨리 한국에서도 우승하고 싶다”는 의지를 밝히기도 했다. 그래서 자신 있는 코스인 남서울CC에서 열리는 GS칼텍스 매경오픈이 간절한 바람을 이루기에 가장 적합한 무대로 여기고 있었다. 그의 예상은 적중했고, 결국 26차례 국내 대회 도전 끝에 ‘25전26기’를 이뤄 냈다.
김경태는 경기 후 “작년 GS칼텍스 매경오픈에서도 우승 기회가 있었는데 못했다. 작년 시즌을 마무리하면서 올해는 국내 대회에서 더 많은 대회에 출전하지 못할 상황이라 어렵지만 꼭 우승하고 싶었다. 이날 초반에 어려움이 많았지만 나중에 퍼팅이 잘 따라주면서 좋은 스코어로 우승할 수 있게 됐다”고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2007년 우승을 거뒀던 김경태는 또 박남신, 최상호에 이어 30년 대회 사상 세 번째 2승자로 이름을 올렸다. 김경태는 내년 사상 첫 대회 2연패와 사상 첫 대회 3승에 도전하며 대회 새 역사 쓰기에 나선다. 김경태가 우승함으로써 한국 선수들은 2005년 대회 이후 7년 연속 ‘한국의 마스터스’ GS칼텍스 매경오픈 타이틀을 차지하게 됐다.
차 없는 골프 축제, 5만 명 갤러리 찾아
이번 대회는 30회를 맞아 ‘차 없는 친환경 골프대회’로 기획됐다. 사실 이런 모토를 내걸 때만 해도 대회 주최 측은 걱정이 앞섰다. 매년 수만 명의 갤러리가 몰리며 남서울CC 주변은 물론 판교IC까지 극심한 차량 정체로 몸살을 앓았기 때문이다. 대회를 못 보고 그냥 발길을 돌리는 갤러리들도 부지기수였다. 그만큼 수많은 갤러리들이 차량으로 곳곳에서 찾아오는 대회 분위기 때문에 ‘차 없는 대회’는 모험에 가까웠다.
하지만 대회가 시작된 이후 이런 걱정은 기우에 불과했다는 것이 드러났다. ‘명품 갤러리’답게 10~15분 간격으로 분당 곳곳에서 출발하는 셔틀버스를 이용해 남서울CC로 이동했다. 성숙한 갤러리들의 협조로 자동차 매연도 교통체증도 없이 즐거운 골프 축제를 치를 수 있었다.
어린이날이었던 대회 첫날부터 5000여 명의 갤러리가 몰려 대성황을 이뤘다. 대회 최종일에는 2만 명이 넘는 갤러리가 대회장을 찾아 4라운드 동안 모두 5만 명이 넘는 갤러리들이 남서울CC를 찾았다. 30회를 맞아 한국 최고의 골프대회로 그 뿌리를 든든히 내린 GS칼텍스 매경오픈은 어느 해보다 더 찬란하게 명품 골프대회로 빛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