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을 입술에 대자 향긋한 꿀 향이 코끝에 닿는다. 혀끝을 자극하는 스파이시한 맛, 입 안 가득 채워진 달콤함이 목젖을 울린다. 잘 익은 건포도의 풍부한 향이 주는 마지막 여운까지…. 발베니 포트우드(The Balvenie Port Wood 21년산)가 지닌 오감은 “신은 단지 물을 만들었을 뿐인데 인간은 술을 만들었다”고 이야기한 프랑스 대문호 빅토르 위고의 느낌이 와 닿는다.
와인 붐을 타고 인기를 얻은 만화 '신의 물방울'에나 나올 법한 테이스팅이지만 최근 위스키의 오감을 재조명하는 클래스가 애호가들 사이에 회자되고 있다. 싱글몰트 위스키의 판매량이 꾸준한 증가세를 보이고 있는 상황도 한몫했다.
종합주류회사 윌리엄 그랜트앤선즈 코리아의 박준호 대표이사는 “한국의 위스키 시장은 위축되고 있지만 싱글몰트 위스키 시장은 앞으로 3배 이상 성장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시장에서 비교적 고가로 거래되고 있는 싱글몰트 위스키의 성장세는 한국 위스키 시장의 이른바 양극화 현상을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폭탄주가 대세였던 위스키의 진화
국내시장에 싱글몰트 위스키가 회자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파크 하얏트 서울 ‘더 팀버 하우스(The Timber House)’의 김준미 위스키 매니저는 “한국에선 2년 전부터 싱글몰트 위스키 붐이 일었다”며 “현재 시장에 여러 지역의 대표 브랜드 100여 개가 소개돼 있다”고 전했다. 그는 “와인 붐을 타고 즐기는 술 문화가 정착된 후 위스키를 바라보는 시선이 달라졌고 폭탄주로만 인식되던 위스키의 위상이 싱글몰트라는 고급 수제위스키로 옮겨가며 한 잔으로 장시간 즐길 수 있는 문화가 형성되고 있다”고 덧붙였다.
그렇다면 싱글몰트 위스키는 일반 위스키와 무엇이 다를까. 우선 위스키의 유래를 살펴보자. 18세기 초까지 위스키는 스코틀랜드 지방의 토속주였다. 하지만 스코틀랜드가 잉글랜드에 합병된 1707년 대영제국이 형성되며 재정충당을 위해 각 식민국에 주세를 부과하기 시작한다. 스코틀랜드의 위스키 제조업자들은 주세를 피해 산 속에서 술을 만들었고 정부의 통제로 판로를 찾기 힘들자 수입 포도주를 담았던 빈 참나무통에 밀주를 담아 숨겨뒀다. 세월이 흐른 뒤 열어본 참나무통은 무색이던 위스키에 연갈색 컬러와 진한 향을 선물했다. 영화 같은 스토리지만 오늘날의 스카치위스키는 그렇게 탄생했다. 고 박정희 대통령이 즐겨 마셨다는 ‘시바스리갈’ 역시 스카치위스키 중 하나다. 스카치위스키의 일반적인 정의는 곡물을 발효시킨 양조주를 증류, 700L 이하의 오크통에서 최소 3년 이상 숙성시킨 술이다. 맥아만을 원료로 사용한 위스키는 몰트(Malt)위스키, 옥수수와 맥아를 혼합해 당화한 뒤 발효와 증류를 거친 술이 그레인(Grain)위스키, 몰트위스키와 그레인위스키를 혼합한 것이 블렌디드(Blended)위스키다.
싱글몰트 위스키는 피트(Peat)라는 석탄을 태워 그 연기와 열풍으로 맥아를 건조해 향이 짙다. 또한 단식증류기를 사용하기 때문에 얻어내는 양이 적어 고가에 거래되고 있다.
우리보다 내가 소중한 문화
주류 업계에 따르면 지난해 ‘글렌피딕’, ‘맥캘란’, ‘글렌리벳’ 등 싱글몰트 위스키는 5만5662상자가 팔렸다. 전년도에 5만463상자가 팔렸으니 무려 10% 이상 증가한 수치다. 5년 전인 2006년(2만3730상자)과 비교하면 2.35배나 증가했다. 싱글몰트 위스키에 대한 소비자의 관심이 꾸준하자 최근 이마트 성수점에 싱글몰트 위스키 존이 설치되기도 했다. 국내 대형마트에 싱글몰트 전문 매장이 생긴 건 처음 있는 일이다. 그 동안 한정 생산돼 국내 수입되는 양이 수백 병에 불과해 호텔이나 고급 바를 중심으로 유통돼왔기 때문이다.
업계 관계자는 “자신에게 투자하는 소비문화 확산”을 원인으로 꼽았다. 접대문화로 대표되던 위스키와 폭탄주 대신 술을 제대로 즐기는 주당이 늘어나며 고급위스키의 수요가 높아졌다는 분석이다.
위스키 전문가들은 싱글몰트 위스키를 제대로 즐기려면 시각(색), 후각(향), 미각(첫맛), 목넘김, 배 안에서 느껴지는 애프터 피니시를 경험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김준미 매니저는 “와인은 정해진 용어를 사용해 느낌을 전달하지만 위스키는 느낀 그대로 표현하며 단 한 잔으로 한 시간 이상 즐길 수 있다”며 “오리지널 위스키에 얼음 한 조각을 넣었을 때 향과 맛의 변화를 느낄 수 있다면 애호가 수준”이라고 전했다. 단 한잔으로 1차를 즐길 수 있는 위스키. 싱글몰트 위스키의 전파가 주당들의 술 문화를 어떻게 변화시킬지 주류업계의 관심이 오크통에 몰리고 있다.
[안재형 기자 ssalo@mk.co.kr]
[본 기사는 매일경제 Luxmen 제9호(2011년 06월) 기사입니다]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