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 사업장을 열어 7년째 사업을 실시하고 있는 에티오피아의 노노 사업장. 사업장의 평균 수명이 15년이니 노노를 사람으로 치면 가장 활발히 활동하는 40대와 같다. 가슴 아팠던 노노의 초기 모습, 현재 변화된 모습 그리고 앞으로 펼쳐질 미래의 모습이 여기 있다. 자, 그럼 우리들의 후원으로 머나먼 아프리카 땅에서 웃고 춤추는 아이들을 만나러 가보자.
더러운 물, 열악했던 노노
학교에서 수업 받는 알레미뚜 / 마을의 샘물이 충분치 않아 건설 중인 대형 물탱크
7년 전 이곳엔 학교도 없고 식수도 안전하지 않았다. 마을 사람들은 15세 이전의 여자아이들을 결혼시켰고 나이 어린 여자아이들은 여성할례를 받아야 했다. 강제납치 결혼도 성행했다. 아이들의 목이 붓기만 하면 무면허 전통 시술자가 소독하지 않은 칼 하나로 100명이 넘는 아이들의 편도선을 제거했다. 그 결과 아이들은 세균에 감염됐다.
월드비전 에티오피아는 한국 후원자들의 도움을 받아 2002년 10월 노노에 사업장을 열었다. ‘노노 사업장’이란 이름은 이후 주민들의 희망이 됐다. 하지만 처음부터 환영받은 것은 아니었다. 세넌 초등학교 교장인 타레페 씨(38)는 “처음에는 반발이 심했다”고 전했다. “우리는 월드비전이 우리의 종교를 바꾸러 온 줄 알았거든요. 하지만 3~4년이 지나면서 깨달았습니다. 월드비전은 우리의 종교가 아니라 우리 삶의 질을 바꾸려 한다는 것을. 그때부터였던 것 같아요. 우리들이 마음을 열기 시작한 게.” 주민들의 닫힌 마음만큼이나 힘들었던 것은 교육 환경이었다. 타레페씨는 말을 이었다.
“책걸상이 없어서 아이들은 바닥에 앉아서 수업을 받았어요. 바닥에는 먼지진드기, 벼룩 등이 있어 아이들은 몸을 긁느라 수업에 집중할 수가 없었죠. 교실은 물론 교무실에도 책상이 없었습니다.”
식수 사정도 비슷했다. 더러운 강물을 마셔야 했기 때문에 장티푸스와 아메바(대소변이 식수로 유입돼 생기는 수인성 질병, 장염의 일종으로 심할 경우 간도 손상된다) 등의 질병에 자주 걸렸다. 부모들은 물을 긷느라 일도 못할 정도였다. 후원 아동 페이사의 엄마인 타델루 씨는 “무거운 물통을 어깨에 메고 왕복 두 시간 정도 물을 길어 오면 힘이 다 빠져서 다른 일을 할 수가 없었다”고 했다. 화장실 역시 있을 리 만무했다. 대소변이 곳곳에 버려져 있었고 맨발로 다니는 아이들의 찢어진 발 사이로 병균이 침투했다.
7년 전의 노노가 그랬다. 집에서도, 학교에서도, 마을 곳곳에서도 아이들은 마치 언제 꺾일지 모르는 꽃과 같았다. 하지만 그때까지였다. 2002년 10월 2000명의 마을 아이들이 월드비전의 결연 아동으로 등록됐다. 그리고 마을에도 아이들의 삶에도 변화가 일기 시작했다.
“공부도 하고 우유도 먹어요!”
아무도 후원이 뭔지 몰랐다. 말은 들었는데 도통 감이 오지 않는 표정이다. 에티오피아 시골에 사는 부모님들에게 ‘후원프로그램’이란 단어는 낯설기만 했고 ‘외국에 사는 사람이 아무 이유 없이 우리 가족을 돕는다’는 건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다. 심지어는 월드비전이 아이들을 잡아다 외국에 팔 거라는 소문까지 돌기 시작했다. 알레미뚜가 결연 아동이 된 건 여섯 살 때였다. 아이의 아버지는 월드비전 결연 담당자의 설명을 여러 번 듣고 고심 끝에 아이의 결연을 승낙했다. 그리고 “묵묵히 일하는 직원들을 보고 의심을 접었다”고 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후원자가 보낸 선물과 편지를 받았다. 자신을 한국에 사는 군인이라고 소개한 박수민 후원자는 사진과 크레파스, 스케치북 그리고 장난감을 보내왔다. 어린 알레미뚜는 기뻐했다. 이런 일이 있을 거라곤 상상도 못했다. 가족들도 기뻐했다. 아버지는 후원 아동 부모 대상 직업교육에 참여했다. 그곳에서 가축 사육법, 야채, 사과 재배법 등을 배웠다. 그리고 2년 전에 월드비전으로부터 소를 받았다. 알레미뚜는 이후의 상황을 기억했다.
“아버지가 소를 받기 전에는 전통 빵인 인제라와 케따만 먹었어요. 반찬도 없었어요. 하지만 집에 소가 생기고 난 후부터 우유와 요구르트를 먹기 시작했어요. 그리고 좀 지나서 밥상에 채소와 감자, 토마토도 올라왔어요.”
아이 아버지는 “예전엔 끼니 걱정을 했는데 지금은 소 덕분에 한 달에 600비르(미화 20달러)를 더 법니다. 정부 공무원보다 더 많이 벌고 있죠. 믿어지세요? 가난한 농부였던 제가 이만큼 번다는 것이…”라며 고마워했다. 이렇게 혜택을 받은 가정이 알레미뚜네만은 아니다. 현재까지 30개 가정이 소를 받았고 248개 가정이 가축 사육 훈련을, 714개 가정이 채소 재배 교육을, 558개 가정이 과일 재배 교육을 받았다. 알레미뚜의 집에는 3개월마다 한 번씩 봉사자가 온다. 알레미뚜의 생활에 불편한 것은 없는지, 건강은 어떤지 확인하러 오는 것이다. 알레미뚜는 청각장애를 앓고 있지만 결연프로그램의 특별자금으로 치료를 받고 있다. 알레미뚜는 웃으며 말한다. “후원은 제게 끊임없이 선물을 가져다주는 마법 상자예요.”
“전 이제 변호사랍니다”
열여덟 살 헤녹은 영리한 아이였다. 공부를 곧잘 해 대학에도 합격했다. 전공은 법학. 헤녹은 “힘이 없는 마을 사람들을 위해 애쓰고 싶어 법학을 선택했다”고 한다. 하지만 학비가 없었다. 사업장은 헤녹을 위해 결연프로그램의 특별자금을 집행했다. 헤녹이 받은 금액은 2년간 약 200달러. 이제 헤녹은 ‘주니어 변호사’ 자격증을 갖고 있다. 정미옥 후원자의 사랑으로 이 지역에 변호사가 탄생한 것이다. 헤녹은 말한다.
“전 대학 교육을 받았지만 교육 혜택을 받은 사람이 저뿐만이 아니에요. 제가 학교 다닐 때는 이곳에 고등학교도 없었고 낡은 교실에서 공부했어요. 하지만 제 동생은 새 교실에서 공부합니다. 때로는 동생이 부럽기도 해요.” 동생 에스크다르는 학교에 갔다고 했다. 학교에 가보니 깨끗한 교실에서 70명의 아이들이 수업에 열중하고 있었다. 아이들의 눈동자는 빛나고 있었다.
“사람들의 생각이 바뀌었어요. 마을의 풍습이 바뀌었어요”
노노에서는 건기때 식량난이 심각했다. 비가 오지 않아 농사를 지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사업장은 관개수로를 짓고 있다.<br>주니어 변호사 헤녹과 아들을 자랑스럽게 바라보는 어머니<br>샘터에서 세수를 하는 워르키
우선 여성할례가 사라졌다. 조혼도 사라졌고 강제 납치 결혼도 보기 힘들다. 법으로 제정됐을 만큼 주민들의 생활에 큰 변화가 일어났다. 월드비전은 지역 주민뿐만 아니라 정부 관료들에게도 의식교육을 실시했다. 정부 차원의 캠페인이나 법률 제정이 수반돼야 실질적인 변화가 일어나기 때문이다. 그 결과, 작년 초에 15세 이상의 아동을 납치해 결혼해선 안 된다는 결혼금지법, 7세 이상의 여성할례금지법, 조혼금지법 등이 법률로 제정됐다. 주민들의 생각도 변했다. 결연 아동 셀레메의 아버지는 “조혼이나 여성할례가 눈에 띄게 줄었고 이제는 공개적으로 이런 일을 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고 했다. 물론 완전히 뿌리 뽑혔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법이 제정됐고 사람들의 생각이 바뀌어 더 이상 공개적으로 악습이 자행되는 게 어려워졌다. 변화는 이뿐만이 아니다. 남녀평등에 관한 생각도 달라졌다. 여자아이도 교육을 받아야 한다는 생각이 퍼지기 시작했다. 사업장을 연지 1년이 지난 2003년 당시 학교에는 남학생들이 여학생보다 두 배 가량 많았다. 하지만 이 추세는 7년 만에 반대로 뒤집어졌다. 지금은 오히려 여학생이 더 많다. 주민들이 매년 의식 교육을 통해 자녀교육의 중요성을 깨달은 결과다.
“물을 마셔도 배 아프지 않아요”
남동생 갈메사는 툭하면 배앓이를 했고 결연 아동 워르키는 피부병 때문에 항상 고생했다. 그런데 집에서 15분 거리에 샘물터가 생겼다. 워르키가 웃는데 얼굴이 매끈하다.
아이 아버지가 이야기를 거든다. “보건소도 생겼어요. 예전엔 마을에 아픈 사람이 있으면 들것에 환자를 뉘고 마을 남자들이 어깨에 짊어진 채 다섯 시간을 걸어갔습니다. 지금은 보건소가 생겨 25분이면 기본적인 치료를 받을 수 있습니다. 막내 압디도 식수시설이 생기기 전에 설사병에 걸린 적이 있었는데 보건소에서 무료로 치료제를 받아 나았습니다.”
워르키가 아팠던 동생들을 끌어안으며 말한다.
“후원자님은 우리를 모르잖아요. 하지만 우리를 도와주세요. 그리고 제가 할 수 없는 동생들의 치료까지 해주세요. 보이지 않는 엄마 같아요.”
후원자의 사랑 덕에 샘이 두 개나 생겼다. 하나는 마을에 생긴 깨끗한 샘물이고, 다른 하나는 워르키 마음에 솟아나는 사랑의 샘이다.
인프라 구축, 미래를 꿈꾸는 노노
지금 노노는 미래를 일구는 공사가 한창이다. 노노의 미래를 어깨에 짊어진 사업장 책임자 버하누씨가 말했다. “우리는 지난 몇 년의 시간 동안 마을의 인프라를 구축해 왔습니다. 이제 반을 왔습니다. 하지만 만족하지 않습니다. 앞으로 더 많은 학교와 교실들이 생길 겁니다. 우리는 아이들이 자라서 10년 후에 이렇게 말하길 바랍니다. ‘그 때 노노가 있어 꿈을 꿀 수 있었다’라고.”
월드비전의 해외아동후원 월드비전은 전 세계 100여 개 나라에서 1억 명이 넘는 지구촌 이웃들과 함께 긴급구호, 지역개발, 옹호사업을 펼쳐가는 세계 최대의 국제구호개발기구입니다. 1950년 한국전쟁으로 남편을 잃은 부인과 고아들을 돕기 위해 미국인 선교사 밥 피어스(Bob Pierce)와 한경직 목사가 설립, 한국에서 첫 사업을 시작한 월드비전은 전 세계 100여 국의 파트너십이 함께 하는 국제적인 구호개발 NGO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한국월드비전은 1991년까지 해외 후원자들의 도움을 받아오다 ‘사랑의 빵’, ‘기아체험 24시간’ 등의 자체적인 모금활동을 통해 도움을 주는 나라로 전환, 국내는 물론 전 세계의 도움이 필요한 아동들을 돕고 있습니다. 월드비전 해외아동후원 02-784-2000 www.worldvision.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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