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덕원교 밑으로 학의천이 흐르고 있다. 주변에는 높은 아파트 단지가 서 있다. 학의천은 안양천과 연결돼 백운호수로 흘러들어가는 지방 2급 하천이다. 조성사업으로 생태환경이 부쩍 좋아지면서 활기를 되찾았다.
겨울이면 철새들이 머무르고 여름이면 아이들이 물놀이를 즐긴다. 학의천 북쪽은 산책로를 따라 포장도로가 이어지고 물길이 통행로 아래를 가로지르고 있어 불편함 없이 걸을 수 있다. 남단은 자연산책로다. 자연을 느끼고 싶거나 자전거의 방해로부터 자유롭고 싶다면 이 길을 따라 이동하는 것도 좋을 것 같다. 다만 물길이 길 중간 중간을 끊어버려 꾸준히 걷기란 쉽지 않다.
잘 포장된 자전거 도로를 따라 백운호수 방향으로 걷기 시작한다. 평일 이른 오후. 따스한 햇살에 봄을 느끼다가 이내 뺨을 훑고 가는 서늘한 공기에 옷깃을 여민다. 징검다리에서 돌을 던지고 노는 꼬마 애들의 웃음소리는 해맑기만 하다. 산책로와 하천 옆에는 억새와 갈대가 무성하게 피어 있다. 자전거 두 대가 연달아 스쳐지나간다. 멀어지는 자전거를 바라보며 나도 힘차게 발을 내딛는다.
학의천을 걷다보면 많은 다리와 마주친다. 다리 이름이 잘 보이지 않아 그냥 서성거리다 발길을 돌린다. 아담한 풍경을 걸은 지 30분 째. 생각보다 하천길이 길게 느껴진다. 슬슬 지루해질 즈음 멀리 백운호수가 보인다. 절로 걸음이 빨라진다.
백운호수는 기다렸다는 듯 얼굴을 드러낸다. 바람이 불어올 때마다 고즈넉하게 흔들리는 물결이 들뜬 마음을 차분하게 만든다. 그제야 주변을 찬찬히 둘러본다. 북동쪽에는 청계산, 남동쪽에는 백운산 그리고 서쪽에는 모락산이 백운호수를 둘러싸고 있다.
이들 산에서 흘러나온 계곡 물이 호수로 흘러들어오는 탓에 호수 물이 깨끗하다. 원래는 농업용수공급을 목적으로 조성된 인공호수였지만 빼어난 경관 탓에 자의반타의반 각광받는 휴양지로 변신했다. 인근 수도권 도시와의 편리한 접근성도 한몫했다.
한동안 호수를 따라 경사진 길을 오르니 제방이 나온다. 제방에 서자 백운호수가 한눈에 들어온다.
또 다른 풍경이다. 시원하게 펼쳐진 호수와 얼굴에 부딪히는 신선한 공기에 감탄사가 터져 나온다. 제방을 가로질러 오른쪽 길로 들어서니 길 양편으로 카페와 음식점이 줄지어 서 있다. 한식부터 중식, 이태리식, 카페 등 업종이 다양하다. 백운호수 주변에 상권이 형성된 지는 이미 30년이 넘었다. 예전에는 한식 위주였지만 젊은 층의 발길이 늘어나면서 다국적 간판과 메뉴를 앞세운 식당들 또한 앞다퉈 자리를 잡았다.
라이브카페 벽마다 향수를 자극하는 익숙한 이름들이 적힌 거대한 현수막이 걸려 있다. 라이브 공연이 벌써부터 한창인지 중년 여성들이 상기된 기색으로 주차장 입구로 들어선다. 주차요원은 들어오는 차를 향해 바쁘게 손짓하고 있다.
호수 전경이 내려다 보이는 카페 똘레랑스
다시 호수가 보이는 길로 나와 산책로 위로 올라선다. 좁은 폭의 길이지만 차도와 안전하게 분리돼 있어서 안심하고 편하게 걷는다. 평일이라 오가는 사람도, 차도 별로 없다. 혼자 걷기엔 안성맞춤이다. 그러나 주말엔 사람과 자동차에 치이기 십상이다.
앞에서 등산복을 맞춰 입은 중년 부부가 도란도란 이야기 나누며 걸어온다. 부부는 청계산을 거쳐 백운호수를 이미 한 바퀴 돌았다고 했다. 인근에 사는 주민이라 근처 도보 코스를 훤히 꿰고 있었다. 백운호수에서 더 위로 올라가 청계사로 가는 길을 추천해 준다. 새로 생긴 갈미한글공원도 둘러보면 색다를 것이라고 일러준다.
백운호수 주변에는 볼거리가 많다. 초등학생들이 체험학습을 하러 자주 방문하는 청계천염색학습장과 승림식물원. 오래된 역사를 배울 수 있는 유적지인 청계사, 임영대군묘역 및 사당, 모락산성, 하우현 성당 등이 있다.
늦은 점심을 먹으러 가는 부부를 오래 붙잡고 있을 수 없어 작별인사를 나눈다. 다시 호수 전경을 벗 삼아 걸어간다. 부부가 들려준 얘기가 문득 떠오른다. 이른 새벽 호수 전체가 물안개로 뒤덮이는데 그게 또 아주 인상적이라고. 언젠가 직접 확인해보고 싶은 욕심이 든다. 수면 위로 천둥오리 떼가 바쁘게 날아간다. 이제는 길옆으로 상가가 드문드문 보인다. 건물이 없는 곳에는 주인 없이 버려진 논밭들이 차지하고 있다.
백운호수 반 이상을 걸어왔을까. 호수를 바로 내려다보는 곳에 멋들어진 외관의 카페들이 서 있다. 이른 낮인데도 카페 창가 자리는 모두 사람의 그림자가 비친다. 잠시 쉬어갈까 하다 고개를 내저으며 돌아선다. 산책로 아래 넓은 논두렁이가 펼쳐져 있다. 그 위로 18여 명의 사람들이 행군을 하고 있다. 키 작은 여자가 깃발을 들고 앞장서서 걸어간다. 도보 동호회인 모양이다. 알록달록한 그들의 옷 색깔과 파란 호수가 멋진 대비를 이룬다. 가을이면 누렇게 익어가는 논두렁과 파란 호수가 또 다른 대비를 이루며 장관을 연출하겠지. 보지도 않은 그 광경이 생생하게 눈앞에 그려진다.
논두렁 근처에는 제철을 잃어버린 썰매장 현수막이 외롭게 서 있다. 어느새 처음 출발했던 지점과 가까워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