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ogner-Bad Blumau, Hotel & Spa, 8283 Blumau 100, Styria, Austria> 블루마우 온천 마을, 오스트리아 스티리아(1993~1997), 건축모형
훈데르트 바서는 오스트리아를 대표하는 예술가 중 한 명이다. 저명한 해외 작가들의 전시가 한국에서 열릴 때면 으레 대표작은 한두 점 뿐이고 습작들이 주로 전시장 벽면을 꾸민다는 사실을 감안해야 한다. 그래서 해외 유명 작가들의 작품이 방한할 때면 약간의 실망감을 예상하고 방문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러나 이번 훈데르트 바서 한국 전시는 ‘기대해도 좋다’고 평할 수 있다. 작가의 오리지널 대표 작품들과 판화들을 상당 부분 확보했고 작가의 아이덴티티를 존중한 전시기획도 인상 깊기 때문이다. 또한 작품들 하나하나가 찬란한 색채의 암호와 상징으로 가득하기 때문에 이번 한국에서 전시되는 회화와 건축모형만으로 훈데르트 바서의 진모를 느낄 수 있다.
꿈을 감춰 둔 그림
<It hurts to wait with love if love is somewhere else.> 함께하지 않는 사람을 기다리는 것은 아프다 (1971), 회화작품 / <Grass of the bald-headed man> 수염은 대머리 남자의 잔디이다(1961), 회화작품
달력을 새것으로 바꾸고 새해 첫 달이 시작됐지만 연평도 사태가 발발하고 원양어선이 침몰되는 등 나라 안팎이 뒤숭숭하다. 이런 날 기온까지 떨어지면 설레는 기분은 커녕 회색빛 서울 하늘이 더욱 어두운 것처럼 느껴진다.
그런데 훈데르트 바서의 작품을 보고 있으면 묵직하게 누르는 공기가 어느새 ‘톡’하고 갈라진다. 훈데르트 바서의 뛰어난 색채감각 때문이다. 황금빛과 함께 어우러진 차갑고 엷은 파랑색은 마치 저녁 기운이 가득한 가을 들판 같고, 오렌지빛과 찬란한 노란빛으로 채워진 울타리들이 시선을 끈다. 관람자들은 자기도 모르게 보석 가게 앞에서 넋을 잃고 반짝임을 탐하는 여자의 마음이 된다. 가지고 싶다. 이 고운 빨강을, 어여쁜 초록들을. 하지만 사실 이 막연한 소유욕의 이유는 단지 색채가 아름다워서가 아니다. 여기에 훈데르트 바서 작품의 매력이 있다. 그는 그림 안에 꿈들을 감춰 놓았다. 그것은 마치, 바라보고 있노라면 계속해서 전설을 들려주는 이야기책과 비슷하다. 우리는 잊고 있던 자신의 욕망과 희망의 요약본 앞에서 매혹된다. 차분히 전시관을 둘러보자.
훈데르트 바서는 오스트리아 빈에서 유태인 혼혈로 태어났다. 아홉 살 때 독일군에 의해 가족이 추방당하고 외가 쪽 친척 69명이 모두 몰살되는 아픔을 10대 때 겪었다. 평화로움과 자유라는 것이 얼마나 귀한 것인지, 그리고 생명과 죽음에 대해 진지한 태도를 가지는 것은 아마도 그 경험의 필연적인 결과일 것이다. 그는 평생 자신이 할 수 있는 일, 즉 무언가를 생각하고 꿈꾸고, 그리고 만들고 사랑하는 일을 멈추지 않았다. 그 결과 지금 우리는 그 작품들의 풍성한 메시지를 선물 받았다.
그는 무자비한 권위와 지나친 합리성을 강조하는 사회적 구조에 대해 반감을 느꼈고 그것이 사람과 자연을 죽인다고 생각했다. 즉각적인 편리함과 합리성은 지혜로운 것처럼 보이지만 근본적인 삶의 기쁨과 권리를 빼앗아 간다는 사실을, 그는 나름의 방법으로 외치고 선언문을 낭독하고 퍼포먼스를 하고 작품을 만들었다. 이름도 프리드리히 스토바사에서 프리덴스라이히 훈데르트 바서(Friedensreich Hundert-wasser)로 바꿨다. 이는 ‘평화롭고 풍요로운 땅에 흐르는 100개의 물’이라는 뜻이다. 사람과 자연이 서로 어우러지는 모습을 담았다고나 할까. 그는 그것을 그림으로 그리고, 건물을 설계했다. 자신의 삶의 방식 자체도 자연의 순환에 일치시키려고 노력했다. ‘경건한 똥’이 쉽게 자연으로 돌아가게끔 화장실도 직접 만들어 썼다. 그는 그 모든 활동들이 충분히 가능하며, 아름답고도 기능적일 수 있다는 사실을 사람들에게 알려주고 싶어 했다.
다섯 개의 피부
전시장 초반에는 다소 소박해 보이는 그의 초기작품들과 판화 작품을 볼 수 있다. 이어 페인팅 작품들이 모습을 드러낸다. 생각해보면 모든 인생이 그렇겠지만, 바서의 생애 역시 결연하고도 슬프며 우스꽝스럽다가 감동적이다. 보는 관점에 따라 다른 면을 보여주는 그의 삶을 가로지르며 성장했던 논리의 흐름이 있는데 그것은 ‘피부’에 대한 생각이다.
그에게 첫 번째 피부는 말 그대로의 피부. 신체의 피부다.
그는 완전한 나체로 선언문을 낭독하기도 했는데 그것이 보다 본질적인 자신을 숨김없이 드러내 의견을 피력한다고 생각했다. 두 번째 피부는 옷이다. 그야말로 창조적인 의복을 그는 사랑했다. 그는 옷을 손에 잡히는 대로 만들어 입었다. 잔뜩 구겨진 줄무늬 티셔츠를 사랑했고 모자와 신발도 직접 만들어 착용했다. 그가 생각하기에 의복은 우리의 두 번째 피부였다.
세 번째의 옷은 무엇일까? 바로 그것은 우리를 품은 집이다. <창문에 대한 권리>라는 작품도 제작한 바서는 각기 다른 사람들이 각자의 이야기를 가지고 그 안에서 살고 있기에 그들의 제3의 옷인 건물의 창문도 다 달라야 한다고 생각했다. 제4의 피부는 가족성, 나아가 사회와 국가의 정체성이고, 제5의 피부는 지구다. 전시장의 출구 오른편에는 졸졸졸 흐르는 물소리와 함께 수생식물이 자라고 있는 설치물이 보인다. 이것은 캐테 자이델 박사에게 영감을 얻어 만든 수생식물 정화 시스템이다. 이것은 조약돌 사이를 흐르는 물소리가 우리의 정신을 맑게 하고, 식물들이 공기를 깨끗하게 하면서 물도 정화해서 일석삼조의 효과를 누릴 수 있는 설치물이다.
훈데르트 바서 한국 전시 개요장소 : 예술의전당 한가람디자인미술관 1, 2전시실 전시 기간 : 2010년 12월5일~2011년 3월15일(단 2011년 1월31일, 2월 28일 휴관) 전시 시간 : 11시~19시 (3월부터 11시~20시) 가격 : 성인 1만5000원, 청소년 7000원, 어린이 5000원
[박보미 / 아트 칼럼니스트·아트디렉터 bomi1020@empa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