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인과 맥주 등에 밀려 외면당하던 전통주가 최근 막걸리의 인기에 힘입어 새삼 주목받고 있다. 사람들은 전통주에 대해 고정관념을 가지고 있다. 와인만큼 세련되지 못하고, 일본 술만큼 섬세하지 못하며, 보드카만큼 드라마틱한 멋도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 땅에서 나고 자란 곡물과 과일로 만든 전통주에는 자꾸만 손이 가게 하는 미묘한 매력이 있다. 은은하게 풍기는 누룩과 과실, 온화한 햇살을 담은 듯한 자연스런 빛깔, 같은 알코올 함량이라도 부드럽게 마실 수 있는 편안함. 비록 화려하지는 않을 지 몰라도 질리지 않고 언제나 편하게 즐길 수 있는 친근함이 전통주의 매력이다. 여기에다 예전에는 약용으로 음용할 만큼 그 안에 함유된 건강에 좋은 성분 또한 빼놓을 수 없는 장점이다.
술에 대한 기록이 많지는 않지만 우리나라 술의 역사는 꽤 오래됐다. 고대 문헌에 의하면 삼국시대 이전 마한시대부터 한 해의 풍성한 수확과 복을 기원하기 위해 맑은 곡주를 빚어 조상께 바치고 춤과 노래, 음주를 즐겼다. 고조선 시기 이전부터 동아시아 대륙 널리 터를 잡고 생활했던 우리 민족의 식생활에서 발효 음식을 빼놓을 수 없는 만큼 술의 역사도 민족의 역사와 함께 시작되고 발전해왔다. 우리 민족의 희로애락에는 언제나 술이 존재한다. 한민족만큼 술을 좋아하는 민족도 드물다.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면 술은 놀이의 목적보다 약용으로 먼저 쓰였다. 소주가 처음 전래됐던 고려시대에는 왕실의 약용으로 썼고, 조선시대에는 청주를 약주로 사용하기도 했다. 또 우리 조상들은 술 자체를 즐기기보다 음식과의 궁합을 따져 음식 맛을 돋우고 촉진시키기 위해 마셨다.
전통주의 향은 크게 두 가지다. 구수한 느낌의 누룩향과 향긋한 과실향이다. 현대인들은 대개 누룩향에 익숙하지 않지만 적당한 누룩향은 술의 품격을 한 단계 높여준다. 과즙을 사용하지 않은 전통주의 경우 알맞은 온도에서 발효가 잘 되면 사과나 수박 등 달콤한 과실향이 나기도 한다.
전통주에는 6가지 맛의 특성이 있다. 단맛, 신맛, 떫은맛, 구수한 맛, 쓴맛, 매운맛…. 여기에 청량감이 있다. 좋은 술일수록 어느 하나 도드라지는 맛이 없이 6가지 맛이 잘 어우러져 있다. 전통주의 기본색은 선명한 황금색이다. 색이 옅을수록 담백하고, 짙을수록 진한 맛이 난다. 함께 들어간 약재나 꽃잎 등에 의해 붉은색부터 검보라색까지 다양한 색을 띠고 있다.
전통주 즐기는 법
전통주의 진정한 맛과 멋을 제대로 즐기기 위해서는 시각과 후각, 미각을 모두 사용해야 한다. 잔에 든 술을 한 번에 입에 털어 넣는 것은 옳지 않다.
우선 잔의 3분의 2가량 술을 채운 다음 술의 맑은 정도와 색을 관찰한다. 술을 음미하기 전 눈으로 술의 빛깔을 감상하는 것이 전통주를 마시는 첫 번째 순서다. 그 다음 술의 향을 느끼고 입으로 맛을 보면 된다. 평소 담백한 맛을 좋아하는 사람은 차갑게, 중후한 맛과 향을 좋아하는 사람은 덜 차갑게 마시면 원하는 술의 풍미를 느낄 수 있다.
술의 종류에 따라 적정 온도 또한 다르다. 우리 조상들은 정월 대보름에 마시는 귀밝이술인 청주는 차게 마시고 거냉(去冷)이라 해서 술이 든 양푼을 끓고 있는 솥에 넣었다 빼 찬 기운을 없앤 뒤 마시기도 했다.
술을 담아 마시는 잔 역시 중요하다. 전통 주기에는 잔과 배가 있는데 잔은 배에 비해 작은 것을 말한다. 술의 온도 변화가 적은 도자기 잔이 가장 좋으며 유리잔에 따라 마실 때는 입구가 바닥보다 넓어 약주의 향미를 충분히 느낄 수 있는 것이 좋다.
우리나라는 주안상이라고 해 손님이 오면 술과 안주를 한 상에 차려냈다. 맛과 향이 풍부한 약주는 육류와 잘 어울리며 가볍고 담백한 전통주는 어패류와 어울린다. 산미가 있는 전통주는 식사 전 반주로 입맛을 돋우는 데 좋으며, 단맛이 도는 약주는 식사 후 떡이나 다과와 함께 즐기면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