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는 두 시간 넘도록 밤에 힘 좀 썼더니만 마누라가 좋아 죽더라고…. 허허허.”
신년 한 모임에서 지천명을 바라보는 K가 호탕하게 웃어 젖히며 던진 발언이 화제를 모았다. 허풍이 섞여 있다는 짐작이야 하지만 좌중의 여타 남자들에게는 일종의 동경어린 눈빛 같은 것이 스쳐가고 있었다. 수많은 남성들이 발기부전에 버금가게 고심하는 것이 바로 조루증이다. 이 때문에 오래 끌 수 있다는 그 자체에 부러움을 느끼는 것을 이해 못하는 것은 아니지만 안타깝기 그지없다.
상대적으로 주눅이 든 다수의 기를 살려주고 분위기를 바꾸어야 하겠기에 허풍남 K를 향해 정조준 무안을 줬다.
“장시간 섹스해도 좋기만 한 여성들에게 성 능력은 특별하겠지요. 그러나 대부분의 여자는 그렇게 긴 시간을 즐기지 못합니다. 남편의 사정이 잘 안돼 힘들다고 고민하는 여자들이 종종 있거든요. 대개 지루증은 사정이 잘 안되니 오르가슴도 느끼기 어렵습니다. 남성이 직접 비뇨기과를 방문하기도 하고 여성도 남편의 지루증으로 고통을 호소하곤 합니다.”
그제서야 K의 두 시간을, 변강쇠 바라보듯 부러워하던 다수의 얼굴에 좀 밝은 빛이 돈다. 지루증은 명백한 병으로 부러워할 것 하나 없다. 무엇보다 당사자의 고통이 극심하고 급기야 파트너까지 골병드는 질병의 하나다.
필자의 환자 C는 결혼 1년차 달콤한 신혼으로, 남편의 오랜 성교 시간에 고통을 호소했다. 결혼 전 애인과의 관계에서는 성욕이 없거나 성적 흥분이 잘 안 되는 것도 아니었고 파트너로부터 어떠한 불만도 들어본 적이 없었다. 하지만 남편과 관계에서는 삽입된 시점부터 한 시간 이상 계속되는 지루한 피스톤 운동이 그나마 고조되었던 성적 감흥을 송두리째 날려버리고 분비액이 마르면서 성교통으로 섹스가 ‛불편한 육체노동’이 되어버린다는 것이다.
남편은 이렇게 오랫동안 성교를 해도 결국 질내 사정을 못하거나 아주 소량 사정하고 끝내버려서, 한번은 조심스럽게 불만을 이야기했더니 도리어 C의 질이 넓어 조이는 맛이 없어 사정이 잘 안 된다고 생트집을 잡더란다.
또 다른 환자인 미혼 여성 Y는 혼자 살고 있는 남자친구의 집에서 2년째 성관계를 가지고 있는데 말 못할 고민을 안고 있었다. 남자친구가 최근 아무리 오랜 시간 섹스를 해도 사정이 안 되니 결혼을 재고하자고 했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청천벽력.
신기한 것은 여행을 가서 관계를 가지거나 카섹스 등 특별한 기회를 이용하거나 오럴섹스를 하는 경우에는 금방 사정이 가능해 신체적인 문제는 아닌 것 같은데 남자친구가 자신의 집에서 하는 일상적인 섹스에서는 사정을 잘 못한다는 것이다. 어렵게 사정을 하더라도 한 시간을 훌쩍 넘기기 십상이라 관계를 가지기 전에 항상 불안하고, 때로는 이 남자가 자신의 몸 안에 사정하기를 두려워하는 것이 아닌가 마음이 편치 않다고 했다.
지루보다는 조루가 백 번 낫다
남성의 가장 큰 2대 성문제는 발기부전과 조루증이다. 하지만 일부 남성들은 지루증과 같은 흔하지 않은 문제를 겪는다. 사정을 참지 못하는 조루증(Premature Ejaculation)과는 반대로 지루증(Delayed Ejaculation, Ejaculatory Incompetence)은 성관계나 파트너의 자극에 의해서도 사정이 불가능한 경우를 말한다.
넓은 의미의 지루증은 자위행위를 통해서는 사정이 가능하지만 질내사정이 만족할 정도로 이루어지지 않는 것도 포함한다. 지루증은 원인을 잘 모르는 경우가 많고 제한된 치료법 등으로 인해 비뇨기과 의사들이 치료에 난감함을 느끼는 질환 중 하나다.
지루증의 기질적인 원인으로는 신경인성질환, 말초신경장애, 외상, 요로생식계질환 및 자율신경계 작용약물이 관여할 수 있고, 정신적인 원인으로는 심리적·신체적 자극의 부족, 부적절한 상대자, 성적인 감각의 집중결여, 판에 박힌 성행동 등이 있다. 항우울제 등 오르가즘을 지연시키는 약물의 복용, 우울증과 같은 정신질환 그리고 저테스토스테론혈증, 갑상선기능저하증, 고프로락틴혈증과 같은 성기능장애를 유발할 수 있는 내분비질환 등의 기질적 원인에 대해서는 근본원인 제거나 동반질환 치료로 비교적 높은 성공률을 얻을 수 있다.
그러나 적절한 치료에는 필수적으로 심리적인 원인을 따져봐야 한다. 즉 임신 공포나 성관계를 죄악시하는 유사 종교적 믿음, 상대방에게 성적 매력을 느끼지 못할 때, 강간이나 불륜 경험으로 인한 파트너에 대한 혐오감, 고통스러웠거나 괴로웠던 사정의 경험, 음경을 무기 삼아 남성의 공격심리를 표출시키려는 무의식적인 동기 등이 그것이다.
상담을 요청하는 여성들에게 남성의 기질적 원인이 없다고 판명된 경우나 남성이 병원 진료를 꺼리는 경우 남편의 자위 훈련을 함께 해줄 것을 권한다. 섹스 도중 페니스를 분리해 오럴이나 손으로 자극하고 사정할 것 같은 전구감을 느끼게 하고 다시 삽입해 사정을 유도해보는 것이다. 이런 훈련을 하다보면 자연스럽게 정상으로 돌아오는 경우가 많다. 또 성관계 자체를 즐길 수 있도록 하는 남성 스스로의 노력이 중요한데 남편이 압박감을 느끼지 않도록 편한 분위기를 조성하고 사정이 되지 않아도 상관없다는 생각이 들도록 해주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실제 여성의 입장에서 보면 지루보다는 조루가 백 번 낫다. 조루증의 경우 여자의 보살핌으로 조절이 가능하지만 지루증의 경우에는 아무리 참고 견디고 동참해 주려고 해도 지겹고 아프고 무섭고 혐오스러워지면 해답을 찾기 어렵다. 방법이 없는 것이다.
우리사회에서는 오랫동안 지속할 수 있는 능력에 큰 가치를 부여하지만 적어도 남성에 관한 한 지루증은 분명히 좋은 것이 지나친 경우다. 이런 남성들은 그 문제를 은폐하기 위해 자신의 지구력을 자랑하기도 한다. 그러나 사정을 할 수 없는 남자는 결국 분노와 좌절감을 느끼고 섹스를 외면하게 된다. 남성은 자신의 사정을 스스로 조절할 수 있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