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암동은 수많은 얘깃거리가 숨어있는 곳이다. 걷다 쉬고, 쉬다 차 한잔하는 여유가 한가롭다. 서울 도심에 자리한 산촌의 풍경은 말 그대로 고즈넉하다. 덕분에 평일 오후 산책길엔 수많은 생각이 함께 한다. 퇴근 후 슬쩍 동네 어귀로 발길을 돌리면 길은 한줌 찬바람 내주며 옛 추억의 물꼬를 튼다. 누군가와 함께 걸어도 좋고 홀로 걸어도 충분한 길, 그 위에 서너 시간 몸을 맡기면 모자라고 아쉬웠던 순간 혹은 지금 이 순간의 간절한 고민이 바람에 실려 저만치 흘러간다.
과거와 현재가 살아있는 곳
지하철 5호선 광화문역에서 내려 교보문고 앞에서 마을버스에 올랐다. 지하철 3호선 경복궁역을 경유해 부암동주민센터에 내려서면 드문드문 사람들의 발걸음이 이어진다. 이제는 아베크족의 데이트코스로 유명한 몇몇 카페는 평일인데도 자리가 비좁다. 부암동 산책길은 북악스카이웨이 방향으로 자리한 ‘자하손만두’, 카페 ‘SOON’, 한옥이 멋들어진 ‘Art for Life’, 드라마 <커피프린스>의 촬영지 ‘산모퉁이’, ‘환기미술관’으로 이어진 길이 늘 인기다. 그만큼 언론에 알려진 길이요, 유명 배우들의 손때가 묻은 곳이다. 이번엔 그 반대편 길로 향했다.
돌계단이 정겨운 가정집 입구
부암동주민센터 뒷길로 들어서자 걸음걸이가 자연스레 느릿해진다. 오르막이 많은 부암동 산책길은 되도록 편한 신발이 좋다. 또 주차장이 없는 탓에 대중교통을 이용해야 한다. 사는 이들이 늘 투덜대는 이유지만 그럼에도 이곳을 뜨는 이는 그리 많지 않다. 주민센터 뒷길로 100여 미터쯤 오르면 가로막으로 가려진 너른 공터가 눈에 띈다. 부암동 352번지, <몽유도원도>의 배경이 된 무릉도원과 닮았다 해서 조선시대 안평대군이 ‘무계정사’라 이름붙인 별장 터다. 개발을 이유로 1100㎡의 공터만이 덩그런 이곳은 얼마 전까지만 해도 수백 년 된 고목이 사람을 반겼다. 지금은 무성한 잡초가 개발제한구역이자 군사시설보호구역인 부암동의 개발의지를 엿보게 한다. 지척엔 개화파 지도자 윤치호의 아버지 윤웅렬이 지은 별장이 꼿꼿하다. ‘ㄱ’자로 꺾인 사랑채의 한쪽 끝에 서양식 2층 벽돌건물이 자리했다. 당시 외국의 근대건축양식이 주택에 적용된 흔치않은 사례다. 한 바퀴 눈으로 돌았다면 이젠 가쁜 숨을 내쉴 차례다. 다소 경사진 고개 위에 자리한 ‘자하미술관’은 이 산책길의 백미(白眉). 무료 관람도 반갑지만 2층에 오르면 부암동 일대와 건너편 북악산 자락, 서울성곽이 한눈에 들어온다. 평일 관람객이 뜸했는지 미술관에서 내준 커피 한 잔이 웬만한 드립커피 부럽지 않다. 잠시 계단에 앉아 주변을 둘러보면 이런 저런 일들로 복잡했던 머리가 한없이 평안하다. 발아래 도심의 바쁜 일상이 이 순간만큼은 차례로 정렬된다. 그건 어쩌면 도심 속 산촌이 주는 여유 아닐까.
소나무를 공유한 길 건너 이웃
커피 한잔의 따스함이 사라질 즈음 오른 길을 내려와 골목으로 들어서자 구불한 동네 풍경에 TV 속 그 때 그 시절이 떠오른다. 앞집 소나무가 담을 넘고 길을 건너 내 집에 가지를 뻗자 집주인이 지지대를 놓아 길을 터준 모습, 아름드리 감나무를 타고 올라 기다란 뜰채로 하나하나 감을 따는 모습, 어지러운 골목의 한쪽 축대에 다리를 놓아 대문을 연결한 단층주택, 하나하나 손수 이를 맞춘 듯한 돌계단 입구, 사람 하나 겨우 지나갈 만한 담장 위에 수줍게 피어난 이끼 한 움큼, 이제는 익숙할 법도 하건만 사람 소리만 나면 담벼락을 넘겠다는 듯 짖어대는 개 한 무리, 살짝 불이 들어오면 달콤함에 혀끝이 찌릿할 것만 같은 로맨스 전용(?) 가로등, TV 드라마의 배경이 된 2층집…. 이 모든 풍경을 즐기며 한 시간 쯤 걸음을 옮기면 시인 윤동주가 하늘을 바라보며 시를 지었다는 ‘시인의 언덕’이 또 다른 서울을 품고 있다.
북악산 서울성곽과 맞닿은 이곳은 잘 정돈된 공원(청운공원)이다. 시인의 시비를 비롯해 곳곳에 시 한 구절을 놓아 보는 이의 마음에 별을 새긴다. 부암동의 시작점인 탓에 명소가 되기도 했지만 이곳에서 바라보는 서울 야경은 스카이라운지의 그것과 비교해 또 다른 운치를 선사한다. 덕분에 길을 걸어본 이들은 추억을 안고 사라진다. 초겨울 부암동의 추억은 을씨년스럽지 않다. 오히려 따뜻하다….
■ 삼성 NX100
1460만 화소 대형 APS-C타입의 CMOS 이미지 센서를 채용해 DSLR 같은 풍부한 색상과 섬세한 고화질을 구현했다. 핸드백에 쏙 들어가는 가로 12㎝, 세로 7.2cm
두께 3.4㎝, 무게 282g의 소형화를 실현했다. 기존 렌즈 교환식 카메라의 렌즈가 단지 탈부착만 가능한 수동적 사용에 머물렀다면, 삼성이 독자개발한 i-Function 렌즈는 사용자들이 렌즈의 i-Function 버튼을 이용해 카메라의 ISO(감도)·EV(노출)·WB(화이트밸런스)·셔터스피드·조리개값 등 각종 설정 값을 포커스 링으로 조작할 수 있다.
[안재형 기자 ssalo@mk.co.kr / 여행가이드 = 박상준('오 멋진 서울' 저자) / 지도 제공 = 카페 ‘유쾌한 황당’ / 카메라 협찬 = 삼성카메라 NX100]
[본 기사는 매일경제 Luxmen 제3호(2010년 12월)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