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누군가 샴페인을 마신 후 “별을 마신다”고 표현해 그 자리의 모든 사람들 머리 위로 별이 쏟아질 것만 같은 상상을 펼친 적이 있다. 잔에 가득 차오르는 ‘별’들의 조각을 보고 있으면 그 신비로움에 자못 호기심도 인다. 이름만 들어도 알만한 시대의 명사들 역시 샴페인 예찬에 빠졌으니 그들의 선택엔 우리와 같은 이유가 있었으리라.
그러고 보면 샴페인은 유난히 다른 어떤 와인보다도 역사 속 명사들의 많은 사랑을 받았다. 다른 이들을 유혹에 빠뜨리던 그들조차도 샴페인의 유혹에 넘어가 그들의 삶 속에 고스란히 샴페인을 담았던 것이다.
먼저 프랑스 루이 16세의 왕비인 마리 앙투아네트 이야기부터 시작해야겠다. 당시 절대왕정 말기의 재정 궁핍을 고려하지 않고 호사스러운 생활을 하며 세간에 좋지 못한 평판을 남겼던 그녀가 프랑스 혁명 당시 단두대에 오르며 마지막으로 남긴 말이 있다. 그녀를 단두대로 끌고 가기 전 감옥을 지키던 간수가 물었다.
“마지막으로 먹고 싶은 음식이 있으면 말하시오.”
그러자 그녀가 답했다.
“샴페인 한잔과 빠데 드 푸아그라를 먹고 싶다.”
18세기에 처음 샴페인을 접한 그녀는 기포가 주는 달콤한 맛에 반해 왕실에서 열리는 모든 만찬에 샴페인만 내놓게 했고, 궁중 파티를 준비하면서 자신의 가슴 모양을 본뜬 잔을 내놓으라고 지시했다는 후문이다.
한 잔의 샴페인과 푸아그라
아름다운 금발과 독특한 성적 매력으로 20세기를 뒤흔든 마릴린 먼로도 샴페인의 매력에 사로잡혔던 샴페인 애호가로 꼽힌다. 샴페인과 함께 유명해진 그녀의 일화는 바로 샴페인 목욕. 그녀는 샴페인 350병을 부어 넣은 욕조에서 목욕을 즐겼으며, 그녀의 전기를 쓴 조지 배리스는 먼로가 샴페인을 마치 산소처럼 마시고 호흡했다고 기록하고 있다. 그녀는 미모의 비결을 묻자 “나는 샤넬 N0.5를 뿌린 후 잠자리에 들고, 샴페인 한 잔으로 아침을 시작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샴페인을 가장 사랑한 명사로 손꼽히는 윈스턴 처칠.
“내 입맛은 아주 단순하다. 나는 최고에 쉽게 만족한다.”
1908년 윈스턴 처칠이 폴로저 샴페인을 처음 마셔 본 이후 한 말이다. 그리고 그는 여생 동안 단 하루도 빠짐없이 폴로저 샴페인을 즐겼다고 전해진다. 훗날 폴로저의 오데뜨 폴로저 여사와 친분을 쌓고 평생 우정을 과시했다. 윈스턴 처칠이 91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나자 폴로저 측에서는 폴로저 병목에 검은 리본을 달아 윈스턴 처칠의 서거를 알렸다. 1975년 윈스턴 처칠 사후 10주년을 기념해 폴로저 측은 윈스턴 처칠 생전의 모습에서 영감을 얻어 건강하고 탄탄한 구조감과 중후한 성숙미가 돋보이는 최고의 샴페인을 탄생시켜 브랜드 명을 ‘뀌베 써 윈스턴 처칠’이라고 지으며 애도를 표했다. 그 후 이 샴페인은 지금껏 명맥을 이어오며 최고의 프리미엄 샴페인 중 하나로 불린다.
또 한 명의 역사 속 인물은 프랑스 전 대통령인 샤를 앙드레 조제프 마리 드골이다. 그는 사후 어떤 훈장이나 감사장도 받지 않겠다는 유언을 남겨 후세에 더욱 회자되고 있는 세기의 인물. 그의 유언에도 불구하고 그를 기리는 추모의 글과 세계 각국에서 날아온 기념패의 행렬은 끝날 줄 몰랐다. 그는 ‘위대함이 없는 프랑스는 프랑스가 아니다’고 천명했을 만큼 프랑스 자존심의 상징이다. 그런 그도 샴페인을 즐겼는데, 그와 관련된 유명한 일화도 있다. 로랑 페리에라는 샴페인 하우스에서 생산한 샴페인에 직접 ‘위대한 시대’라는 의미의 그랑 씨에클(Grand Siècle)이라는 이름을 붙여준 것. 그 후 샴페인의 브랜드 네임으로까지 사용되고 있을 만큼 위대한 정치가에게서 받은 특별한 이름으로 유명세를 떨쳤다. 이는 상파뉴 지방의 전통 방식으로 생산한 와인에만 허락된 이름인 샴페인과 누구에게도 굽히기 싫어했던 정치가 드골, 프랑스를 대표하는 두 자존심의 세기적인 만남으로 거론되고 있다.
샴페인의 발견
샴페인은 서양에서는 벼락부자라는 뜻으로 사용될 정도로 상류사회의 상징이다. “샴페인은 승자뿐 아니라 패자를 위해서도 준비되어야 한다”는 명언을 남기며 평생 샴페인을 즐겼던 윈스턴 처칠의 샴페인 폴로저는 영국에서 젠틀맨의 샹파뉴(Champagne; 샴페인은 샹파뉴의 영어식 발음)로 불리며 유럽 황실 인증서를 받을 정도로 유럽 황실에서 즐겨 찾고 있다.
18세기로 거슬러 올라가면, 루이 15세의 애첩 퐁파두르 후작 부인은 “샴페인은 마신 후에도 여자를 아름답게 해주는 유일한 술”이라고 예찬했다.
이렇게 세기의 사랑을 받고 있는 샴페인은 아주 단순한 사건에서 시작되었다.
17세기 어느 따뜻한 봄날. “펑! 펑!” 샹파뉴 지방 지하 와인 저장고에서는 여기저기 와인 병이 폭발하는 소리가 요란했다. 전 세계에서 가장 위쪽에 있는 포도밭이니 겨울이 빨라 와인을 만들면 발효가 멈추는 일이 많았고, 봄이 되어 기온이 올라가면 병에 남아 있던 당분이 재발효해 탄산가스(이산화탄소)의 압력에 의해 병이 터지는 경우가 흔했던 것.
이를 두고 ‘악마의 술’이라며 농부들은 기겁했다. 이렇게 저주받은(?) 와인들은 모두 버려졌다. 하지만 이 지방 오빌레르 수도원(Abbaye Saint-Pierre d'Hautvillers) 와인 저장고 담당이던 ‘동 페리뇽(Dom Pèrignon)’ 수사는 그냥 지나치지 않았다. 마셔보니 놀라웠다. 입 안 가득 톡톡 쏘는 황홀한 맛. 그는 “여러분, 난 지금 별을 마시고 있소”라고 말했다.
동 페리뇽 수사의 연구에 의해 코르크 마개와 독특한 병이 고안되었고, 지금의 특별한 샴페인이 세상에 나왔다.
샴페인이라고 전부 샴페인은 아니다?
이에 대한 설명을 시작하기 전에 콜라 이야기부터 시작해야겠다. 해외에서 콜라음료를 주문할 때 흔히 ‘코크(Coke)’라는 단어를 사용한다. 사실 이 코크는 콜라음료 최초의 브랜드 ‘코카콜라(Coca-Cola)’의 또 다른 상표명으로 고유명사가 유명세로 일반명사화해 쓰이는 대표적인 경우다. 사무실에서 많이 사용되는 메모지 ‘포스트잇(Post-it)’도 그런 경우다. 이는 본래 쓰리엠에서 최초로 선보인 접착식 메모지의 제품명이었으나 그 후 모든 회사에서 나오는 이러한 형태의 메모지가 ‘포스트잇’으로 불리며 일반명사처럼 쓰이게 되었다.
샴페인이 전부 샴페인이 아닌 까닭도 여기에 있다. 흔히 탄산가스가 포함되어 알알이 터지는 거품이 있는 발포성 와인을 샴페인이라고 일컫는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샴페인이란 명칭은 프랑스 샹파뉴 지역에서 생산된 발포성 와인에만 사용할 수 있다. 따라서 나라마다 생산되는 발포성 와인은 각각 다른 명칭을 가지고 있다. 프랑스 내 샹파뉴 지역 외 다른 지역에서 만들어진 발포성 와인은 뱅 무스(Vins Mousseux) 또는 크레망(Cremant)이라고 불리며 영어권 국가에서는 ‘스파클링 와인(Sparkling wine)’, 이탈리아에서는 ‘스푸만테(Spumante)’, 스페인에서는 ‘카바(Cava)’, 독일에서는 ‘젝트(Sekt)’라는 이름으로 불린다. 이 중 ‘스파클링 와인’은 샴페인보다 더 넓은 의미를 안고 있어 발포성 와인을 총칭하기도 한다.
또 한 가지 샴페인에 대한 오해는 풍부한 거품으로 인해 샴페인을 와인과 전혀 다른 종류의 주류로 여기는 이들도 있지만 샴페인도 포도로 만들어지는 일종의 와인이다. 다만 기존의 레드 와인, 화이트 와인의 생산방식과 달리 효모로 인해 생성된 탄산가스를 날려 보내지 않고 병 속에 가두고, 각각의 병이 발효 탱크가 되어 병 속에서 2차 발효를 진행한다. 이러한 샴페인 제조 방식은 거의 300여 년 동안 프랑스에서 사용되어 왔으며, 두 번의 발효과정을 거친 샴페인은 한 병에 보통 25억 개의 탄산가스 버블이 포함되어 있다고 전해진다. 수많은 탄산가스 버블로 병의 내부 압력은 5~6기압을 형성하고 있어 샴페인을 오픈했을 때 폭발력 또한 대단하다. (샴페인 병의 내부 압력은 20도에서 5.5기압이라고 한다. 즉 750㎖ 샴페인 한 병은 4125㎖의 버블을 함유하고 있는 것. 버블 한 개의 직경은 0.5㎜ 정도이고 750㎖ 한 병에는 4900만 개의 버블이 있다.)
언급했듯이 샴페인도 와인의 일종이라면 보통 빈티지가 명확하게 표시될 것이라고 여기겠지만 샴페인의 총생산량 중 85%는 ‘논빈티지 샴페인(Non-Vintage)’이다. 논빈티지 샴페인은 여러 해의 빈티지를 섞어 완성되는데, 이는 겨울에는 춥고 여름에는 온화한 포도 재배에 적합하지 않은 샹파뉴 지방의 기후로 인해 매년 양질의 포도를 얻기가 힘들기 때문이다.
이 때 다양한 블랜딩 스타일이 샴페인 하우스의 개성을 만든다. ‘빈티지 샴페인’의 경우는 특정한 해 포도의 작황이 매우 좋았을 경우에 한해서 한 가지 빈티지로 생산되는 것으로 품질이 매우 좋다. 또한 ‘프리스티지 뀌베(Prestige Cuvee)’는 각 하우스를 대표하는 최고 샴페인으로 작황이 매우 좋은 해에 좋은 포도밭에서 특별히 선별해 제조하는 최고급 샴페인이다. 보통 투명하거나 연노란빛을 띠는 샴페인은 청포도로만 만들 것 같지만 이 역시 그렇지 않다. 화이트 와인을 만드는 샤르도네, 레드 와인을 만드는 피노누아와 피노 므뉘에가 블랜딩되어 샴페인이 완성된다. 그럼에도 투명한 색상의 비결은 포도껍질에 함유되어 있는 색소가 과육에서 나오는 포도즙을 물들이지 않도록 하기 위해 압착과정이 세심하고 빠른 시간 내에 이루어지는 데 있다. 샴페인은 진하기와 구조에 영향을 주는 피노누아, 신선하고 우아한 맛과 향의 샤르도네, 꽃·과일의 맛과 향의 피노 므뉘에 포도종이 다양한 비율로 블랜딩되어 ‘블랜딩의 예술’이라고도 하지만, 와인 메이커의 판단에 따라 한 가지 포도만을 가지고도 만든다. 샤르도네로만 만든 샴페인은 ‘블랑 드 블랑(Blanc de Blanc)’, 피노누아로만 만든 샴페인은 ‘블랑 드 누아(Blanc de Noirs)’라고 한다.
당도에 따른 샴페인의 단계 구분
샴페인은 당도에 따라 여러 단계로 구분되기도 한다. 그 정도에 따라 6단계로 나뉘며, 브륏 네이쳐(Brut nature; 드라이한 맛이 강함)― 브륏(Brut; 약간 드라이하고 단맛이 전혀 없음)―엑스트라 드라이(Extra Dry; 약간의 단맛과 약간의 드라이함)―섹(Sec; 단맛)―데미 섹(Demi Sec; 단맛이 Sec보다 진함)―두(Doux; 단맛이 진함)와 같다. 함유된 당분에 따라 음식과의 매칭을 조절해야 제대로 맛을 느낄 수 있는데, 당도가 높은 샴페인은 대개 단맛의 디저트와 함께 식후에 즐기기 좋다. 디저트와 함께 드라이한 브륏 샴페인을 마실 경우 브륏 샴페인의 쓴맛이 달콤함과 상반되어 어울리지 않는다. 이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음식과의 조화가 훌륭하다. 연어·새우·생선 등의 시푸드, 토마토소스를 제외한 파스타, 닭·돼지고기 등과 잘 어울리고 치즈와도 잘 어울린다. 숙성된 샴페인에는 구다 또는 파마산 치즈가 제격이다. 신선한 과일과도 곁들이기 좋은데, 이때에는 적당한 단맛을 함유한 데미 섹 샴페인이 좋다. 다른 와인과 마찬가지로 소스가 진하거나 매운맛이 있을수록 풀바디한 샴페인이 더 잘 어울린다.
최상의 샴페인을 준비하고, 이를 100% 즐기기 위해서는 올바른 잔의 선택과 적정한 음용온도에 유의할 필요가 있다. 좁고 깊은 플루트 모양의 잔은 오랫동안 거품을 간직할 수 있으며 차가운 온도를 유지시킨다. 이때 잔 밑 부분부터 샴페인의 수면 위로 끊임없이 기포가 올라온다면 최상의 상태인 것. 이 기포를 유지하려면 일반 와인처럼 잔을 돌려서 마시지 않는다. 잔을 빠르게 비틀어 돌리는 트월링(twirling) 후 마셔야 기포가 부서지지 않고 향을 음미할 수 있다. 적정 음용 온도는 일반적으로 7~9도의 차가운 온도가 좋지만 프레스티지 뀌베나 오래 숙성된 고급 빈티지 샴페인의 경우는 약간 높은 10~12도에서 더욱 좋은 맛과 향이 난다.
와인이 말을 건네다 1865 리미티드 에디션 시라
한창 마감이 이어지는 '와인리뷰' 편집실. 피자를 주문해 스태프 모두 산 페드로(San Pedro)의 1865 리미티드 에디션 시라(1865 Limited Edition Syrah)를 테이스팅 했다. 빈티지 2007. 알코올 13.5%.
1865 리미티드 에디션을 한 모금 테이스팅 했을 때 부드럽게 감싸는 타닌의 느낌과 긴 피니시에 모두 놀라움을 나타냈다. 기존의 1865 시라보다 한결 우아했다. 강렬한 보랏빛과 복합적인 아로마가 우아했으며, 튼실한 구조감과 파워풀한 힘을 그대로 지닌 맛을 보였다. 무엇보다도 기분 좋은 산도와 길게 이어지는 피니시가 압권으로 시라 포도종을 빼어나게 표현한 보기 드문 와인이었다.
이 와인을 빚은 산 페드로는 1865년 설립해 현재 칠레를 대표하는 와이너리로서 세계 80여 개국에 수출되고 있는 고품격 와이너리다. 천혜의 떼루아와 최신식 양조기술의 조화가 일궈 낸 산 페드로 와인은 전 세계 와인 마니아의 욕구를 충족시키는 노하우와 함께 현재 세계 와인 시장에서 그 명성과 위치를 확고히 하고 있다. 특히 1865 리미티드 에디션 시라는 국내에서 판매되는 칠레 와인 중 단일 브랜드로 가장 많은 판매고를 올리고 있는 와인이다. 산 페드로의 설립연도인 1865를 레이블로 옮긴 1865 싱글 빈야드 시리즈보다 한 단계 업그레이드한 와인이다. 칠레의 여느 와인 지역보다 온도가 낮은 엘끼 밸리 산지는 풍부한 과실 맛과 부드러운 타닌을 표현해 내기에 부족함이 없다. 최훈 '와인리뷰' 발행인, 보르도 와인아카데미 원장
[유동기 금양인터내셔날 마케팅 차장 dkyoo@keum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