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으로 아이러니다. 붕어빵에 붕어가 없듯, ‘노르웨이의 숲’엔 노르웨이가 없다. 비틀스의 노래 '노르웨이의 숲(Norwegian Wood)'뿐만이 아니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노르웨이의 숲'에도 노르웨이는 등장하지 않는다. 주인공 와타나베는 독일 함부르크 공항에 내리는 비행기 안에서 클래식 연주로 편곡한 비틀스의 <노르웨이의 숲>을 들으며 단지 18년 전 추억 속으로 빨려 들어갔을 뿐이다. 마치 잡힐 듯 잡히지 않는 이 나라의 상징 ‘오로라’처럼 노르웨이는 신비한 오로라 같은 존재다. 그러니 이 나라는 이성이 느끼기 전에, 몸과 가슴이 먼저 느낀다. ‘어떤가. 멋지지 않은가. 그런 곳이 노르웨이의 숲(Isnʼt it good? Norwegian wood - beatles 노래 가사 중)’이다.
노르웨이 숲, 그 속살을 보는 ‘인어넛셀 투어’
멀고도 가까운 북유럽 노르웨이 여행은 쉽다. 핵심만 둘러보는 인어넛셀(in a nutshell) 투어가 있어서다. 하기야 히말라야 8000m 고봉의 얼굴 에베레스트 산도 헬기로 여행하는 시대다. 인어넛셀 투어는 노르웨이 자연의 모든 것을 담는다. 빙하, 만년설, 폭포, 호수, 산악열차가 조합된 노르웨이 여행의 종합세트다.
출발지는 오슬로. 노르웨이 서부 뮈르달(Myrdal) 고원에서 플롬 계곡을 잇는 20㎞ 길이의 노선이다. 송네(Sogne) 피오르드의 지류인 아울랜드(Aurlands) 피오르드를 거쳐 구두방겐에서 크루즈로 빙하의 속살까지 실컷 맛본 뒤 보스(Voss)까지 버스로 이동하고, 다시 보스에선 제2의 항구도시 베르겐까지 둘러본다. 마법이 시작되는 곳은 플롬 산악열차. 오슬로 중앙역에서 일반 기차를 탄 뒤 뮈르달 역에 내리면 거의 동시에 ‘아’하는 탄성을 내지른다. 이곳은 영국 킹스크로스 역에서 해리포터를 마법의 나라로 안내한 9와 4분의 3 플랫폼이나 다름없는 곳. 그 마법의 기차는 플롬 산악열차다. 이 기차가 압권이다. 노르웨이 서부 뮈르달 고원에서 플롬계곡을 잇는 이 노선은 피오르드 중에서도 명품으로 꼽히는 ‘넘버원’ 피오르드 송네(Sogne)의 지류 아울랜드 피오르드로 이어진다. 1923년 착공한 뒤 무려 20여 년 만에 완공된 단선 궤도. 평지를 달리는 것도 아니다. 이 기차의 최대 기울기는 55도. 가파른 협곡 사이사이를 나선형으로 가로 지른다. 놀라운 건 도저히 잠에 빠질 수 없다는 것. 잠깐 한눈만 팔아도 절경을 놓치니 숫제 카메라를 눈에 대놓고 있어야 할 판이다.
종착역은 플롬이다. 오슬로에서 북서쪽으로 370㎞쯤 떨어진 플롬은 우리에겐 낯설지만 여행 마니아들 사이에선 톱 10에 드는 명소다. 이곳에서 크루즈로 갈아탄다. 제대로 피오르드 속살을 들여다보는 순서인 셈. 이 배는 구두방겐까지 물 위로 여행객들을 실어 나른다. 길이만 204㎞에 달한다는 송네 피오르드. 1시간10분 정도의 뱃길은 마치 1분처럼 순식간에 지난다. 신(神)이 갈고리로 긁어내린 듯 촘촘한 고랑으로 이어진 협곡이 시선을 휘어잡는다. 이곳의 폭포는 급도 다르다. 산꼭대기 만년설이 녹아 흘러내린 폭포다. 끊임없이 이어지는 진초록의 숲. 잊을 만하면 나타나는 알록달록한 가옥들. 카메라 렌즈에 담는 잠깐의 순간조차 아쉬워 그저 절경을 바라보게 된다. 크루즈의 종착지는 구두방겐. 여기서 보스까지 버스로 이동하고 남은 구간은 다시 기차를 타고 이동한다.
문화의 도시 베르겐
그리그의 생가 / 바이킹 전시물 / 베르겐 전경
기차의 종착지는 베르겐이다. 아담하고 고풍스러운 이 항구도시에 도착할 즈음, 왜 그토록 많은 예술가가 노르웨이의 창백한 숲에 대해 이야기하고, 또 여기서 영감을 얻었는지 고개가 끄떡여진다.
늘 춥고 음습한 곳. 오후 3시가 넘어서야 뉘엿뉘엿 뜬 해가 밤 11시가 되어서야 기울어지는 곳. 빛바랜 스포츠 신문 같은 분위기의 그곳에서 뭉크는 그림으로 노르웨이를 그렸고, 노르웨이 챔버 오케스트라, 베르겐 필하모니 오케스트라는 클래식의 선율로 노르웨이의 숲을 노래했다. 'Take On Me'를 노래한 아하나 디사운드는 팝과 재즈로 이곳을 이해하고, 비틀스와 하루키는 가슴으로 그 느낌을 전한다. 베르겐은 인어넛셀 투어의 종착지면서, 노르웨이 문화의 종착지이기도 하다. 사실 베르겐을 베르겐답게 만드는 게 다름 아닌 문화다.
베르겐에는 노르웨이 최초의 국립극장이 있고, 세계 최고(最古)로 꼽히는 교향악단이 기반을 두고 있다. 북구 최초의 희극작가인 루드빅 홀베르그와 노르웨이 국민음악가 에드바르트 그리그의 고향도 베르겐이다. 뿐만 아니다. 극작가 헨릭 입센은 베르겐의 극장에서부터 세계무대에 알려졌고, 화가 뭉크 역시 이곳 상인들에게 단단히 신세를 졌다고 한다. 이중 가장 친숙한 이름은 '솔베이지의 노래'로 유명한 에드바르트 그리그다. 시내 중심가에서 남쪽으로 8㎞쯤 떨어진 호프란 곳의 한 언덕에 ‘트롤트하우겐’이 보존돼 있다. 소프라노 가수로 활동했던 아내 니나와 함께 1885년부터 22년 동안 살던 집이다. 그리그는 이 집에서 세상을 떠나기까지 22년간 머물며 수많은 명곡을 남겼다고 한다. 바다를 내려다보는 바위 절벽 중간엔 아내와의 합장묘가 있다. 가만히 귀를 기울이면 지금도 어딘가에서 '솔베이지의 노래'가 은은히 흘러나오는 것만 같다.
사실 그렇다. 노르웨이는 굳이 여행을 위해 여정을 계획하고 다닐 필요가 없는 곳이다. 진한 어쿠스틱 기타의 여운이 오래도록 남는 비틀스의 '노르웨이의 숲'을 흘려들으며, 옆구리엔 하루키의 '노르웨이의 숲'을 끼고 발길 닿는 대로 흘러가면 된다. 비틀스의 노랫말 그대로다. ‘그냥 다녀도 멋지지 않은가. 그런 곳이 노르웨이의 숲이요, 또 길이다.(Isn’t it good? Norwegian wood.)’
■ Travel Tip가는 길 노르웨이까지 직항은 없다. 핀에어로 핀란드 헬싱키에 가는 것이 가장 짧은 거리다. 8시간30분 정도 걸린다. 여기에서 다시 2시간30분 정도 비행기를 더 탄 뒤 오슬로까지 이동한다. 표준시는 한국보다 7시간 늦다.
살인 물가 물가는 살인적이다. 생수 한 병에 25크로네(약 5000원) 수준(물론 빙하의 나라답게 물은 깨끗하다. 화장실 물을 그냥 마셔도 된다). 미용실에서 파마 한 번 하는 데 50만원이다. 빅맥은 2만원대. 택시도 피하는 게 낫다. 10분 정도만 가도 5만원을 훌쩍 넘는다.
인어넛셀 패키지 싸고 유용하다. 공식 사이트(www.fjordtours.com)를 통해 예약하면 된다. 자유여행이라면 도심 패스가 있다. 패스 하나로 버스, 지하철, 박물관, 미술관을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다.
문의 이노베이션 노르웨이 02-773-6422
[신익수 여행전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