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93표, 이성권 국민의힘 당선자가 22대 총선에서 출마 지역구인 부산시 사하구갑 선거구에서 경쟁 후보를 따돌린 표차다. 백분율로 따지면 0.79%포인트의 격차, 100명이 투표했다면 1명도 채 되지 않는 투표가 승부를 가른셈이다.
이 승리를 위해 이성권 당선자는 선거 유세 과정에서 ‘몸이 부서져라 뛰었다’. 상투적인 표현이지만 이번 총선에 임한 이 당선자를 표현하는 데 이보다 적확한 말은 없다. 실제로 선거 유세를 하다가 몸이 고장 나 버렸기 때문이다. 선거 전 각종 여론조사에서 열세를 면치 못했던 이 당선자는 선거 막판까지도 반전의 기회를 만들어 내지 못했다. 하지만 포기할 수는 없는 노릇, 절박한 마음에 ‘큰절’ 유세로 지역 표심에 호소하기 시작했다. 지역 5일장에서 오가는 시민들을 향해 하루 종일 큰절을 했는데, 그러다 갑자기 몸이 휘청하는 것을 느꼈다. 절을 하기 위해 일어섰다 앉았다를 반복하는 동작을 지속하다 보니 순간 다리가 마비돼 중심을 잡을 수 없었던 것이다. 다리가 아픈 것보다 유세 중단 상황이 더 뼈아팠던 순간, 곁에서 돕던 아들이 바통을 이어받아 큰 절을 이어 나갔다. 이 당선자로서는 모든 것을 쏟아부은 선거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다리 마비는 신경이 눌려서 일어난 증상이었고, 치료중이지만 지금도 절뚝거린다.)
그만큼 이번 총선 결과의 의미가 남다를 수밖에 없는데, 여기에는 한 가지 이유가 더 있다.
바로 16년 만의 국회 귀환이라는 점이다.
그가 첫 배지를 단 것은 17대로 국민의힘이 한나라당이었던 시절이다. 당시 국회 동기로 이번에 당선된 이들은 국민의힘에선 나경원과 주호영, 더불어민주당에서는 정청래 의원 등이 있다. 모두 여야 중진급 의원 반열에 오른 이들이다.
이 때문에 이 당선자를 두고 ‘중진급 재선 의원’이라는 우스갯소리도 나오고 있다. 이는 여당인 국민의힘에서 과거와 같은 간판 중진급 의원 풀이 약한 상황에서 이 당선자를 향한 기대감의 표출이기도 하다.
그 또한 그동안 정치 변방에서 머무르다가 중앙으로 진출한 만큼 ‘정치인 이성권’으로서의 욕심도 남다를 듯했다. 야인 시절 부산시 경제부시장, 일본 고베 총영사, 코트라 상임감사 등 다양한 행정 경험도 쌓았다.
하지만 그는 22대 국회에 임하는 자세로 “어렵게 당선된 만큼 지역을 더 챙기는 데 시간을 쓰고 싶다”고 했다. 국회에 들어왔다고 바로 중앙 정치에서 돋보이려는 행보는 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지역이 속한 부산시의 정책 추진에도 힘을 보태고 싶다”고 덧붙였다.
인터뷰 당일인 5월 10일에는 윤석열 대통령 취임 2주년 기자회견과 당내 원내대표 선거 등 굵직한 정치 이벤트가 2건이나 열렸다.
인터뷰 과정에서 자연스레 이와 관련된 이야기가 오갔지만 원론적 수준에서 그쳤고, 이 당선자가 열정적으로 답변을 한 질문들은 지역 재개발 이슈, 산업은행 이전 등 지역 현안과 관련된 것들이었다.
이 당선자가 지역에 더 관심을 가지는 이유는 또 있다. 바로 당의 걱정거리인 중도층 공략과 관련한 해법을 찾을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이 당선자는 “직전 총선이었던 21대에서는 더불어민주당이 697표차로 승리했는데, 이번 22대에서는 693표차로 제가 이겼다”면서 “사하갑 선거의 승패를 결정짓는 이 같은 초박빙 표심 규모는 특정 정당을 지지하지 않는 중도층으로 볼 수 있고, 이들의 마음을 사로잡았기 때문에 제가 승리할 수 있었다”라고 했다.
그는 “사하갑 정치 지형도는 첨예하게 갈린 대한민국 정치판의 축소판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라면서 “앞으로 있을 지방선거와 대선의 승패를 가를 핵심 변수가 중도층인 것을 감안하면 거창한 거시전략도 중요하지만 그것보다 이들이 정말 무엇을 원하는지 먼저 알아야 하고, 그 맥락에서 정책들이 나와야 한다”고 강조했다.
제 17대 국회의원
부산광역시 경제부시장
주고베대한민국총영사관 총영사
대통령비서실 시민사회비서관
와세다대학교 대학원 국제관계학 석사
Q 16년 만의 국회 귀환을 축하드립니다. 기분이 어떠신가요.
A 솔직히 기쁨보다는 무거운 마음이 더 큽니다. 상대를 죽일 듯이 달려드는 정치, 갈수록 심해지는 경제적 양극화 등 갈라질 대로 갈라진 대한민국의 정상화를 위해 많은 것을 고민해 보지만, 22대 기울어진 국회 지형도를 감안할 때 제 역할을 할 수 있을지 걱정입니다. 지역 현안들도 꼼꼼히 챙겨야 되는데 중압감도 상당합니다.
Q 지역 내 중도층 공략이 주효했다고 하셨는데, 박빙의 표심이 중도층인 것은 어떻게 확인하셨습니까.
A 민주당이 강세인 지역 특성상 저쪽 지지자들이 나를 찍을 확률은 희박합니다. 보수층 유권자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21대와 22대 총선에서 승부를 결정지은 표차가 거의 엇비슷하다는 것은 이들이 캐스팅 보트를 쥐고 있다는 뜻인데, 여도 야도 아닌 유권자층으로 볼 수 있습니다. 실제 당선 후 감사인사를 다니는 와중에 만난 젊은 유권자층 중 상당수가 자신은 지지 정당이 없다고 이야기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Q 사하구 중도층이 당선인에게 표를 던진 이유는 무엇인가요.
A 저도 궁금해서 물어봤는데, 정책 차별화가 마음에 와닿았다고 했습니다. 이번 총선에 임하면서 단순하게 지역 개발을 내세우는 것이 아니라 세대별로 생애주기별 맞춤형 공약을 전면에 내세웠습니다.
세대별로 가려운 곳을 직접 긁어주는 정책 개발에 많은 고민을 했는데, 지역의 어르신들에게는 이발과 미용 및 목욕탕 통합 바우처 추진·파크골프장 등 여가 인프라 확충 등을, 중장년층에게는 생애경력설계를 통한 취업 알선·지역공동체 교류 프로그램 활성화 등을, 젊은 층에게는 자격증 응시료 지원·대학생 천원의 아침밥 확대 등의 공약을 내세웠습니다.
도로를 닦고 터널을 뚫는 거창한 개발 계획도 좋지만 지역 유권자들은 실생활에 꼭 필요한 것들을 추진하려는 저의 정책을 더 좋게 봐준 것이죠. 선거 때마다 거창한 지역 개발 구상이 나오지만 현실화되는 비율은 극히 낮습니다. 유권자들도 이를 이제 아는 것이지요.
Q 중도 확장이 숙제인 국민의힘이 눈여겨봐야 할 것 같습니다.
A 저는 우리 당이 가야 될 방향도 이 점에 있다고 봅니다. 피부에 와 닿는 정책들이 계속 나오고 실천되면 중도층 뿐만 아니라 이념에 휘둘리지 않는 상대 진영 유권자들에게도 파고들 수 있다고 봅니다.
Q 이번 당선으로 오랜 시간 끝에 정치는 중심에 서셨습니다. 17대 때 당내 개혁적 목소리를 내는 데 주저하지 않으셨는데요.
A 사실 중앙정치에 대한 욕심이 없다면 거짓말입니다. 하지만 의정활동 초반은 지역에 충실하고 싶습니다. 그것이 나를 뽑아준 유권자에 대한 도리입니다. 또한 박빙의 결과로 당선된 만큼 더 지역 기반을 다져야 할 필요도 있습니다. 22대 국회에서는 지방선거와 대선이란 더 큰 정치 이벤트가 있습니다. 총선 참패를 딛고 승리하기 위해서는 어렵게 당선된 지역의 민심을 계속 지켜나가는 것이 중앙 정치에서의 역할보다 더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현 정치구도에서 낙동강벨트는 여당이 밀려서는 안 되는 마지노선입니다.
Q 그렇기 때문에 17대 당시 당내 소장 개혁파 모임인 새정치 수요모임 같은 것이 필요하지 않을까 싶은데요.
A 당내 변화도 중요하지만 극단적으로 갈린 정치 지형도를 바꾸는 것이 국가적 차원에서 더 필요한 것 같습니다. 같이 정치에 입문한 이후 항상 정국의 중심에 있었던 야당 정치인들이 진영 대결에 앞장서는 모습은 정말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Q 윤석열 대통령 기자회견에 대한 평가를 해주신다면.
A 국정 운영의 방향을 국민들께 정성 들여 전달하려는 대통령의 의지가 느껴졌습니다. 또한 국정 운영에 대한 변화 의지를 확인할 수 있는 시간이었지 않나 생각합니다. 국민들께서 100% 만족하시진 않겠지만 긍정적으로 평가할 만하다고 생각합니다.
Q 시중 여론은 그렇지 않은 것 같은데 계파로 따진다면 친윤이신가요?(웃음)
A 앞서도 말했지만 지역에 많은 시간을 할애할 예정입니다. 계파 활동 같은 것은 전혀 고려하지 않고 있습니다.
(본지 취재 결과 이 당선인은 현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회가 꾸려지는 과정에서 역할을 맡아달라는 요구를 받는 것으로 파악됐다. 하지만 당선인은 완곡하게 거절했다고 한다.)
Q 한동훈 전 비대위원장에 대해 묻지 않을 수 없습니다. 팬덤도 상당한데요.
A 보수층에서 볼 수 없는 스타일의 정치인이 나타났고, 여기에 진영 내 지지자들이 열광하는 것 같습니다. 유세 기간 중 한동훈 위원장이 지역구 내 전통시장을 찾은 적이 있는데, 몰려든 인파에 저도 깜짝 놀랐습니다. 한동훈이란 인물에 대한 궁금증이 그만큼 큰 것 같았습니다.
그리고 총선 패배와 관련해 한 위원장 책임론이 당내에 부각되고 있는 것과 달리, 지역구 내에서는 한 위원장이 빨리 당에 복귀해야 된다는 목소리도 심심찮게 나오고 있습니다.
개인적으로도 유세기간 중에 만난 한 전 위원장의 이미지는 미디어에 비친 것과는 상당히 달랐습니다. 예상외로 정무적 감각도 있었고, 정치적 순발력도 빨랐습니다.
Q 직전 부산시 경제부시장을 역임한 것이 도움이 됐을 것 같습니다. 경제전문가를 전면에 내세웠는데요.
A 부산 경제 전체를 보니 동부산과 서부산의 지역 격차가 상당히 심각했습니다. 해운대가 있는 동부산 일대는 이어지는 민간 자본 투자로 지역 발전이 계속되고 있지만, 서부산은 기존 산업시설의 노후화와 더딘 지역 개발 등으로 활력이 점점 사라지고 있었습니다. 이런 현상이 지속되면 부산 전체로서도 좋지 않다고 생각했고, 여기에 저의 역할이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사하갑 출마를 결정한 이유이기도 합니다. 만일 경제부시장을 하지 않았다면 부산의 극심한 불균형 현상을 체감하는 정도가 덜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생애주기별 공약에 호응하는 이들도 많았지만 지역에서는 재개발에 대한 수요도 꽤 많습니다. 재개발의 원활한 추진을 위해서는 부산시와의 협조가 필수적인데, 경제부시장을 지낸 인사가 오면 재개발 속도가 더 빨라지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도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Q 부시장을 그만두면서 아쉬웠던 점이 있다면요?
A 엑스포 결과와 관련해 아쉽지 않다면 거짓말이겠지만, 부산에 대한 세계의 인지도를 높였다는 것은 무형의 성과라고 자부할 수 있습니다.
사실 아쉬운 점은 산업은행 유치를 마무리짓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부산의 당면한 가장 큰 문제는 일자리를 찾아 수도권으로 가는 젊은이들이 계속 늘고 있다는 점입니다. 젊은이들이 지역을 계속 빠져나가면 도시는 노후화되고 결국에는 생명력을 잃어버리게 됩니다. 이런 점에서 산업은행 같은 양질의 일자리를 지역에 정착시키는 것은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첨단 산업과 관련한 일자리를 부산에 만드는 것도 중요한데, 이와 관련해 글로벌 허브 도시 특별법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문수인 기자 · 사진 류준희 기자]
[본 기사는 매경LUXMEN 제165호 (2024년 6월)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