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프와 푸조, 국내 시장에서 두 브랜드를 전개하는 스텔란티스코리아가 올 2월 방실 신임 대표를 선임했다. 지난 2021년 미국과 이탈리아의 합작사 피아트·크라이슬러(FCA)그룹과 프랑스의 푸조·시트로엥(PSA)그룹이 손잡고 출범한 스텔란티스는 지난해 글로벌 판매량 기준 세계 5위를 차지한 자동차그룹이다. 지프와 푸조 외에도 피아트, 크라이슬러, 램, 알파로메오, 시트로엥, DS 등 보유한 브랜드만 14개나 된다. 하지만 글로벌 시장에서의 성장세와는 달리 국내 시장에선 2021년 이후 판매량이 반 토막 났다. 지난해 지프의 시장점유율은 1.66%, 푸조는 0.75%에 불과했다. 업계에선 대표 교체로 반등을 이루겠다는 일종의 승부수라고 말한다. 신임 대표에게 ‘구원투수’란 수식어가 붙은 이유이기도 하다. 지난 24년간 폭스바겐코리아에서 홍보와 마케팅, 르노코리아자동차에서 마케팅과 세일즈를 경험하고 스텔란티스코리아의 첫 여성 지사장이 된 방실 대표는 “기적을 바라진 않는다”며 “미국과 유럽에서 현대차가 차지한 시장점유율을 국내 시장에서 이루고 싶다”는 포부를 밝혔다.
2001년부터 국내 수입차 시장에서 일했다. 폭스바겐코리아, 르노코리아 등을 거치며 24년간 홍보, 마케팅, 세일즈, 애프터세일즈, 네트워크 등 다양한 영역에서 경험을 쌓은 전문가다. 올 2월 스텔란티스코리아의 첫 여성 지사장으로 부임했다.
Q 입구에 있는 취임 축하 화분에 ‘방사모’라고 쓰여 있던데요.
A 이전 회사의 딜러사 대표 몇 분이 모임을 만들었어요. 모임 이름을 방사모로 하자 해서.(웃음)
Q 수년 후에 여의도에서 뵙는 거 아닌가요.
A 아유, 정치인엔 전혀 뜻이 없습니다.
Q 스텔란티스코리아 대표로 취임한 지 70여 일이 지났습니다. 어떻게 지내십니까.
A 다행히 집하고 가까워서 출근은 어렵지 않은데, 직원들은 좀 부담스러울 것 같아요. 저희 회사는 유연근무제를 시행하고 있거든요. 약 30%만 출근하고 재택근무를 하거나 출퇴근 시간도 유연한 편이에요. 일찍 나오는 건 아닌데 제가 매일 출근하니까.(웃음) 폭스바겐코리아에 근무할 당시 박동훈 사장님이 “난 다른 건 눈치 안 봐도 직원들 눈치는 본다”고 하시곤 했는데, 그땐 그게 무슨 말인지 이해를 못 했어요. 이제 알 것 같아요.
Q 대표 사무실이 따로 없다고 들었습니다. 불편하진 않으세요.
A 자잘한 짐들이 좀 많긴 해서 불편하긴 해요.(웃음) 그런데 카를로스 타바레스 회장님도 따로 방이 없다고 해요. 조금씩 익숙해지고 있습니다.
Q 요즘 어떤 일에 집중하고 계십니까.
A 처음 오자마자 신경 쓴 부분은 딜러와의 관계 회복이었어요. 딜러 입장에선 최근 몇 년간 투자도 많이 했고 고정 비용도 많은데 판매량이 급격하게 줄다 보니 어떻게 운영해야 할지, 우리의 비전이 무엇인지에 대한 막연함이 있었던 것 같아요. 비즈니스 파트너들과의 신뢰 회복과 다시 해보자는 동기부여가 첫 번째였어요. 그리고 또 소비자 신뢰 회복과 브랜드 강화, 이 두 가지에도 집중하고 있습니다.
Q 대표 선임을 두고 ‘구원투수’라는 말이 나오기도 했습니다. 그룹에서 특별히 주문한 사안이 있을 것 같은데요.
A 아쉬아니 무사파니 인도아시아태평양(IAP) COO가 제 보스인데, 앞서 말한 딜러와의 관계 회복을 먼저 주문하셨어요. 판매량을 급격히 급등시킨다, 뭐 이런 것보단 다시 한번 기반을 다지는 기본이 탄탄한 안정화에 무게를 두고 공감하고 있습니다. 한국은 꽤 규모가 큰 시장인데, 그룹 내에서 현재 스텔란티스코리아의 몸집이 그리 크지 않기 때문에 사실 좀 더 자율성을 주시는 것 같아서 든든한 부분도 있고요.
Q 파격적인 시도를 기대해도 될까요.
A 음…. 기회를 주시는 것 같은데, 물론 셈이 빠른 분들이 많다 보니 선을 넘지 않는 수준에서 새로운 것들을 시도할 수 있게 지원해주고 있습니다.
Q 스텔란티스는 현재 글로벌 판매량 기준 세계 5위의 자동차 그룹입니다. 하지만 말씀처럼 한국에서의 상황은 전혀 다른데요.
A 그룹에서도 한국 시장에서 스텔란티스의 위치가 더 커져야 한다고 보고 있습니다. 2030년까지 장기플랜을 기획하고 있는데, 한국은 좀 더 공격적으로 짜고 있어요. 물론 플랜과 실제 실행은 다른 얘기일 수 있기 때문에 실현 가능한 숫자를 만들어내기 위해 어떤 브랜드를 도입하고 어떤 라인업을 추가할지, 파워트레인 전략은 어떻게 가져가야 할지 고심하고 있습니다.
Q 살짝 공개하신다면.
A 지금 이 자리에서 공개하긴 어렵지만 스텔란티스의 모국이 미국과 유럽이잖아요. 그곳에서 현대차가 차지하고 있는 미니멈 마켓셰어까진 가야 하지 않을까 생각해요.
Q 그러기 위해 푸조와 지프 외에 어떤 브랜드의 국내 도입을 염두에 두신 겁니까.
A 계속 스터디하고 있어요. 당장 신규 브랜드를 들여올 계획은 없습니다. DS나 시트로엥이 철수한 상황이라 좀 더 신중해야 할 시기이기도 하고, 우선 저는 한 브랜드를 한 국가에 론칭할 때 좀 더 장기적인 전략을 세워야 한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렇지 않으면 오랫동안 살아남을 수 없습니다. 그런데 한국에서 시장 흐름을 보지 않았던 사람들은 그런 참을성이 없어요. 브랜드든 모델이든 지속적인 투자가 없으면 2~3년, 짧게는 1~2년 안에 단종이나 철수로 이어지는 경우가 꽤 많아요. 단순히 신규 브랜드를 도입하는 게 아니라 쇼룸이나 서비스센터, 인력, 또 비즈니스 파트너들의 투자까지 모든 면을 고려한 후 제대로 준비해서 론칭하겠습니다. 아마도 2~3년 후가 될 것 같네요.
Q 우선 눈에 띄는 변화라면.
A 2021년에 당시 판매량 1만 대를 넘어섰을 때 투자가 많았던 게 사실이에요. 아웃렛이나 서비스센터 등 현재 상황에선 좀 오버스펙이죠. 그래서 스텔란티스 브랜드 하우스를 추진하고 있어요. 지프와 푸조 딜러가 공동으로 쓰는 쇼룸, 서비스센터죠. 또 애플스토어처럼 직접 체험하는 공간을 운용하는, 쇼룸이나 서비스센터의 수를 무작정 늘리는 게 아니라 효율적으로 운영하는 게 더 중요할 것 같습니다.
Q 해외 브랜드의 인력 고용이나 시설 투자 등은 늘 기대되는 사안인데.
A 기본적으로 한국 시장은 계속 키워갈 계획입니다. 가장 좋은 건 딜러사들의 고용이 늘어 우리 사회에 기여할 수 있는 바탕을 만드는 게 중요한데, 그러려면 우선 기본이 탄탄한 준비가 선행돼야겠죠. 판매량이 많아야 영업사원이나 테크니션이 능력을 키워갈 것이고, 브랜드에 대한 신뢰가 높아져야 충성도도 높아질 테니.
Q 결국은 다시 판매로 돌아왔는데요.
A 제 나름의 비책이라면.기적을 바라진 않습니다.(웃음) 우선 제가 맞다고 생각하는 방향으로 빠르고 확실하게 움직여주는 게 중요할 것 같아요. 고객 신뢰 회복의 가장 큰 축 중 하나가 가격 안정화이고 또 하나가 서비스 퀄리티 강화예요. 원가 상승이나 환율 이슈로 몇 차례 가격을 올렸다가 “장사 안 할 생각이냐”는 말이 나오기도 했고, 이후에 재고가 늘면서 할인에 나서는 일들이 너무 빈번했어요. 그래서 가격이나 서비스 퀄리티 모두 기본을 강조하는 겁니다. 물론 브랜드 강화는 큰 숙제예요. 광고로 성과를 낼 수 있는 부분이 아니거든요. 가치를 충분히 다지기 위해선 시간과 노력이 필요한데, 그 방향으로 가지 않으면 무너지기 쉬운 상황인 것 같아요.
Q 방실이란 이름 앞엔 늘 국내 자동차 업계 1세대 여성 리더란 수식어가 붙는데요.
A 엄밀히 말하면 예전에 볼보 대표님이 1세대이신데.(웃음) 부담스럽다기보단 상황에 충실해야 하지 않나 생각하고 있습니다. 여자, 남자를 떠나 가장 중요한 건 시장을 알고 경험해봤느냐, 무언가 성공의 맛을 보고 만들어 왔느냐, 그리고 스텔란티스코리아를 턴어라운드시킬 수 있느냐가 더 중요하겠지요.
Q 유리천장을 경험하신 일도 있으신지요.
A 실제 경험해보진 않았어요. 하지만 생각의 차이인 것 같아요. 전 홍보와 마케팅을 오래했는데, 그러다 세일즈를 맡았을 때 ‘할 수 있을까’보다 ‘할 수 있겠구나’라고 밀고 나갔어요. 얼마나 도전할 수 있느냐, 이건 스스로와의 싸움이지 다른 무언가가 이유가 될 순 없는 문제죠.
Q 오랫동안 자동차 업계의 리더로 계신데, 자동차 시장의 변곡점을 꼽으신다면.
A 제가 2001년에 발을 디뎠을 땐 국내 수입차 시장의 점유율이 1%도 안 되는 상황이었어요. 지금은 20%에 달하고 있으니 격세지감을 느낍니다. 폭스바겐이나 혼다 같은 대중적인 브랜드들이 수입차 문턱을 낮추면서 시장을 확대시켰습니다. 제 생각에 변곡점은 디젤게이트가 아닐까 싶어요. 디젤에 집중하던 수입차들의 판매량이 급격히 줄고, 제네시스가 그 자리를 빠르게 치고 올라왔어요. 현재의 시장 구조가 그 시기에 만들어졌다고 생각합니다.
Q 실제로 차를 굉장히 좋아하신다고 들었습니다. 어떤 차를 타십니까.
A 지금은 그랜드체로키 플러그인 하이브리드 4xe 모델을 타고 있어요. 사실 전 좀 빠른 차를 좋아해서 가장 좋아했던 게 폭스바겐의 시로코였죠. 지금은 단종됐습니다.
Q 현재의 목표라면.
A 비즈니스 목표는 이미 말씀드렸고, 성과를 생각하다보면 다른 사람들을 잠시 잊게 되는 경우가 있거든요. 나 혼자만 잘해서 되는 일은 결코 없다는 걸 많이 느낍니다. 서로 동기를 부여하고 하나라도 더 하고자 하는 마음을 가질 수 있도록 하는, 어쩌면 그게 리더십이겠지요.
Q 개인적인 목표도 있을 텐데.
A 전 꼭 뭐가 되겠다는 목표를 세운 적은 없어요. 이 분야에서 특출나다는 말은 들어야겠다, 그런 마음으로 열심히 하다보면 다음 스텝이 생기는 것 같아요. 지금 현재를 잘 만들어 가면 내일이 나오지 않을까 생각하고 있습니다.
Q 대표님을 멘토라 생각하는 여성 직장인에게 조언하신다면.
A 전 일에 있어 열정을 중요시합니다. 물론 기술적인 부분도 있겠지만 아무리 능력이 좋아도 열정이 없다면 딱 거기까지의 퍼포먼스가 나오는 것 같거든요. 잊지 마세요.
[안재형 기자 · 사진 류준희 기자]
[본 기사는 매경LUXMEN 제164호 (2024년 5월)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