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장실 전 한국관광공사 사장은 22대 총선 출마를 위한 공공기관 기관장의 사퇴 마감시한을 불과 이틀 앞둔 지난 1월 9일 전격 사퇴했다. 임기를 다 채우기도 전에 예고도 없이 자리에서 물러나겠다고 한 김장실 전 사장을 향해 곱지 않은 시선이 안팎에서 쏟아졌다. ‘배지’가 공사 사장 임기를 다 채우는 것보다 중요하냐는 것이었다.
이에 대해 김 전 사장은 매경럭스멘과의 인터뷰에서 “송구하다”면서도 “점점 심각해지는 지역 소멸 문제 해법을 찾는 데 작은 힘이나마 보태고자 총선 출마를 결정하게 됐다”고 말했다. (인터뷰는 사장 재임 시절 추진됐지만, 그의 사퇴로 인해 출마의 변을 먼저 들을 수밖에 없었다.) 김 전 사장은 “공사를 책임지는 동안 여러 현장을 통해 문화 소프트파워 측면에서 관광의 중요성과 잠재력을 크게 느꼈다”면서 “한류를 전 세계에 확산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우리의 문화 관광자원을 내재적으로 활용하는 것도 이에 못지않게 시급하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고 했다. 대한민국 국운 융성의 상징과도 같은 한류를 바탕으로 글로벌 관광 ‘성과’를 내기보다는, 현재 국가적 난제인 지역 소멸이라는 문제에 더 소명을 가지게 됐다는 것이다.
이는 그의 이력을 엿보면 어느 정도 이해가 되는 측면도 있다. 김 전 사장은 40년 이상 문화 예술 분야에만 종사한 전문가다. 1979년 행정고시 23회에 합격한 이후 문화체육관광부(당시 문화공보부)에 입부, 예술국 국장, 총무국장, 제1차관 등을 거쳤다. 19대 국회의원 시절 소관 상임위도 ‘문화 분야’였다. 예술의전당 사장도 지냈다. 그가 출마를 예정하고 있는 곳은 사천·남해·하동. 그는 “한려수도를 끼고 있는 남해, 섬진강이 흐르는 하동, 사천에 들어서는 우주항공청 등 지역 내 관광자원의 잠재력은 대한민국 어느 곳에 못지않다”면서 “이들을 결합해 스토리텔링을 제대로 해낸다면 이곳은 관광 한류의 중심지가 될 수 있다”고 자신했다.
김 전 사장은 “이런 지역이 인구가 줄어 지역 소멸의 대상이 돼 가고 있는 현실을 그냥 두고보는 것은 저의 직무유기나 다름이 없다”면서 “그동안 공직을 통해 쌓은 경험과 자산을 모두 동원해 사천·남해·하동을 지역 소멸이 아닌 ‘부활’의 사례로 만들 것”이라고 강조했다.
영남대 행정학과
서울대 행정대학원
미 하와이대 정치학박사
행정고시23회
국회 제19대 국회의원
문화체육관광부 제1차관
예술의전당 사장
Q 갑작스러운 사퇴인데, 이유가 있으신가요.
A 임기를 다 채우지 못해 아쉬운 마음이 큽니다. 공사 사장을 해보니 대한민국 한류 파워가 생각보다 강하다는 것을 몸소 체험할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우리 관광자원 홍보를 위해 해외를 나갈 때면 뿌듯함도 컸습니다. 하지만 제가 태어나고 자란 곳이 소멸된다는 뉴스를 볼 때마다 안타까운 마음을 금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동안 공직생활 등을 통해 쌓은 경험과 네트워크로 이에 대한 문제를 푸는 데 조금이나마 기여를 하고자 출마를 결정하게 됐습니다.
Q 지역 소멸 문제 해결을 출마의 변으로 드시는 것 같은데 좀 더 자세히 설명해 주신다면요.
A 지역 소멸의 근본 원인은 저출산입니다. 그동안 막대한 예산을 쏟아부어 시행한 관련 정책들을 보면 이 문제의 해결이 결코 쉽지 않다는 것은 어렵지 않게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이 문제를 지역의 자생력을 키우는 데서부터 출발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출마를 결정한 사천·남해·하동은 자연환경이 수려한 곳입니다. 이를 바탕으로 지역의 문화적 환경을 개선하고 힘을 불어넣는다면 인구가 자연스럽게 유입돼 지역 소멸 문제를 어느정도 개선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Q 어떤 복안을 가지고 계신가요.
A 지역 관광을 활성화하려면 자연 경관도 좋아야 되지만, 스토리텔링이 중요합니다. 지역의 여러 관광자원을 스토리텔링화해 콘텐츠를 만들어야 합니다. 남해의 경우 태조 이성계와 관련한 설화 등 여러 이야깃거리가 무궁무진합니다. 하지만 지금 남해 관광은 그냥 둘러보고 오는 데 그치고 맙니다. 이러면 시너지가 약합니다.
저는 관광산업에서 스토리텔링을 중요시합니다. 여기에 매료돼 관광객들이 스스로 찾게 만들어야 합니다. 제가 공사를 나오면서 마지막으로 의욕적으로 추진한 것이 조직 개편을 통해 콘텐츠전략본부를 신설한 것입니다. 공사가 만든 여러 홍보 영상 중 ‘범 내려온다’ ‘머드맥스’ ‘고흐가 한국을 방문했다’ 등은 메가 히트를 친 작품들인데, 스토리텔링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우리가 가진 관광자원의 가치가 어떻게 평가되는지를 잘 보여주는 사례라고 생각됩니다. 저는 사천·남해·하동이 바로 이런 잠재력을 가진 곳이라고 생각됩니다.
Q 지역 소멸 문제가 특정 지역만의 문제는 아닌데요.
A 맞습니다. 그래서 저는 관광자원을 가진 지역 전체를 함께 개발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많은 일자리를 창출하는 산업단지도 좋지만, 이를 단기간에 만들기도 힘들고 특히 요즘은 일할 사람을 구할 수가 없습니다. 마침 정부에서 올해부터 향후 10년간 3조원을 투자해 영·호남을 연계한 광역 관광자원을 개발하는 계획을 발표했습니다. 수도권과 거리가 있어서 그렇지 남해안의 관광자원은 세계 어디에다 내놔도 손색이 없습니다.
Q 남해안 관광활성화의 핵심은 교통 편의성 개선인데, 방안이 있으신가요.
A 이 문제 역시 단기간에 해결하기 힘듭니다. 그래서 저는 해외 관광객 유치에 더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고 봅니다. 저는 한려수도의 바다를 활용해 크루즈 관광을 활성화하고 싶습니다. 중국과의 관계가 지금은 썩 좋지 않지만 중국은 여전히 우리의 큰 관광시장입니다. 자국 경제력이 커지면서 중국인들 사이에서는 크루즈 여행에 대한 선호도가 계속 높아지고 있습니다. 관광산업도 트렌드를 잘 읽어야 하는데, 저는 블루오션이라고 생각합니다. 남해안의 섬들 사이를 누비는 크루즈 여행은 지중해 등 기존 인기 크루즈 여행지와는 다른 재미를 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장기적인 관점에서 수도권과 남해안 관광지를 연결하는 인프라 구축 사업은 계속돼야 하는 것이 맞고요.
Q 해외 관광객 유치와 관련해 관광무역수지가 적자입니다. 해외로 나가는 우리 국민들이 더 많다는 뜻인데요.
A 고민되는 부분이긴 합니다. 하지만 이는 일본의 엔저 현상, 한중 관계 악화 등에 따른 일시적인 현상이라고 봅니다.
Q 세부 내역을 뜯어보면 한국에 대한 선호도가 컸던 동남아 관광객 유입도 크게 줄었습니다.
A 불법체류자 문제와 엮여서 그런 것 같습니다. 출입국 관리를 담당하는 당국에서 동남아 출신 입국자들의 관리를 엄격하게 하니 태국 등 일부 국가에서는 반한 분위기까지 일었습니다. 이 문제에 대해 정부에서도 정책 기조 변화가 있었으니 분위기가 달라질 것으로 생각합니다.
Q 이력을 보면 한국 문화·예술 발전의 역사와 함께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데요.
A 40여 년을 관련 분야에서 일을 했습니다. 한류로 불리는 우리 문화의 세계적 위상 변화를 한눈에 봤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것 같습니다. 해외를 나갈 때마다 느끼지만 우리의 문화적 위상은 과거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높아졌습니다. K팝을 예로 들면 과거에는 우리 제작자들이 음악을 틀기 위해 해외 방송국들을 직접 찾아다니며 비용까지 들이는 일도 많았습니다.
하지만 지금 서로 와달라고 합니다. 미국 록펠러센터의 경우 공연을 하기가 상당히 힘든 곳 중 하나인데, 먼저 공연 제의를 할 정돕니다. 그리고 한류의 파급력이 생각보다 큽니다. 국가 대외 이미지가 좋아진 것도 물론이고 우리 기업들이 만든 제품이 코리아 디스카운트에서 코리아 프리미엄으로 바뀌었습니다. 정부가 2027년까지 외국인 관광객 3000만 명을 유치하고 관광수입 300억달러(약 39조원)를 달성하겠다는 목표는 과장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Q 결국 관광은 국가 간 경쟁입니다.
A 그래서 관광 관련 규제를 과감히 풀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앞서도 언급했지만 출입국 관리 시스템을 탄력적으로 운영할 필요가 있습니다. 동남아 불법체류자를 막겠다고 선의의 여행 피해자를 만들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Q 지자체들 간 관광객 유치 경쟁이 심해지면서 중복되는 부분이 많습니다.
A 이 부분도 국가적 차원에서 조율해 질적 관리를 해야한다고 봅니다. 비슷한 축제가 양산되고 바가지 논란이 계속되면 결국 국민들은 해외로 발걸음을 돌릴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그러면 관광무역수지 적자는 계속될 것이고요.
Q 정말 관광으로 지역 소멸을 막을 수가 있나요.
A 지방 소멸 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먹고 살 경제적 수단들이 충분해야 하고, 질 좋은 교육을 받을 수 있어야 하며 적절한 문화적 향유도 누릴 수 있어야 합니다. 하지만 지금처럼 인재와 물자가 수도권으로만 쏠리는 현실에서 기업을 끌어오고, 학교와 문화시설을 지역이 계속 만들어나가는 것은 현실적으로 쉽지 않습니다. 무엇보다 거주하는 이들의 숫자가 줄어들고 있지 않습니까. 일단 지역에 사람들이 유입되게 해야 합니다. 그래서 관광이 중요한 것입니다. 관광은 있는 자원에 가치를 높이는 일이니 크게 시설을 짓거나 할 필요가 없습니다. 유명 관광지로 이름이 나 사람들이 몰리면 기업이 없어도 자연히 일자리가 생길 것이고, 지역 내 소득도 올라갈 것입니다.
그러다 보면 지자체는 지역 개발에 투자할 여력도 생기게 됩니다. 관광을 통해 지역의 자생력이 높아진다면, 반드시 미술관과 박물관이 많이 들어서야 한다고 봅니다. 그래야 관광과 문화 사이에 선순환 구조가 이뤄져 지역적 볼거리가 더 풍성해질 수 있습니다. 저는 사천에 들어서는 우주항공청과 관련해 기대가 큽니다. 대한민국에 없던 훌륭한 관광자원이라고 보거든요. 곧 다가올 우주시대를 대비해 우주박물관을 만들면 미래세대에게 많은 도움이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문수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