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뉴욕에서 피아노를 전공한 숙녀의 꿈은 당연히 피아니스트였다. 하지만 대학원에서 박사 학위를 따고 다시 서울로 돌아와 강단에 오르는 수순이 답답했다. 마침 틈틈이 공부해 취득한 GIA보석감정사 자격증이 눈에 들어왔다. 그렇게 방향이 달라졌다. 허은경 앤엑스 다이아몬드 대표의 인생사 중 한 토막이다. 1988년 설립한 국내 대표 다이아몬드 기업 삼신다이아몬드의 2세 경영인이기도 한 그는 뉴욕 지사장으로 근무하던 2021년 ‘앤엑스 다이아몬드’를 설립하고 친환경 랩그로운 다이아몬드(Lab Grown Diamond·실험실에서 만든 합성 다이아몬드) 브랜드 ‘그린다이아’를 론칭했다. 천연 다이아몬드가 ‘자연의 선물’이라면 랩그로운 다이아몬드는 ‘인간의 지혜가 낳은 축복’이라고나 할까. 글로벌 시장에 불기 시작한 랩그로운 다이아몬드의 관심은 천연 다이아몬드의 영역을 넘어서며 시장점유율 역전이란 열풍을 몰고 왔다. 과연 국내 시장의 반응은 어떨까. 허 대표는 “천연 다이아몬드가 지닌 희소성의 가치와 랩그로운 다이아몬드의 낮은 접근성은 분명 다르다”며 “양쪽 모두 점진적인 성장이 예상된다”고 전망했다.
미국 뉴욕 메네스 음대에서 피아노를 전공했다. 2002년 세계적인 보석 감정기관 GIA에서 보석감정사 자격을 취득했다. 이후 20여 년간 다이아몬드 바이어로 활동하며 삼신 다이아몬드 뉴욕지사장, 2022년 앤엑스다이아몬드 대표로 취임했다. 삼신다이아몬드 오너가 2세 경영인이다.
Q 연말연시는 주얼리 업계의 성수기라고 하던데요.
A 아무래도 선물을 주고받는 시기이다 보니 다른 때보단 분위기가 좋아요. 빠르면 11월부터 블랙프라이데이 행사가 시작되면서 분위기가 조성되는데, 저희도 11월 말 부터 외부 협업과 행사를 진행했습니다. 아직 한 해가 마무리된 게 아니라 매출 비교가 정확하진 않지만, 연말 분위기는 일단 호황입니다. (인터뷰는 12월 초에 진행됐다.) 구체적인 숫자가 아니더라도 올해 백화점에 입점된 주얼리 매장을 둘러보면 분위기를 느낄 수 있어요. 입점한 브랜드나 팝업이 꽤 많아졌거든요.
Q 그런 이유 때문인지 ‘샤넬’ ‘루이비통’ ‘디올’ ‘돌체앤가바나’ 같은 명품 브랜드의 하이주얼리 분야 진출이 화제가 되기도 했습니다.
A 꼭 주얼리 분야의 매출 성장을 노린 전략이라기보단 명품의 대중화가 미친 영향이랄까요. 시계나 보석군은 아직은 소수의 VIP를 위한 제품군으로 분류되곤 하잖아요. 명품의 정체성을 지키기 위한 그 나름의 전략일 수 있어요.
Q VIP를 노린 포석이다?
A 그들의 프라이빗한 성향과 니즈를 반영한 결과죠. 일례로 창립 36주년이 된 삼신다이아몬드도 고객의 특성을 반영해 백화점과 호텔에 있던 오프라인 매장을 줄였어요. 고객들의 동선이 겹치지 않게 개별적으로 본사의 VIP라운지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Q 말씀처럼 국내 하이주얼리 시장을 이끌고 있는 삼신다이아몬드가 앤엑스다이아몬드를 설립하고 랩그로운 시장에 진출 했습니다. 이 또한 시장의 니즈를 반영한 전략입니까.
A 럭셔리가 캐주얼이 된 시기라고들 하는데, 삼신은 하이주얼리이다 보니 노출이 쉽지 않거든요. 소수만 아는 브랜드는 결국 사라져 버리잖아요. 그때 랩그로운 다이아몬드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사실 회장님은 많이 반대 하셨어요. 2~3년 전만 해도 합성 다이아몬드라는 우려가 있었거든요. 세계적인 보석감정기관인 미국의 GIA가 2021년 3월부터 랩그로운 다이아몬드를 감정하면서 그러한 분위기가 서서히 사라졌습니다. 일단 GIA가 감정을 시작했다는 건 분명 시장이 있다는 것이고, 한국에서도 1~2년 안에 정착될 거란 확신이 생겼어요.
Q 20여 년간 삼신다이아몬드의 뉴욕지사에 계셨는데, 해외와 국내 시장의 차이점이라면.
A 국내 하이주얼리 시장은 해외 트렌드가 반영되기까지 다소 긴 시간이 필요한 편이에요. 해외 유명인사가 착용한 주얼리를 직접 착용하는 데 오래 걸리죠. 좀 배타적이랄까. 보수적인 면이 강합니다.
Q 그렇다면 오히려 랩그로운 다이아몬드의 정착이 쉽지 않아 보이는데요.
A 삼신다이아몬드는 국내 시장에 처음으로 GIA 감정서를 들여오면서 높은 공신력과 신뢰의 발판을 마련했습니다. 그린다이아는 미국 SCS글로벌서비스로부터 ‘지속 가능한 다이아몬드 표준인증’을 받은 국내 최초의 지속가능 랩그로운 다이아몬드예요. SCS 인증을 받기 위해 약 1년을 준비했습니다. 천연 다이아몬드를 다루는 삼신의 명성에 누를 끼치면 안 되잖아요. 랩그로운 다이아몬드는 일단 천연 다이아몬드와 성분이 같아요. 만들어진 과정만 다른 거죠. 여기에 가격적인 장점도 있습니다.
Q SCS 인증의 영향력이라면.
A 환경 파괴 없이 지속 가능한 환경의 연구실에서 만들어진 다이아몬드라는 의미예요. 천연 다이아몬드의 광채, 고유한 특성은 그대로 지니고 있되 유일한 차이점은 인위적으로 만들어지고 성장한 것이죠. 이러한 가치에 어울리게 그린다이아의 패키지도 물에 분해되는 종이로 제작했습니다.
Q 고객층이 다르다? 언뜻 교집합이 있을 법한데요.
A 천연 다이아몬드를 원하는 고객은 그대로 천연석을 구입하세요. 랩그로운 다이아몬드를 통해 가격대가 낮아지고 접근성이 좋아지면서 또 다른 고객층이 생기게 된 것이죠. 두 다이아몬드의 차이점이라면 희소성의 가치를 들 수 있겠네요. 원석은 유한하지만 랩그로운은 만들어낼 수 있으니까.
Q 그린다이아만의 특징이라면.
A 국내에도 여러 랩그로운 브랜드가 나오는 시점인데, 그린다이아는 디자이너가 뉴욕에 있어요. 그곳에서 디자인 작업을 통해 상·하반기에 각각 뉴욕컬렉션을 냅니다. 2023년에는 남성 주얼리도 많은 사랑을 받았어요. 또 한세대 이상 지속된 다이아몬드 회사의 가족이란 사실도 장점 중 하나죠.
Q 사실 랩 다이아몬드 붐업 이후 천연 다이아몬드의 종말에 대한 의견이 분분했습니다.
A 아까도 말씀드렸지만 서로에 대한 영향력이 다릅니다. 새로운 게 나오면 분명 타격이 있게 마련이죠. 하지만 서로 가치가 다르기에 매력이 달라요. 시장의 성격이 좀 더 프라이빗해질 순 있겠지만 없어지진 않을 겁니다.
Q 그린다이아의 성장 전략이 궁금해지는데요.
A 그린다이아는 랩그로운 다이아몬드의 특성상 할 수 있는 게 많습니다. 가격도 20만원대부터 고가 라인까지 다양하거든요. 캐주얼한 패션 브랜드로 성장시킬 계획입니다.
[안재형 기자 · 사진 류준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