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남도 창원의 창원스마트혁신지원센터에 자리한 ‘지티엘(GTL)’은 저궤도 위성지상국 안테나 시스템을 개발하는 우주산업 스타트업이다. 최근 30억원 규모 시리즈A 투자를 유치한 지티엘은 올 12월 제주도에 첫 위성 안테나를 설치하고 자체 테스트베드 시스템을 갖출 계획이다. 지티엘의 시스템은 현재 대부분의 위성 안테나가 갖고 있는 키홀(Keyhole·특정 각도에서 위성신호가 끊기는 현상)이 없다는 장점을 갖추고 있다. 위성 궤도를 분석하는 알고리즘과 정밀 모션 제어가 가능한 안테나 포지셔너, 고이득의 안테나 피더 등 시스템에 필요한 핵심 기술도 자체 개발해 국산화하는 데 성공했다. 황건호 지티엘 대표는 “스페이스X가 쏘아 올릴 저궤도 위성 외에 앞으로 6년간 전 세계에서 3만여 개의 위성이 발사될 것”이라며 “위성이 있다는 건 신호와 영상을 수신할 지상의 안테나 시스템도 필요하다는 방증”이라고 전했다. 과연 지역 스타트업의 한계를 깨고 국내 우주산업 분야의 퍼스트 무버가 된 비결은 무엇일까. 황 대표는 “보수적이고 폐쇄적인 우주산업의 특성상 뉴 스페이스 시대로 진입하기 위해선 앞선 기업과의 협업과 정부의 지원이 절실하다”고 설명했다.
황건호 지티엘 대표. 1981년생. 대한시스텍, 이앤이 연구원 등 방위산업과 우주항공 기계개발에 20여 년을 매진했다. 2019년 지티엘을 창업했다.
Q 누리호 발사 성공 이후 우주산업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습니다. 그럼에도 이 분야의 스타트업은 생소한데요.
A 아직 우주 분야 국내 스타트업이 많지 않습니다. 또 소프트웨어나 위성 서비스 관련 분야가 아니라 제조업을 하는 곳도 거의 없죠.
Q 주 사업 분야가 저궤도 위성지상국 안테나 시스템인데, 이름만 들어도 어려운데요.
A 무식하면 용감하다고 할까요.(웃음) 처음엔 아무것도 모르고 시작했어요. 엔지니어 출신이니 그냥 하면 되겠지 했는데 할수록 힘들었습니다. 창원에 둥지를 틀고 있는데, 경남에 우주 스타트업이 딱 2곳뿐이에요. 지금은 그릇이 좀 커지긴 했지만 얇습니다. 좀 더 두꺼워져야죠.
Q 그릇이 두꺼워지기 위한 조건은 역시 기술의 축적인가요.
A 기술도 그렇고 국내 우주산업 자체가 좀 더 발전해야 합니다. 미국의 스페이스X는 누구나 알고 있잖아요. 국내 우주 기업 하면 혹시 떠오르는 데가 있으세요? 정부 주도의 올드 스페이스(Old Space)에서 민간이 주도하는 뉴 스페이스(New Space)로 트렌드가 변하고 있는데, 국내는 아직 그렇지 않습니다. 진정한 뉴 스페이스는 스타트업과 중소벤처기업이 주축이 되는 산업이에요.
Q 그건 지금까지 축적된 기술을 활용할 수 있어야 한다는 말로 들리는데요.
A 미국이나 러시아, 중국, 인도 등 우주 선진국들은 올드 스페이스 시대에 축적한 기술을 민간 기업이 활용해 경제적 이윤을 창출하게 했어요. 우리는 정부와 민간기업의 개발이 공존하고 있는 상황이에요. 우주산업은 굉장히 폐쇄적이고 보수적입니다. 실패 비용이 크기 때문에 성능이 검증된 제품을 쓰게 되죠. 물론 검증된 제품의 가격은 그렇지 않은 것보다 10배 이상 비싸죠. 그래도 그걸 쓰게 됩니다. 그건 반대로 스타트업이 뚫기 쉽지 않다는 의미예요. 신뢰성을 갖고 있는 공공기관이나 연구기관, 혹은 톱 티어들이 제품을 써줘야 제대로 시장에 진출할 수 있는 희망이 생긴달까요.
Q 지티엘은 그런 의미에서 희망이 생긴 겁니까.
A 한국항공우주연구원과 MOU를 맺고 마케팅 등을 지원받고 있고, 세계 3위인 국내 1세대 우주 스타트업 컨텍과도 MOU를 맺어 지상국 구축 안테나 시스템을 개발하고 있습니다. 올 12월에 저희 안테나 시스템이 컨텍을 통해 론칭될 예정이에요. 쉽게 말해 OEM 형식인 거죠.
Q 본격적인 시장 공략인가요.
A 올 6월에 컨텍이 제주도에서 개최한 우주산업 관련 콘퍼런스가 있었는데, 안테나 시스템 분야의 세계 1, 2, 3위 기업이 모두 참가했어요. 그들이 한목소리로 “이 시장엔 플레이어가 많아져야 한다”고 하더군요. 자기들이 소화하지 못할 만큼의 물량이 있는데 플레이어가 없다는 겁니다. 제 생각도 그래요. 현재 컨텍은 IPO를 진행 중입니다. 국내 우주산업 스타트업 중 처음이죠. 저희는 국내에서 처음으로 저궤도 위성을 자동으로 추적하는 안테나를 개발했습니다. 먼저 앞서간 스타트업(컨텍)과의 훌륭한 협업으로 지역에 있는 스타트업도 성공할 수 있다는 걸 증명하고 싶어요.
Q 수도권이 아닌 지역에서 스타트업을 하기가 쉽지 않다?
A 예상보다 좀 더 힘듭니다. 물론 장단점은 있어요. 지원사업을 통해 중앙정부의 과제 사업이나 연구개발 사업에 선정되는 게 수도권에 비해 수월합니다. 지역에선 경쟁이 덜하죠. 하지만 1억~2억원의 지원금이 전부인 사업에 집중하면 제자리걸음을 할 수밖에 없어요. 좀 더 큰 개발 사업에 참여하려면 갖춰야 할 서류도 많고 개발해야 할 과제도 많습니다. 수도권에선 기본으로 생각하는 것들을 어렵게 힘들여서 갖춰야 하는 거죠. 그래야 그들과 경쟁할 수 있거든요. 어쩌면 그래서 지역 스타트업들의 치열함이 덜한 건지도 모르겠어요. 작지만 안정적인 인프라에 안주하는 거죠.
Q 사람 구하기도 쉽지 않다고들 하던데요.
A 그건 자명한 현실이에요. 제 입장에선 투자받은 돈이든 개발 수익금이든 회사의 이익금이든 가장 많이 투자하는 분야가 사람과 인프라 구축인데, 우선 인프라는 올 12월에 연구센터와 공장이 준공될 예정이에요. 연구센터에 위성 안테나를 올려서 자체 테스트베드를 구축할 계획입니다. 인프라 구축은 계획대로 진행 중인데, 사람 구하는 건 여전히 난관이죠. 저도 경남에서 나고 자라서 떠나지 않고 있는데, 구성원이 대부분 지방대 출신이다 보니 투자사들로부터 이런 점을 지적받곤 합니다. 연구원들의 경력을 합치면 200년이 넘는데, 그런 점은 부각되질 않아요. 뽑으려 해도 오질 않는 건 어쩌겠어요.
Q 그럼에도 올 8월에 30억원 규모의 시리즈A 투자를 유치했습니다.
A 모두 인프라 구축에 다시 투자했습니다.(웃음) 2019년 10월에 창업했는데, 팬데믹 시기라 투자 시장이 얼어붙을 때였어요. 투자를 받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할지도 몰라서 힘들었는데, 이번에 시리즈A를 진행하면서 많이 혼나기도 하고 배우기도 했습니다.
Q 투자자들에게 어떤 점을 어필한 겁니까.
A 투자자들은 이 분야의 퍼스트 무버가 될 수 있느냐에 무게를 두더군요. 그런 이유로 왜 구성원들을 모두 지역에서 충원했느냐고 지적할 땐 쓰리기도 했습니다. 기술 개발도 좋지만 인력 충원을 위해 홍보에도 신경 써야 한다는 것도 알게 됐고요.
Q 최근엔 스타트업의 매출과 실적도 투자 기준이라던데.
A 실제로 그렇더군요. 그런데 소부장이나 초격차 기술로 승부하는 스타트업은 좀 다르게 봐야 하지 않을까요. 우주산업도 마찬가지인데, 앞서 보수적이고 폐쇄적인 산업 분위기를 말씀드렸잖아요. 그런 이유로 제품이 시장에서 인정받기까지 꽤 오랜 시간이 걸립니다. 매출이나 이익이 늦을 수밖에 없어요. 그런데 시장은 기술적인 신뢰가 쌓이지 않은 스타트업엔 투자하지 않겠다는 기조가 너무 강하더군요. 리스크를 감내하지 않겠다는 건 알겠는데, 그렇더라도 기술적인 가능성에 초점을 맞춰서 좀 더 열심히 개발할 수 있게 분위기를 만들어주는 게 더 중요하다고 봅니다.
Q 퍼스트무버의 가능성을 얘기했는데, 지티엘의 안테나 시스템은 뭐가 어떻게 다른 겁니까.
A 2023년 1월 기준으로 지구 궤도 내에 유효한 위성이 6700개밖에 안됩니다. 스페이스X의 목표가 2027년까지 위성 1만 2000개를 쏘아 올리는 거예요. 그 위성을 빼고도 전 세계에서 발사할 저궤도 위성 계획이 2031년까지 2만 5000여 개나 됩니다. 그러니까 앞으로 6년간 쏘아 올릴 위성이 2만~3만여 개란 말이죠. 위성이 올라가면 신호와 영상을 받는 지상의 안테나가 늘어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기존의 저궤도 위성 안테나 시스템은 키홀 현상이 있어요. 위성이 특정 구간(90°, 0°)을 지날 때 위성 추적이 불가능한 구간이 발생해 통신이 끊어지는 것이죠. 그동안엔 소프트웨어로 해결했는데, 자율주행 시대엔 위성신호가 끊기면 대형 사고로 이어집니다. 대부분의 안테나가 2축으로 구동되면서 키홀 현상을 겪는데, 12월에 론칭할 지티엘의 위성 안테나는 3축 구동이에요. 위성신호가 끊기는 각을 없애서 키홀 현상이 없습니다. 또 일체형이 아니고 분리형이라 안테나 상단의 수신부나 하단의 지지부를 각 업체가 원하는 제품으로 사용할 수도 있어요. 3축 구동 안테나는 국내 최초고 전 세계에서도 몇 안 되는 기술입니다.
Q 국내 우주산업 분야의 경쟁력을 평가한다면. 일반인들의 입장에선 막연한 분야일 수도 있는데.
A 예를 들어 김치를 우주로 보내면 우주산업이 되는 거예요. 우주산업에 내가 갖고 있는 기술을 어떻게 접목하느냐가 중요합니다. 저희도 처음엔 그랬어요. 투자사에서 관련 기업을 소개해달라고 하면 제 답은 늘 똑같습니다. 좋은 기술력을 가진 업체를 피보팅시키라고 하죠. 그게 훨씬 빠른 방법입니다.
Q 한국판 스페이스X가 탄생하기 위한 선행조건이라면.
A 아주 많은 정부 지원이 필요하죠. 스페이스X도 결국 정부 도움으로 컸잖아요. 미국 정부가 발사체 기술부터 발사장까지 모두 내준 덕에 지금의 스페이스X가 탄생했습니다. 민간 기업이 우주 관련 인프라를 활용할 수 있도록 해준다면 뉴 스페이스 시대의 도래가 빨라질 겁니다. 아, 그리고 무엇보다 예산을 집행할 수 있는 우주청 설립이 첫 번째가 돼야겠죠. 기대하고 있습니다.
Q 목표가 궁금합니다.
A 현재로선 5년 내 기업공개, 3년 내 세계 5위권 위성 안테나 기업이 목푭니다. 12월에 진행될 새 안테나 시스템의 론칭이 계획대로 진행되면 가능한 시나리오가 될겁니다.
[안재형 기자·사진 류준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