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보 부모(이하 엄빠)가 된 순간부터 아무리 똑똑한 지성인도 모두 ‘바보’가 된 기분을 느낄 수밖에 없어요. 내가 늘 사용하던 제품이나 먹던 과일, 음식들이 혹시 아이에게 해가 되지는 않을지 두려움이 생기거든요. 무심코 하는 행동으로 아이가 잘못되지는 않을지 걱정하는 엄빠들을 위해 정제된 육아 콘텐츠를 제공하는 ‘베이비빌리’를 운영하고 있어요. 빌리지베이비 내에 육아 경험이 있는 에디터들이 함께하고 산부인과 전문의, 운동 트레이너와 콘텐츠를 개발하고 있어요. 하지만 정보가 다는 아니죠. 실제로 어떤 제품을 사서 엄빠가 사용하고, 아이들에게 줘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을 해결하지 못하면 정말 엄빠 삶이 편해지지는 않으니까요. 그래서 베이비빌리 앱 내에서 ‘빌리 쇼핑’이라는, 엄빠를 위한 데이터 기반의 커머스도 운영하고 있어요. 단 하나만 사도 무료배송이고 내 시기의 나와 비슷한 엄빠들이 어떤 제품을 실제로 앱 내에서 클릭하고 이용했는지를 알 수 있으니 ‘국민 육아템’을 찾는 엄빠도, ‘감성템’을 찾는 엄빠도 베이비빌리와 함께라면 얼~마나 편해지게요?”
빌리지베이비의 자사 홈페이지를 클릭하면 가장 먼저 만날 수 있는 회사 설명이다. ‘빌리지베이비, 이런 회사예요!’라는 큰 제목 아래 어떤 이들을 대상으로 무슨 일을 하고 어떻게 서로 소통하는지 일목요연하게 정리해놨다. 마치 어린아이에게 설명하듯 조근조근한 어투와 내용은 꽤나 친절하고 직관적이다. 이 회사가 운영하는 육아 콘텐츠 앱 ‘베이비빌리’와 ‘빌리 쇼핑’도 마찬가지. 모든 게 처음인 엄빠들에겐 같은 상황에 놓인 다른 부모들과 소통할 수 있는 커뮤니티이자 꼭 필요한 육아제품을 저렴하게 구입할 수 있는 장터이기도 하다. 특히 출산 시기가 비슷한 이들끼리 서로 정보를 교환할 수 있어 커뮤니티 내에선 ‘조동(조리원 동기)’ 대신 ‘베동(베이비빌리 동기)’이란 말을 만들어 쓸 정도다.
가능성이 돋보이는 기업에 투자가 몰리는 건 당연한 일. 빌리지베이비는 최근 삼성벤처투자, 제트벤처캐피탈(ZVC), 디지털헬스케어파트너스(DHP) 등 굵직한 투자사로부터 60억원을 투자받았다. 2020년 스파크랩 시드 투자에 이어 2021년 빅베이슨캐피탈, 서울산업진흥원(SBA), 현대해상화재보험으로부터 8억원을 유치한 이후 눈에 띄게 늘어난 금액이다.
아이 한 명이 태어나면 부모, 조부모, 일가친척까지 모두 지갑을 연다는 ‘텐포켓’ 시대의 경향을 제대로 짚어낸 이정윤 빌리지베이비 대표는 “올해 가입자 40만 명을 달성했고, 거래액은 150여억원에 이를 것으로 예상된다”며 “현재 해외진출과 자체 브랜드 개발에 나서고 있다”고 전했다. 2020년 임신·육아 정보 포털 서비스를 시작한 빌리지베이비는 현재 일 방문자 수 5만 명, 앱 콘텐츠 누적 조회 수는 2000만 회를 넘어섰다. 가입자 중 80%는 1주일 이상, 60%는 2개월 이상 서비스를 활용한다. 모바일 평균 수준이 3%라는 점을 고려하면 월등한 수치다. 과연 빌리지베이비의 성장 비결은 무엇일까.
▶요즘 연이어 좋은 소식이 들리는데요. 어떻게 지내십니까.
▷저희가 내년에 금융 협업을 진행하려고 이런저런 핀테크 지원 사업에 많이 참여하고 있는데, 최근엔 관련한 은행권 행사들이 많았어요.
▶금융 협업이라면.
▷베이비빌리 앱에 임신, 육아시기를 거치는 이용자들이 많이 오시는데, 1주일이면 약 1만 명이 앱을 다운받으세요. 그중 80%가 임신 초기이신 분들이죠. 금융사 입장에선 행복카드부터 보험, 적금까지, 이 분들의 데이터베이스를 확보하는 게 가장 어려운 일이거든요.
▶금융사 입장에선 가장 큰 파트너가 되는 셈이군요.
▷그렇죠. 또 잠재적으로 투자협업도 가능할 것 같아서 금융사들과의 협업을 놓치지 않으려고 해요.
▶최근 60억원을 투자받았습니다.
▷투자자들에게 두 가지를 제시했어요. 하나는 베이비빌리 앱에 들어오는 이용자들이 최대한 오래 머물며 관련 제품을 소비할 수 있게 한다는 것. 또 하나는 해외진출이었어요. 우리나라는 1년에 약 25만 명의 신생아가 태어납니다. 결코 높은 숫자가 아니에요. 출산율 저하로 시장이 크지 않아요. 그런데 동남아 국가들은 다릅니다. 베트남은 1년에 150만 명, 인도네시아는 300만 명이 태어나요. 해외 시장에서도 임신·육아를 논할 때 다 쓰는 앱이 된다면 성장에 대한 걱정이 없을 거라 생각했어요. 그래서 이 두 분야에 돈을 쓰겠다고 했습니다.
▶해외진출 방향을 동남아로 잡은 이유는.
▷사실 임신·육아 포털은 서양에서 먼저 시작했어요. 가장 유명한 앱이 베이비센터라고 1990년대 스타트업으로 시작해서 존슨앤드존슨에 매각됐죠. 이미 그쪽은 터줏대감이 있는 시장이에요. 그런데 그 앱들이 우리나라에서 잘하고 있느냐. 대부분 번역기를 통해 한국어로 번역되는데, 전혀 공감대가 없어요. 이런 이유로 비어있던 시장이 한국과 아시아권 시장이었어요.
▶먼저 앞서간 서양의 앱과 다른 점이라면.
▷서양의 육아 정보 앱들은 결국엔 특정 유아용품 제조사에 인수됐어요. 그러다보니 자사 제품만 소개합니다. 이런 것도 있고 저런 것도 있는데 이게 좀 더 낫다든지, 싸다든지 이런 말을 할 필요가 없는 거죠. 저흰 특정 제조사에 묶여있지 않으니 시기별로 다양한 제품을 소개하고 판매합니다. MD와 커머스팀이 따로 있어요. 베이비빌리에는 하루 5만 명의 이용자가 들어옵니다. 한 달 체류 시간이 60분이에요. 쇼핑을 하지 않더라도 콘텐츠를 보고 커뮤니티에서 소통하는 거죠. 커머스는 지난 10월 거래액이 20억원을 넘겼어요. 저흰 콘텐츠와 커머스 두 분야를 모두 잘합니다. 그래서 이 분야 1위라고 자부하고 있어요.
▶콘텐츠를 어떻게 만드십니까.
▷꽤 전문적인 분야인데.지금은 콘텐츠만 담당하는 에디터팀이 따로 있습니다. 육아정보 시장은 산부인과, 대학병원 등에서 제공하는 정보와 SNS 채널을 통한 정보, 이렇게 두 분야가 있는데, 전문가군의 정보가 어렵기만 하다면 SNS 채널은 전문성이 부족했거든요. 저희는 전문성에 재미를 더해서 MZ세대가 읽을 만한 글을 만들었어요.
▶MZ세대 엄빠들은 어떤 특징이 있습니까.
▷제일 큰 변화는 똑똑해진 것 같아요. 컴퓨터나 휴대폰으로 검색하며 커온 세대잖아요. 해로운 것, 이로운 것에 대한 정확한 정보를 스스로 찾고 실천합니다.
▶2018년에 창업했다고 들었습니다.
▷2018년 10월에 정부의 청년지원사업에 당선되면서 시작했어요. 주변의 지인과 직장 동료, 지인의 지인까지 총 5명이 2년간 고생했어요. 2020년에 인원이 8명이 됐고, 2021년엔 15명, 지금은 40명이 됐네요.
▶사업 초기엔 신혼부부였다고 들었습니다.
▷맞아요. 28살에 창업했거든요. 그땐 아이가 없었는데 지금은 엄마가 됐습니다. 사실 전 굉장히 현실적인데, 세상을 혁신하기 위해 창업한 사례는 아니었어요. 작년에야 회사의 비전이나 우리 서비스에 대한 고민을 시작했습니다.
▶현재 가장 큰 경쟁자라면.
▷저희가 운영하는 섹션은 크게 콘텐츠, 커뮤니티, 커머스로 나눌 수 있어요. 콘텐츠 경쟁자는 너무 많아요. 대학, 병원 등등. 커뮤니티는 맘카페가 가장 크죠. 저희 이용자들은 ‘베동’이란 말로 서로 연대감을 표시하는데, 아이의 개월 수에 따라 각각의 커뮤니티가 있어요. 서로 공통의 관심사와 고민을 얘기하고 들어주고 해결해주죠. 커머스 경쟁자는 대기업부터 쿠팡, 네이버까지 너무 많아요. 그럼에도 저희의 강점은 별도의 세일이나 기획전을 걸지 않아도 이용자가 습관처럼 쓰는 앱이란 거예요. 그런 이유로 집객비용이 들지 않아요. 또 임신 주차별로 저희가 제공하는 정보를 엄빠들이 알림장처럼 읽어봐요. 콘텐츠에서 관련 제품을 최저가로 추천하고 구매로 이어지죠.
▶스타트업 생태계가 어렵다는 평가가 이어지고 있습니다.
▷네. 투자 절벽기라는 얘기도 나오고 있어요. 다행히 저희는 투자를 받았는데, 일단 매출이 나오고는 있었어요. 작년에 8억원을 투자받을 때 거래액이 2000만~3000만원 수준이었는데, 지난 10월에 20억원이었습니다. 다분히 현실적인 제 성향 덕을 보기도 했는데, 전 스타트업을 창업했지만 회원 100만 명을 모으고 돈을 벌자, 하는 식의 경영이 좀 무서웠어요. 그래서 2020년 7월에 서비스를 시작하고 그해 8월에 커머스를 붙였습니다. 당시 투자자들은 뭘 얼마나 팔겠다고 커머스까지 시작하느냐 했는데, 전 적은 돈이라도 벌어야겠더라고요. 지금은 검소하게 잘 성장했다고 하십니다.
▶앞으로 계획이라면.
▷현재 저희가 직접 브랜드를 내고 있어요. 직접 공장을 운영하는 건 아니고 제조 파트너사들과 협업하는 건데, 올 9월에 베이비빌리에서 가장 많이 판매된 제품이 임산부 손목 보호대거든요. 한 달간 2000개가 나갔는데, 베이비빌리 브랜드로 판매됐습니다. 앞으로는 제품 기획과 디자인을 자제적으로 진행하고 브랜딩까지 진행해서 판매할 계획입니다. 또 해외 브랜드를 들여와 판매하려고 해요. 올해 안에 글로벌 유모차 브랜드의 국내 온라인 총판을 시작하려 합니다.
▶스타트업의 종착지로 IPO나 매각이 거론되곤 하는데.
▷처음엔 누가 우리를 사줄 수 있을까란 생각도 했었어요. 요즘은 이제 우리가 사볼까, 이런 관점에서 보고 있는 것 같아요.(웃음) 제조사를 매입해 합병한 후 IPO를 진행하는, ‘못할 게 뭐야’란 생각은 하고 있습니다.
▶해외 시장에 대한 비중이 점점 커질 것 같은데요.
▷올 5월에 베트남, 9월에 인도네시아와 태국에 론칭했어요. 벌써 월간활성화이용자수(MAU)가 1만 명을 넘어섰어요. 모두 현지 에디터를 고용해 콘텐츠를 생산하고 있습니다. 내년엔 말레이시아로 확장할 계획이에요.
▶창업을 꿈꾸는 이들에게 조언한다면.
▷투자를 고민하기보다 좋은 팀을 만나는 게 우선이에요. 속도를 낼 수 있는 원동력이 됩니다. 여성이라면 좀 더 자신감을 가지세요. 일례로 저희 작년 월 거래액이 약 2000만원이었는데, 그럼에도 작은 회사란 생각에 확신이 없었어요. 그런데 저희보다 못한 거래액으로 1500억원 수준의 투자를 받으려고 고군분투하는 분들도 있더군요. 내가 이룬 성과에 대해 제대로 어필할 수 있어야 해요. 그리고 좀 더 당당해져야 합니다.
이정윤 빌리지베이비 대표
1991년생. 고려대 행정학과 졸업 후 컨설팅사에서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2018년 직장동료, 디자이너, 지인들과 함께 스타트업 ‘빌리지베이비’를 설립했다. ‘한 명의 아이를 키우는 데 온 마을이 필요하다’는 속담을 사명에 담았다. 최근 스타트업의 옥석 가리기가 시작됐다는 투자절벽 시기에 60억원을 투자 유치했다.
[안재형 기자] [사진 류준희 기자]
[본 기사는 매경LUXMEN 제147호 (2022년 12월)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