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자은 LS그룹 회장 | LS 오너 2세 가운데 마지막 그룹 회장, 내로라하는 ‘회장단’서 본인만의 색 드러낼까
김병수 기자
입력 : 2022.06.27 14:56:48
수정 : 2022.06.27 14:57:05
구자은 LS그룹 회장(58)은 전국 사업장을 순회하고 있다. 지난 5월부터 7월까지 기한으로 충청·경상·전라권 전국 14곳의 자회사·손자회사 사업장을 방문하는 현장경영에 나선 것.
구 회장의 현장경영 방문지와 방문 순서를 보면 그의 경영 방향을 읽을 수 있다. 취임 후 그가 가장 먼저 찾은 사업장은 지난 4월 강원도 동해 LS전선 해저케이블 공장이었다. LS전선은 원자력에서 풍력 발전으로 에너지 전환을 진행 중인 대만에서 초고압 해저케이블 수주를 싹쓸이(1단계 프로젝트 기준)하는 성과를 거둔 바 있다. 금액으로는 약 8000억원 규모다. 케이블을 바다 밑에 설치하는 작업을 수행할 8000t급 포설선까지 확보해 국내외 사업에 투입할 계획이다.
LS전선이 기존 주력 사업이자 미래에너지 분야 사업의 중심이라면, 구 회장의 두 번째 방문지인 경기도 군포 LS EV코리아 공장은 첨단소재이자 신사업을 상징하는 장소다. EV코리아는 LS전선의 전기차 부품 자회사로, 전기차 전원을 공급하거나 센서를 작동·제어하는 부품을 생산한다. 폭스바겐·볼보 등 세계 완성차 업체와 LG화학 등을 주요 고객으로 두고 있다.
그 외 구 회장은 LS니꼬동제련 자회사인 토리컴, LS일렉트릭 천안·청주사업장, LS전선 자회사인 지앤피우드와 세종전선 등을 찾았다. 이어 7월까지 LS전선 구미·인동사업장, LS일렉트릭 자회사인 LS메카피온·LS메탈, LS니꼬동제련, LS엠트론, LS전선 자회사 가온전선을 찾는다. 이후 해외 사업장을 둘러보며 글로벌 사업 현황도 점검한다는 계획이다.
▶취임 반년 만에 공격적 경영 행보
구 회장은 올 초 LS그룹 회장에 올랐다.
취임 반년도 지나지 않은 상태에서 현장경영에 나서며 신규 사업으로의 공격적인 진출에 드라이브를 걸고 있는 셈이다. ‘구자은 체제’를 맞은 LS그룹은 신사업 포트폴리오를 확대하기 위한 적극적인 행보를 보이고 있다. JKJS가 보유한 LS니꼬동제련 지분 49.9%를 전부 매입해 100% 지분을 확보한 것이 대표적이다. LS그룹은 LS니꼬동제련을 현재 주력 제품인 전기동과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는 반도체나 배터리 소재 등을 생산하는 종합소재기업으로 키울 계획이다. 향후 LS니꼬동제련의 기업공개(IPO)를 통한 사업 확장도 가능해졌다.
또한 ㈜LS와 액화석유가스(LPG) 수입·유통기업 E1이 공동 투자한 ‘LS이링크(E-Link)’를 설립해 전기차 충전기 시장에도 진출했다. 전국의 E1 충전소에 전기차 충전시설을 구축해 LPG 유통(기존 주력 사업)과 전기차 충전(신사업)을 모두 확보하겠다는 구상이다. 구 회장이 직접 LS전선의 전기차 부품 자회사(LS EV코리아)의 공장 준공식에 참석, “전기차·ESS(에너지저장장치) 부품은 LS가 강점을 가지고 있는 전기·전력 기술이자 탄소중립이라는 인류의 미래를 위해 핵심적인 역할을 할 그룹의 신성장 동력”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LS그룹 관계자는 “친환경 ‘전기의 시대(Electrification)’의 도래에 대비해 LS만의 차별화된 사업 기회를 찾는 일환”이라 전했다.
구자은 회장은 취임 일성으로 ‘양손잡이 경영’을 내세웠다. 양손잡이 경영은 “한 손에는 전기·전력·소재 등의 앞선 기술력을, 다른 한 손에는 AI·빅데이터·IoT 등 미래 선행 기술들을 기민하게 준비해서 고객 중심 가치의 솔루션을 균형 있게 제공하는 기업으로 거듭나겠다”는 전략이다. 쉽게 말해, ‘한 손’으로는 주력 사업을, ‘다른 손’으로는 신사업을 벌이는 형태를 뜻한다. 최근의 현장경영 행보 역시 기존 주력 산업에 대한 철저한 점검을 통해 신사업 확대의 안정적 기반을 마련한다는 취지다.
▶마음에 걸린 동·박막 사업 매각
앞서 9331억원을 들여 계열사인 LS니꼬동제련을 100% 자회사로 편입, 배터리·반도체 소재를 포함한 종합소재기업으로 육성하겠다는 계획도 같은 맥락에 놓여있다. 이는 구 회장 취임 이후 진행한 첫 대규모 거래다. LS니꼬동제련은 국내 최대 비철금속 소재 기업으로 전기동 생산량 세계 2위(단일 제련소 기준)인 온산제련소를 갖고 있다. 신사업을 효율적으로 진행하기 위해 단일 주주로 신속한 의사결정이 필요하다는 판단을 내린 것으로 보인다.
이런 행보는 과거 구 회장의 행보와 무관치 않다는 해석이다.
과거 LS엠트론 부회장이었던 그는 2016년 테슬라 전기차 배터리에 동박을 공급하며 관련 시장을 이미 경험한 바 있다. 하지만 2017년 구조조정 과정에서 동박·박막사업부를 사모펀드 콜버그크래비스로버츠(KKR)에 매각했다. 당시 LS그룹은 LS엠트론 동박박막사업부와 LS오토모티브의 지분 47%를 묶어 1조500억원에 매각했다. 이 중 LS엠트론이 사업부를 매각하고 손에 쥔 금액은 3000억원에 불과했다. 하지만 KKR는 2년 뒤 이 사업부를 SKC에 1조2000억원을 받고 되팔았고, 이 사업부가 SK넥실리스로 지난해 6362억원의 매출과 798억원의 영업이익을 내는 SKC의 알짜 자회사로 성장했다. 이뿐 아니다. 구자은 회장과 직접 관련은 없지만 2010년에는 음극재 사업부(카보닉스)를 포스코케미칼에 매각한 사례도 있다. 이후 음극재 산업은 전성기를 맞았다. LS그룹 사정에 밝은 한 인사는 “당시에는 전기차 시장이 얼마나 성장할지 확신이 없었고, 현금이 필요한 상황이었다”면서 “어쨌든 엠트론 경영을 책임지던 구자은 회장에겐 결과적으로 뼈아픈 경험이었을 것”이라 귀띔했다.
LS니꼬동제련은 다시 동박사업에 재도전할 가능성도 있다. 동 제련 분야가 주력인 만큼 안정적으로 원재료를 수급할 수 있고, 낮은 비용으로 동박을 생산할 수 있다는 강점이 있다. 문제는 동박사업을 본격화하기 위해선 상당한 자금과 시간이 필요하다는 점이다. 이미 국내에서도 SK넥실리스 외에 일진머티리얼즈, 솔루스첨단소재 등이 업계를 주도하고 있다. 최근 일진머티리얼즈가 시장에 매물로 나오자, LS그룹이 후보로 회자된 것도 같은 이유에서다.
LS계열사의 한 고위 관계자는 이에 대해 “당시 동·박막, 음극재 사업 매각은 구자은 회장의 결정이 아니라 그룹 사정에 의해 회장단에 의해 이뤄진 측면이 강하다”면서 “이 부분이 구 회장 책임으로 알려진 데 대해 개인적으로 아쉬운 점이 많을 것”이라 전했다.
▶허심탄회한 소통 강점
보수적인 그룹 분위기지만 구 회장은 소통을 중시하기로 유명하다.
2015년 LS엠트론 부회장이던 시절 즐겼던 ‘치맥데이’가 대표적이다. 구 회장은 안양 LS타워 인근 호프집에서 팀장급 임직원 10여 명을 모아 치킨과 맥주를 함께하며 대화를 나눴다. 또 매주 금요일마다 양복·구두 대신 편안한 캐주얼과 운동화 차림으로 출근하는 ‘캐주얼데이’를 만들었다. 회의시간을 줄이기 위해 일어선 채로 회의하는 ‘스탠딩 회의실’도 구 회장의 작품이다. 매년 수십 명의 신입사원에게 직접 전화를 걸어 축하인사를 하는 것도 알려져 있다.
그룹 회장에 오르면서는 조직문화 개선을 통해 미래에너지·첨단소재 분야에서 활약할 인재 육성과 일하는 방식의 변화까지 꾀하고 있다. LS그룹은 지주사인 ㈜LS를 시작으로 그룹 내 전 계열사가 자율복장제도를 실시하고 있다. 제조업이 주력군인 기업집단에서 좀처럼 찾아보기 어려운 풍경이다. 구 회장은 “복장 자율화를 통해 시간·격식에 구애받지 않고, 성과 중심으로 일하는 환경을 조성하자”고 제안한 것으로 전해졌다. 구 회장의 지시로 데이터 기반 인사관리(HR) 조직 ‘피플랩’을 운영하면서 조직문화와 성과보상체계의 대대적인 변화도 진행 중이다. 단순히 국내외 대기업 사례를 흉내 내는 게 아닌, LS 직원들의 사고·업무·성과를 계량화해 맞춤형 해법을 찾으려는 것이다. 이러한 시도에는 젊고 우수한 인력의 이탈을 막아야 한다는 고민이 깔려 있다. 현장 평가도 나쁘지 않다. LS계열사의 한 직원은 “올해부터 소통과 현장 경영, 디지털 전환에 대해 강조하는 데 대해 사내 분위기는 긍정적”이라고 전했다.
▶전기차 부품·충전 사업 승부수… 과제는
전례에 따르면 구자은 회장은 2030년까지 그룹을 이끌 것으로 보인다. LS그룹은 사촌 승계 방식으로 회장직이 승계돼왔고, 구자은 회장이 오너 2세로서 마지막 그룹 회장이 될 가능성이 높다. 향후 오너 3세에 경영권을 물려주는 가교 역할도 중요하다. 재계 관계자는 “내년은 LS그룹이 LG그룹으로부터 분리된 지 20주년이 되는 해”라며 “구 회장이 부임 첫해부터 적극적인 행보를 보이는 것은 새로운 그룹 비전을 마련하기 위한 사전 작업 차원으로도 보인다”고 말했다.
문제는 사촌 경영 시스템 안에서 회장단의 입김이 강할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앞서 그룹 고위 관계자는 “계열사 주요 투자 등 주요 안건에선 그룹 회장의 영향력이 제한되는 경우가 없지 않다. 내로라하는 회장들 사이에서 돌다리 두드려가는 심정일 것”이라며 “양손잡이 경영 역시 기존 사업과 구자은 회장이 추진하는 신사업 간의 균형을 에둘러 표현한 것일 수 있다”고 귀띔했다.
사정이 어찌됐든 구자은 회장은 전기차 부품 및 충전 사업에 승부수를 던졌다. 실적 전망도 밝다. 금융정보업체 에프앤가이드는 올해 지주사인 LS의 매출이 13조8000억원대, 영업이익은 6200억원대로 역대 최대 실적을 기록할 것으로 내다봤다. 남은 9년 구 회장의 행보가 기대되는 이유다.
He is
구 회장은 미국 시카고대 경영학 석사(MBA)를 마치고 1990년 LG정유(현 GS칼텍스)에 사원으로 입사한 뒤 LG전자, LG상사(현 LX인터내셔널), LS니꼬동제련, LS전선, LS엠트론 등에서 근무했다. 전자, 상사, 정유, 비철금속, 기계, 통신 등 국내 핵심 제조업 사업 분야를 두루 거친 현장 전문가다. 영어는 물론 중국어와 일본어에도 능통해 ‘해외사업 전문가’로 꼽히기도 한다. 디지털 전환, ESG라는 새로운 시대 트렌드를 이끌어갈 적임자란 평가가 일찍부터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