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옷 좀 입는다는 MZ세대 여성들이 가장 선호하는 패션 쇼핑 애플리케이션(이하 앱) ‘에이블리(ABLY)’를 수식하는 소개말이다. 쉽게 말해 인공지능을 활용한 맞춤형 추천 서비스인데, 패션부터 뷰티, 핸드메이드, 완구·팬시, 홈데코까지 카테고리도 다양해 사용하면 할수록 사용자가 원하는 ‘나만의 스타일’을 추천해준다.
2018년에 론칭한 이 앱이 그간 써내려온 기록은 그야말로 신기록 일색이다. 4년 만에 이용자수 670만 명, 앱 실행횟수 5억7000만 회를 넘어서며 업계 1위 스타일 커머스 플랫폼에 이름을 올렸고, 지난해 11월엔 누적 거래금액 1조원을 돌파했다. 12월에는 앱·리테일 분석서비스 와이즈앱이 발표한 ‘MZ세대가 가장 많이 사용한 전문몰 앱’ 1위에, 올 3월에는 버티컬커머스 플랫폼 중 이용자 수 1위, 종합몰 포함 4위에 올랐다. 지난해 기준 연간 거래액은 약 7000억원, 올 연간 거래액 목표 1조2000억원 달성도 무난할 것으로 전망된다. 잘되는 기업에 투자가 몰리는 건 당연한 일. 올 1월 670억원의 투자 유치에 성공한 에이블리는 누적 투자유치금이 1730억원에 이른다. 여성 패션 플랫폼 중 가장 많은 금액이다.
에이블리 본사가 있는 강남 교보타워 6층에서 만난 강석훈 대표는 “저희 팀 전체가 4년간 쌓아온 경험과 활동이 이뤄낸 결과”라며 “결코 강석훈의 에이블리가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직원들에게 “석훈님”이라 불리는 그는 “개인보다 원팀이 우선”이라며 “원팀(One Team)으로 그릿(GRIT·Growth(성장), Resilience(회복력), Intrinsic Motivation(내재적 동기), Tenacity(끈기)의 줄임말)하게 일하고 임팩트(Impact)를 만들어내는 회사”라고 에이블리를 소개했다. 언뜻 래퍼라 해도 믿을 만큼 캐주얼한 복장과 뒤집어 쓴 캡 모자가 인상적이었다.
강석훈 에이블리 대표(CEO)&최고제품책임자(CPO)
서로 소통하고 이해해야 원팀
▶세련된 업무 환경이 인상적입니다. 200만원대를 호가한다는 허먼 밀러 의자가 직원 전용인데요.
▷6층과 9층을 쓰고 있는데 층마다 인테리어가 다릅니다. 저희 기업문화를 나타낼 수 있게 계속 변주하면서 사용하고 있어요. 구성원들과 자주 모여 많은 얘기를 하는데, 그렇게 원팀으로 일하는 걸 지향하고 있거든요. 서로 얘기를 많이 할 수 있는 공간을 곳곳에 배치했습니다. 의자는 업무 몰입도를 높일 수 있는 환경을 고려한 것이죠.
▶기업문화 표현에 사옥이 효과적이란 의견도 있는데요.
▷월세 대신 은행 이자로 돌려서 사옥을 마련하는 게 낫지 않냐고도 하는데, 그 정도의 대규모 자본을 묶어두는 것보다 여러 사업에 투자하는 게 훨씬 바람직하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원팀을 강조하시는데, 개인 성과도 중요한 것 아닌가요.
▷저는 공동체의 성공을 추구하는 이유가 ‘공동체가 잘되면 내가 잘된다는 확신’이라고 생각해요. 이 회사가 잘되면 나는 무조건 잘된다는 확신이죠. 그 확신을 끌어내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매주 진행한다는 타운홀 미팅도 그 노력의 일환이겠군요.
▷요즘은 구성원이 300명을 넘어서면서 거의 인터넷 방송 수준이 됐어요. 회사가 어디로 가는지, 본인이 리더가 됐는데 왜 리더가 됐는지, 우리 회사 제도 중 이런 건 좋은 것 같고 이건 아닌 것 같다는 말도 서슴없이 나옵니다.
▶최근에 나온 가장 충격적인 의견이라면.
▷대표이사가 ‘그릿’을 잃은 게 아니냐는 말이었어요. 왜 그렇게 생각하느냐고 물었더니 더 성공해야 하는데, 잘하고 있다는 말을 반복해서 그래 보였다더군요. 이렇게 서로 얘기하면 이해가 되고 오해가 풀립니다.
새로운 사업구조는 글로벌과 핀테크 진출
▶현재 가장 큰 관심사는 무엇입니까.
▷사업구조예요. 어떻게 해야 더 멀리 갈 수 있을지. 올해가 굉장히 중요한 한 해가 될 겁니다. 누적 거래액 1조원을 달성하는 데 3년 8개월이 걸렸어요. 5조원, 10조원으로 올라서는 단계인데, 지금까지의 방식과는 좀 다를 겁니다.
▶이미 갈 길을 알고 있다는 말로 들립니다.
▷지금까지는 거래액을 충분히 키워내는 게 의미가 있었어요. 그런데 성장은 약 5조원에 이르면 멈출 것 같거든요. 지금 사업만 유지한다면 성장 속도가 점점 느려질 겁니다. 또 다른 성장 동력을 찾아야 하는데, 그 시기가 1년 안에 올 거라 생각해요. 기존 사업을 유지하면서 이만큼 클 수 있는 또 다른 사업 구조를 더해야 하는 거죠.
에이블리의 플랫폼 서비스는 ‘파트너스’와 ‘셀러스’로 나뉜다. 파트너스는 사업을 꿈꾸는 일반인과 인플루언서를 위한 일종의 대행 서비스다. 예를 들어 옷을 골라 촬영해 앱에 올리면 에이블리가 도·소매 시장에서 옷을 구해 소비자에게 제공한다. 사입, 물류, 배송, 소비자 응대까지 모두 에이블리가 담당하는 풀필먼트 솔루션이다. 지금까지 에이블리 파트너스로 창업한 셀러는 누적인원 6000명이 넘었다. 입점한 지 1년 만에 월 매출 10억원을 달성하는 셀러도 등장했다. 셀러스는 옥션이나 G마켓처럼 온라인 쇼핑몰을 모은 오픈마켓 형태의 서비스다.
▶구상 중인 다른 사업이라면.
▷지난해 새로 도입한 게 글로벌 진출이었어요. 현재 일본 시장에 앱이 나와 있고, 이 앱이 조금씩 안정되면 새로운 사업구조가 될 겁니다. 또 핀테크 분야로의 확장도 준비하고 있습니다. ‘에이블리 페이’가 되겠죠. 팀을 꾸리는 상황이라 론칭 시점은 내년이 되지 않을까 싶네요.
▶일본 진출을 준비하는 플랫폼이 하나둘 늘고 있는데요.
▷특히 국내 패션 플랫폼들이 그렇습니다. 지난해 말부터 기류를 느꼈는데, 실제로 한국 스타트업들의 일본 진출 러시가 예고되고 있어요.
▶왜 일본입니까.
▷일본 시장이 한국에 비해 인구가 2~3배 많고 경제력은 소폭 높아요. 그러면서 문화나 행동양식이 비슷한 면도 있습니다. 또 IT 환경은 우리의 2000년대 초반 수준이거든요. 진출하기 쉽고 규모가 큰데 시장 컨디션이 이미 우리가 학습했던 내용이라면, 당연히 자신감이 생기지 않을까요. 저희가 1년여 전에 일본에서 론칭한 앱은 iOS 앱스토어 랭킹 쇼핑 카테고리에서 아마존을 제치고 최고 3위를 기록하기도 했어요. 누적 다운로드 수는 200만 회를 돌파했고, 현재 월간 사용자 수 70만 명으로 일본 쇼핑 앱 11위에 올라있습니다. 올해는 월간 사용자 수 200만 명, 쇼핑 앱 5위 진입이 목표예요. 코로나19 때문에 현지에 나갈 수가 없었는데 이제 본격적으로 현지 법인을 갖출 계획입니다.
▶그러한 성과 덕분인가요. 투자유치가 꾸준합니다.
▶투자자분들의 코멘트를 한두 개 소개하면 첫째, 시장 자체가 너무 매력적이라고 하세요. 에이블리를 처음 론칭할 땐 취향 기반 스타일 커머스라는 말이 어색했는데, 지금은 시장이 커지고 있는 상황이거든요. 이 분야의 선두주자란 평가가 나와서 뿌듯했습니다. 또 저희 구성원과 얘기를 나누곤 진정성 있게 사업을 대한다고도 합니다. 지난해 일본 사업을 시작한 것과 핀테크로의 확장에 이러한 평가가 이어져 기억에 남습니다.
▶사실 스타트업에 투자하는 목표는 한 가지인데.
▷상장이나 인수 제안은 정말 많이 받고 있습니다. 투자자에게 감사한 게 유유상종인지 저희와 색깔이 비슷해요. 정말 멀리 가보자고 합니다. 1조~2조원에 엑시트하는 게 아니고 100조원까지 가면 좋겠다고 합니다.
에이블리는 라이프 스타일 매니징 기업
▶목표가 유니콘이 아닌 건 확실해 보입니다.
▷저희들끼리는 데카콘으로 가자는 말들이 나오고 있어요. 올해는 사업구조가 안정되면서 적자 폭이 줄어드는 시기가 될 겁니다. 내년에는 손익분기점에 근접하거나 초과할 수 있지 않을까 예상하고 있습니다.
▶내년은 흑자 전환의 해다?
▷네. 가능할 것 같아요. 저희 비용 구조가 그렇게 무리한 구조가 아니거든요. 작년에 성장하면서 적자 폭이 컸는데, 면밀히 뜯어보니 올해는 줄어들 것 같고 내년에는 흑자 전환할 수도 있겠다 싶어요. 만약 내년을 넘긴다면 내후년에는 확실하고요. 저희와 규모가 비슷한 다른 스타트업과 비교하면 우선 구성원 면에서 슬림하거든요. 다른 곳이 800~900명이라면 저희는 이제 300명을 넘겼습니다. 총원도 적고 총원 내에서 개발자 비율도 약 20%로 낮아요. 물론 앞서도 말씀드렸지만 일의 몰입도와 강도는 높죠. 훨씬 효율적입니다.
▶그럼에도 AI 추천 서비스를 자체 개발했더군요.
▷두 가지 특징이 있는데, 우선 질적인 면에서 저희는 왓챠의 창업자들이 다시 모인 팀이기 때문에 취향 기반의 개인화 기술이나 서비스에 대한 이해도가 이미 높았습니다. 여기에 양질의 데이터가 쌓여가고 있어요. 상품에 대한 선호를 뜻하는 ‘상품 찜’ 수는 4년 만에 7억 개를 넘어섰고, 현재도 초당 약 15개의 찜(좋아요)이 쌓이고 있습니다. 상품 구매 후기도 누적 3000만 개를 넘어섰어요. 올해 약 11억 개의 취향 데이터가 쌓일 것으로 예상됩니다.
▶빅데이터 기업인데요.
▷추천 데이터를 들여다보면 정말 우수한 결제 전환율을 보이고 있다고 자부합니다. 또 저희는 한 가지가 아니라 종합적인 취향을 추천합니다. 누군가 에이블리에서 마음에 드는 옷을 클릭하면 패션 취향을 이해하는 게 아니라 그 사람의 스타일 취향을 이해하죠. 옷은 이렇게 입겠구나, 화장은 이렇게 하겠구나, 집은 이렇게 꾸미겠구나. 나중엔 여행과 맛집까지 취향 그래프가 나올 겁니다. 그런 의미에서 에이블리는 유저의 취향 지도를 그리는 라이프 스타일 매니징 기업입니다.
▶구글이 하고 있는 서비스가 가능해지는 것 아닙니까.
▷어떤 면에선 구글보다 저희가 앞선다고 생각해요. 사실 세세하게 들어가면 무의미한 데이터들이 많거든요. 사람이 의도를 갖지 않고 행동하는 경우가 많잖아요. 아마도 구글은 이렇게 주장을 할 거예요. 의도가 없는 데이터도 그 사람을 대변한다고. 그건 노이즈가 너무 많아요. 저희는 의도를 갖고 행동하는 진정한 데이터가 올해 11억 개나 쌓일 겁니다. 스마트 기기에 쌓인 로그 데이터와 구글의 검색 데이터, 에이블리의 취향 데이터 중에 어떤 걸 선택할까요.
▶에이블리를 포함한 국내 플랫폼 산업의 성장 속도가 꽤 빠릅니다. 어떻게 예상하십니까.
▷업에는 고유한 본질이 있어요. 표준화된 상품을 저렴하게 사서 빨리 받아보는 커머스가 있고, 저희처럼 취향 기반의 커머스가 있습니다. 전자는 쿠팡이나 네이버가 잘할 것 같고, 후자는 에이블리가 되길 바랍니다.
He is
연세대 경영학과를 중퇴했다. 2010년 왓챠 공동창업자로 IT와 개인화 취향 추천 서비스를 경험하며 전문성을 쌓아왔다. 2018년 3월 스타일 커머스 플랫폼 에이블리를 정식 론칭했다. 빅데이터를 기반으로 ‘AI 개인화 추천 알고리즘’을 적용해 이용자의 취향 분석을 통한 개인 맞춤형 상품 추천 기능을 제공하고 있다. 에이블리에서 누구나 쉽게 창업하고, 누구나 자신만의 스타일을 쉽게 발견하는 ‘넥스트 커머스 생태계’를 만들어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