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한 보상> 저자 신재용 서울대 교수 “‘회사가 쏜다’로 접근하면 답 없다… 개인성과 측정·보상 연계 강화해야”
이유섭 기자
입력 : 2022.04.11 13:53:16
수정 : 2022.04.11 13:53:33
국내 한 반도체 기업에 다니는 30대 초반 회사원 A씨는 올해 초 특별보너스 등 포함 기본급의 약 1000%에 달하는 성과급을 받았다. 그는 집 사느라 은행에서 받은 대출 수억원을 갚는 데 성과급을 사용할 계획이다. 그는 “금리 인상을 앞두고 대출 부담을 덜 수 있어서 다행”이라며 “고성과를 냈으니 그에 걸맞은 성과급을 받는 건 당연하다”고 말했다.
한 석유화학 대기업에 다니는 직원은 연봉의 평균 42.5%에 해당하는 성과급을 받았다. 세금 빼고 1000만~2000만원의 적지 않은 돈이 입금된 것으로 알려졌지만, 회사 내부에서는 불만의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이 회사 직원은 “1인당 영업이익을 계산해보면 삼성전자·SK하이닉스보다도 높은데 회사가 너무 짠 것 아니냐”고 토로했다.
대기업에 다니는 20~30대 MZ세대 직장인 중심으로 터져 나오는 성과급 논란이 매년 반복될 조짐이다. 기업 입장에선 많게는 수천억원까지 쓰고도 직원들로부터 항의를 받으니 답답할 노릇이다. 성과가 다른데 똑같이 줬다고, 사업부별로 차별했다고, 경쟁사보다 적게 줬다고, 성과급 책정 기준을 공개하라는 등 불만 사유도 제각각이다.
이처럼 과거와 완전히 다른 MZ 직장인 행태의 중심에는 과거와 완전히 다른 보상에 대한 정의가 있다. 부와 신분이 모두 대물림되는, 출구가 없다고 생각하는 이들은 살아남기 위해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고 확보하는 과정에서 공정이라는 단어를 찾게 된다.
MZ세대는 교환이라는 틀로 세상을 본다. 공정함을 간절히 원하는 속내에는 ‘나는 당신들 세대 누구보다도 많이 노력했으니 그에 상응하는 대가를 받고 싶다’라는 바람이 있다. 결국 MZ세대에게 직장에서의 보상이란 본인이 제공한 노동(시간·노력·기회비용)에 상응하는 대가이며, 그들은 이 교환관계를 공정하게 가져가고자 하는 바람이 있는 것이다.
이와 관련해 오랜 기간 심도 있는 연구를 해온 신재용 서울대 경영학과 교수를 인터뷰했다. 그는 <공정한 보상> 책을 써서 화제가 된 인물이다. 신 교수는 “MZ세대 직장인이 원하는 공정은 투입물과 산출물의 교환·거래다. 이를 충족시키려면 내부승진과 연공서열 기반 기존 보상제도에 대한 대대적인 수술이 불가피하다. 조직적·전사적 성과급 위주의 획일적 보상서 탈피해 개인성과 측정과 보상 간 연계를 보다 강화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공정한 보상> 저자 신재용 서울대 교수
신 교수는 “조직이나 회사 성과가 탁월해 연봉 대비 집단성과급 비율이 높더라도, MZ세대 직원들은 개인 공헌에 대한 고려 없이 모든 직원이 일률적으로 같은 지급률을 적용받은 것을 받아들이기 힘들어한다”고 밝혔다.
지금까지 회사는 성과급을 마치 선물 마냥 ‘한번 쏠게’라는 식으로 직원들에게 나눠줬다. 하지만 MZ 회사원들은 경영성과 공유를 통해, 나의 노력에 대한 정당한 대가를 받는 것이라고 인식한다. 이에 대해 신 교수는 기업경영 목적 자체를 재정의하는 작업이 불가피하다고 진단한다. 주주 중심 자본주의에서는 이익과 주가를 극대화하는 게 경영의 최우선 목표다. 이 경우 직원들과의 성과 공유는 이익·주가 극대화에 마이너스 요인이 된다. 하지만 신 교수는 “이제는 직원들이 중요한 이해관계자가 됐다”며 “성과 공유 방식에 손대지 않고서는 대기업 성과급 논란은 연례행사가 될 가능성이 높다”고 경고했다.
공정한 보상과 관련한 MZ 직장인 행태를 이해하기 위한 핵심 단어는 능력주의(Meritocracy)와 조사모삼(朝四募三)이다. 신 교수는 MZ세대의 능력주의 중심 사고의 원인을 성장 과정마다 거쳐야 했던 ‘토너먼트’에서 찾는다. 신 교수는 “그들은 영어유치원(1990년대 초 첫 개원), 국제중·특목고 입학, 수시 대입 전형(1996년 시행), 대기업 입사에 이르기까지 연속된 토너먼트의 승자들”이라며 “이들에게는 자신이 투입한 시간과 노력을 올바르게 평가받기 위한 ‘시스템의 공정성’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MZ 직장인에 보상이란 투입·산출에 대한 교환 개념
MZ세대 취업준비생들은 정규직원으로 취직하기 위해 여러 인턴 생활을 경험하며, 직무 관련 경험과 지식을 쌓고 채용 소식이 들려오는 날을 수시로 기다려야 하는 처지에 놓이게 된 세대다. 그들은 어려운 경쟁 과정을 뚫고 기업에 입사한 만큼, 입사 후에는 성과 평가와 보상에 있어서 시스템적으로 공정한 대우를 바라게 된다.
그런데 경쟁에서 살아남은 이들에게는 생존 편향이라는 게 있다. 환경에 잘 적응해 살아남았기 때문에 이들은 그동안 자신들을 성공으로 이끈 경쟁 시스템에 대한 선호가 분명하다. 연속된 토너먼트를 성공적으로 돌파한 생존자들에게 이 성공은 오롯이 자신의 노력과 재능으로 이룬 것이 되어버리고 행운은 끼어들 자리가 없는 것이다. MZ세대에게 시스템 공정성은 정글에서의 가장 중요한 생존법칙으로 마치 휴대폰에 내장된 칩처럼 그들이 내면에 단단히 새겨진 것이다.
이러한 능력주의는 근로자의 단결을 강조하고 안정적인 근로조건을 모든 근로자의 권리로 주장해온 기존 생산직 위주의 노동조합이 직면한 큰 도전이다. 동시에 같은 MZ세대 내에서도 각자가 원하는 공정한 보상이 성장 배경과 경쟁 환경 그리고 담당 직무에 따라 다른 이유이기도 하다. 그들은 국제중학교에 입학하기 위한 경쟁부터 대기업에 입사하기 위한 경쟁 등 수많은 경쟁을 경험해온 세대다. 이러한 경쟁 속에서 학생들에게는 매 순간이 일종의 토너먼트로 다가왔을 것이다. 여러 토너먼트를 경험하며 MZ세대들은 자신이 투입한 시간과 노력을 올바르게 평가받기 위해서는 본인들이 경쟁하는 시스템의 공정성이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임을 느낄 수밖에 없다.
이연보상(移延報償)을 받아들이지 않는 사고는 저성장 경제와 불투명한 미래로부터 비롯됐다고 신 교수는 진단한다. 신 교수는 “미래 화폐 가치를 이자율을 적용해 현재 가치로 할인하듯, MZ세대는 불확실한 미래의 약속이나 보상은 과감히 디스카운트한다”며 “평생직장 개념이 없고 이직이 보편화된 이들에게 단기평가와 이에 따른 현재의 보상은 너무 당연하다”고 밝혔다.
MZ세대는 불확실한 미래를 디스카운트하는 정도가 기존 세대보다 훨씬 높다. 베이비부머들이 대학을 졸업할 때인 1970년대 중후반 한국의 경제성장률은 10~15%였다. 1990년대까지만 해도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의 <시련은 있어도 실패는 없다>와 김우중 대우그룹 회장의 <세계는 넓고 할 일은 많다>가 베스트셀러가 되던 시절이었다. 하면 되고 꿈은 이뤄졌다. 월화수목금금금으로 열심히 살면 이루지 못할 것이 없었다.
그런데 MZ세대의 시작인 1980년대 중반 출생자가 대학을 졸업한 2008년 이후 우리나라 경제성장률은 2010년을 제외하고 3%를 넘은 적이 없다. 미래가 잘 풀릴 확률에 비해 잘 풀리지 않을 확률이 더 높아진 것이다. 따라서 이들은 미래에 대해서 비관적일 수밖에 없다.
신 교수는 MZ 직장인들은 직장 내 승진보다 사회계층 상승에 더 관심이 있다고 분석했다. 그는 “이들에게 동기를 부여하기 위해서는 권한 부여, 실력 있는 상사의 멘토링·코칭, 회사 차원의 교육 훈련 등이 필요하다”며 “회사 근무만으로도 역량을 높이고 잠재력을 극대화해 노동 시장에서 가치를 올리는 데 큰 도움이 된다는 생각을 갖게 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MZ세대의 욕구를 보상제도에 반영하기 위한 가장 현실적인 대안은 직무와 역량에 기반하여 설정한 기본급 및 능력급에 과감하게 성과에 기반한 보상을 더하는 것이다. MZ세대가 요구하는 보상체계는 외부 노동 시장을 이용한 핵심인재 영입을 중시하며, 단기고용과 철저한 능력과 성과 평가에 기초한 파격적인 인센티브와 연봉제를 근간으로 하는 미국 기업의 인사 철학에 훨씬 더 가깝다.
▶철저히 능력주의 사고… ‘이연보상’ 수용 안 해
성과급에 대한 구성원의 불만을 최소화하고 성과급의 순기능을 강화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조직·전사 성과급 위주의 획일적인 보상에서 탈피해 개인의 성과 측정과 보상 간의 연계를 보다 강화해야 한다고 신 교수는 분석한다. 개인성과 평가에 근거해 보상받고 싶다면 결국 개인성과를 측정해야 한다. 그럼 결국 정성평가를 사용할 수밖에 없다. 이때 개인의 성과를 가장 잘 평가할 수 있는 사람은 관리자이기 때문에 관리자가 변해야 한다.
신 교수는 “공정이 가장 중요한 가치가 된 한국 사회에서는 평가지표나 가중치 등이 미리 객관적으로 정해지고 공표되지 않은 정성적인 평가는 깜깜이로 인식되고 불공정의 플랫폼이라고 생각된다”며 “성과급 지급 기준의 불투명성에 대한 MZ세대의 불만도 여기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따라서 인사관리(HR) 부서와 현업의 관리자는 지속적인 교육에 의한 평가 역량을 축적하고, 직원들과의 끊임없는 소통과 피드백을 통해 신뢰라는 자본을 쌓아나가면서 직원들의 깜깜이 고과와 평가에 대한 공정성 우려를 불식시켜야 한다”고 말했다.
MZ세대에게는 수직적 혹은 수평적 보상 격차로 표현되는 보상의 결과도 중요하지만, 보상이 어떻게 결정되었는지, 즉 보상을 결정하는 절차가 공정한지가 더욱 중요하다. MZ세대가 절차 공정성에 납득을 하게 되면 분배 공정성에 대한 불만은 586세대나 X세대에 비해 오히려 작을 수 있다는 게 신 교수의 진단이다. 기업 내 임직원들이 합리적으로 예측할 수 있는 적정 보상 격차가 높을수록 미래 기업성과는 높아질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비정상적으로 높은 보상 격차는 미래 기업성과를 낮추기도 한다. 중요한 건 보상 공정성을 해쳐 조직성과에 나쁜 영향을 주는 보상 격차는 비정상적으로 높은 불공정한 격차이지, 공정한 보상 격차는 오히려 기업성과를 높이는 데 큰 도움이 된다는 사실이다.
소속 집단 내부에서만 암암리에 알려졌던 정보가 이젠 전혀 관련 없는 집단의 사람까지도 쉽게 알 수 있게 되었고, 더 나아가 이렇게 소속 기반 커뮤니티를 통해 알려진 정보는 기존의 관심사 기반 커뮤니티 등을 통해 더욱 광범위하게 전파되고 있다. 이에 대해 신 교수는 “굳이 애쓰지 않아도 너무나 손쉽게 자신의 처우를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게 된 것”이라며 “MZ세대는 지금까지 노력해온 것 혹은 성취한 것에 대해 공정한 평가가 대우를 받고 있는지 스마트폰만 몇 번 누르다 보면 알 수 있는 시대에 살고 있으며, 이에 대해 거부감을 느끼지 않는다”고 밝혔다.
성과급 평균은 482만원… 10명 중 8명 “회사 성과 보상체계 바뀌어야”
성과 보상체계에 대한 직장인의 부정적 인식은 설문조사 결과에서도 확인할 수 있었다. 매일경제가 채용·취업 포털사이트 사람인에 의뢰해 회사원 1907명에게 의견을 물은 결과, 응답자의 83.8%가 ‘회사 성과 보상체계가 바뀌어야 한다’고 답했다.
‘보상체계가 어떻게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하느냐’는 질문(복수 선택)에는 ‘보상 규모를 늘려야 한다(53.8%)’는 응답이 가장 많았고, ‘합당한 평가체계를 마련해야 한다(45.2%)’, ‘성과 보상 기준을 투명하게 공개해야 한다(42.2%)’ 순이었다. 잘못된 보상체계가 직장 생활에 미치는 영향으로는 ‘업무 의욕 저하(72.9%)’를 꼽은 이가 대다수였다. 응답자 가운데 작년 경영 성과에 대한 성과급을 받았다는 직장인은 28.9%에 불과했다. 대기업(57.1%)과 중소기업(23%) 간 격차도 적지 않았다.
받은 성과급 평균 액수는 482만원이었다. 200만원 미만(41.3%)이 가장 많았고 200만~600만원(38.2%)이 뒤를 이었다. 2000만원 이상 받은 회사원 비중은 1.4%에 불과했다. 성과급에 불만족하는 주된 이유는 ‘이익 대비 성과 보상 규모가 작아서(52.6%)’, ‘보상 기준이 불명확해서(37.5%)’, ‘개인·팀별 차등이 없어서(34.3%)’였다.
▷He is
신재용 교수는 기업의 성과 평가와 보상 및 지배구조에 관해 연구하고 있다. 2006년 위스콘신-매디슨 대학교에서 경영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졸업 후 일리노이 어바나-샴페인 대학교 회계학과 조교수로 4년간 일했다.
2016년부터 지금까지 아시아인 최초로 미국회계학회(AAA)에서 발간하는 관리회계분과 학술지 ‘Journal of Management Accounting Research’의 편집장을 맡고 있다. 2010년 미국회계학회 관리회계분과에서 수여하는 ‘가장 영향력 있는 논문상’을 수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