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일선 특파원의 차이나 프리즘] ‘2035년 세계 최강국’ 꿈꾸는 중국 “10년 칼 가는 심정으로 핵심산업 육성”
손일선 기자
입력 : 2021.03.29 10:51:11
수정 : 2021.03.29 10:51:38
중국은 지난해 코로나19 팬데믹 상황에서 주요국 중 유일하게 플러스 성장(2.3%)을 기록했다. 이로 인해 중국이 세계 경제에 차지하는 비중이 처음으로 17%를 넘었다. 미국과의 격차도 줄어들고 있다.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인 2008년 중국의 GDP는 미국의 31%에 불과했다. 하지만 지금은 미국의 70%를 넘어섰다. 각종 연구기관들은 오는 2028년이면 중국 경제규모가 미국을 추월할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고 있다. 이런 중국이 미국 추월을 위한 ‘마스터 플랜’을 공개했다. 중국 최대 정치행사로 불리는 ‘양회(兩會)’에서 14차 5개년(2021~2025년) 계획과 2035년 장기 발전 전략방안을 확정한 것이다. 양회를 구성하는 전국인민대표대회(전인대)와 중국인민정치협상회의(정협)는 지난 3월 4일부터 11일까지 약 일주일간 개최됐다. 통상 보름 정도 열리는 양회가 코로나19로 인해 기간을 단축한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 양회에서 중국은 많은 메시지를 쏟아냈다. 3대 키워드를 중심으로 올해 중국의 전략을 분석해본다.
3월 4일 중국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중국인민정치협상회의(정협) 전체회의 개막식이 열리고 있다.
▶올해 성장률 목표치 ‘6% 이상’… V자 반등 자신감
코로나19 통제에 성공한 중국은 이번 양회에서 올해 경제성장률 목표를 ‘6% 이상’으로 제시했다. 올해 목표치 6%는 코로나19 발생 전인 2019년 중국 경제성장률과 같은 수치다. 올해 V자 반등이 가능하다는 이야기다. 하지만 시장에서는 중국 정부가 내놓은 이 같은 수치가 지나치게 보수적이라는 평가를 내놓았다. 외부기관의 전망치보다 다소 낮은 수준이기 때문이다. 실제 국제통화기금(IMF)은 올해 중국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8.1%로, 세계은행은 7.9%로 각각 제시했다. 이와 관련 CNBC는 중국이 보수적인 성장률 목표치를 내세운 것은 쉽게 달성할 수 있는 숫자를 제시해 정부 재정의 팽창을 자제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라고 해석했다. 실제로 리커창 총리는 양회 기간 전인대 업무보고를 통해 코로나19 국면에서 실시했던 대규모 재정 부양책에 대한 출구전략을 모색하겠다는 입장을 내비쳤다. 우선 올해 GDP 대비 재정 적자율 목표를 작년의 ‘3.6% 이상’보다 크게 낮아진 ‘3.2%’로 제시했다. 2019년 2.8%였던 중국의 GDP 대비 재정적자 비율은 지난해 코로나19로 인해 3.6%까지 치솟았다. 중국 정부는 일단 급한 불은 껐다고 판단하고 올해에는 재정건정성 확보에 보다 방점을 찍겠다는 의지를 내비친 것이다.
채권 발행을 통한 재정 지출 규모도 축소한다는 방침이다. 인프라 시설 투자에 주로 쓰이는 지방정부의 특수목적채권 발행 한도는 작년의 3조7500억위안보다 소폭 낮아진 3조6500만위안으로 책정됐다. 중국 정부는 또 작년 사상 최초로 경기 부양 목적으로 1조위안 규모의 특별 국채를 발행했는데 올해는 특별 국채를 따로 발행하지 않기로 했다.
중국 경제의 최대 리스크로 거론되는 부채 문제도 중국 정부가 대규모 경기부양책 속도조절에 나선 배경이다. 사회과학원 산하 싱크탱크 국가금융발전실험실(NIFD)에 따르면 작년 말 중국의 총부채 비율은 270.1%로 전년 말보다 23.6%포인트 상승했다. 상승 폭은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 중국이 돈을 급격히 풀던 2009년(31.8%포인트) 이후 가장 높은 수준이었다. 중국 정부의 대표적인 싱크탱크인 중국 국제경제교류센터의 왕준은 파이낸셜타임스(FT)에 “재정정책과 통화정책을 둘러싼 격렬한 논의가 있었다”며 “주된 목표는 레버리지를 안정화시키는 것이다. 너무 빠르게 (긴축) 정책을 펼치면 금융시장뿐 아니라 실물경제에 악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말했다.
▶희토류 등 신소재, 로봇, 신약… 8대 산업 전략적 육성
중국의 미국 추월을 위한 핵심전략은 ‘기술자립’이다. 미국의 지속적인 제재와 견제에도 불구하고 중국이 안정적인 성장을 지속적으로 이뤄 가기 위해서는 핵심기술 확보가 필수적이라는 게 지도부의 판단이다. 특히 중국은 향후 세계 패권을 차지하기 위해 필수적인 분야에 대해서는 대대적인 투자에 나서기로 했다. 이번 양회에서 승인된 14차 5개년 계획 초안에는 희토류를 비롯한 신소재, 로봇 등 8대 산업을 전략적으로 육성하겠다는 내용이 포함됐다. 8대 산업은 ▲희토류 등 신소재 ▲로봇 공학 ▲항공기 엔진 ▲신에너지차 및 스마트카 ▲농업 기계 ▲고속철·대형 LNG(액화천연가스) 운반선·C919 대형 여객기 등 중대 기술장비 ▲첨단 의료 장비 및 신약 ▲베이더우 위성 위치 확인 시스템 등이다.
2035년까지 중장기적 목표로는 ▲인공지능 ▲양자컴퓨팅 ▲반도체 ▲뇌과학 ▲유전자 및 바이오기술 ▲우주심해 탐사 ▲임상의학 및 헬스케어 등 7대 분야에서 돌파구를 마련한다는 내용이 제시됐다. 특히 리커창 총리의 정부 업무보고를 통해 중국의 ‘기술자립’에 대한 강한 의지를 내비쳤다. 리커창 총리는 “10년 동안 단 하나의 칼을 가는 심정으로 핵심 영역에서 중대한 돌파구를 마련해야 한다”며 “과학기술 종사자들이 한 가지 일에만 전념할 수 있도록 부담을 확실하게 덜어주겠다”고 말했다. 미국이 핵심기술 산업을 활용해 중국을 견제하고 있는 상황에서 ‘십년마일검(十年摩一劍)’의 자세로 미국을 극복하겠다는 얘기다. 기술 자립에 보다 속도를 내기 위해 외국인 인재 영입도 확대하기로 했다. 먼저 해외 고급 인재와 전문가들이 중국에서 보다 쉽게 일을 할 수 있게 영주 체계 등을 개선하기로 했다. 또한 숙련 외국인을 위한 프로그램을 구축해 외국인들에게 매력적인 일터 환경을 조성한다는 방침이다. 중국 싱크탱크 세계화센터의 왕후이야오 주임은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에 “미국과의 탈동조화와 기술 경쟁 심화에 직면한 중국은 해외 고급 전문가가 많이 필요하다”며 가장 시급한 분야로 반도체와 친환경에너지 등을 꼽았다.
▶홍콩 선거제 개편 ‘일국양제’ 무력화
올해 양회에서는 중국이 홍콩을 직접통치하기 위한 홍콩 선거제 개편안이 압도적인 찬성으로 통과됐다. 전인대 전체회의 표결에는 전인대 대표 2896명이 참여했으며 찬성이 2895명이었고 반대는 1명도 없었으며 기권이 1명이었다. 지난해 양회에서 국가 분열 행위를 금지하는 홍콩 국가보안법을 통과시켰던 중국이 올해 양회에서 또다시 홍콩 길들이기에 나선 것이다. 외신들은 “미국과 영국 등 서방세계가 홍콩 선거제 개편에 대해 공개적으로 반대 입장을 표명했지만 중국이 이를 강행했다”고 전했다.
중국은 그동안 ‘애국자가 홍콩을 다스려야 한다(愛國者治港)’는 명분을 앞세워 홍콩 수반인 행정장관 선출제도를 포함한 선거제도를 대폭 바꾸는 방안을 추진해왔다. ‘애국자’는 사실상 친중 세력을 의미한다. 이 때문에 ‘홍콩인의 홍콩 통치(港人港治)’를 기본으로 하는 ‘일국양제’ 원칙이 사실상 무력화됐다는 평가가 나온다.
반면 시진핑 국가주석의 리더십은 이번 양회를 통해 보다 공고해졌다는 평가가 나온다. 앞서 중국은 지난 2018년 ‘국가주석직 2연임 초과 금지’ 조항을 삭제해 시 주석의 장기집권을 위한 제도적 기반을 마련했다. 중국은 이번 양회가 끝나면 오는 7월 중국 공산당 창당 100주년을 맞아 시 주석 중심 권력체제를 대내외에 과시할 것으로 보인다. 이어 내년 2월 베이징 동계올림픽, 그해 10월에는 당 대회가 개최되면서 시 주석의 장기집권 기반을 다지는 작업이 본격화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