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성장론의 대가인 세계적 석학 폴 로머 뉴욕대 경영학과 교수(56)가 개발도상국을 대상으로 하는 새로운 경제성장 모델을 제시해 주목받고 있다. 개도국에 기존 시스템과 다른 새로운 경제시스템을 도입한 ‘차터시티’가 그 대안이다. 이는 일종의 경제특별구역이면서 도시건설 프로젝트이기도 하다. 거점도시를 통해 그 나라의 도시화를 촉진하고 성장도 유도한다는 구상이다. 로머 교수는 최근 뉴욕대 연구실에서 가진 인터뷰에서 “차터시티는 특정지역의 도시화를 통해 수백만 명에게 일자리를 제공하고 해당 국가의 경제성장을 촉진하는 도시개발 프로젝트”라고 밝혔다. 그는 개도국은 도시화를 통해 농촌 지역의 빈곤문제를 해결하는 수단을 마련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로머 교수는 한국처럼 개도국 단계를 벗어나고 있는 나라는 도시화를 추진하는 저개발국에서 새로운 기회를 찾아야 한다고 권고했다. 그동안 개발 과정에서 얻은 기술과 지식을 전파해 새로운 투자 기회를 모색하라는 주문이다.
그는 “앞으로 30억명에서 40억명이 도시로 이동할 것”이라며 “한국은 그동안 개발 경험을 살려 이 과정에서 발생할 수많은 투자 기회를 놓치지 말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차터시티(CharterCity)란
일종의 경제특별구역이다. 개발도상국이나 저개발국이 특정 지역에 그 나라의 인구를 유입시키고 제3국이 관리하는 자치도시다. 제3국 기관은 이 지역 내 정치적 안정을 위해 기존 체제와 다른 제도를 도입한다. 그러면 해당 국가와 독립적인 경제활동을 하는 새로운 구역이 만들어지게 되는 셈이다. 영국이 중국에 설치했던 홍콩이 차터시티에 가까운 사례다. 현재 온두라스 정부가 차터시티를 설정해 개발 중이다. 로머 교수는 온두라스 정부를 상대로 조언해주고 있다.
연구 분야가 원래 경제성장이론인데 요즘 차터시티에 관심을 쏟는 이유는.
초기 연구 단계에서는 성장에 관심을 가졌다. 그동안 연구 과정에서 개도국이 선진국을 따라잡기 위해 필요한 매우 중요한 수단은 도시화라는 결론에 도달했다. 도시화는 가난한 지역에 있는 사람들에게 일자리를 제공하는 핵심 수단이다. 많은 나라들은 도시화를 성공적으로 진행하지 못해 뒤처져 있다. 차터시티라는 개념은 개도국의 성공적 도시화를 촉진하는 하나의 방법이다.
창업도시(start-up city)라는 개념도 사용 중이다. 창업도시가 도시화나 경제성장에 어떻게 기여하는가.
도시화에는 두 가지 방안이 있다. 첫째는 기존 도시를 확장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차터시티처럼 새로운 도시를 창조하는 것이다. 차터시티 같은 신도시는 일종의 창업회사나 마찬가지다. 창업도시에서는 기존 방식과 다르게 일을 추진할 수 있다. 해당 국가에는 그들에게 필요한 새로운 개혁의 기회도 제공한다.
경제특구 설정 도시화, 경제성장 촉진온두라스에서 차터시티 개념을 적용중이다. 지금까지 성과는.
온두라스 정부는 차터시티 내용을 듣고 나에게 조언을 부탁했다. 그들은 현재 제도적 기초를 쌓는 데 빠른 진전을 보이고 있다. 지난해 특정 지역에서 새로운 제도를 확정했다. 지금은 전 세계 투자자들과 협의 중이다. 협상 대상 투자자 중에는 국부펀드, 인프라펀드, 건설회사 등이 관심을 갖고 있다. 지금까지 보지 못했던 대규모 부동산 개발프로젝트이다.
차터시티를 중국에도 적용할 수 있는가.
중국은 스스로 잘하고 있다. 오래된 법과 규제를 정비해 특별구역을 설정한 모델 중 하나다. 선전이 대표적이다. 많은 나라들이 중국을 배우려 하고 있다. 이들은 중국 모델을 연구 중이다. 이를 통해 인구를 도시지역으로 이동시킬 기회를 찾고 싶어 한다.
그렇다면 차터시티를 어느 나라에 적용할 수 있는가.
인도는 도시화에서 다소 뒤처진 느낌이다. 인도네시아, 베트남, 북아프리카와 사하라 이남 국가들이 차터시티를 도입해야 할 주요 지역이다. 이들은 대규모 도시권을 만들지 못하고 있다. 특히 물류와 통신 허브를 만들 수 있는 대형 연안지역을 도시화하지 못하고 있다.
한국 도시화에 대한 평가는.
한국은 중요한 도시 허브를 만드는 데 성공했다. 서울은 통신·항공 등 부문에서 글로벌 허브이다. 지금 한국이 고민해야 할 부문은 이 성공적인 허브 구축 과정에서 얻은 기술과 지식을 어떻게 관리할 것인가이다.
나아가 해외 다른 지역으로 나가 이를 어떻게 활용하고, 이후 어떻게 투자 수익을 거둬들일지가 관건이다.
차터시티는 한국 경제에 어떤 의미를 지니는가.
한국에는 매우 경쟁력 있는 건설회사들이 있다. 한국 경제는 제조업과 수출부문에서도 성공적인 경험을 보유하고 있다. 한국 수출기업들 중에는 세계 다른 지역에서 기회를 찾는 회사들도 있다. 한국 건설회사들은 차터시티에 진출해 인프라 건설을 도울 수 있다. 한국 제조업체들은 아시아지역보다 값싼 노동력이 있는 북미 자유무역지역에 진출할 수 있다. 제조업체, 건설회사, 정부기관 등은 그들이 따라잡기(catch-up) 성장에서 얻었던 경험을 차터시티에서 공유할 수도 있다. 한국 정부는 현재 온두라스가 어떻게 진행되는지 관심 있게 지켜보고 있다. 포르피리오 로보 온두라스 대통령을 초청하기도 했다. 지금 한국 정부는 매우 호의적이고 한국 기업들도 온두라스에서 투자 기회를 엿보고 있다.
한국에 던지고 싶은 다른 메시지가 있다면.
새로운 도시를 거론할 때 두 가지를 염두에 둬야 한다. 하나는 현지인들이 일자리를 얻을 수 있고 도시화의 이득을 얻을 수 있다는 점이다. 다른 하나는 새로운 도시 건설 계획은 새로운 투자 기회라는 점이다. 새로운 도시 건설프로젝트는 엄청난 규모의 투자 기회를 제공할 수 있다. 특히 국내에서 투자처를 찾지 못해 해외에서 찾고 있는 나라들에게는 좋은 기회이다.
앞으로 30억명에서 40억명이 도시로 이동할 때 생기는 인프라 투자 기회를 감안하면 이미 도시화에 성공한 국가로서는 엄청난 기회인 셈이다.
개성공단에 대해 알고 있는지.
알고 있다. 투자자 입장에서 가장 좋은 곳은 정치적 문제가 해결된 지역이다. 투자자들은 사회적 안정이 유지되지 않는 곳에 투자하기 싫어한다.
한국이 개성에 투자를 권장하는 것은 정치적 이유와 국제정세 때문이라고 본다. 그러나 개성공단의 성공 여부도 순수한 경제적 요인보다는 국제정세와 안보, 정치적 구도에 달려 있다.
개성공단 투자자들은 대체로 투자에 대해 만족하고 있다. 개성공단이 차터시티처럼 발전할 수 있을까.
중국 연안에서 성공한 기업들이 새로운 조립 공장을 찾고 있다. 이 기업들이 온두라스, 인도네시아, 베트남이 아닌 개성으로 갈 것인가. 많은 기업들은 정치적 위험을 고려할 것이다. 이런 점이 투자 유치에 제약조건이 된다.
차터시티는 정치적 위험을 제거한 도시이다. 온두라스의 경우 기존 체제와 완전히 다른 정치적 구조를 만들었다. 현존하는 온두라스 정치체제는 약간의 위험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영국이 홍콩에 새로운 시스템을 구축하고 중국이 선전을 새로운 도시로 만든 것과 마찬가지이다. 기업들이 이런 곳에 투자하고 싶어 하는 이유도 이런 점 때문이다.
한국은 세종시 이전으로 논란이 많았다. 이에 대한 견해는.
많은 나라가 수도를 이전해왔다. 정치적 이유나 상징성 때문이다. 새로운 도시를 짓는 것이 기존 도시를 없앤다는 사고는 한국만의 현실이다. 대부분 개도국에서는 신규 도시 건설은 도시지역에서 수백만 명에게 기회를 주는 것과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