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현재 청장년 세대의 일본인은 은퇴 세대의 노후를 일부 떠맡아야 하고 자신들의 노후도 상당부분 스스로 떠맡지 않으면 안 될 상황에 놓여 있다.
일본은 세계에서 65세 이상 노인인구의 비율, 즉 고령화율(22.7%, 2009년)이 가장 높은 나라 중 하나다. 특히 75세 이상의 노인비율(10.8%)은 단연 세계 최고다. 100세 이상의 초장수 노인도 4만4449명(2010년)에 달한다. 최근 수년간 년 약 4000명씩 증가해 왔는데 머지않아 년 5000명을 웃도는 속도로 증가할 전망이다.
지금은 매년 인구가 줄고 있다. 2009년 10월1일 기준의 인구 1억2751만명은 전년보다 18만명 정도 줄었다. 이들 중 노인이 2901만명이다. 고령화율 22.7%는 1950년의 5% 미만, 1970년의 7%, 1994년의 14%를 거쳐 얻어진 값으로 2020년 이전에 25%를 넘어설 것이다. 이들 노인의 57%가 여성이며 나이가 들수록 여성의 비율이 높아져 100세 이상에서는 87%나 된다.
인구 100명 중 노인이 23명이고 11명은 75세를 넘은 이들인데 이 중 여성이 각 13명, 7명이다. 이 같은 인구의 급속한 고령화는 저출산, 장수화라는 선진국에서 일반적으로 관찰되는 현상이 일본에서 특히 강하게 나타났기 때문이다. 평균수명(2008년 기준)은 남자가 79.3세. 여자 86.1세로 세계적으로 가장 높고 이 값이 2055년경에는 남자 83.7세, 여자 90.3세로 늘어날 전망이다.
이 때쯤이면 100명의 일본인 중 100세 이상 노인이 한두 명씩 섞여 있을지 모른다.
고령화의 부정적 측면
고베 아카시 카이쿄 다리 밑에서 두 노인이 장기를 두고 있다. 일본은 세계에서 65세 이상 노인인구의 비율이 가장 높은 나라 중 하나다.
노인이 늘면서 가계는 물론 국가에서도 이들의 건강 유지와 노후소득 보장에 많은 비용이 들어가고 있다. 이는 노인이 증가하는 모든 국가가 경험하는 공통적 현상으로 일본에 한정된 것은 아니다.
건강보험과 연금보험, 개호보험(장기요양보험) 등의 사회보장제도를 통해 수급자에게 지급되는 급여비가 빠르게 증가하면서 이를 부담해야 하는 현역 근로자 세대와 정부의 어깨가 무겁다. 2007년도에는 급여비 지출이 91조4305억엔으로 국민소득(NI)의 24.4% 수준인데 이 값은 1991년 이후 빠르게 증가하다가 2002년부터 5년간 크게 늘지 않다가 2007년에 다시 증가세를 보였다. 이 값은 1970년 5.8%, 1990년 13.4%, 2000년 20.8%로 커져 왔다. 문제는 사회보장급여비 중 고령자 지급비용이 급증하는 점이다.
건강보험(노인보건 포함), 연금보험, 노인복지서비스, 고령자고용계속 등의 사업과 관련해 지급되는 고령자관련급여비는 2007년도에 63조5654억엔으로 전체 사회보장급여비의 69.5%를 차지하고 있다. 이 비용은 1983년 처음으로 사회보장급여비의 50%를 넘어선 이후 그 비율이 일부 해를 제외하고 거의 매년 증가하고 있다(일본 내각부, <고령사회백서> 2010년, 9~10쪽).
금전적 부담은 사회보장제도로 한정되지 않는다. 대다수 고령자는 자신과 배우자의 제대로 된 노후소득 보장을 위해 사회보장과 별도의 추가 저축을 준비해야 한다. 100세까지 살지 모른다는 초장수 위험과 또 앞으로 보장수준이 미약해질 사회제도에 대비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노인이 되어도 축적한 부를 마음대로 쓸 수 없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고령화는 금전 외적으로도 부정적인 측면을 초래할 수 있다. 의료기술의 향상과 식생활 습관의 개선 등으로 여명이 길어지면서 건강하지 못한 노후기간도 늘고 있다. 노인의 건강이 악화되면 주변 사람과 기관에 시간적, 경제적 혹은 심적으로 큰 부담을 안겨줄 수 있다. ‘남에게 폐를 끼치는 것’을 절대 해서는 안 될 일로 여기는 일본사회지만 불가피하게 폐를 끼치게 된다. 그런데 이 같은 전통적인 생각에 얽매어 남의 도움을 받지 않으려고 건강한 시절부터 외톨이 삶을 살기 시작하는 이들이 최근 늘고 있다.
주변 사람들과 별반 왕래 없이 고립되어 사는 이들의 경우 자의에 의한 이들도 있지만 상당수는 직장과 그 주변의 흐름이나 분위기에 휩쓸려 본의 아니게, 즉 ‘사회적으로 고립된’ 이들이다. 고립된 이유나 배경은 다르더라도 커뮤니케이션이 거의 단절된 채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은 동일하다. 이처럼 살아가는 이들에게서 여러 가지 일이 발생하고 있다. 가족이나 친인척, 주변 사람이 알지 못한 가운데 자신의 거처에서 쓸쓸히 인생의 종말을 맞이하는 고독사(孤獨死)가 대표적이다. 이들 중 상당수는 일주일이나 한 달이 경과되어서야 발견되기도 한다. 고독사는 사회적 고립과 떼어서 생각할 수 없는데 이러한 이들이 늘어난 데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우선 이혼이나 사별로 노인 혼자 사는 세대가 늘었고, 과거 자영업이나 농어업에 종사하던 이들이 임금근로자로 일하다가 조기에 퇴직하며, 편의점 등 주변 생활여건이 개선되어 혼자 사는데 큰 불편이 없다는 점이 그것이다.
고독사 못지않게 관심을 끄는 것이 노인범죄의 증가, 노인을 대상으로 강제판매 등의 악덕 상행위나 전화금융사기(오레오레사기, 후리코메사기)다. 범죄에서는 절도가 대부분 차지하고 있으며 다음이 폭력행위다. 범죄율을 보면 2000년에 인구 만 명당 8명 정도였던 것이 2008년에는 17명 수준으로 배 이상 늘었다.
이들 중 다수가 독거노인이며 주변 사람들과 접촉이 없거나 적은 이들이고 과거 안정된 직장에 근무한 적이 없었던 이들이다. 약 3할이 재범자이며 사회적 고립이 범죄의 주요 원인으로 추정되고 있다(<고령사회백서> 59~60쪽). 강제판매에서는 방문판매(17.1%)나 전화권유판매(9.1%)가 주류를 점하고 연속판매, SF상법, 신분사칭상법, 점검상법, 당선상법, 무료상법 등 다양한 방식이 사용되고 있다. 전화를 이용한 금융사기 역시 지속적인 홍보에도 불구하고 줄지 않고 있다.
고령화의 긍정적 측면
고령화가 경제사회에 미치는 긍정적 효과 중 대표적인 것이 실버산업의 성장이다. 노인의 여가, 소비, 각종 복지서비스 제공의 확대 과정에서 그간 없었던 산업과 업종이 생겨나고 기존의 사업규모가 대형화할 것이다. 이어 이들 산업의 상류, 하류에 위치한 분야에서 추가적인 일자리가 창출되는 등 플러스 경제적 효과가 기대된다.
초장수 노인이 많은 일본이므로 거동이 불편한 초고령자나 장애노인을 대상으로 한 각종 의료 보조장비 및 헬퍼파견 산업이 발달할 수 있다. 또 부(富)를 가진 노인이 늘면서 이들을 대상으로 금융산업과 여가산업이 추가적인 비즈니스 기회를 갖게 되며 부유층 노인의 소비가 집중되는 내수부문이 활성화될 수도 있다.
일본에서 예상되는 긍정적 파급효과로 생각해 볼 수 있는 것들 중 첫 번째는 노인들의 사회적 교류활동의 활성화다. 일본인들은 소통에 서투른 민족으로 맨 정신에 대화로 문제를 풀어나가는 데 익숙하지 못하다. 그렇다 보니 퇴근 후 술잔을 주고받으며 근무 중 하지 못했던 소통을 시도한다. 은퇴기에도 소통 문제는 여전히 과제다.
그래서 앞에 서술한 사회적 고립 등의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이들 문제에 대한 해법모색 과정에서 다양한 형태의 교류활동 특히 그룹 단위 활동이나 학습활동이 주목받고 있다. 젊은 세대와 교류하는 기회에 참가할 수 있는 프로그램도 늘고 있다. 이들 활동에 참가하는 이들의 상당수는 무보수 봉사활동에 관심을 갖고 있으며 체계적인 NPO 활동에 참여하려는 이들도 적지 않다. 내각부의 ‘고령자의 지역사회 참가 의식조사(2008년)’에 따르면 사회적 교류활동에 관심 있는 노인이 56%로 관심 없는 노인(37%)보다 많다(<고령사회백서> 41쪽). 그런데 관심 있는 이들 중 상당수는 이웃과 교류가 있거나 친한 친구를 보유한 사람이다. 그리고 둘 중에서는 이웃 교류자가 친한 친구 보유자보다 강한 영향력을 미치고 있다. 학습활동 참여율은 17%로 대상 분야는 문화센터 학습활동의 비중이 가장 높고 대학 등의 공개강좌, 공공기관의 고령자 대상 학급, 통신학습의 순이다.
청장년 세대와의 교류는 1990년대 중반 이후 감소하다 2008년 전보다 꽤 늘어나 교류 수준이 1993년 수준을 회복했다.
하지만 전혀 관심이 없는 이들도 2003년까지 증가하다가 이후 약간 줄었다(<고령사회백서> 42~43쪽). 두 번째 파급효과는 이 같은 적극적이고 긍정적인 노후생활 전개로 평균적인 일본인의 건강수명이 길어지고 노인들의 의료기관 이용률이 낮아지고 있는 점이다.
일본인의 건강수명은 76년(한국 71년, 2007년)으로 세계에서 가장 높다. 이로 인해 세계 최고 수준의 고령화율에도 노인들의 의료기관 이용률이 낮아 국민의료비 수준은 선진국 중 낮다(일본 8.3%, 한국 7.2%, OECD 평균 9.0%).
의료기관 이용률이 낮은 이면에는 일본인들의 의식변화가 있다.
2006년 행한 ‘노인의 생활실태 조사’에서 스스로를 건강하다고 느끼는 이들의 비율이 증가하고 이를 반영해 의료서비스 이용률이 6년 전보다 낮아졌다.
우리 못지않게 병원 이용률이 높던 일본에서 2006년의 병원 이용률이 2000년보다 낮아졌으며, 이는 자신을 건강하다고 생각하는 노인비율의 증가와 밀접한 관계를 갖고 있다(그림 1).
우리나라는 비교대상 5국 중 병원을 이용하지 않는 이의 비율과 연 몇 회 이용자의 합계치가 가장 낮고 병원을 자주 이용하는 이들의 비율은 반대로 가장 높다.
노후 저축이 초장수 대비책?
주변 사람들과 별반 왕래 없이 고립되어 사는 이들의 경우 상당수는 직장과 그 주변의 흐름이나 분위기에 휩쓸려 본의 아니게 ‘사회적으로 고립된’ 이들이다. photo by mpieracci
2006년에 나타났던 변화가 앞으로도 계속해 나타나리라는 보장은 없다. 장수 노인이 꾸준히 늘기 때문이다. 노인 중 질병이나 상해 등의 자각증상을 느끼고 있는 이들(입원자 제외)의 비율인 유소자율(有訴者率)은 2007년 49.6%다. 이들 중 일상생활에 지장을 느끼고 있는 이들은 절반 이하인 22.6%로 낮아진다.
하지만 75세 이상 노인의 경우 생활에 지장을 느끼는 이들의 비율이 높아져 84세까지가 26.0%(남자, 여자는 29.1%), 85세 이후가 37.5%(남자, 여자는 40.5%)나 된다. 앞으로 건강노인이 많이 생겨 이 값이 빠르게 높아질 가능성은 낮지만 노인 절대수가 급증하므로 일상생활에 지장을 느낄 노인은 지금보다 급속히 늘 수 있다.
이에 대해서는 정책 당국과 당사자 및 가족들의 선제적 대비가 필요할 것이다.
대비와 관련해 당국은 EU 국가들의 ‘고부담·고급여’와 구분되는 ‘중부담·중급여’ 체계의 사회보장제도 구축을 통해 사회보장제도의 장기 지속가능성을 확보해 왔다. 근로기 때 내는 조세와 보험료 부담을 서구 국가보다 낮은 수준으로 설정하고 전 생애에 걸쳐 지급받는 의료급여 서비스와 은퇴기의 연금액을 역시 중간 수준으로 책정해 운영해 왔다. 그런데 저출산·장수화 현상이 고착화되면서 당국은 장기적으로 중저부담·중저급여 체계로의 이행을 통해 지속가능성을 확보하겠다는 의향을 내비치고 있다.
이는 노인 스스로의 노력을 지금까지 보다 더 강화하라는 시그널에 다름 아니다. 당국의 시그널을 받은 일본인들은 그간의 저축 관행을 한층 강화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금융저축 실태를 보면 전체 노인 중 4000만엔 이상의 금융저축을 보유하고 있는 이들이 17%를 넘고, 평균저축이 2329만엔에 달해 근로기 세대를 포함한 전 세대 평균(1680만엔)보다 39%가 더 많다. 은퇴기에 저축이 줄어든다는 경제학의 일생주기가설(LCH)을 고려할 때 이 같은 현상은 분명 정상적인 상황이 아닐지 모른다.
하지만 일본에서는 오래전부터 이런 현상이 나타났고 최근 들어 더욱 강화되고 있다. 금융부채가 금융저축보다 많은 노인세대는 5.7%에 지나지 않으며, 이는 전체 세대 평균(22.6%)의 1/4 수준이다. 노후대비가 철저한 일본인의 단면을 읽을 수 있으며 이 같은 모습은 우리를 포함한 많은 서구 국가에서 노후에 부채가 저축보다 많거나 저축이 거의 없는 이들이 상당수에 달하는 것과 대조된다.
우리나라에서는 60세 이상 가구의 98.5%가 금융저축(전월세 보증금 포함)을 보유하고 있고 가구당 평균저축은 3806만원이며 중위수 가구 저축은 1080만원이다. 한편 금융부채(임대보증금 포함)는 40.1%가 보유하고 있으며 가구당 평균부채는 3056만원이며 중위수 가구 부채는 3000만원이다.
이상의 통계로부터 부채가 저축을 초과하는 가구가 상당수에 달해 일본보다 훨씬 많을 것으로 짐작해 볼 수 있다(통계청 외 ‘2010년 가계금융조사결과’ 보도자료 30~40쪽). 더욱 놀라운 사실은 일본의 노인들이 은퇴기에 저축을 늘리고 있는 점이다.
노인세대의 연간소득금액 298.9만엔 중 세대지출 206.9만엔을 차감하면 저축금 92.0만엔이 남는다(<고령사회백서> 20~21쪽 표와 그림 참조). 노인세대의 수입은 공적연금과 은급이 70.8%를 점해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하고 취업소득 16.9%, 재산소득 5.9%, 송금 기타소득 5.5%, 연금 외 사회보장급여 0.8%로 나타나고 있는데, 이중 연금과 사회보장급여만으로 생활하고 나머지는 거의 저축한다고 볼 수 있다.
취업기간 연장이 최상의 노후대비책 ?
우리보다 일찍 고령화를 경험한 까닭에 일본의 복지정책은 조기에 정비됐고 복지수준도 제법 충실하다.
노후대비책으로 저축을 늘리는 한편 건강한 고령초기에 노동현장에 남아 있으려는 이들도 증가하고 있다. 그렇지 않아도 노인취업이 활성화된 일본인데 앞으로는 더 많은 노인들이 현역으로 남아 현장에서 일하는 모습을 볼 수 있을지 모른다.
당사자들의 취로의욕이 강하고 정책당국이 이들을 지원하기 위해 다양한 대책을 내놓고 있기 때문이다. 노인의 노동시장 참여가 늘면서 전체 노동력인구 중 노인 비율이 2009년의 8.8%에서 2017년에는 10.4%로 커질 것으로 전망된다(<고령사회백서> 38쪽). 장차 고령자 노동시장 참가 촉진 정책이 계획대로 시행되면 수치가 2030년에는 11.1%로까지 높아질 것이다. 사실 지금도 OECD 국가 중 최상위권인데 이를 더 높이겠다는 것이 일본 당국의 속셈이다.
주지하듯 인구감소로 청장년 노동력이 줄고, 이에 따라 이들의 기여로 유지되는 사회보장제도 역시 보호막 기능이 약해질 상황이다. 취업기간 연장은 이러한 어려운 여건에 대처할 수 있는 유력한 방법의 하나로 고려되고 있다. 60대 전반은 물론이고 60대 후반까지 현역으로 일하도록 주변 여건을 정비할 수 있다면 노동력 부족과 사회보장제도의 지속가능성 저하라는 두 문제를 동시에 해결할 수 있기 때문이다. 취업기간이 연장되면 건강보험과 연금보험의 보험료 납입기간이 연장되고 은퇴 후 수급기간이 단축된다.
또 이들이 재직 중 납부하는 조세가 추가적 재원으로 확보되므로 이를 사회보장 재원으로 활용할 수 있다. 조기퇴직을 선호하는 서구인과 달리 일본인과 우리나라는 가능한 한 취업현장에 오래 남아 있고자 하는 경향이 있다. 여가 선용에서 삶의 보람을 찾는 서구인과 달리 일본인과 우리나라는 일터에서 삶의 보람을 느끼는 이들이 많다.
이러한 이유로 한일 양국에서는 정년을 연장하거나 노인의 구분기준을 65세에서 70세로 상향조정하는 일이 벌어날 지도 모른다.
일본의 복지 철학과 복지 역사가 주는 시사점
노인인구가 늘면서 가계는 물론 국가에서도 이들의 건강 유지와 노후소득 보장에 많은 비용이 들어가고 있다.
우리보다 일찍 고령화를 경험한 까닭에 일본의 복지정책은 조기에 정비됐고 복지수준도 제법 충실하다. 물론 서구에 비하면 여러 제도에서 도입과 정비 시점이 늦고 복지수준도 낮다. 하지만 일본은 미국, 영국과 더불어 적은 부담으로 일정수준 이상의 복지정책을 추구해온 국가의 하나로 평가받고 있다.
이러한 점에서 일본은 지금 복지제도를 정비하고 확충하려고 하고 있는 우리에게 다소간의 시사점을 안겨줄 수 있다. 일본에서는 복지원년(1973년) 이후 각종 복지제도의 급여수준이 대폭 인상되고 적용대상이 확대됐다. 2010년 기준으로 사회보장제도의 적용상황을 정리하면 65세 이상 은퇴자의 공적연금 수급률이 96%를 넘고 전 국민이 건강보험에 가입돼 있으며 보장성도 우리보다 높다. 실업수당과 고용안정을 위한 각종 지원제도, 산재보상제도 또한 보호망이 세밀하고 보호 수준이 높다.
가장 늦게 도입된 노인성 질환자 대상의 장기요양제도도 우리보다 일찍 도입됐으며 보호 수준이 더 높다. 이렇듯 사회보장의 거의 전 분야에서 우리보다 20년 정도 앞서 있다고 말할 수 있을지 모른다.
문제는 일본의 정치가들이 복지급여 수준을 확대하고 내실화하는 과정에서 가입자 현역세대에게 소정의 부담 증대를 요구하지 않고 국채발행 등을 통한 후세대 부담으로 이를 상당부분 대체했다는 점이다. 고령화율이 지금처럼 높아지기 전에는 이러한 방식으로 정치적 지지기반을 잃지 않으면서 복지수준을 강화할 수 있었다.
하지만 저출산·장수화가 장기간 지속되고 청장년 세대가 줄어들 것으로 전망되는 현시점에서 위와 같은 방식으로는 복지수준을 유지할 수 없게 됐다. 제도를 지속적으로 운영하기 위해서는 사회보장제도의 현역세대 가입자 부담을 명시적으로 늘리거나 급여수준을 낮추지 않으면 안 되게 됐다. 2011년 현재 청장년 세대의 일본인에게는 머지않아 꽤 부담스러운 주문이 주어질 가능성이 높다.
은퇴 세대의 노후를 일부 떠맡아야 하고 자신들의 노후도 상당부분 스스로 떠맡지 않으면 안 될 상황에 놓일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후세대 부담으로 지금의 은퇴세대와 청장년 세대의 복지를 제공하려는 시도는 점점 어려운 과제가 될 전망이다. 일본보다 늦게 복지제도 정비에 나선 우리로서는 이 같은 일본의 사례를 타산지석으로 삼아 지금부터의 제도 운영에 나서야 할 것이다.
일본 이상의 속도로 고령사회로 치닫고 있는 우리에게 일본의 제도운영 사례는 복거지계(覆車之戒)를 떠올리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