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동안 우리에게 있어 아프리카는 사실상의 불모지로 방치되어온 측면이 없지 않았다. 그 결과 협력의 대상에서 늘 멀어져 있었다. 심지어는 기존의 고정관념으로 아프리카를 경시하며 잠재성을 외면해온 것이 사실이다. 이는 한국과 아프리카가 국제 경제면에서 공동의 이익을 추구하기 어려운 여건을 조성해 왔다. 그러나 21세기 들어 아프리카가 지구촌의 마지막 신흥시장으로 급부상하고 있다는 사실을 간파해야 할 것이다. 이러한 변화의 근저에는 정치적 안정과 함께 경제발전 가능성 그리고 세계적인 자원수요에 따른 자원개발 잠재력 등이 자리하고 있다. 늦은 감이 있지만 지금부터라도 아프리카의 잠재적 가치에 주목하고 이에 걸맞은 새로운 협력방안을 적극 모색해야 한다.
아프리카를 계속해서 ‘오지의 대륙’ 정도로만 인식해 이 지역 변화의 시그널을 감지하지 못하거나 소홀히 대한다면 자원 확보와 신시장 개척에 있어 그만큼 경쟁국들에 뒤질 수밖에 없다. 전 세계를 대상으로 하는 전방위 시장화 전략이 필요한 상황에서 아프리카가 예외일 수 없다.
주지하다시피 브릭스 등 기존의 신흥시장들은 새로운 기회의 시장이라고 하기에는 이미 경쟁이 너무 치열해졌다. 이에 반해 아프리카는 여러 면에서 미성숙한 시장이지만 다른 시장에서 얻기 힘든 기회의 포착과 선점의 가능성이 높다는 점에서 이해를 새롭게 할 필요가 있다. 명실공이 아프리카는 미개발의 엄청난 자원을 보유하고 있는 대륙이자 지구 최후의 소비시장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아프리카는 새로운 기회의 시장 또는 21세기 협력파트너로 재조명되어야 하며 이에 비례해 아프리카에 대한 관심도 높아져야 할 것이다.
아프리카 시장의 다중적 가치
남아공 요하네스버그 쇼핑가
우리의 대 아프리카 경제협력의 가장 큰 의의는 역시 자원개발시장의 다변화가 아닐 수 없다. 아프리카 여러 지역에는 아직 개발의 손길이 닿지 않은 막대한 양의 석유자원이 부존하고 있다. 현재까지 확인된 아프리카의 원유 매장 비중은 10% 수준이지만 탐사와 개발이 본격화될 경우 세계적인 원유공급처로 부상할 것이라는 전망이 대두되고 있다. 이런 이유로 아프리카가 러시아, 중앙아시아와 함께 세계 3대 신흥 에너지 자원시장으로 평가되고 있다.
아프리카에는 석유자원 이외에도 우리의 산업발전에 필요한 여러 광물자원들이 풍부하게 매장되어 있다. 해외건설시장으로서의 아프리카 가치에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아프리카 산유국들은 오일머니를 바탕으로 SOC를 비롯한 산업기반 건설에 매진하고 있어 이에 따른 건설·플랜트 수요가 확산되고 있다. 자원개발과 연계한 건설·플랜트 진출 가능성을 고려하면 ‘제2의 중동’ 건설시장으로도 평가될 수 있을 것이다.
아프리카 건설시장은 우리나라 주요 건설기업의 인력 및 장비가 대규모로 진출해 있는 중동지역과 지리적으로 인접해 있다는 이점도 가지고 있다. 아프리카는 틈새 수출시장으로서의 잠재적 가치도 지니고 있다. 아프리카는 구매력이 낮아 국제 상품무역에서 사실상 외면당해 왔으나 최근의 성장추세가 계속 이어진다면 가까운 미래에 새로운 소비시장으로 변모할 가능성이 있다. 아직까지는 우리 상품의 진출이 미약하지만 여타 개도국에 비해 상대적으로 경쟁이 덜 심하고 한국 상품에 대한 인식이 좋은 편이어서 전체적으로 볼 때 진출 여건이 나쁘지 않은 미개척 틈새시장이라 할 수 있다.
예컨대 우리가 세계적인 우위를 점하고 있는 정보통신분야의 경우 아프리카는 세계 다른 어느 지역 못지않은 성장 잠재력과 역동성을 지니고 있다. 아프리카 인구 10억 가운데 휴대폰 사용인구가 2009년 현재 3억7000만명을 돌파했고 향후에는 4억1000만원(2011년), 6억(2018년)명으로 빠르게 확대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과거 아프리카에서는 분쟁이 끊이지 않았으며 이것이 국가발전을 가로막았으나 2000년대 들어 아프리카 대륙 전체가 안정세를 찾아가고 있다. 주요 내전국가였던 앙골라, 콩고(DRC) 등에서도 내전이 종식됨으로써 국가재건을 위한 발판이 마련되었다. 또한 평화적 정권교체, 복수정당제 등 민주화 분위기가 아프리카 각국으로 확산되고 있다. 이러한 정치적 안정을 바탕으로 아프리카 경제가 한층 탄력을 받고 있다.
그동안 아프리카는 고질적인 정치적 불안으로 말미암아 발전의 토대를 마련하지 못했으나 최근의 경제지표는 새로운 발전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 장기간에 걸쳐 정체상태에 머물러 있던 아프리카 경제성장이 2000년대 들어 5~6%대의 높은 성장세를 계속 이어가고 있다. 또한 2000년에는 5% 이상의 고성장 국가 수가 16개국에 불과했으나 2008년에는 그 수가 29개국으로 크게 늘어났다. 2009년에는 글로벌 금융위기로 경제성장이 주춤하기도 했으나 다시 회복세를 보일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물론 이 정도의 경제 성적표로는 아프리카가 낙후된 경제구조와 절대적 빈곤에서 벗어나 지속적 성장을 이룩하기에는 역부족이다. 그러나 아프리카 53개국 가운데 소수 국가들을 제외한 나머지 국가들은 장기간의 침체 국면에서 서서히 벗어나고 있고 정치적 발전과 함께 개혁·개방화를 서두르고 있다는 점 등을 감안하면 이제 아프리카 지역도 여타 개도권 경제에 못지않은 성장 가능성을 지니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아프리카 시장에 대한 평가는 비관론과 낙관론으로 팽팽하게 엇갈려 왔으나 최근에는 낙관론에 무게감이 실리고 있다. 향후 아프리카가 더 많은 정치적 안정을 이룩해 낸다면 지구상의 새로운 성장엔진으로 작동할 가능성이 충분하다고 할 수 있다.
세계적인 경제예측 전문기관인 글로벌 인사이트(Global Insight)는 아프리카가 2010~2020년 동안 5.8%의 경제성장률(연평균)로 전 세계에서 아시아 지역 다음으로 빠른 성장세를 시현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또한 IMF(2010년)에 의하면 사하라이남 아프리카의 경제규모(GDP)가 현재(2009년) 8800억 달러에서 오는 2015년에는 1.7배 증가한 1.5조 달러에 달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글로벌 경쟁 무대로 변모
아프리카는 많은 위험요인들이 존재하는 지역이지만 여러 가지의 잠재적 가치가 재인식되면서 이 지역 선점을 위한 국가 간의 경쟁이 가열되고 있다. 세계 주요국은 아프리카의 이러한 변화와 신흥 자원개발 시장으로서의 전략적 가치에 주목하고 다양한 협력채널과 대규모의 개발원조를 통해 공세적으로 접근하고 있다.
중국의 아프리카 접근 속도는 서방에서 ‘신식민지’론을 운운하며 견제할 정도다. 중국의 아프리카에 대한 원유수입 의존도는 30%(2009년)에 이르렀으며 오는 2025년에는 그 비중이 45%에 달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미국은 2001년 9.11 테러사태 이후 중동정세 변화에 따른 석유수급의 불안을 상쇄할 수 있는 대안으로 아프리카 석유개발에 주력하고 있는데 이미 2005년부터 중동보다 아프리카에서 더 많은 원유를 도입하고 있다. EU는 중국과 미국의 아프리카 접근강화에 따른 기득권 약화를 우려하며 FTA 및 원조 확대 등을 통해 관계 공고화에 주력하고 있다. 여기에 일본, 인도 등 아시아 국가들도 적극 가세하고 있어 아프리카가 글로벌 경쟁 무대로 변모하고 있다.
아프리카 리스크
아프리카는 지구상에 마지막으로 남아있는 신흥시장으로 평가되고 있으나 그 이면에는 무수한 리스크들이 상존하고 있다. 정치·사회적 불안, 부정부패, 정책의 일관성 부족으로 인한 예측의 어려움, 열악한 인프라 등으로 비즈니스 과정에서 부딪혀야 할 직·간접적인 장애 요인들이 무수하다. 많은 아프리카 국가들이 정치적 안정과 민주화를 정착시켜 나가고는 있지만 정치·사회적 불안요인이 여전히 사라지지 않고 있다.
아프리카의 대표적인 산유국인 나이지리아에서는 250여개의 종족과 기독교·회교도 간의 갈등으로 유혈사태와 폭력사태가 사라지지 않고 있다. 이는 사업 특성상 많은 기간이 소요되는 석유개발과 같은 투자 진출사업에 있어 상당한 위협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는데 실제로도 내전과 원유 약탈행위 등으로 원유생산이 중단되는 경우가 자주 발생하고 있다.
과거 아프리카에서는 분쟁이 끊이지 않았으나 2000년대 들어 아프리카 대륙 전체가 안정세를 찾아가고 있다.
국민소득 5000달러의 남아공에서도 아프리카 리스크는 예외가 아니다. 남아공의 실업률은 이미 사회적 위험수위에 도달했고 이는 절도 및 살인 등의 각종 범죄로 이어지고 있다. 이러한 범죄는 남아공 내 기업 활동을 저해하는 가장 큰 위협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남아공에는 각종 사업기회가 많지만 흑인기업육성정책(BEE), 정치세력화한 강성 노조, 높은 임금수준, 극심한 환율불안 등과 같은 여러 요인들로 말미암아 시장진입이 용이하지 않다. 흑인기업육성정책은 흑인기업을 집중 육성하는 것을 골자로 하고 있는데 BEE는 현재 남아공 비즈니스에서 관련되지 않는 분야가 없을 정도로 포괄적으로 적용되고 있다. 여기에는 흑인의 소유지분 비율, 흑인종업원 비중, 흑인기업으로부터의 조달 비중 등에 대한 가이드라인이 구체적으로 제시되어 있다. 만일 이러한 사항이 지켜지지 않을 경우에는 정부사업 참여는 물론이고 정부의 각종 지원을 배제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있다. BEE 정책은 외국계 회사에게도 엄격하게 적용되고 있어 정부조달이나 투자 등 제반 비즈니스 활동에 있어 절대적으로 불리한 입장에 처할 수밖에 없다.
이외에도 많은 아프리카 국가들은 열악한 비즈니스 환경으로 신뢰를 얻지 못하고 있다. 높은 정치적 리스크와 함께 투명성, 경제자유도, 투자신뢰도 등의 지표상에서도 아프리카 국가들은 하위권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물론 이런 각종 지표들은 정치, 경제가 발전하면서 점차 개선될 것으로 예상은 되지만 그 발전과정은 많은 세월을 요구할 공산이 크다.
장기적인 관점에서 접근
아프리카의 다양한 잠재적 가치를 충분히 인식하고 단기적 접근이 아닌 장기적 또는 전략적 관점에서 아프리카와의 경제협력을 확대하는 것이 필요하다. 자원 획득만을 목표로 한다거나 경제적 이익추구에만 너무 집착한다면 그 효과가 한시적이거나 오히려 신뢰를 상실할 수 있다.
자원은 일방적인 노력만으로 얻어지는 것이 아니다. 아프리카가 가지고 있는 풍부한 자원은 우리뿐만 아니라 중국이나 미국 등 세계의 많은 나라에게도 매력적인 것이다. 큰 틀에서 장기적인 협력기반을 다져나가는 노력이 필요하며 이를 위해서는 호혜적으로 발전할 수 있는 협력모델이 뒷받침되어야 할 것이다. 상대방 입장을 고려해 그들이 직면해 있는 문제가 무엇인지를 간파하고 이를 토대로 미래지향적인 파트너십을 형성하는 것이 무엇보다도 필요하다. 이는 미래를 위한 투자이며 파트너십이 심화되면 이것이 사후적으로 자원 확보 등 국익으로 자연스럽게 귀결될 수 있다.
한국은 아프리카 대륙이 절실히 필요로 하는 빈곤극복 경험과 노하우를 보유하고 있는 만큼 이를 효과적 또는 전략적으로 활용할 경우 ‘국가적 비즈니스 모델’을 창출할 수도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우리의 개발경험 전수는 아프리카의 개발협력 수요에 부응하고 있다. 아프리카의 많은 정책담당자나 학자들은 우리의 개발경험에 적지 않은 관심을 보이며 자국의 국가개발 전략을 수립하는 데 있어 우리의 성공요소를 도입하고자 하고 있다. 또한 개발경험 전수는 상대적으로 적은 비용으로 실질적인 효과를 거둘 수 있는 비교우위가 높은 개발협력 수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