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초부터 심각한 식량위기가 찾아올 것이라는 경고음이 곳곳에서 들려오고 있다. 국제 곡물가격 급등세는 꺾일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지난 1월 전년 같은 기간과 비교해 밀, 옥수수, 커피 가격이 모두 80% 이상 상승했고 대두 가격 역시 60% 올랐다. 설탕 가격은 37년 만의 최고치다. 지난 2월 유엔식량농업기구(FAO)의 식품가격지수는 236으로 1990년 이후 최고치였던 1월 231보다 2.2% 상승했다. 이는 글로벌 식량위기를 맞았던 2008년 6월 224보다 높은 수준이다.
2008년 찾아왔던 식량위기는 수십 개 국가의 곡물 수출 중단과 일부 국가 내 폭동이 원인이었는데 전문가들은 그때와 지금의 모습이 비슷하다고 설명한다. 현재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등 일부 국가가 곡물 수출 제한을 하고 있고, 중동 지역의 민주화 물결도 식량 가격 오름세에 영향을 미치고 있기 때문.
더 심각한 사실은 올해 기상이변으로 곡물 수확은 감소할 것으로 예상된다는 것이다. 곡물뿐 아니라 각종 농산물 가격 역시 예측할 수 없는 상황이다. 최근 영국의 경제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이런 위기 속에서 어떻게 2040년이면 90억 이나 될 세계 인구를 먹여 살릴 것인지 문제점을 지적하고 대안을 제시했다.
각종 회의에서 주요 의제로 등장한 식량위기
인도네시아 한 커피농장에서 한 노동자가 커피를 수확하고 있다.
식량위기는 ‘소리 없는 쓰나미’라고도 불린다. 수억 명을 굶주림으로 내몰 수 있는 전 세계적인 재앙이지만 이에 대한 고민은 늦은 감이 없지 않다. 사실 1990년대 이후 전 세계는 농업 문제가 대부분 해결됐다고 보는 견해가 지배적이었다. 비료나 농약 등의 발달로 해충피해를 줄일 수 있고 지친 토양을 다시 비옥하게 해 생산량을 늘릴 수 있게 됐기 때문이다. 곡물 가격이 올랐던 2008년 G8 회의 때만 해도 식량 문제에 대한 논의는 뒤로 밀렸다.
지난 2월에야 G20 재무장관, 중앙은행총재회의가 열리면서 석유 및 곡물 가격 폭등이 중심의제로 논의됐다. 1월 열린 다보스포럼에서도 향후 10년간의 난제로 식량 문제를 꼽았다. 한편 지금까지 농업 발전에 20억 달러 이상을 기부해왔던 ‘빌 앤 멀린다 게이츠 재단’은 식량위기를 해결하기 위해 7000만 달러를 기부하기로 했다. 이 기부금으로 개도국의 농업 발전에 위협이 되는 농작물 질병, 해충, 척박한 토양, 날씨 등에 대한 연구를 지원할 계획이다.
이렇게 높아지는 위기의식에서 볼 수 있듯 '이코노미스트'는 ‘값싼 식량의 시대는 갔다’고 했다. 식량 가격 상승의 원인을 살펴보면 먼저 중국, 인도 등 신흥 개도국에서의 식량 수요 증가를 꼽을 수 있다. 또 식습관의 변화로 육류 소비가 늘면서 가축 사료용 곡물 수요도 급속히 늘고 있다. 지구온난화의 대안으로 바이오 연료가 각광받으면서 옥수수, 사탕수수 등 바이오 연료의 원료가 되는 곡물 가격 상승은 불가피하다. 여기에 달러 가치가 하락하면서 전체적인 인플레이션을 유도하고 있는 상황이다.
제2의 농업혁명도 식량위기 해결 못해
그럼 이런 식량위기를 해결하려면 어떤 노력이 필요할까. '이코노미스트'는 먼저 식량 문제를 보는 두 가지 견해를 소개한다. 하나는 과거 농업혁명(Green Revolution)과 같은 혁신이 필요하다는 의견이다. 식료품 기업들이 중심이 돼 현대화된 농업기술 연구를 통해 아프리카와 같은 개도국에서 농업 생산량을 높이고 기아를 해결할 수 있는 제2의 농업혁명을 일으키자는 것. 반대로 오늘날의 식품 비즈니스가 오히려 환경만 오염시키고 기아는 해결하지 못했다는, ‘농업혁명은 이미 실패’했다는 의견도 있다. 그만큼 식량위기의 해결은 간단치 않다는 뜻이다.
올해 말 세계 인구는 70억 명에 다다를 전망이고 2040년 세계 인구는 90억 명으로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오늘날 굶주리고 있는 인구에 20억 명의 인구가 늘어나면 도대체 얼마나 더 많은 농산품을 생산하고 가축들을 길러야 할까. 1996년 FAO는 모든 인구가 매일 2700 칼로리를 섭취한다고 따지면 현재의 식품 생산량은 이를 공급할 수 있을 만큼 충분하다고 했다. 또 육류 섭취는 하루 90g이면 충분하지만 많은 사람들은 이보다 많은 육류를 섭취하고 있다는 점도 지적됐다.
인도의 경제학자 아마르티아 센(Amartaya Sen)은 1981년 '빈곤과 기아: 자격과 박탈에 관한 에세이'라는 저서에서 1943년 벵갈 기근으로 300만명이 죽었는데 이는 갑작스런 생산량 하락 때문이 아니라고 했다. 심지어 이때 식량을 수출하기도 했다는 것이다. 그는 굶주림의 원인이 먹을 음식이 부족하기 때문이 아니라 임금이나 배분, 심지어 민주주의와 같은 정치적인 배경과 같은 여러 요소에 있다고 주장했다.
앞서 곡물 가격 상승의 원인 중 하나로 지적한 바이오 에탄올 사용이 증가하는 것 역시 인구 증가분만 고려해서는 필요한 식량의 양을 계산하기 어렵다. FAO는 현재 음식물로 쓰기 위한 옥수수 생산은 그대로 두고 연료에 쓰일 옥수수를 생산하기 위해 경작지를 크게 넓히지 않으면 식료품 가격은 15~40%까지 오르리라고 보고 있다.
'이코노미스트'는 이런 상황을 고려했을 때 곡물 생산량이 인구 증가를 감당할 수 있을 만큼 늘어나려면 인구증가율보다 더 높은 증가세를 보여야 한다고 했다. 전 세계 인구가 매년 1%씩 늘어난다고 하고 육류 소비가 늘어남에 따라 사료로 쓰일 곡물까지 고려할 때 곡물 생산은 매년 1.5% 이상 늘어나는 것이 타당하다는 것. 국제옥수수밀연구소는 2040년까지 식품 가격이 안정적으로 유지되려면 쌀의 생산량은 지금보다 절반 이상 늘어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매년 1~1.5%씩 생산량이 늘어야 한다. 옥수수는 현재 생산량만큼 꾸준히 늘어야 하고 밀가루는 두 배 이상 늘어야 하기 때문에 매년 2.3%씩 증가해야 한다고 했다.
맞춤 농경, 맞춤 종자 개발해야
옥수수는 특히 바이오 연료의 원료로 쓰여 가격 상승이 불가피하다.
문제는 어떻게 생산량을 늘리느냐다. 1960년대 이후로 전통적인 방법으로 식품 생산량을 늘리는 것은 불가능하게 됐다. 기후변화를 비롯한 환경적인 요인도 하나의 이유다. 아마존의 정글은 사라지고 있고 각 나라별로 농사를 지을 만한 비옥한 땅들은 줄어들고 있다. 전 세계적으로 늘릴 수 있는 경작지의 양도 제한적이다. 현재 지구상에 남아 있는 처녀지는 10~12%에 불과하다.
그렇다고 가능성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브라질의 내륙지방 세하도(Cerrado)에서 일어난 변화는 기적을 보여주고 있다. 식량 순수입국이던 브라질은 지난 20년간 경작지를 크게 늘리고 품종 개량과 최신 농법 도입 등으로 생산성을 제고시켜 열대기후 국가로는 처음으로 글로벌 농업대국이 됐다.
이를 위해 다양한 첨단 농업기술이 동원됐다. 브라질 세하도 지역의 환경은 본래 농사에 매우 부적합하다. 산성 토양에 영양분이 부족한 데다 기후 역시 농업에 적합하다고 볼 수 없다. 브라질 농업연구청은 1990년대 말부터 석회를 쏟아 산성이 높은 세하도 토양을 중화하기 시작했다. 강한 저항력을 갖춘 GMO(유전자 변형 작물)를 개발했고 그 결과 브라질 농업 생산량의 70%가 세하도에서 나오게 됐다. 농업연구청은 또한 이종교배를 통해 강한 번식력을 가진 목초도 세하도에 심었다. 목축이 활기를 띠면서 쇠고기 생산도 늘었다.
한편 '이코노미스트'는 브라질과 같은 사례가 모든 국가에는 적용될 수 없기 때문에 품질 차이를 줄이려는 노력도 식량위기의 대안으로 제시한다. 예를 들면 동·서에서 모두 밀을 경작하고 있지만 동유럽에서는 1헥타르당 9톤이 생산되고 서유럽에서는 2~4톤이 생산된다. 단지 토질의 차이라고 하기에는 그 차이가 너무 크다.
옥수수 생산에서도 비슷한 사례가 있다. 중부 가나는 세계에서 손꼽히는 옥수수 농장이다. 그러나 이 나라에서 생산하는 옥수수의 3%가 새로운 교배종이다. 반면 브라질은 90%가 교배종으로 옥수수를 생산한다. 브라질은 전 세계 3번째로 큰 옥수수 수출국이지만 가나는 이에 못 미친다.
희망적인 점은 이런 수수나 카사바와 같이 아프리카에서 주로 생산되는 곡식에까지도 개량종에 대한 연구가 이뤄졌다는 사실이다. 수수 개량종은 기존의 종자보다 수확량이 3배가 많고 카사바에 대한 유전자 연구는 병충해 피해를 줄일 수 있게 됐다. 다만 아프리카는 지역의 특성상 다른 대륙보다 기후나 토질의 차이가 커서 조금만 멀리 떨어져 있어도 다른 종류의 종자를 이용하는 것이 효율적이기 때문에 이 역시 기술적으로 해결해 할 과제다.
곡물뿐 아니라 ‘가축 혁명(livestock revolution)’ 역시 식량 증대를 가져온다. 방목하는 전통방식보다 닭, 돼지 등을 가둬두고 마치 공장형태로 길러내는 방식이 생산량 증대를 가져온다는 것에는 이견이 없다. 특히 가축혁명은 육류 소비가 늘어나고 있는 상황에서 불가피하다. 1980년에서 2005년 사이 중국의 육류 소비는 두 배 늘었는데 이는 1년에 1인당 50㎏씩 늘어난 셈이다. FAO는 2050년에는 한 사람이 섭취하는 열량에서 고기가 차지하는 비중이 7~9%로 늘어날 것으로 보고 있다.
그러나 이런 공장화된 생산방식은 여러 문제점이 있다. 조류독감과 같은 동물에서 옮기는 질병이 쉽게 전염되고 소를 사육하는 가구가 늘어나면서 메탄가스는 지구온난화의 주범이 되고 있다. 유럽과 같은 곳에서는 동물의 복지를 전혀 고려하지 않은 비윤리적인 사육방식을 비판하는 의견도 있다.
버려지는 음식만 줄여도 생산량 증대 부담 줄어
아프리카는 식량 부족으로 계속 허덕이고 있다.
'이코노미스트'는 부유한 나라든 가난한 나라든 평균적으로 30~50%의 음식이 버려진다고 했다. 물론 버려지는 이유는 다르다. 가난한 나라에서 농산물은 농장과 같은 생산지에서 낭비보다는 손실
되는 경우가 많다. 아프리카의 소규모 자작농가에서는 수확 후 버려지는 양이 많아 그들이 처음에는 자급자족할 수 있을 만큼 생산하면서도 결국에는 식비 지출을 할 수밖에 없어 가난의 악순환이 반복된다. 쥐, 메뚜기 등이 창고에 저장한 음식들을 먹어치우거나 훼손시켜 버리고 우유와 같은 신선식품은 운반 중에 상한다. 국제농업개발기금(IFAD: International Fund for Agricultural development)은 이런 손실을 절반 정도 줄인다면 생산량을 15~25%까지 늘리는 것과 같은 효과를 누릴 수 있다고 한다.
이런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새로 저장고를 짓고 길을 잘 닦고 냉장 및 보관이 잘 되는 시설차를 이용해야 하지만 비용이 드는 만큼 가난한 국가에서는 이를 스스로 해결하기 어렵다. 때문에 아프리카개발은행은 7년짜리 지원프로그램을 만들어 1년에 3%씩 식량 손실을 줄이기로 했다.
반면 부유한 국가에서는 개도국과 전혀 다른 이유로 음식이 낭비되고 있다. 미국과 영국의 여러 연구에 따르면 식품 매장이나 레스토랑의 음식의 4분의 1이 그대로 쓰레기통으로 간다고 한다. 미국에서는 이렇게 버려지는 음식의 양이 1997년 4300만 톤이나 됐고 영국에서는 2006년 통계로 400만 톤에 달했다.
다른 국가에서도 미국이나 영국만큼의 음식 낭비가 있다면 대략 1년에 한사람이 100㎏의 음식을 버리는 셈이 된다. 전 세계적으로는 1000만 톤이 버려진다는 계산이 되고 이 양은 전 세계 육류 공급량의 3분의 1과 맞먹는다. 선진국에서 낭비되는 음식은 습관의 문제다. 결국 음식 섭취에 관한 적절한 교육이 생활 속에서 이뤄지는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