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경제를 떠받치는 산업 가운데 하나가 자동차다. 생산과 설비투자, 연구·개발(R&D) 등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크다. 대략 일본 제조업의 20%가량, 취업인구의 10%가량을 자동차에서 책임지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런 일본 자동차 산업이 최근 큰 위기에 봉착해 있다. 바로 전기차(EV)를 포함한 미래차의 위협이다. 일본은 휘발유 엔진과 배터리가 함께 자동차의 힘이 되는 하이브리드차(HEV)에 강점을 갖고 있다. 특히나 일본 대표 자동차인 도요타가 그렇다. 그러다 보니 전기차 기술 개발이 늦어졌고, 이로 인해 세계 시장에서 차지하는 존재감도 낮다.
최근 전기차 배터리 화제가 문제가 되고 중국의 과잉생산으로 전기차가 정점에 달했다는 주장도 있지만, 전기차 후진국은 단순한 차량 내 기동장치뿐 아니라 자율주행 등 미래차로 가는 전반적인 기술 개발도 늦어지고 있다는 의미다. 이러한 영역에서 가장 앞서 있는 곳은 미국의 테슬라와 중국의 BYD다. 이들은 일본뿐 아니라 전 세계에서 가장 앞서가는 전기차 브랜드이기도 하다. 테슬라는 자동차에 자체 운영체제(OS)를 장착해 소프트웨어 업그레이드를 통해 자동차에 새로운 기능을 추가하는 것에 선수다.
어려운 상황 속에서 미래차 개발을 위해 지난 3월 공동 개발·생산을 선언한 혼다-닛산 동맹에 최근 미쓰비시자동차가 합류했다. 미쓰비시의 경우 닛산이 34%의 지분을 갖고 있어 처음부터 혼다-닛산 동맹에 참가가 예상됐다. 지난 3월 말 기준으로 혼다의 글로벌 자동차 판매 대수는 407만 대, 닛산은 344만 대로 도요타의 1030만 대에 이어 각각 일본 내 2위와 3위를 차지하고 있다. 여기에 미쓰비시의 81만 대가 추가되면 동맹의 총 판매 대수는 약 833만 대가 된다. 니혼게이자이신문(닛케이)은 이들 3사가 전기차 시장에서 미국 테슬라나 중국업체가 세를 키우며 자동차 산업이 대전환을 맞자, 3사 협업을 통해 경쟁력을 높이려 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3개 회사 연합은 우선 자동차를 제어하는 운영체제(OS) 소프트웨어를 공통화한다. OS 개발에는 평균 1조엔(약 9조 2700억원) 이상이 드는 것으로 알려졌다. 자동차 한곳에서 진행하기에는 개발 인력뿐 아니라 자금도 충분치 않다. 3사가 손잡는 것은 이를 위해서다. 지난 6월 독일의 폭스바겐은 미국 전기차 회사 리비안에 약 8000억엔을 투자한다고 발표했다. 단순히 경영난에 처한 리비안의 백기사로 나선 것이 아니다. 실제 목적은 리비안이 가진 소프트웨어에 있다는 것이 업계의 분석이다.
폭스바겐은 2020년부터 미국 테슬라를 추격하기 위한 차량용 소프트웨어 개발을 진행했지만 난항을 겪었다. 2022년에 최고경영자(CEO)가 여기에 대해 책임지고 사임할 정도로 회사에는 충격적인 일이었다.
실패의 원인은 브랜드마다 다른 사양을 요구했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차라리 외부의 좋은 소프트웨어를 들여와 맞춤형으로 적용하겠다는 전략으로 전환한 것으로 분석된다. 또 혼다-닛산-미쓰비시 연합은 경쟁력을 가진 차종이 서로 다른 만큼 OEM(주문자상표부착생산) 방식의 차량 생산도 논의할 계획이다.
대표적으로 혼다는 국내에서 플러그인하이브리드(PHEV) 차량이나 픽업트럭을 생산하지 않는다. 이 분야에 강점을 가진 미쓰비시에서 차량을 공급받아 혼다 브랜드로 판매가 가능하다는 얘기다. 또 혼다와 닛산은 모두 경차에 강점이 있다. 경차EV 공급을 통해 시장 확대도 꾀할 수 있다. 차량용 소프트웨어는 차량과 외부의 양방향 통신 기능을 사용해 소프트웨어를 꾸준히 업데이트 할 수 있다. 이를 통해 차량 판매 후에도 다양한 기능의 추가가 가능하다. 현재 테슬라와 중국 업체가 이러한 모델을 사용하고 있다. 하지만 개발비가 많이 들기 때문에 일본 자동차 업계는 동맹 방식을 선택한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지난해 전기차 판매에서 닛산은 15만대, 혼다는 1만 9000대에 그쳤다. 반면 미국 테슬라는 180만 대, 중국 BYD는 157만 대로 시장을 주도하고 있다. 중국 자동차 시장에서 EV가 확산하면서 혼다와 닛산은 현지 공장의 문을 닫는 등 새로운 전략을 고민하고 나섰다.
일본 1위 업체인 도요타자동차는 자회사인 다이하쓰공업을 비롯해 스즈키, 스바루, 마쓰다와 완성차 공급·기술 개발에서 협력하고 있다. 이들 5개 사의 연간 판매 대수는 1600만 대다. ‘도요타 연합’에 ‘혼다-닛산’ 연합의 경쟁이다. 최근 도요타와 스바루, 마쓰다 등 일본의 자동차 제조업체 3개 사는 전기차 전환 기조에 맞는 신형 엔진을 공동 개발하기로 했다. 새 엔진은 모터와 배터리, 기타 전기 구동 장치와의 통합을 최적화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신형 엔진은 작은 공간에 들어갈 수 있도록 콤팩트하게 설계될 것으로 보인다. 미국 등의 시장에서 전기차 수요가 주춤하고 하이브리드 차량이 인기를 끌면서 이 분야 강자인 도요타자동차는 소형 엔진을 개발해 자동차 디자인을 개선할 계획을 갖고 있다.
나카지마 히로키 도요타 최고기술책임자(CTO)는 “차량 디자인이 멋지면 차가 잘 팔리고 이익이 늘어나겠지만 디자인이 좋지 않으면 아무도 사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도요타는 스바루 자동차 지분 약 20%를, 마쓰다 자동차 지분 약 5%를 소유하고 있다. 이들이 개발하는 새 엔진은 e-퓨얼이나 바이오연료와 같은 대체 연료도 사용할 수 있게 해 내연기관의 탈탄소화에 도움이 될 것으로 보인다. 자동차 제조업체들은 새 자동차 배출가스 기준인 ‘유로 7’ 적용을 앞두고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줄여야 할 형편이다. 유럽연합은 2030년부터 승용차와 밴 등에 새 기준을 적용할 방침이며 2035년부터는 이산화탄소 배출 차량은 아예 판매하지 못하게 할 계획이다. 도요타는 올해 1분기 약 240만 대의 차량을 판매했는데 이 중 40%가 가솔린-전기 하이브리드 차량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