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경제가 깊은 침체의 수렁에 빠져들고 있다. 성장, 소비, 제조업 등 주요 경제 지표에서 연달아 빨간불이 들어오며 경기 침체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뿐만 아니라 부동산 시장 부진이 이어지고 있고, 지방정부의 과도한 부채도 단기에 해소되지 않을 것으로 보여 중국 경제 회복에 적잖은 시간이 걸릴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중국의 주요 경제 지표들이 연일 하락세를 보이고 있다. 중국 국가 통계국은 지난 7월 15일 올해 2분기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이 4.7%라고 발표했다. 이는 로이터와 블룸버그가 내놓은 시장 전망치인 5.1%를 크게 밑도는 수치다. 이로써 지난해 3분기(4.9%) 이후 4분기(5.2%), 올해 1분기(5.3%)까지 이어졌던 성장세가 3개 분기만에 꺾이게 됐다.
올해 상반기 전체 성장률은 중국 정부가 연간 경제 성장 목표로 설정한 ‘5% 안팎’과 비슷한 5%로 집계됐다. 그러나 올해 2분기 성장률이 기대에 못 미치면서 하반기에는 경제 성장 속도가 느려질 수 있다는 전망까지 제기되고 있다. 한국은행은 올해 중국의 경제성장률을 ‘4%대 후반’으로 예상했고, 앞서 영국 투자은행(IB)인 바클레이스는 전망치를 5.0%에서 4.8%로 하향 조정했다.
이와 관련해 린 송 ING그룹 수석연구원은 로이터와 만나 “실망스러운 GDP 수치는 5% 성장 목표 달성을 위한 길이 험난하다는 점을 보여준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부동산 침체와 일자리 불안정에 따른 약한 소비 심리와 내수 부진, 줄어든 정부 지출이 성장률을 끌어내린 것으로 보고 있다.
소비 척도를 나타내는 소매판매도 연초부터 하락세를 이어가고 있다. 춘제(중국의 설) 연휴가 있던 지난 1~2월에는 5.5%를 기록했지만 3월(3.1%)부터 떨어져 지난 6월에는 2.0%까지 하락했다. 시장 전망치(3.3%)를 크게 하회한 것은 물론이고, 18개월 만에 최저치다.
앞서 중국 정부가 내놓은 ‘이구환신(노후 제품을 새 제품으로 바꾸는 것)’ 정책에도 소비 심리는 살아나지 않고 있다. 오래된 자동차와 가전, 가구 등을 바꾸면 보조금 등을 제공하는 방식으로 소비를 유도하고 있지만, 경기가 나쁘다 보니 중국인들이 좀처럼 지갑을 열지 않고 있는 것이다.
경기 동향을 보여주는 제조업 구매관리자지수(PMI)도 ‘경기 수축’을 이어가고 있다. 기업 구매 담당자 조사를 바탕으로 작성되는 PMI 통계는 경기 동향을 보여주는 지표다. 50보다 높으면 경기 확장, 낮으면 경기 수축 국면을 의미한다. 지난 1월 49.2에서 3월 50.8로 ‘기준치 50’을 상회했지만 5월 49.5, 6월 49.5를 기록하며 다시 수축 국면으로 돌아섰다.
중국 경제의 한 축을 담당하는 부동산 시장도 장기 침체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중국의 저명한 경제학자인 마오전화 홍콩대 경영대학원 교수는 지난 7월 5일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와 인터뷰에서 중국 부동산 시장의 ‘공급 과잉’을 지적하며 “적체된 공급을 소화하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릴 것”이라고 말했다.
특히 중국 당국이 내놓고 있는 주택담보대출 금리 인하와 지방 미분양 아파트 매입 등의 조치에 대해선 “부동산 거래량을 늘렸지만 가격 하락을 반전시키는 않았다”며 “이러한 조치들은 문제가 표면화한 후에 뒤늦게 나온 것”이라고 꼬집었다.
부동산 시장 침체 여파로 지방 중소형 은행의 줄도산 위험도 커지고 있다. 중국 중앙은행인 인민은행은 ‘2023년 중국금융안정 보고서’를 통해 부실 비율이 높은 고위험은행이 337개라고 집계했다. 이들 대부분은 지방 중소은행이다. 지역으로 보면 랴오닝성·지린·헤이룽장·간쑤성·네이멍구·허난성 등에 많았다.
계속되는 자연재해로 지방정부 부채 문제가 악화하고 있다는 점도 부담 요인이다. 중국 허난성은 지난 6월 극심한 가뭄을 겪었지만, 한달 뒤 기록적인 폭우가 내리면서 10만명이 넘는 수재민이 발생했다. 쓰촨성에는 큰 비가 내리며 산사태가 발생해 수십명이 숨지거나 실종됐고 산시성과 허베이성 등 북부 지역에도 홍수 피해가 잇따랐다.
수해 복구 등의 작업에 대규모 세금이 투입되면서 지방정부 부채도 더 쌓이고 있다. 올해 들어 중앙정부가 지방정부에 보낸 재난구호기금은 115억위안(약 2조 2000억원)에 이른다. 가뭄·홍수 등과 같은 자연재해로 올해 상반기 발생한 경제적 손실은 지난해 동기보다 140% 이상 증가한 931억 6000만위안(약 17조 5000억원)에 달한다.
월스트리트저널의 최근 조사에 따르면, 중국 지방정부의 부채 총액은 최대 11조달러(약 1경 5000조원)에 달한다. 이 가운데 약 8000억달러(약 1085조원)가 채무불이행 위험에 처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경기 침체에 대한 우려가 커지자 중국인민은행은 지난 7월 22일 사실상의 기준금리인 대출우대금리(LPR)를 ‘깜짝 인하’했다. 주택담보대출의 기준 역할을 하는 5년물 LPR을 3.85%로, 일반 대출의 기준이 되는 1년물 LPR을 3.35%로 각각 0.1%포인트씩 낮춘 것이다. 이를 통해 경제 성장을 촉진하고 실물 자금 조달 비용을 낮춘다는 구상이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도 최근 중국 경제가 위기에 봉착했다는 점을 인정했다. 시 주석은 지난 7월 26일 베이징 중 난하이에서 열린 당외 인사 좌담회에서 “현재 중국 경제 발전이 일부 어려움과 문제에 직면해 있다”고 언급했다. 그러면서 “발전과 전환 과정에서 일어나는 문제”라며 “노력을 통해 충분히 극복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또 “발전에 대한 자신감을 견고히 하고 전략적 의지를 유지해야 한다”며 “문제와 도전에 적극적으로 대응하고 실질적인 고품질 발전 성과를 통해 ‘중국 경제 광명론’을 노래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보다 앞서 시 주석은 중국공산당 제20기 중앙위원회 제 3차 전체회의(3중전회) 결정문의 배경을 설명하며 “앞으로 ‘블랙 스완’과 ‘회색 코뿔소’ 사건이 수시로 발생할 수 있다”고 전했다. 블랙 스완은 일어날 확률은 대단히 낮지만 일단 발생하면 큰 충격을 주는 위험을, 회색 코뿔소는 예상할 수 있으나 소홀하기 쉬운 위험을 의미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