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청년들이 좌절하고 있다. ‘리오프닝(경제활동 재개)’에도 경기 회복이 더딘 데다 취업난까지 갈수록 심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과 불안이 커지면서 취업은 물론이고 결혼까지 포기하고 있다. 급기야 젊은 세대 사이에서는 일확천금을 기대할 수 있는 복권이 새로운 놀이 문화로 떠오르고 있다.
중국 베이징 시내에 위치한 유명 라마교 사원 ‘융허궁’은 취업 성공이나 결혼을 비는 곳으로 유명하다. 하지만 최근 중국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는 이곳에서 즉석 복권을 긁으며 기도하는 사진과 영상이 화제가 됐다. 청년들의 소원 목록에 ‘복권 당첨’이 오른 것이다.
지난 5월 말 취재를 위해 융허궁을 찾았다. 수많은 청년들은 이곳을 찾아와 향을 피우며 소원을 빌었다. 그러나 복권을 긁는 모습은 찾아볼 수 없었다. SNS와 전혀 다른 풍경에 커져가던 궁금증은 인근 복권방에 들어서자 단번에 해소됐다. 인근 복권방 4곳 모두 즉석복권이 매진 상태여서 구하지를 못했던 것이다. 중국 청년들에게 가장 인기가 많은 복권은 ‘꽈꽈러’라고 불리는 즉석복권이다. 대부분은 즉석복권을 산 뒤 그 자리에서 바로 긁어 당첨 여부를 즉시 확인한다. 긁는 재미까지 있다. 이런 점 때문에 다른 복권에 비해 인기가 많다. 중국 복권 판매액은 2020년 3340억위안(약 62조5000억원)에서 지난해 5797억위안(약 108조5000억원)으로 급증했다. 복권 구매자의 약 80%는 18~34세 청년이다. 같은 날 방문한 베이징 차오양구의 한 쇼핑몰에서도 이러한 복권 열풍을 목격할 수 있었다. 한쪽 구석에 위치한 복권방에는 중국 MZ세대인 ‘주링허우(1990년대생)·링링허우(2000년대생)’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다. 연인끼리 또는 친구끼리 복권방 앞을 지나갈 때면 발걸음을 멈추고 들여다봤다. 복권방에서 일하는 A씨에게 즉석복권의 인기가 어느 정도인지를 묻자 “즉석복권은 요새 없어서 못 팔 정도”라며 “가게를 찾는 손님 대부분은 20·30대”라고 답했다. 이어 “당국에서 물량을 배분하다 보니 입고되는 날이 많지 않다”며 “어쩌다 입고되면 하루나 이틀 만에 동이 난다”고 덧붙였다. 즉석복권 구하기가 어렵다 보니 최근에는 ‘따러토우(중국판 로또)’ 등 다른 복권을 찾는 손님도 늘었다고 한다. 전문가들은 이 같은 복권 열풍이 극심한 취업난과 연관이 깊다고 보고 있다. 강준영 한국외대 국제지역대학원 교수는 “부족함 없이 자라온 중국 MZ세대들이 취업난을 겪으면서 불안한 미래를 맞닥뜨리게 됐다”며 “복권 열풍은 이러한 불안과 혼란을 고스란히 반영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중국의 청년(16~24세) 실업률은 지난해 6월 21.3%로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불혼주의’는 최근 중국 MZ세대를 대표하는 신조어 중 하나다. 말 그대로 결혼을 기피한다는 의미로, 가장 문제가 되고 있는 것은 ‘고액 예단·예물’이다. 중국에서는 결혼할 때 신랑이 신부에게 예단 성격으로 지참금을 주는데, 남성보다 여성 인구가 적다 보니 신부 측에서 큰 액수를 요구하는 사례가 많다. 지참금은 지역별로 차이가 있다. 중국 SNS에서 퍼지고 있는 지역별 평균 시세를 보면, 푸젠성이 30만~39만위안(약 5600만~7300만원)으로 가장 많다. 저장성(23만~30만위안), 장시성(18만~27만위안), 후난성·산시성(15만~18만위안), 베이징·상하이·톈진(12만~15만위안) 등이 그 뒤를 잇고 있다. 이와 함께 ‘3금·5금·7금’ 등의 예물을 요구하는 경우도 적지않다. 3금은 금반지, 금귀걸이, 금목걸이를 뜻한다. 5금은 3금에 금팔찌와 금펜던트, 7금은 5금에 금주판과 금발찌가 추가된 것이다. 여기에 집이나 차까지 요구하는 경우도 있다. SNS에서는 ‘억소리’ 나는 결혼 비용 때문에 파혼을 결정했다는 경험담이 잇따르고 있다. ‘예비 신랑이 지참금을 깎으려고 해서 다퉜다’는 여성 네티즌부터 ‘신부를 돈 주고 사는 것과 무엇이 다르냐’며 지참금 문화를 비판하는 남성 네티즌까지 다양한 의견들이 쏟아졌다. 중국 정부도 이러한 문제를 잘 알고 있다. 중국 민정부는 지난 3월 고액 예물 등 결혼 관련 문제에 관한 종합적인 관리를 지속적으로 추진하라고 당부했다. 덩린 충칭시 민정국 부국장은 “일부 지방에선 고가 예물이 결혼 생활에 트라우마를 주고 일부 가정에 감당할 수 없는 부담을 준다”고 지적했다. 이후 닝샤에서는 결혼 시 지참금을 1인당 가처분소득의 6배를 넘지 않는 선에서 정하도록 했다.
올해 초에는 젊은 직장인들 사이에서 ‘역겨운 출근룩’이 유행했다. 털바지·슬리퍼·수면양말 등을 착용하고 출근한 사진들은 SNS에서 큰 호응을 얻었다. 적은 급여와 잦은 초과 근무에 대한 불만,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불안을 이렇게 표현한 것이다.
이에 대해 뉴욕타임스(NYT)는 “중국의 젊은 직장인들의 출근 복장은 놀라울 정도로 캐주얼하다”며 “막 침대에서 나온 모습이 대부분”이라고 전했다. 그러면서 이러한 배경에는 중국 청년들의 상실감이 자리잡고 있다고 분석했다. 후베이성 우한시에서 인테리어 디자이너로 일하고 있다는 루오 씨는 NYT에 “그냥 내가 입고 싶은 걸 입은 것”이라며 “단지 앉아만 있어야 하는데, 출근을 위한 옷을 사는 데 돈을 쓸 가치가 없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이보다 앞서선 가만히 누워서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는 뜻의 ‘탕핑’이 사회적 문제로 떠올랐다.
지난해 대학 졸업식에서는 신세 한탄을 표현하는 ‘시체졸업사진’이 밈처럼 번졌다. 졸업 가운을 입고 시체처럼 두팔을 늘어뜨리거나 엎드려서 사진을 찍는 것이다. 이와 관련해 CNN은 “강력한 ‘제로코로나’ 정책 이후 취업 문턱이 좁아지는 등 이러한 환경들이 학생들을 우울하게 만들었다”며 “많은 학생이 (대학 졸업에) 도달하기 위해 악명 높은 중국의 교육 시스템을 거쳤는데 이제 지치고 낙담한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상황이 이렇자 중국 정부는 청년 실업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 최근 ‘100일 1000만명 채용’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향후 100일 동안 1000만개 이상의 일자리를 만들어 대졸자를 포함한 취업준비생들에게 취업 기회를 집중적으로 제공한다는 계획이다. 앞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새 시대의 일자리 사명으로 ‘고품질 완전 고용 촉진’을 주문하기도 했다. 중국 국가통계국은 청년(16~24세) 실업률이 지난해 6월 21.3%로 사상 최고치를 기록하자 그 해 7월부터 통계 발표를 중단했다. 이후 올해 1월 중·고교, 대학생을 제외한 실제 구직자만을 집계 대상으로 하는 새로운 통계 기준을 발표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4~15% 수준의 높은 청년 실업률은 계속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