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서 반유대 시위가 걷잡을 수 없이 확산되고 있다. 미 동부 컬럼비아대에서 시작한 반유대 시위는 동부는 물론 서부, 중부 등 전역으로 퍼졌다. 시위의 강도가 거세지면서 일부 대학은 졸업식을 취소하고, 온라인 수업으로 전환하는 등 악화일로를 걷고 있다.
시위 내용 역시 이스라엘의 가자지구 내 팔레스타인 공격을 비판하는 것에서 이스라엘을 감싸고도는 미국 유대계, 친유대계 더 나아가 미 정부로까지 번지는 중이다. 지난 1960년대 베트남전쟁 반대 시위를 연상시킬 정도다.
반유대 시위는 무엇보다 유대 세력에 대한 비판을 중심으로 진행되고 있다. 무장세력 하마스가 지난해 10월 7일 이스라엘을 공격한 것은 분명 잘못되었지만 이스라엘이 반격 공격에서 가자지구의 민간인을 희생시키며 전쟁을 이어가자 전체 유대계에 대한 비판으로 번지는 형태다. 반유대 시위 학생들은 당장 소속 대학이 유대계 영향력에서 벗어나기를 요구하고 있다. 구체적으로 이스라엘 돈을 받지 말라는 주장이다. 대개 명문 대학일수록 유대계의 기부금이 크고 이에 따른 학내 영향력은 무시 못 한다는 게 정설이다. 예를 들어, 월가 억만장자 빌 애크먼 퍼싱스퀘어캐피털 회장은 하버드대, 펜실베이니아대 등 명문 대학 총장의 퇴진을 주도한 인물이다. 그는 순자산 35억달러(약 4조6000억원)에 달하는 헤지펀드 거물이자 대학가 큰손이다. 자신의 모교인 하버드에는 수년간 수천만달러를 기부하면서 학교 운영에 목소리를 낸 것으로 유명하다.
반유대 시위에 대해 유대계는 시위 학생들을 학내에서 몰아내고, 대응에 머뭇거리는 대학 총장의 퇴임을 요구했다. 지금까지 하버드, 펜실베이니아, 코넬 등 3개 명문대 총장이 사임했다. 시위 학생들의 유대계 기업 채용도 불가하다는 방침이다. 일부 대학들은 시위 학생들을 정학 혹은 퇴학시킨다는 초강수까지 두었다. 시위 학생들이 두건과 마스크를 쓰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또한 반유대 시위는 반전운동으로도 나타나고 있다. 지난 1968년 베트남전을 반대하며 일어난 미국에서 전국적인 반전(反戰) 운동과 일부 유사하다는 평가까지 나오고 있다. 학생들뿐만 아니라 일부 교수진들까지 시위에 가담하면서 반전을 향한 표현의 자유를 옹호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미국 대학에서 3000명 이상이 체포됐고, 영국, 독일, 프랑스, 네덜란드 등지에서는 시위가 벌어졌다. 특히 미국에서는 대학 졸업 시즌이 엉망이 되었다. 미 시간대에서 열린 졸업식에는 팔레스타인 깃발이 펼쳐지는가 하면 컬럼비아대는 5월 15일로 예정된 전체 졸업식을 취소했다. 사실 미국에서 유대계의 힘은 상상하기 힘들 정도로 강력하다. 대표적인 조직이 미국·이스라엘공공문제연구회(AIPAC·에이팩)다. 반유대 시위 학생들의 구호에도 에이팩이 언급된다. 에이팩은 지난 1949년 미국과 이스라엘의 관계를 강화하고 촉진하기 위해 결성된 미국 내 핵심 유대 로비단체다. 막대한 자금력과 영향력으로 미국 정치권을 좌지우지한다. 미국 정치 전문매체 폴리티코에 따르면, 에이팩은 올해 미국 의회 및 대통령 선거에서 이스라엘의 가자지구 전쟁에 대한 비판적인 여론에 맞서기 위해 1억달러(약 1370억원)를 뿌리고 있다. 반유대 시위로 미국에서 가장 곤혹스러운 인물은 조 바이든 대통령이다. 시위 학생들은 미국 정부가 이스라엘이 가자 사태에서 민간인들을 대상으로 하는 공격을 계속하도록 눈감았다고 비판하고 있기 때문이다. 일부 시위대는 이 때문에 바이든 대통령 낙선 운동까지 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이든 대통령은 “표현의 자유는 존중하되 질서는 지켜라”라는 원론적인 메시지로만 대응해 사태를 해결하기에는 역부족이라는 평가다. 바이든 대통령은 이스라엘에 너무 강경하게 대응하면 미국 내 강력한 유대세력의 또 다른 비판에 직면하기 때문에 진퇴양난에 빠졌다는 분석이다.
그 결과 뉴욕타임스가 지난 4월 28일~5월 9일 경합주 6곳에 대한 여론조사를 실시한 결과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이 애리조나와 조지아, 미시간, 네바다, 펜실베이니아 등 5곳에서 1~10%포인트 격차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보다 우세하다. 특히 미국에서 아랍계 인구가 가장 많은 주인 미시간은 반유대 시위가 일어나자 일찌감치 트럼프 쪽으로 기운 곳이다. 경합주 6곳 중 오직 위스콘신에서만 바이든 대통령(47%)이 트럼프 전 대통령(45%)을 앞섰다.
이쯤 되자 찰떡궁합 모습만 보이던 미국과 이스라엘 관계가 흔들리기 시작했다. 바이든 진영에서 이스라엘의 하마스에 대한 강경한 자세는 재선에 위협이 되기 때문에 미국 정부로서도 가만히 두고 볼 수만은 없기 때문이다. 바이든 대통령은 “이스라엘이 라파 지역을 공격하면 이스라엘에 무기 공급을 중단하겠다”고 위협하기까지 했다. 물론 현실화되진 않았다.
아울러 국제사회에서 이스라엘의 고립도 심화되고 있다. 유엔 총회는 지난 5월 10일 미국 뉴욕 유엔 본부에서 특별 회의를 열고 팔레스타인의 유엔 정회원 가입을 요청하는 것을 골자로 하는 결의안을 전체 193개 회원국 중 3분의 2 이상 찬성으로 가결했다. 한국을 포함해 143개국이 찬성했고, 미국·이스라엘 등 9개국이 반대했다. 유엔 총회는 이날 채택한 결의에서 팔레스타인이 유엔 헌장에 따라 정회원국으로 가입할 수 있는 자격을 충분히 갖췄다고 결정했다. 앞서 안보리에서 미국의 거부권으로 팔레스타인 정회원 가입이 무산된 것을 두고 총회가 재검토를 요구하는 이례적인 상황이 발생한 것이다. 한편 이번 사태에서 강력하기만 하던 유대계에도 균열이 일어났다. 유대계도 세대 간 갈등이 나타났기 때문이다. 반유대 시위대 중 일부지만 유대 학생도 포함되어 있다. 젊고 진보적인 유대인들은 표현의 자유를 존중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이들의 부모나 전통 유대계에서 볼 때는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이며 일치단결의 상징인 유대계에서 이례적인 모습이다. 에이팩에서 활동한 바 있는 김동석 미주한인유권자연대협회 대표는 “미국 내 유대계의 결속이 제너레이션 갭(세대차이)으로 인해 처음으로 금이 가기 시작했다”면서 “이에 따라 유대계의 영향력에도 일부 변화가 예상된다”고 말했다.
이 같은 배경에서 기성 유대계에서는 이스라엘에서 베냐민 네타냐후 총리의 분리를 시도 중이다. 이스라엘이 이번에 가지지구 사태 등에서 너무 공격적으로 행동한 배경에는 네타냐후 총리가 있다는 말이다. 이스라엘을 비판하지 말고 비판의 대상으로 네타냐후 총리를 삼는 것이다. 이 같은 움직임은 유대계 젊은 표의 결집을 위한 논리이기도 하다. 유대계를 대표하는 미 정치인 척 슈머 상원의원은 네타냐후 총리의 사임을 요구하기도 했다.
[본 기사는 매경LUXMEN 제165호 (2024년 6월)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