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도 술 문화가 화려하지만 중국도 만만치 않다. 공식 행사이건 사교모임이건 항상 술잔이 오간다. 넓은 대륙의 각 지방마다 지역을 대표하는 술이 있고 거기에 얽힌 멋진 스토리도 존재한다. 그런 중국에서 중국 인민들의 가장 많은 사랑을 받는 술이 바이주(白酒·백주)다. 중국 독주 시장에서 바이주가 차지하는 비중은 90%를 훌쩍 뛰어넘을 정도로 독보적이다.
이런 바이주 중에서도 절대 지존이 존재한다. 중화인민공화국을 건국한 마오쩌둥이 즐겨 마셨다는 구이저우마오타이(貴州茅台·귀주모태 )다.
중국에서 마오타이가 갖는 상징성은 상상 이상이다. 아래 2가지 수치를 보면 어느 정도 감을 잡을 수 있다.
첫째, 중국 소비자들에게 가장 사랑받는 브랜드 1위가 마오타이다. 2023년 중국 시장조사업체 후룬이 발표한 중국 브랜드평가 리포트에 따르면 마오타이 브랜드의 가치는 약 1500억달러로 5년 연속 최고 브랜드 자리를 차지했다. 2위를 차지한 또 다른 바이주 브랜드 우량예(약 370억달러)보다 4배 가까이 높은 브랜드 가치다.
중국인들이 가장 많이 피우는 고급담배인 중화담배와 세계적으로 인기를 얻고 있는 동영상플랫폼 틱톡 등이 그 뒤를 이었다.
둘째, 중국 본토 주식 시장에서 시가총액이 가장 큰 회사가 마오타이다.
지난 4월 중국 국유통신사 중 한 곳인 차이나모바일에 밀려 잠시 2위로 내려가기도 했지만 중국 주식 시장에서 가장 비싼 몸값을 자랑하는 회사로 꼽힌다. 시가총액이 한화로 400조원에 달해 삼성전자와 거의 맞먹는 수준이다. 이처럼 높은 마오타이의 인기로 인해 일반인들은 쉽게 마오타이를 구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마오타이 가운데 가장 인기 있는 53도짜리 페이티엔(飛天)의 시중 판매가격은 1499위안(약 27만원)이다. 하지만 구입 자체가 하늘의 별 따기인 만큼 정가의 2배 이상에 거래되는 경우가 많다. 비싼 가격에도 수요는 넘치다 보니 가짜 마오타이의 유혹이 늘 존재한다. 실제 중국에서는 가짜 마오타이 생산업자가 적발됐다는 뉴스가 늘 끊이지 않는다.
최고급 마오타이의 경우에는 가격이 더 치솟는다. 시진핑 주석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의 만찬에서 내놓았던 마오타이는 한 병에 2억원을 웃도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위대한 기업과 브랜드에도 시련은 있는 법. 마오타이도 예외는 아니다.
대표적인 예가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집권 초기다. 시 주석이 2012년 사실상 중국 국가주석 자리를 차지한 이후 대대적인 사정 바람이 불면서 마오타이에 불똥이 튄 것이다. 고위 공무원의 식사 자리에는 항상 마오타이가 준비돼 있다는 일반인들의 인식으로 인해 마오타이가 부패의 상징으로 여겨졌기 때문이다.
이런 위기가 일시적인 리스크라면 최근에는 보다 근본적인 리스크가 부각되고 있다. 바로 젊은층의 바이주 외면이다. 이는 마오타이뿐 아니라 모든 바이주 기업들이 느끼는 위기감이다.
젊은이들 사이에서는 독한 바이주를 멀리하려는 움직임이 나타나고 대신 맥주나 와인에 대한 선호도가 높아지고 있는 것이다. 독주를 마시는 경우에도 위스키라는 대체재를 택하는 중국인들이 늘어나고 있다.
베이징에 거주하는 대학생 다이나 씨는 “바이주는 도수가 높아 마시기 힘든 데다 가격도 비싸 큰 부담이 된다”며 “친구들과 만나면 주로 맥주나 칵테일을 마신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중국 내 바이주 판매량도 계속 줄어드는 추세다. 시장조사업체 등에 따르면 바이주의 중국 내 판매량은 2016년 130억6000만 에서 2020년 77억1000만로 크게 줄었다.
이런 추세는 보수적인 경영방식을 유지하던 바이주 기업들의 변화를 이끌어냈다. 노년층의 브랜드 충성도에만 기대지 말고 젊은 세대들을 공략하기 위해 바이주들이 새로운 도전을 시작한 것이다. 중국 바이주 업계의 선두주자인 마오타이도 예외는 아니다. 마오타이는 최근 커피 시장에 도전장을 내밀었다.
마오타이가 함유된 알코올 커피를 출시한 것이다. 아직은 시범사업이어서 6월 현재 광저우에서만 판매되고 있다. 광저우 매장에서는 아메리카노와 라테 등 9종류의 커피를 판매하고 있으며 모두 1.8∼2㎖의 마오타이 술이 들어갔다. 원할 경우 추가 요금을 내면 1.8㎖의 마오타이를 더 넣을 수 있다.아메리카노는 약 5000원에 판매되고 있고 아이스크림이 추가된 커피의 경우 가격이 8000원을 웃돈다. 매장에서는 알코올 함유량이 아주 높지는 않지만 커피를 마시면 술냄새가 날 수 있는 만큼 커피를 마신 직후 운전을 하지 말라는 조언까지 해준다. 또 미성년자와 임산부 등에게는 이 커피를 권하지 않는다. 마오타이가 자신의 전문 분야가 아닌 커피 시장에 뛰어든 것은 MZ세대들에게 더 친숙하게 다가가려는 노력의 일환이다. 특히 지난해 선보인 마오타이 아이스크림의 성공도 커피 제품 출시에 힘을 보탰다.
마오타이는 지난해 5월 마오타이가 들어간 ‘마오타이 아이스크림’을 출시했다. 마오타이 오리지널 맛, 매실 맛, 바닐라 맛 등 3종류가 있으며 가격은 59∼66위안으로, 일반 아이스크림보다 5∼6배 비싸다.
구이저우 매장에서 진행된 출시 이벤트 당시, 준비한 4만 개의 아이스크림이 1시간 만에 동이 나며 250만 위안(약 4억5000만원)의 매출액을 기록했다.
출시 직후 공급이 수요를 따라가지 못해 품귀 현상을 보이며 한때 정가보다 3배 비싼 웃돈 거래가 이뤄지기까지 했다. 당시 중국 언론에서는 “값비싼 마오타이를 저렴하게 즐기면서 무더위도 식힐 수 있다는 점이 젊은층의 구매욕을 자극했다”고 평가했다.
마오타이 아이스크림은 미성년자의 음주를 조장할 수 있다는 논란 속에서도 소비자들의 호응 속에 출시 7개월 만에 약 480억원의 판매 수입을 올렸다. 딩슝쥔 마오타이 회장이 아이스크림 출시 1주년 기념식에서 “아이스크림이 마오타이의 새로운 성장동력으로 자리잡았다”고 말했을 정도다. 다른 바이주 기업들도 ‘노인들이 마시는 술’이라는 오명을 벗기 위해 다양한 신제품을 내놓고 MZ세대와의 소통을 늘리고 있다. 시장 전문가들은 바이주 기업들의 다각화가 장기적으로 성공하기 위해서는 유구한 역사와 전통을 가진 브랜드를 젊은 세대에게도 매력적인 브랜드로 변신시켜야 한다고 조언한다. 식품산업 분석가 주단펑은 “맥주 등 알코올 도수가 낮은 술을 선호하는 젊은층을 유인하기 위한 전략은 모든 바이주 기업들이 해결해야 할 과제”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