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출산 고령화와 인구 감소를 겪고 있는 일본이 올 들어 대책 마련에 적극 나서고 있다. 생산가능인구의 감소와 경제현장의 인력 부족 등을 감안해 외국인 기능실습생제도를 개편하고 근로 의욕을 떨어트리는 장애물을 완화해 노동력을 늘리려 고민하고 있다. 이와 함께 일본 정부는 ‘차원이 다른 저출산 대책’ 마련을 준비하고 있다.
일본 총무성은 작년 10월 1일 기준 일본 전체 인구가 1억 2494만7000명으로 1년 전과 비교할 때 55만6000명 줄었다고 최근 발표했다. 일본의 인구는 2010년 1억2805만7000명으로 정점을 찍은 뒤 12년째 감소했다.
65세 이상 인구는 1년 전보다 2만2000명 늘어나면서 전체 인구에서 차지하는 비율은 0.1%포인트 증가해 29%가 됐다. 반면 저출산 현상으로 인해 15세 미만 인구는 28만2000명 줄며 전체 인구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0.2%포인트 하락한 11.6%였다. 생산가능인구(15~64세)는 29만6000명 줄어든 7420만8000명이었다. 2021년 기준으로 일본의 합계출산율은 1.3명 수준이다.
일본 정부의 전문가회의는 30여 년간 운영해오며 부작용도 있었던 외국인 기능실습생제도를 폐지하는 방안을 최근 제안했다. 대신 기능실습생제도에서 원칙적으로 금지해온 이직을 일정 수준에서 인정하고 ‘노동력 확보’를 취지에 포함시키는 새 제도를 검토하는 방향으로 논의가 진행되고 있다.
일본은 1993년부터 개발도상국 출신 외국인이 일본에서 일정 수준의 기술 연수를 한 뒤 취업할 수 있도록 하는 기능실습생제도를 운영해왔는데 직장에서 자취를 감추는 현상이나 인권침해 등 문제점이 지적돼왔다. 작년 말 기준으로 외국인 기능실습생이 32만5000명으로 전체 외국인 노동자의 20%가량을 차지할 정도가 된 만큼 실질적 ‘인력 확보’ 제도로 보완하자는 게 논의 내용 중 하나로 보인다. 특히 기존의 기능실습생제도가 ‘인재 육성을 통한 국제공헌’을 취지로 한 데 비해 새 제도에서는 ‘노동력 확보와 인재 육성’을 목적에 포함시키는 방안이 논의 될 것으로 보인다.
일본 정부가 노동력 확보를 위해 고민하고 있는 또 하나의 장애물이 ‘연수(年收)의 벽’이다. 연수의 벽은 일정 수준의 연 소득이 넘으면 소득세와 사회보험료 등이 발생해 실질적으로 손에 쥐게 되는 돈이 줄고 이 때문에 시간제 근로자 등이 추가 근무를 포기하는 현상을 말한다. 주민세가 생기는 100만엔, 소득세가 발생하는 103만엔, 배우자의 부양 대상에서 제외돼 사회보험료를 부담하는 130만엔 등이 대표적 ‘벽’이다. 이에 대해 사회보험료 부담의 경감 등을 통해 근로시간·의욕을 높이는 방법이 정치권에서 거론되고 있다.
일본의 생산가능인구는 1995년을 정점으로 감소세를 이어가고 있다. 생산가능인구가 감소하고 있는 데다, 코로나19가 안정돼 경제활동이 정상화되면서 일본 산업현장 곳곳에서 인력 부족을 호소하고 있다. 최근 일본 호텔 협회 설문조사에서 88.7%가 인력 부족으로 영업에 영향을 받고 있다고 답했다. 테이코쿠데이터뱅크의 조사에서 올해 1월을 기준으로 정규직 사원이 부족한 기업의 비율은 51.7%였다.
일본의 인력 부족은 ‘인재 확보’ 움직임과 맞물려 기업들의 채용 문화도 바꾸고 있다. 니혼게이자이신문에 따르면 주요 기업 2308개의 2023년도(올해 4월~내년 3월) 채용 계획을 조사한 결과 중도채용 숫자는 9만4430명으로 전년도 실적 대비 24.2% 증가했다. 또 신(新)졸업 일괄채용(대졸·대학원 졸업예정자 일괄 채용해 다음 해 봄 입사) 등을 포함한 전체 직원 선발에서 중도채용이 차지하는 비중은 37.6%로 7년 새 2배가 되며 역대 최대를 기록했다.
일본 기업의 중도채용 증가에는 인력 부족과 디지털트랜스포메이션(DX) 등의 진전에 따른 전문인력의 수요 증가 등이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디지털 분야 등의 전문 인재는 단기간에 육성하기 어려운 만큼, 경력직 등을 채용하려는 움직임이 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일본에서는 그동안 신졸업 일괄채용을 통해 직원을 뽑고, 근속 연수에 따라 급여가 올라가는 형태 등으로 관리하며 장기 근무하게 하는 방식이 많았다. 하지만 최근에는 직무에 맞춰 기업 내외부에서 선발하는 ‘직무형 고용’ 제도가 확대되는 등 채용문화에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다.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와 일본 정부는 인구 감소와 저출산 문제의 개선을 위해 올 들어 ‘차원이 다른 저출산 대책’을 준비해왔고 최근 그 윤곽이 나왔다. 연간 출생아 수 80만 명 선이 붕괴되면서 위기감을 느낀 일본 정부는 향후 3년간을 집중 대처 기간으로 정해 ‘아동·육아 지원 가속화 플랜’을 추진할 것으로 보인다. 일본 정부는 2017년에 발표한 전망에서 출생아가 80만 명 밑으로 떨어지는 시기를 2033년으로 예측했지만, 작년에 80만 명 선이 무너졌다.
일본 정부가 마련하는 차원이 다른 저출산 대책의 초안에서는 중학생까지가 대상인 아동수당을 고등학생까지 확대하기로 하고 소득 제한 규정도 없애기로 했다. 일본 정부는 현재 3세 미만이면 매월 1만5000엔, 3세부터 중학생까지는 매월 1만엔을 아동수당으로 지급하고 있다. 하지만 부부 소득이 높으면 아동수당이 줄거나 못 받을 수 있는데, 이런 소득 제한을 없애기로 한 것이다. 이와 함께 자녀가 두 명 이상인 가정에는 아동수당을 높이기로 하고 구체적 금액은 향후 검토하기로 했다.
초안에서는 공적 의료보험 혜택을 받지 못해온 출산비에 대해서 의료보험을 적용하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했다.
일본에서는 정상 분만의 경우 의료보험 혜택을 받지 못고 대신 일본 정부가 출산 때 일시금(출산지원금)을 지급해 왔다. 초안에서는 부모의 취업 상황과 관계없이, 시간 단위로 어린이집 등을 이용할 수 있는 제도를 마련하고 영유아를 담당하는 보육사도 늘리기로 했다. 또 남성의 육아 휴직 사용률을 2025년 50%, 2030년 85%로 끌어 올리기로 했다. 교육비 문제를 위해서는 학자금 대출과 장학금 제도도 확충할 계획이다.
일본 정부는 이 초안을 바탕으로 전문가 등이 참여한 협의체를 통해 보다 구체적 내용들을 마련할 것으로 보인다. 이와 함께 6월께 저출산 대책에 필요한 재원의 조달 방안을 공개할 것으로 보인다. 일본 언론에서는 저출산 대책의 이행에 연간 8조엔가량의 예산이 필요할 수도 있다는 예측이 나온다.
한편 일본은 지난 4월 저출산 대응과 보육정책 수립의 사령탑 역할을 할 조직으로 총리 직속 ‘아동가정청’을 출범 시켰다. 아동가정청은 각 부처에 흩어져 있던 출산·보육 담당 조직을 일원화하고 저출산 문제에 대응하기 위해 마련됐다. 예를 들어 후생노동성에서 한부모 가정 지원, 모자 보건, 아동 학대 방지 등의 업무가 아동가정청으로 옮겨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