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월 14일(이하 현지시간) 찾은 미국 뉴저지주 리버베일에 있는 대형 와인 유통매장인 토털와인. 주차할 자리를 찾을 수 없을 정도로 매장에 쇼핑객들이 몰려들고 있었다. 선물용 와인을 골랐다. 계산대마다 길게 늘어선 줄 때문에 10분을 기다려 겨우 계산을 마칠 수 있었다. 계산대를 다 열어두면 대기 시간이 단축될 것 같았지만 인력 부족 때문인지 닫힌 곳들이 있었다.
지난 1월 6일 방문했던 미국 루이지애나주 뉴올리언스의 한 레스토랑. 9명 자리를 예약하고 갔는데 3명이 먼저 도착해서 예약된 테이블을 달라고 요청했다. 하지만 레스토랑에서는 전원이 도착할 때까지 테이블을 내줄 수 없다고 했다. 처음에는 손님이 많고 테이블이 부족해 그런 줄 알았다. 그런데 나중에 알고 보니 테이블 서빙 인력이 부족해서였다. 이런 사례들은 미국에서 2년 여간 움츠렸던 서비스업이 강하게 반등했지만, 이를 뒷받침할 인력이 부족해서 나타나는 현상이다.
서비스업이 미국 경제를 강하게 떠받치고 있는 것은 긍정적이다. 당초 올해 상반기에 미국이 경기 침체에 돌입할 것이라는 전망이 유력했다. 하지만 이런 강한 서비스업 경기 영향으로 경기 침체 시기가 미뤄지거나 예상보다 경미한 경기 침체에 그칠 것이라는 전망이 대두하고 있다.
골드만삭스는 주요 투자은행들의 전망과 달리 올해 미국이 경기 침체를 겪을 가능성을 낮게 보고 있다. 브라이언 모이니헌 뱅크오브아메리카(BofA) 최고경영자(CEO)는 “올해 기본 시나리오는 완만한 경기 침체를 상정하고 있다”고 밝혔다. ‘완만한 경기 침체’로 끝날지 여부는 연방준비제도(Fed·연준)에 달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강한 서비스업 경기에 인력 공급 문제로 물가가 쉽게 진정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이를 안정시키기 위해 연준이 강력한 긴축 정책을 펼친다면 경기에 예상보다 깊게 골이 패일 수 있다. 물가 잡기의 큰 틀은 잡혔지만 연준 인사들은 “할 일이 많다”고 재차 강조 중이다. 지난 6일 뉴올리언스에서 열린 ‘2023 전미경제학회 연례총회(ASSA)’ 행사 중에 기자와 만난 래피얼 보스틱 애틀랜타연방은행 총재는 인플레이션 우려가 여전하다고 강조했다. 보스틱 총재는 “임금 상승세가 둔화됐지만 2024년에도 상당기간 최종 금리를 유지해야 한다”며 “인플레가 다시 튀지 않게 하기 위해서 꼭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상품 물가는 안정됐지만 서비스 물가는 되레 상승하고 있다. 지난해 12월 미국의 소비자물가지수(CPI) 상승률은 전년 동월 대비 6.5%를 기록했다. 11월보다 0.6%포인트 하락하며 1년 2개월 만에 가장 낮은 수준으로 하락했다. 시장 전망치에 부합하는 결과다. 전월 대비로는 0.1% 하락하며, 팬데믹 직후였던 2020년 4월 이후 가장 큰 폭으로 하락했다. 상품 물가는 11월에 전월 대비 0.3% 하락한 데 이어 12월에는 1.1% 하락했다. 반면 서비스 물가는 11월 0.3% 상승한 데 이어 12월에는 0.6% 상승하며 상승 폭을 더 높였다.
서비스 물가가 잡히지 않는 가장 큰 이유는 주거비다. 주거비는 소비자물가지수에서 3분의 1 이상의 비중을 차지한다. 주거비 상승률은 지난 11월 전월 대비 0.6%였는데, 12월에는 0.8%로 올라갔다. 주택 매매는 지난해 하반기부터 완연히 하락세로 돌아섰지만 렌트비가 쉽게 하락하지 않은 탓이다.
연준이 주목하는 PCE(개인소비지출) 기준 물가 전망을 봐도 서비스 물가에 대한 우려가 크다. 골드만삭스에 따르면 지난해 말 전년 대비 4.9% 상승한 것으로 추정되는 PCE 기준 근원 서비스물가 상승률은 2023년 말에도 4.4%를 기록, 하락 폭이 크지 않을 전망이다. 이는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주거비 상승률이 같은 기간 7.4%에서 5.9%로 둔화되는 데 그칠 것으로 보기 때문이다. 감정평가법인인 밀러 새뮤얼 조사에 따르면 뉴욕 브루클린의 경우 렌트비 중윗값이 월 3250달러로 전년 동월 대비 18.3%가 오른 상태다. 팬데믹 이전 대비 10.3%가 높은 상태다.
다만 팬데믹 직후 급상승했던 선벨트(남부의 기후가 온화한 지역) 중심으로 렌트비 상승세는 서서히 꺾이고 있다. 미국 최대 주택정보 플랫폼인 질로(Zillow)에 따르면 전년 동기 대비 신규 렌트 가격 지수 상승률은 지난해 2월 17.1%에서 지난해 11월 8.4%로 크게 하락했다. 렌트는 1년 이상 계약이 대부분이기 때문에 하락 추세가 물가 통계에 반영되기 위해서는 시간이 걸릴 것으로 전망된다. 댈러스연방은행에 따르면 물가지수 내 주거비는 기존 렌트를 포함하기 때문에 신규 렌트비 하락이 충분히 반영되기까지 최소 1년~1년 6개월의 시차가 발생한다.
물가 구성 요소를 좀 더 면밀히 살펴보면 연준의 매파적 전망이 점차 완화될 것이라는 낙관론도 나오고 있다. 실제로 제롬 파월 연준 의장이 지난해 11월 말 강조했던 ‘주거비 제외 근원 서비스 물가’가 둔화 추세를 보이고 있다. 월스트리트저널에 따르면 3개월 평균 기준 주거비는 전년 대비 9.2% 상승했지만 서비스에서 주거비를 제외한 물가는 1.2% 상승하는 데 그쳤다. 근원 상품 물가는 4.8% 하락했다.
골드만삭스는 유럽과 중국의 경기 역시 지난해 예상과 달리 우려가 낮아지고 있다고 전망했다. 유로지역의 올해 성장률 전망을 기존 -0.1%에서 0.6%로 상향 조정했다. 예상보다 따뜻한 겨울 덕분에 에너지 위기에 대한 우려가 잦아들었고, 경기 활동이 개선되면서 기술적 경기 침체 가능성이 낮아졌다고 판단했다. 중국의 재개방이 유로지역의 경제 성장의 한 동력이 될 것이라는 전망도 덧붙였다.
하지만 이런 전망에도 중국 경기에 대한 불안은 여전히 상존하고 있다. 메리 러블리 피터슨경제연구소 선임연구원은 전미경제학회 행사에서 “중국은 가계 소비 회복 여부가 관건이며 회복되기 전에 하락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그는 “중국의 경제 정책이 민첩하고 즉각적이어야 한다”고 말했다.
먹구름이 짙게 꼈던 새해 경기에 대한 전망에 한줄기 빛이 보이기 시작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안심하기는 이르다. 지난해 글로벌 경기를 짓눌렀던 한 요소인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같은 예기치 못한 변수는 언제든 나타날 수 있다. ‘월가 황제’로 불리는 제이미 다이먼 JP모건체이스 회장조차 각종 역풍들의 영향에 대해서 정확히 예측하기 어렵다고 토로했다. 그는 “지정학적인 긴장감, 취약한 에너지·식량 공급 상황, 지속적인 인플레이션, 전례 없는 양적긴축 등의 궁극적인 영향을 모르겠다”며 이렇게 말했다.
[박용범 특파원]
[본 기사는 매경LUXMEN 제149호 (2023년 2월)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