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월 15일(현지시간) 뉴욕 맨해튼 타임스스퀘어를 걷다가 100m 이상 길게 줄이 늘어선 모습을 목격했다. 맨해튼 40~42번가에 걸쳐 있는 뉴욕의 관문 중 하나인 포트 오소리티(Port Authority) 버스터미널 대각선 맞은편에는 관광객들이 인도를 거의 점령하고 있었다. 이들은 2층 관광버스를 타기 위해 대기 중인 사람들이었다. 3년 만에 보복 소비, 보복 관광에 나선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전 세계 관광객들이 다시 미국에 몰려들고 있다. 코로나19 사태로 막혔던 국가 간 빗장이 풀렸기 때문이다. 특히 뉴욕으로 관광객들이 쏟아져 들어오고 있다. 뉴욕은 세계 경제 수도이기 때문에 출장객까지 급증하며 팬데믹 이전 모습을 완연히 회복하고 있다.
2019년 뉴욕을 찾은 관광객은 6660만 명이었다. 하지만 2020년에는 3분의 1 수준으로 급감했고, 2021년에는 다소 회복되어 3300만 명이 뉴욕을 찾았다. 올해는 5600만 명으로 전년 대비 70%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뉴욕의 유명 레스토랑은 이제 예약하기가 너무 힘들어졌다. 고급 레스토랑은 사람들이 더 넘쳐난다. 맨해튼 야경을 볼 수 있어 인기가 높은 뉴저지주 위호켄 ‘차트 하우스(Chart House)’는 주말 저녁 식사 예약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불과 1년 전만 해도 200~300달러였던 4성급 호텔 숙박비는 400~500달러가 기본 가격이 됐다.
항공료는 미국 노동통계국이 통계를 작성한 이래 가장 높은 수준으로 오르고 있지만 비행기를 타려는 수요는 넘친다. 수백 명씩 태운 항공기들이 비슷한 시간에 연쇄적으로 도착하며 입국 심사를 받는 데 2시간 가까이 소요된다. 이렇게 미국이 호황을 구가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여전히 주름살을 펴지 못하고 있는 분야도 있다. 과잉 재고로 신음을 하고 있는 유통업체들이 대표적이다.
미국의 대형 소매업체인 타겟은 7월 말로 끝난 분기 수익이 주당 39센트로 지난해보다 90% 감소했다. 이같이 수익성이 크게 악화된 것은 재고 누적에 따른 할인 판매가 주 원인이다. 공급망 문제가 불거지고 물류난이 심각해지자 과잉 선주문에 나섰던 탓이다. 시즌이 지난 상품은 판매가 어려워진다. 이 때문에 대형 유통업체들이 그 어느 때보다 ‘클리어런스(떨이 판매)’에 집중하다보니 실적이 크게 악화됐다. 여기에 유류비 인상에 따른 운송비용 증가, 인건비 상승 등으로 유통업체들이 타격을 입었다.
관광은 살아나고 있지만 팬데믹의 생채기는 깊다. 뉴욕 맨해튼 중심가에는 아직도 1층이 비어있는 건물이 많다. 코로나19 사태 이후 유통업체들이 견디지 못해 떠난 자리가 채워지지 않고 있는 것이다. 타임스스퀘어 같은 핵심상권에도 여전히 대로변에 1층의 대형 매장이 비어 있는 곳이 있다. ‘원 밴더빌트’와 같은 최신 대형 오피스 건물 대로변 1층도 공간이 비어 있다. 뉴욕의 핵심 상권에는 주요 브랜드들이 ‘플래그십 매장’으로 운영해온 곳이 많다. 세계 최고 수준의 임대료를 내더라도 브랜드를 알리기 위한 마케팅 비용을 지출해온 것이다. 하지만 팬데믹이 터지자 직격탄을 맞았고 이들이 떠난 자리는 채워지지 않고 있다.
맨해튼 코리아타운 인근 34가에 있었던 유명 속옷 업체인 빅토리아시크릿 매장 자리는 코로나19 사태 이후 갑작스레 공실이 됐지만 여전히 공간이 채워지지 않고 있다. 미국 경제의 3분의 2를 떠받들고 있는 소비는 양극화 현상을 보이고 있다. 여행·레저 등은 호황을 누리고 있지만 일상적인 소비는 점점 둔화되고 있다. 이런 현상은 정부 공식 통계에서도 확인된다. 미국의 7월 소매 판매 증가율은 전월 대비 0.00%를 기록했다. 전월 대비 전혀 성장하지 못했다는 의미다. 다우존스가 집계한 전문가 전망치(0.1% 증가)를 밑돌았다. 주유소(-1.8%), 자동차·부품(-1.6%), 의류·액세서리(-0.6%), 종합 소매점(-0.7%) 등에서 소비가 줄었던 탓이다. 주유소에서 지출이 감소한 것은 유가가 하락한 영향이 있었지만 전반적으로 경기 침체에 대한 우려로 소비심리가 위축된 것으로 보인다.
이런 통계가 나올 때마다 경기 침체의 우려는 커진다. 특히 팬데믹 이후 탄탄한 회복의 길을 걸었던 고용이 다시 악화되지 않을까 시장의 관심이 커지고 있다. IT, 가상자산 분야 기업들이 연쇄적으로 인력 구조조정을 단행한 데 이어 초우량 기업인 애플마저 채용담당 인력 100명을 해고하며, 위기감이 커진 상태다. 하지만 미국의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Fed·연준)는 이런 우려에 선을 긋고 있다. 제롬 파월 연준 의장은 지난 7월 FOMC(연방공개시장위원회) 회의 직후 “현재 미국이 경기 침체 상태라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잘라 말했다. 파월 의장은 “노동 시장이 매우 강한데 경기 침체에 진입한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며 “침체를 피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파월 의장 발언과 달리 경기 침체에 대한 우려가 연준 내부에서 점점 제기되고 있다. FOMC 회의 후 3주가 지나서 공개된 FOMC 의사록에 따르면 연준 내부에서 초긴축 정책이 경기 침체를 야기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기 시작한 것으로 확인됐다. 7월 의사록에는 6월에 없던 ‘경기 침체(recession)’라는 표현이 등장했다. 긴축이 불필요한 침체를 유발할 수 있다는 내부의 우려가 있다는 점이 드러났다. 파월 의장이 그간 “성장을 훼손해서라도 물가를 잡겠다”고 공언했던 것과는 결이 다른 내용이다.
‘경기 침체가 없을 것’이라는 연준의 경기 판단은 실제 전망이라기보다 낙관적 목표에 가깝다고 봐야 한다. 이런 점에서 민간의 전망에 좀 더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골드만삭스는 “미국은 경미한 경기 침체를 겪게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골드만삭스는 미국 GDP가 1분기, 2분기 연속 마이너스 성장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경기 침체 국면에 진입하지 않았다고 판단했다. 다만 골드만삭스는 향후 1년간 미국이 경기침체에 빠질 확률은 3분의 1 정도라고 전망했다. 골드만삭스가 이같은 전망을 한 가장 큰 근거는 노동 시장이 받는 타격이 일반적인 경기 침체 상황과 다를 것이라는 점이다. 2차 세계대전 이후 경미한 경기 침체가 있었던 1960~1961년, 2001년에도 미국 실업률은 2%포인트 증가했다. 하지만 이번 경기 침체는 실업률이 1%포인트 내외로 증가하는 데 그칠 것으로 봤다.
일부 영역에서 해고가 시작됐지만 아직까지 미국에서는 전반적으로 구인난이 계속되고 있다. 구직자 1명당 일자리가 1.8개 정도 있을 정도로 구인, 구직 격차가 심각하다. 이런 점을 고려하면 경기 침체 과정에서 나타나는 심각한 실업률 상승은 쉽게 나타나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 나온다. 전례 없이 인류에 충격을 줬던 코로나19 사태는 이제 서서히 막을 내리는 단계에 왔다. 하지만 상처가 깊었던 만큼 회복에도 시간이 필요하다. 미국의 경기 회복에도 불구하고 중국, EU가 정상 회복을 하지 못할 경우 미국의 회복도 늦어질 수밖에 없다. 장밋빛 낙관론에 신중해야 할 또 다른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