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용범 특파원의 월스트리트 인사이트] 양적긴축까지 준비 끝낸 연준 금리 인상 ‘빅스텝’… 올 6차례 올린다
박용범 기자
입력 : 2022.03.29 15:44:42
수정 : 2022.03.29 15:45:10
제롬 파월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 의장은 지난 16일(현지시간) 통화정책을 결정하는 FOMC(연방공개시장위원회) 정례회의 후 기자회견에서 다소 이색적인 모습을 보여줬다.
파월 의장은 기자회견, 패널 토론에서도 좀처럼 표정 변화가 없는 스타일이다. 기자회견 중 한 기자가 “대차대조표 축소(양적긴축) 계획에 대해서 좀 더 자세히 알려달라”고 질문하자 “좋은 질문이다”라고 응수했다. 이는 미국에서 기자회견이나 수업시간에 질문을 받은 사람이 질문에 답할 때 관례적으로 쓰는 반응이다. 연준의 무게감 때문일까. 성격 탓일까. 파월 의장은 분위기를 녹여줄 이런 가벼운 반응조차 없는 사람이다. 그런데 이날 유독 “좋은 질문이다”라고 반응했기에 좀 더 유심히 살펴봤다.
파월 의장은 “앞으로 있을 한 회의에서 대차대조표 축소 시작을 발표할 것으로 예상한다”고 언급했다. 하지만 뭔가 더 이야기를 해야겠다는 표정이었다. 그러면서 “5월 열리는 다음 회의에서 시작될 수 있다”고 언급했다. 긴축 모드에 들어가며 시장에 가장 불확실한 부분으로 남아 있는 양적긴축 계획에 대해 사실상 준비가 끝났음을 시사하는 발언이었다.
대차대조표 축소란 코로나19 사태 이후 경기 침체에 대응하기 위해서 연준이 사들인 국채와 MBS(주택저당증권)를 다시 매각하는 작업이다. 연준이 막대한 양적완화에 나서며 연준 자산은 위기 전 대비 2배에 달하는 9조달러에 달하고 있다.
경제학자가 아닌 변호사 출신인 파월 의장은 시장에 예측 가능한 시그널을 주려고 매우 노력하는 스타일이다. 현학적이면서 시장이 예측 못한 발언을 자주 쏟아내 쇼크를 야기했던 벤 버냉키 전 연준 의장과 대척점에 있는 사람이라고 볼 수 있다. 기말고사 시험문제를 알려주고 시험공부를 시키는 교수라고 할까.
사실 이날 연준은 FOMC 회의를 열고 3년 3개월 만에 처음으로 기준금리를 인상하며 제로금리 시대에 종지부를 찍었다. 하지만 별 뉴스가 되지 않은 것은 지난 2일 이미 파월 의장이 하원 금융위원회 청문회에서 예고방송을 정확하게 했기 때문이다. 연준 일부 인사와 시장 일각에서 빅스텝(0.50%포인트) 금리 인상 가능성을 제기했지만 파월 의장은 2주 전에 0.25%포인트 인상을 고려하고 있다며 선을 그었다.
파월 의장은 양적긴축이 지난 2017~2019년보다 공격적으로 이뤄질 것이라고 예고했다. 이날 연준은 점도표(연준 위원들의 무기명 경기전망 분포도)를 통해 연내 6차례 더 기준금리 인상을 고려하고 있음을 시사했다. 파월 의장은 정책 금리를 장기 균형금리 이상으로 인상할 것이라고 예고했다. 파월 의장이 특히 2023년에 장기 균형금리 이상을 달성하겠다는 것은 매우 매파적인 발언으로 받아들여졌다.
이는 이제 특별한 변수가 없는 한 앞으로 FOMC 정례회의가 열릴 때마다 기준금리를 인상할 것이라고 시장에 신호를 준 것이다.
뱅크오브아메리카는 “그간 연준이 점진적인 정상화를 추진함에 따라 미온적이라는 논란이 컸지만 이번 FOMC는 연준의 중대한 전환점이 됐다”고 평가했다. 그러면서 “향후 실업률이 연준의 예상보다 더 하락할 경우 연준이 더 매파적이 될 가능성이 있다”고 예상했다. 연준이 이런 판단을 할 수 있게 된 것은 우크라이나 사태에 따른 미국 경제 영향에 대해서 우려할 수준이 아니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불과 2주 전까지만 해도 “예측이 불가능하다”고 언급했던 것에 비해서 상당히 진전된 표현을 사용했다.
파월 의장은 “(전쟁에 따른 영향은) 매우 불확실하다”면서 “내년 경기 침체 가능성이 특별히 올라가지 않았다. 지금도 수요는 강하다”라고 말했다. 물론 파월 의장이 인플레이션이 심각해질 경우 5~6월께 0.50%포인트 인상 가능성을 배제한 것은 아니다. 물가 안정을 위해서 모든 수단을 강구하겠다고 밝혔기 때문이다. 마켓워치는 연준이 향후 0.25%포인트 이상으로 큰 폭의 금리 인상을 할 가능성을 열어놨다고 해석했다. 이렇게 기준금리 인상을 예측 가능하게 만들었기 때문에 양적긴축 계획은 더욱 더 시장에 큰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된다.
파월 의장은 이날 “관련 논의에 상당한 진전(excellent process)이 있었고 (양적긴축의) 범위를 확정했다”고 언급, 사실상 계획 수립이 마무리됐음을 시사했다. 보다 상세한 내용은 FOMC 정례회의 후 3주 뒤에 공개되는 의사록을 통해서 알려질 가능성이 있다. 문제는 인플레이션이다. 올해 초 정점을 찍을 것으로 예상했던 인플레이션은 우크라이나 사태라는 복병을 맞아 더욱 고삐가 잡히지 않고 있다.
파월 의장은 “인플레이션이 (연준 목표치인) 2%로 되돌아갈 것이지만 당초 전망보다 더 시간이 걸릴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당초 1분기에 정점을 찍을 것으로 예상됐던 인플레이션이 2분기로 늦춰질 것 같다”고 언급했다.
여기에 올해 들어서도 계속되고 있는 임금 인상은 인플레이션을 고착화시킬 수 있다. 한번 오른 임금과 주거비는 내려가지 않는 속성이 강하기 때문이다. 파월 의장은 “실업자 1명당 1.7개 이상의 일자리가 존재하고 있다”고 말했다.
주거비는 소비자물가지수 구성에서 3분의 1을 차지하는 가장 큰 요소다. 지난해 미국 주택 가격은 전국적으로 20% 이상 올랐고, 올해 들어서도 진정되지 않고 있다. 금리 인상을 앞두고, 막차를 타려는 수요까지 가세해 더욱 더 어려움이 가중되고 있다.
뉴저지주의 한 부동산 중개인은 “가성비 좋은 매물은 하루가 가기 전에 주인이 결정되는 경우도 있다”며 “이사를 가고 싶어도 갈아탈 매물을 찾지 못해 자신의 집을 시장에 내놓지 못하고 있어 공급부족 현상이 풀리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연준은 개인소비지출(PCE) 기준 올해 인플레이션 전망치를 2.6%에서 4.3%로 크게 상향 조정했다. 에너지, 식품 가격을 제외한 근원 PCE 인플레이션은 2.7%에서 4.1%로 상향 조정했다. 2년 후인 2024년에 근원 PCE 인플레이션을 연준의 목표보다 높은 2.3%로 전망한 것은 인플레이션이 단기간에 그치지 않을 것이라는 연준 내부 인식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연준이 지표로 삼은 PCE 인플레이션과 기준이 다소 다르지만 최근 소비자물가지수(CPI) 상승률이 8%에 육박하고 있는 점을 고려하면 조정된 전망치조차 지나치게 낙관적이라는 비판이 나온다.
월가에서 우크라이나 사태보다 더 심각해질 수 있다고 보는 것은 중국의 ‘제로 코로나’ 정책이다. 선전과 같은 대도시를 봉쇄하자 애플 제품 생산에 차질이 야기된 것처럼, 연쇄적인 봉쇄 조치는 글로벌 공급 생태계에 교란을 야기할 수 있다. 지난해 베트남을 비롯 주요 아시아 생산 기지가 코로나19로 타격을 받았을 때 닥쳤던 충격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의 큰 혼란이 올 수 있다. 이는 글로벌 경기 회복세를 지연시킬 가능성이 높다. 주요 국가들이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 들어서 본격적인 경기 회복에 돌입할 때 중국의 공급망이 붕괴될 경우 코로나19 사태 직후보다 더 심각한 공급망 혼란이 야기될 가능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