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베이징동계올림픽이 지난 2월 20일 막을 내렸다. 베이징 현지 분위기는 당초 예상보다 훨씬 뜨거웠다. 올림픽을 코앞에 둔 2월 초까지만 해도 오미크론의 급속한 확산으로 방역이 대폭 강화되면서 베이징에서는 좀처럼 축제 분위기를 느낄 수 없었다. 대회 조직위가 코로나19 확산 우려를 감안해 일반인에게 입장권을 팔지 않기로 막판에 결정한 것도 올림픽 분위기에 찬물을 끼얹었다.
하지만 일단 올림픽이 시작되자 열기가 점차 고조되기 시작했다. 중국이 사상 최대 성적을 거두고 중국 관영매체들이 중국 선수들의 경기 장면과 메달 시상식을 대대적으로 보도하면서 국민들의 관심이 집중된 것이다.
이에 중국 내에서는 대회 마스코트인 ‘빙둔둔(氷墩墩)’ 관련 기념품들이 불티나게 팔려나갔다. 품귀 현상까지 나타나면서 빙둔둔 인형 가격이 중고장터에서 정가의 10배까지 치솟기도 했다. 하지만 중국 밖으로 시선을 돌리면 확연한 온도 차가 느껴진다. 다른 나라들이 베이징동계올림픽을 바라보는 시선은 싸늘했던 것이다. 일단 올림픽 시작 전부터 반쪽짜리 올림픽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이번 베이징동계올림픽이 삐걱대기 시작한 첫 발단은 고질적인 인권 문제다. 중국은 그동안 신장 강제 노동 문제를 비판하는 미국·영국 등 서방국가들과 격렬한 비방전을 펼쳐왔다. 또한 지난해 일국양제(一國兩制·1국가 2체제)를 사실상 폐지하고 홍콩에 국가보안법을 적용하면서 사회 각 분야에 대한 검열을 강화한 것도 국제 사회의 비난을 받았다.
이는 결국 베이징동계올림픽에 대한 서방국가들의 외교적 보이콧으로 이어졌다. 실제로 미국과 호주, 영국, 캐나다 등은 올림픽이 열린 베이징에 정부 대표단을 보내지 않았다. 이에 이번 올림픽 참석을 위해 베이징을 찾은 국가정상급 인사들이 크게 줄었다. 2008년 베이징하계올림픽 당시 인민대회당 환영오찬장에는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을 비롯한 세계 정상들이 후진타오 당시 국가주석과 악수하기 위해 길게 줄을 서는 진풍경이 펼쳐졌다. 당시 베이징을 찾았던 국가정상급 인사만 88개국 111명에 달했다. 하지만 이번 동계올림픽 VIP 인사는 14년 전에 비해 3분의 1 수준으로 급감했다. 개막식에 모습을 드러낸 주요국 정상은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유일했다. 2022 베이징동계올림픽의 슬로건인 ‘함께 하는 미래(Together for a Shared Future)’에서 시작부터 ‘함께’가 사라진 것이다.
이후 벌어진 올림픽 과정도 중국 애국주의로 점철되면서 이를 바라보는 세계인들의 시선을 불편하게 했다.
대표적인 예가 성화 봉송이다. 코로나19로 인해 개막식 직전 3일간만 진행된 성화 봉송이 중국 체제선전의 장으로 활용된 것이다. 성화 봉송 초반 주자들은 중국 우주굴기의 주인공들이었다. 두 번째 주자는 유인우주선 선저우(神舟) 7호, 9호, 11호에 탑승했던 인민해방군 소속 우주비행사인 징하이펑 씨, 3번째 주자는 달 탐사를 주도한 중국우주기술연구원 기술고문인 예페이젠 씨가 각각 맡았다.
코로나19 확진자가 폭증하는 미국 등 서방국가들과 달리 중국은 철저한 방역 시스템으로 코로나19를 통제하고 있다고 선전하는 중국은 성황 봉송에서도 이를 적극 부각시켰다. 성화 봉송에 코로나19 방역에 깊이 관여하고 있는 장보리 중국공정원 원사와 퉁차오후이 베이징 차오양병원 부원장을 참여시킨 것이다. 장 원사는 중국 관영매체와의 인터뷰에서 “이번 동계올림픽을 통해 세계에 중국을 알리고, 중국의 방역 정책을 알리게 될 것”이라며 “중국은 이미 승리했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신장 출신 위구르족 스키 선수 디니거 이라무장과 2020년 중국과 인도의 국경 분쟁지역인 갈완 계곡에서 벌어진 양국 군인들 간의 ‘몽둥이 충돌’에서 부상한 뒤 중국에서 영웅 대접을 받은 인민해방군 장교 치파바오를 성화 봉송 주자로 각각 내세운 것도 논란을 일으켰다.
신장 인권탄압을 명분으로 외교 보이콧을 선언한 미국은 중국이 이라무장을 내세움으로써 인권 문제로부터 시선을 돌리려 한다고 비판했고, 인도는 ‘올림픽의 정치화’라며 뒤늦게 외교 보이콧 대열에 합류했다.
베이징 소식통은 “성화 봉송 주자들의 면면을 보면 중국의 애국주의를 대변하는 인물들이 대거 포진해있다”며 “미중 갈등과 코로나19 확산이라는 악재 속에서 중국의 달라진 위상과 인민들의 높아진 자부심을 드러내려는 장치로 해석된다”고 말했다. 이번 올림픽 기간 중 중국이 스키의 기원이 중국이라는 주장을 더욱 강화한 것도 국제사회의 비난을 받았다. 중국 관영매체들이 인권탄압 논란의 대상인 신장이 스키의 발상지라고 강조하고 나섰기 때문이다.
미국 정부가 신장 위구르 지역에서 인종청소에 가까운 학대가 이뤄지고 있으며 위구르인에 대한 강제노동이 벌어지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는 상황에서 중국이 스키와 관련해 신장에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고 있는 것이다.
미국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중국이 정치적 목적을 가지고 스키가 1만 년 전 중국 신장에서 시작됐다고 주장하고 있다”며 “정치적으로 올림픽을 이용하는 행위”라고 비판했다.
쇼트트랙 경기 등에서 불거진 심판 편파판정 논란도 이번 대회의 오점으로 평가받고 있다. 일반적으로 대다수 올림픽에서 개최국에 대한 홈어드밴티지가 있었던 것이 사실이지만 이번 베이징동계올림픽은 도를 넘어섰다는 지적이 나온다. 쇼트트랙 남자 1000m에서 황대헌이 실격 판정을 받은 이후 한국 선수단이 공식적으로 문제제기를 하자 중국 네티즌들은 “항상 반칙을 일삼는 한국이 공정한 심판을 만나 떨어졌다”며 조롱했다.
개막식 중국 오성홍기 게양식에서는 한복을 입은 여성을 등장시켜 ‘문화공정’을 시도했다. 이에 대해 주한중국대사관은 ‘한복은 한반도의 것이자 중국 조선족의 것’이라는 입장문을 발표해 국내 반중정서를 자극하기도 했다.
특히 이번 베이징동계올림픽은 중국 내에서 정치적 이벤트로 활용되고 있다. 중국 지도부가 시진핑 국가주석의 장기집권을 확정할 하반기 제20차 당 대회를 앞두고 이번 올림픽을 국민 단결 강화의 동력으로 삼으려고 하기 때문이다.
올림픽에 앞서 치러진 중국 선수단 출정식은 이번 올림픽이 시 주석에게 얼마나 중요한 행사인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중국 선수단은 톈안먼광장에서 열린 출정식에서 “영수(시진핑)에 보답하기 위해 목숨을 걸자. 일등만이 목표이고 패배는 인정치 않는다. 총서기와 함께 미래로 가자”고 외쳤다. 시 주석이 올림픽을 위해 방문한 해외 지도자들과 가진 연회 사진도 화제가 되고 있다.
연회장에는 용의 모양을 한 물길이 흐르고 스키점프대 전시물이 있는 대형 식탁이 등장했다. 식탁 왼쪽에 시 주석 부부와 중국 측 인사들이, 맞은편에는 외빈들이 앉았는데 이 모습이 마치 당나라 시절 황제와 조공행렬을 연상케 한다는 평가가 나온 것이다. 중국이 이번 올림픽을 중국의 높아진 위상을 과시하려는 이벤트로 활용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오는 이유다. 이런 흐름대로라면 이번 올림픽을 계기로 중국의 애국주의는 더욱 확고해지고 중국 외 다른 나라들이 중국을 바라보는 시선은 더 차가워질 가능성이 높다. 중국은 이번 베이징동계올림픽으로 과거와 달라진 국력을 자랑하는 데는 성공했는지 몰라도 세계와 더 가까워지는 데는 실패한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