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택트 전성시대] Part Ⅳ 전문가 진단 | 강화되는 온라인 플랫폼 규제, 혁신성장 제동 vs 규제 사각지대 팽팽
박지훈 기자
입력 : 2020.06.26 15:14:37
수정 : 2020.06.26 15:14:51
최근 정부는 네이버·카카오·배달의민족 등 온라인 플랫폼 사업자를 규제할 새로운 심사지침을 만들겠다고 공언했다. 급격하게 성장하고 있는 온라인 플랫폼 시장에 걸맞은 공정거래법 집행 기준이 필요하다는 판단이다. 지난 5월 25일 공정거래위원회는 ‘온라인 플랫폼 분야 법 집행 기준 마련 태스크포스(TF)’를 신설했다. TF를 통해 내년까지 온라인 플랫폼 분야 심사지침을 제정한다는 방침이다. 공정위는 네이버나 카카오, 배달의민족 등의 온라인 플랫폼 사업자가 사용자와 판매자를 양쪽에서 연결해주는 ‘양면시장’의 특성을 지니고 있어 현행규정으로 온전히 규제하기가 어렵다는 입장이다. O2O의 특성상 사용자 아니면 판매자로 나눠놓은, 기존 ‘단면시장’을 기준으로 한 공정거래법으로는 이들 업체를 규제하는 데 한계가 있다고 본 것이다. 공정위 한 관계자는 “온라인쇼핑 거래액이 지난해 134조5000억원을 넘어서는 등 시장은 커진 데 반해 기존의 시장 지배적 지위의 남용, 불공정행위 심사지침만으로는 제대로 된 법 집행이 어렵다”고 설명했다.
공정위는 특히 온라인 플랫폼 사업자가 구사하는 ▲입점 업체가 동시에 여러 플랫폼을 이용하는 것을 막는 ‘멀티호밍’ 차단 ▲다른 플랫폼보다 저렴한 가격에 판매하도록 요구하는 ‘최혜국 대우 요구’ 방식 ▲자사의 서비스를 타사 서비스보다 우대하는 ‘자사 우대’ 방식 등 영업 전략을 집중적으로 들여다볼 예정이다. 공정위는 올해 말까지 관련 논의를 마치고 내년에 새로운 ‘온라인 플랫폼 분야 심사지침’을 제정할 계획이다.
이유태 공정위 시장감시총괄과장은 “온라인 플랫폼 분야의 심사지침이 만들어지면 관련 사건 처리가 더 빠르고 정확하게 이뤄지고 법 집행에 대한 시장의 예측 가능성이 높아질 수 있다”며 “신규 플랫폼 사업자가 시장에 더 쉽게 진입하는 등 혁신 경쟁을 촉진하는 데 기여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외에도 정부는 최근 크게 성장하고 있는 온라인 유통시장에 대한 규제 방안으로 ‘대규모유통업법’ 카드를 만지작거리고 있어 유통업계는 물론 법조계가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2012년 1월 시행된 대규모유통업법은 ▲전면적 서면주의 채택 ▲위법성의 입증책임 전환 ▲높은 과징금 체계를 갖춘 고강도 규제 법령이다. 법 시행 이후 대형마트 등 유통업체의 ‘갑질행태’는 크게 줄었으며, 거래의 투명성·공정성도 향상됐다는 평가를 받는다. 지나치게 강한 규제 때문에 관련 산업 자체를 위축시켰다는 비판도 받지만, 이 같은 장점 덕분에 온라인 유통시장에도 대규모유통업법을 적용해야 한다는 주장이 솔솔 나오고 있다. 이와 같은 규제강화 움직임에 이커머스, 플랫폼 기업들이 긴장하고 있다.
지난해 중소기업 간담회에 참석한 조성욱 공정거래위원장
▶신산업 성장성 저해 vs 규제 사각지대 해소
공정위의 입장은 명확하다. 온라인 플랫폼들의 급격한 성장세를 이루고 있는 가운데 규제 미비로 여러 가지 부작용이 일어나고 있다는 것이다. 지난 6월 19일 공정거래위원회와 한국경쟁법학회가 ‘플랫폼 분야 반경쟁행위 유형 및 주요 쟁점’을 주제로 개최한 화상 심포지엄에서 조성욱 공정거래위원장은 “거대하게 진화한 플랫폼 기업은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는 혁신의 주역이지만 한편으로는 시장경제를 위협할 수 있는 존재”라며 “시장을 선점한 독과점 플랫폼이 신규 플랫폼의 진입과 성장을 저지하기 위해 멀티호밍 차단, 자사 우대, 끼워팔기 등 다양한 반경쟁적 전략을 구사할 수 있고 이를 그대로 방치할 경우 새로운 플랫폼의 시장진입이 어려워져 플랫폼 시장 특유의 동태적 역동성이 사라질 수 있다”고 말했다.
거대 플랫폼 간의 경쟁 속에서 플랫폼 사용자인 소상공인과 소비자들이 모두 피해를 볼 수 있다는 분석이다.
또한 그는 “독과점 플랫폼에 대한 입점 소상공인의 거래의존도가 높아지면서 힘의 불균형이 커졌고 이는 불공정한 갑을관계로 이어지고 있다”며 “플랫폼과 입점 업체 간 수수료, 경영정보 요구 등 분쟁이 발생하면서, 플랫폼 산업 성장의 저해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다만 이날 세미나에서는 전통적인 규제에서 벗어나 새로운 방식의 규제안을 찾아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왔다.
서정 법무법인 한누리 변호사는 ‘플랫폼의 경쟁법적 쟁점’ 발표를 통해 “우리나라 공정거래 실무는 플랫폼 사업자에 대해 여전히 전통적 접근 방법을 취하는 경우가 많고, 이 과정에서 플랫폼 사업의 양면성을 간과하거나 효율성 증대 효과를 과소평가하는 경향이 엿보인다”고 지적했다. 덧붙여 그는 “플랫폼 사업자 규모가 커지면서 규모 자체를 규제하거나 사전규제를 강화하려는 움직임이 있다”며 “특정 사업자에 대한 사전규제보다는 경쟁법을 활용한 보편적 사후규제가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사전규제의 강화보다 예외적 사후규제를 통해 기업들의 도전을 장려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서 변호사는 이에 대해 “본격적인 규제에 앞서 해당 시장과 사업모델에 대한 충분한 조사와 이해가 선행돼야 한다”며 “규제의 과잉집행 우려가 큰 ‘동태적으로 변화하는 시장’보다는 과소집행 우려가 큰 ‘독점의 고착화 현상이 나타나는 시장’ 위주로 플랫폼 규제의 우선순위를 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편 이날 김윤정 법제연구원 박사는 실무적인 측면에서 ‘온라인 플랫폼의 거래상 지위남용 규제를 위한 입법적 과제’ 발표를 통해 통신판매중개업자의 대규모유통업법 규제대상으로 하는 방안을 제안하기도 했다. 통신판매중개업자를 온라인쇼핑몰 매장을 수수료 기반으로 임대해주는 사람으로 볼 수 있다는 점에서 대규모유통업법을 개정해 통신판매중개업자 규제를 차용하는 방식이다. 이 경우 연매출 1000억원을 초과하는 지마켓, 옥션, 11번가, 쿠팡, 배달의민족 등이 규제 대상이 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김 박사는 이에 대해 “통신판매중개업자의 입점업체에 대한 불공정 거래행위까지 이 법으로 다루기 위해서는 온라인 유통 플랫폼에 특화된 다수의 금지행위 규정이 추가로 도입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이러한 제안해 대한 반발도 만만치 않다. 이재환 위메프 변호사는 “대규모유통업법이 아닌 공정거래법상 불공정거래행위 규제만으로도 플랫폼과 판매자의 거래를 규제하는 데 무리가 없다”고 말했다. 플랫폼 기업의 토대가 되는 ‘동태적 시장’에 대한 강력한 규제가 자칫 혁신을 저해할 수도 있다고 지적이다.
그는 “대부분의 플랫폼 기업은 판매자와 구매자를 모으기 위해 고군분투하며 투자금을 소진하는 스타트업”이라며 “플랫폼과 판매자 관계를 ‘갑을관계’로 단정해 무조건 규제 대상으로 삼기보다는 플랫폼으로 하여금 자신의 정책을 경쟁법 테두리 안에서 판매자에게 안내하고 상생하도록 유도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설명했다.
이와 반대로 지난 6월 18일 한국유통법학회 춘계학술대회 참여한 강지원 국회입법조사처 금융공정거래팀 입법조사관은 ‘EU의 온라인 플랫폼 규칙 시행이 유통분야에 주는 시사점’을 주제로 발표하면서 대규모유통업법의 온라인 확대 적용 가능성을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그는 “오픈마켓, 배달앱 등 플랫폼 사업자들은 직접 상품을 판매하지 않더라도 실질적인 유통경로로써 중추적 기능을 수행하고 있다”며 “이들이 오프라인 유통업체와 마찬가지로 자신의 거래상 지위를 이용해 입점 업체에 대한 불공정한 거래에 나설 수 있음에도 대규모유통업법의 적용대상에서는 제외된 상태”라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