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월 7일 미국 뉴욕의 링컨센터 더 스테이지에 계한희, 김홍범, 손정완, 이상봉, 최복호 등 5명의 국내 디자이너 컬렉션이 펼쳐졌다. 뉴욕 패션위크 둘째 날 공식 일정 중 하나로 진행된 ‘컨셉코리아 S/S 2013’에는 뉴욕 패션 위크의 창시자 펀 멜리스와 영향력 있는 현지 패션 전문가 등 총 450여명이 자리했다. 이른바 패션한류를 실감케 한 이곳에서 패션지 보그의 스타일리스트 필립 블러치는 “컨셉코리아는 매년 한국 패션의 우수성을 알리는 독창적인 쇼를 선보이고 있다”며 “이번 시즌에 참여한 다섯 디자이너들 역시 브랜드 개성이 뚜렷한 수준 높은 의상을 선보여 뉴욕 패션계에 신선한 자극을 줬다”고 극찬했다. 이번 무대는 한국의 전통 색상인 오방색(五方色)을 주제로 뉴욕의 거리 미술, 현대무용 등을 결합, 현지 참여 인사들과 공감대를 형성했다. 특히 마사 그레이엄 무용단의 개막 공연은 아리랑을 배경 음악으로 다섯 명의 댄서가 오방색의 의미를 논버벌 퍼포먼스로 표현, 뉴욕 패션업계에 강한 인상을 남겼다.
패션업계의 한 관계자는 “컨셉코리아 등 해외에 진출한 한국 브랜드의 선전을 보면 최근 싸이와 김기덕의 쾌거가 떠오른다”며 “비슷하지만 전혀 다른 방식으로 세계를 정복한 두 사람의 행보가 한국판 명품의 전략 같아 주의 깊게 살펴본다”고 이야기했다.
행보는 달라도 목표는 하나
컨셉코리아 SS2013
최근 대중문화의 화두는 단연 가수 싸이와 김기덕 감독이다. 두 사람의 공통점은 첫째 활동 영역이 문화라는 점, 둘째 국내보다 해외에서 더 열광했다는 점이다. 안에서 열기가 전해진 게 아니라 외국에서 인정받은 후 국내로 역수입됐다는 게 문화계 인사들의 평이다. 하지만 극명한 차이점이 있다. 두 사람 모두 열광적인 환영을 받았지만 밟아온 행보가 다르다. 우선 가수 싸이가 데뷔부터 현재까지 이른바 주류 시스템에서 활동했다면, 김기덕 감독은 저예산, 예술영화만을 고집한 철저한 비주류였다.
한 패션계 컨설턴트는 “대기업의 M&A를 통한 명품 브랜드 인수나 컨셉코리아같이 시스템이 갖춰진 상황에서 해외에 진출하는 건 싸이를 닮았고, 중소 디자이너 브랜드가 묵묵히 자기 스타일을 고집하며 뉴욕이나 파리에서 인정받는 건 김기덕을 닮았다”며 “또 하나, 싸이는 대중문화를, 김 감독은 작가주의 전략을 택했는데 이 또한 대기업 명품 브랜드와 디자이너 브랜드의 전략이 맞닿아있다”고 설명했다.
패션 마케팅 전문가들이 제시하는 한국판 명품 전략은 크게 세 가지로 구분할 수 있다.
첫째, 대기업과 중견기업의 글로벌 명품 브랜드 인수 전략이다. 성주디엔디가 독일 가방 브랜드 MCM을 인수해 뉴욕 플라자 호텔에 매장을 개장한 것이나, EXR코리아가 프랑스 브랜드 까스텔바작을 인수해 새로운 컬렉션 라인을 추가한 게 대표적인 전략이다. 제일모직과 이랜드의 M&A 전략도 이에 해당한다.
둘째, 글로벌 브랜드의 하청기업이나 지사로 참여해 본사를 인수한 경우다. 최근 음료 브랜드 스무디 킹의 한국 지사인 스무디즈코리아가 미국 본사를 인수한 것이나, 전 세계 휠라 브랜드 사업권을 인수한 휠라코리아의 전략은 여전히 획기적인 사례로 회자되고 있다.
셋째, 한국인이 오랜 역사와 전통으로 일궈낸 자체 브랜드 전략이다. 흔히 브랜드 역사와 고객의 관심을 사로잡는 스토리가 강조되는 부분이다. 하지만 일부 패션전문가들은 “명품 브랜드로 성장하기 위해 수백년의 역사와 스토리가 꼭 필요한가”라고 반문한다. 이탈리아의 명품 브랜드로 꼽히는 에트로(ETRO)가 이러한 물음에 가장 좋은 답이다. 창립된 지 고작 40여년에 불과하지만 고대 인도 시대 직물에서 유래된 페이즐리 무늬가 트레이드마크로 인식되며 고객에게 오래된 기업이란 인식을 심어준 것. 짧은 역사를 어떻게 포장하고 마케팅하느냐에 따라 어떻게 브랜드의 가치가 달라지는지 가늠할 수 있는 좋은 예다.
럭셔리 브랜드 파워 불황에도 쑥쑥
전 세계 경제 불황에 이어 중국시장까지 성장이 주춤했지만 명품시장은 여전히 성장세다. 대표적인 명품그룹의 매출 신장을 살펴보면 전체 시장의 분위기를 짐작할 수 있다.
·에르메스
올 상반기 총 매출이 전년 대비 21.9% 성장했다. 의류와 시계 부문은 20% 이상, 주얼리 부문은 약 50%나 껑충 뛰어올랐다.
·LVMH
순이익이 전년 대비 28% 성장한 2조3000억원을 기록했다. 특히 그룹 매출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루이비통 브랜드가 크게 성장했다. 시계, 주얼리 부문은 13%, 유통 부문이 16% 성장했다.
·리치몬트
주얼리와 시계 부문에 강세를 보이며 총매출이 24%나 성장했다. 2010년 ‘Net-A-Porter’를 인수해 구축한 온라인 매출도 증가했다. 아시아와 태평양 지역, 특히 중국 내 수요 증가가 전체 리치몬트 그룹의 실적 상승에 영향을 미쳤다.
·PPR
상반기 매출 약 9조원으로 전년 대비 17% 성장했다. 순이익 약 6700억원. 중국을 비롯한 이머징 마켓의 매출이 20% 이상 증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