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인근 한 골프장 캐디로 근무하는 A는 최근 황당한 일을 겪었다. 라운딩 도중 쉬는 시간 고객 B가 별안간 자신이 차고 있는 시계가 얼마짜리로 보이느냐는 질문을 해왔다. 잘 모르겠다고 답하자 어처구니없는 답이 돌아왔다.
“당신의 10년치 월급을 모아도 못 살걸.”
국내 명품시장은 근 20년 동안 성장세가 꺾일 줄 몰랐다. 몇 차례 겪은 경제위기에도 꾸준한 상승곡선을 그려온 국내 명품시장은 6조원대를 내다보고 있다. 경제 발전과 함께 구매력이 커지면서 명품시장 성장과 함께 ‘경제 발전 과정의 필연적 현상’이라는 과시형 명품 소비 행태도 나타났다. 위신을 과시하기 위한 수단으로 명품을 택한 이들은 가계 수준에서 감당하기 힘든 카드빚에 일부 여성들의 경우 유흥업소로 내몰렸고 다수의 신용불량자까지 양산됐다.
기업형으로 제작된 ‘짝퉁’은 국내는 물론 일본이나 유럽 관광객들을 유혹했다. 일부 강남 아줌마들 사이에서는 ‘특SA급 짝퉁’을 파는 곳의 정보를 공유하기 위한 전문 ‘구매단’이 조직되기도 했다. 심한 경우 B씨의 사례와 같은 천박한 작태를 보이는 사람들도 간간이 목격되기에 이르렀다. 이러한 행태는 대중의 인식 속에 ‘명품’을 ‘사치품’으로 전락시켰다.
그러나 해외 명품 브랜드들은 자신의 상품이 사치품으로 전락한 것에 개의치 않았다. 한국 시장은 그동안 해외 명품 브랜드의 입장에서 좋은 말로 ‘블루오션’, 속된 말로 ‘만만한 봉’이었다. 치솟은 과시적 욕구와 허영심으로 창출된 수요에 가격이 비쌀수록 더 사려고 하는 소비심리인 ‘베블런 효과(Veblen Effect)’를 적극 활용해 다른 국가들보다 높은 소매가격을 책정했다. 그럴수록 매출은 더욱 늘었다. 깐깐해진 한국 소비자란 표현이 적어도 명품에 있어서만은 적용되지 않았다. 명품이 합리적인 소비 패턴을 무너뜨린 셈이다.
‘눈뜨고 당하지 않아’ 합리적 명품 소비문화 확산
구매력이 커지고 명품 수요가 증가하면서 국내 명품시장에 나타난 맥럭셔리(Mcluxury) 현상은 과시적 명품 소비 행태를 더욱 부추겼다. 일반 명품으로는 과시적 소비가 불가능해지자 더욱 고가라인의 희소한 위버럭셔리(Uber-luxury)를 경쟁적으로 구매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기도 했다. 현재 중국에서 이러한 위버럭셔리 선호현상으로 ‘샤넬’과 ‘에르메스’ 등의 고가 명품 브랜드가 불티나게 팔리고 있다고 한다.
그러나 최근 국내에서선 이러한 ‘과시적 명품 소비’ 문화가 점차 설 자리를 잃어가고 있다. 무절제한 명품 소비를 비판하는 목소리가 늘어난 것은 물론 원하는 제품의 가격을 비교하고 보다 저렴하게 구매하려는 사람들이 증가했다.
한 패션업계 전문가는 “2009년 금융위기 이후 유럽과 미국, 일본을 중심으로 확산된 과시적 소비를 부끄러워하는 럭셔리 셰임(Luxury Shame) 현상이 국내에도 퍼지기 시작했다”며 “실용성을 비교해 합리적인 가격으로 명품을 소유하려는 사람들이 늘어난 것”이라 분석했다.
또한 그는 “우리보다 한참 앞서 명품문화를 경험한 일본의 경우를 살펴보면 최근의 세대는 이제 더 이상 명품만을 고집하지 않는다. 이는 로컬 브랜드의 퀄리티와 디자인의 수준이 높아지면서 생긴 현상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나라도 점차 그러한 추세를 보일 것으로 예상된다”고 덧붙였다.
명품을 구매할 수 있는 채널이 늘어나며 합리적인 명품 소비문화의 확산은 더욱 가속화됐다. 백화점이나 면세점에 한정됐던 판매 루트가 훨씬 다양해졌다. 특히 온라인 시장의 성장이 눈에 띈다. 직수입 사이트는 물론 오픈마켓의 할인마케팅이 격해지는 가운데 소셜커머스 업체들도 눈독을 들이며 하나 둘 시장에 뛰어들고 있다.
중고 명품시장 역시 활성화됐으며, 최근에는 추석 선물로 편의점에 명품핸드백이 등장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소비자들은 이전처럼 고가의 명품만을 찾기보다는 낮은 가격으로 좋은 물품을 구매하기 위해 다양한 창구를 비교하기 시작했다.
박은관 시몬느 회장은 이에 대해 “최근 유럽과 미국 명품시장에서는 어포더블 럭셔리(Affordable Luxury) 브랜드가 트렌드로 떠오르고 있다”며 “한국도 머지않아 합리적인 명품소비문화가 정착할 것”이라 분석했다.
맥럭셔리(Mcluxury)
맥도날드와 럭셔리가 혼합된 신조어. 맥도날드 햄버거처럼 누구나 쉽게 구입할 수 있도록 명품이 대중화되는 현상을 지칭함.
위버럭셔리(Uber-luxury)
일반 명품보다 적게는 몇 배 많게는 수십 배 이상 비싼 초고가 명품을 의미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