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몽구 현대·기아자동차 회장의 첫 인상은 결코 재벌그룹 총수가 아니다. 세련된 외모와 화려한 언변을 구사하며 책상에 앉아 결재서류를 검토하는 전형적인 경영인의 모습을 떠올리기가 쉽지 않다. 오히려 작업복 차림으로 현장에서 일하는 모습과 그 후의 막걸리가 더욱 어울릴 것만 같은 이미지다. 그러나 지금 전 세계 자동차업계의 눈과 귀가 정몽구 현대·기아자동차 회장에게 집중되고 있다. 계열분리 꼭 10년 만에 달성한 괄목할 만한 성과 때문이다. 자산과 매출액 규모 3배 성장과 함께 현대·기아자동차 는 세계 자동차업계에서 ‘빅 5’의 위상을 갖추었다. 특히 글로벌 금융위기로 세계 경기가 추락하고 미국의 ‘빅 3’를 비롯해 자동차업체들의 고전 속에서도 현대·기아자동차 는 승승장구했다. 동력은 정몽구 회장이었다. 평가는 엇갈리지만 정 회장 특유의 리더십은 현대·기아자동차 그룹의 성과로 재평가되고 있다. 감추어진 정 회장의 리더십을 들여다본다.
낯익은 로고를 볼 수 있었다. 경기장 광고판은 물론 주요 장면의 리플레이 화면에 등장한 현대·기아자동차(이하 현대·기아차)의 로고가 그것이다. 월드컵이라는 세계적인 스포츠 행사에서 우리 기업의 로고가 전면에 등장한 것은 더 이상 새삼스러운 일은 아니다. 이미 2002년 한·일 월드컵부터 익숙해진 탓이다. 역대 세 번의 월드컵 후원으로 얻은 현대·기아차의 광고·홍보 효과는 막대했다. 브랜드 인지도 상승은 물론 친밀도와 매출에도 직접적이고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세계 자동차회사 중 유일한 후원사
현대·기아차는 월드컵 이외에 오는 2017년까지 유럽축구연맹(UEFA)의 유로대회를 공식 후원한다. 현대·기아차의 입지가 상대적으로 취약한 유럽 지역의 최대 스포츠 행사를 후원한다는 점에서 그 의미는 남다르다.
올림픽 혹은 월드컵과 같이 세계적인 스포츠 행사의 후원사로 참여한다는 것은 기업과 기업인들에게 ‘꿈’이다. 코카콜라의 경우에서 볼 수 있듯이 로컬 기업에서 글로벌 기업으로 도약하는 발판이 되기도 하는 한편 이미 글로벌 위상을 갖추었다는 증명이기도 하다. 때문에 월드컵과 올림픽의 후원사는 기업이 원한다고 모두 참여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또 후원사로 참여하는 기업은 전 세계적으로 고작 15개사 정도에 불과하다. 후원사로 참여하는 기업들이 천문학적인 규모의 후원금을 내놓아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효과는 아무도 장담하지 못한다. 후원금 규모가 워낙 막대할뿐더러 흥행 여부에 따라 전혀 다른 성적표를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즉 후원업체 신청만으로도 기업들이 고민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현대·기아차의 후원사 참여는 정몽구 회장의 어린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정 회장은 학창 시절부터 운동을 좋아했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특히 구기 종목을 즐겼던 정 회장은 그 중에서도 럭비를 좋아해 선수로 활약하기도 했다. 현대·기아차가 2008년부터 미국 프로미식축구(NFL) ‘슈퍼볼’ 중계방송 광고를 하고 있는 것은 익히 알려진 사실. 정 회장의 럭비선수 경력과 자연스럽게 오버랩된다. 월드컵과 유로대회 후원사 참여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정 회장은 아버지 고 정주영 명예회장과 동생인 정몽준 의원이 올림픽 유치를 위해 뛰었던 1980년대부터 세계적인 스포츠 대회 후원사 참여를 주장했던 것으로 알려진다.
이 같은 현대·기아차의 글로벌 스포츠마케팅은 비단 현대·기아차라는 기업의 활동으로만 그치지 않는다. 우리나라의 국가 위상과도 직결된다. 현대·기아차의 브랜드 인지도 상승은 곧 우리나라의 국가 브랜드 인지도 상승을 이끈다.
어눌한 말투와 외모
2000년 계열분리 당시 현대·기아차그룹의 자산총액은 36조1360억원, 매출액은 36조4460억원이었다. 16개 계열사를 둔 재계 순위 5위 기업이었다. 10년이 지난 현재 현대·기아차그룹의 자산총액은 지난 4월 기준 100조원을 넘어섰고 매출액은 94조6520억원으로 3배가량 뛰었다. 계열사는 42개로 늘었으며 재계순위도 삼성에 이어 2위로 올라섰다. 특히 세계 자동차 시장에서 빅 5로 올라선 한편 중형승용차 부문에선 미국 시장 점유율 10%를 돌파하기도 했다. 불과 10년 만의 성과라고는 믿어지지 않는다.
무엇이 현대·기아차의 폭발적인 성장을 가능케 한 것일까. 세계 자동차 전문가와 전문지 그리고 업계는 정몽구의 리더십에서 그 해답을 찾고 있다. 그들이 정 회장의 리더십에 주목하는 이유는 당연하다. 그들 세계에서 정 회장과 같은 리더십을 갖춘 최고경영자를 찾아보기 힘들다. 샤프하지 않은 외모, 달변도 아니고 섬세하고 치밀한 성격도 아니다. 그렇다고 그들이 가장 앞세우는 사교적인 스타일의 최고경영자도 아니다. 오직 정 회장만의 독특한 리더십이 그들의 관심을 끌고 있는 것이다.
사실 정 회장의 언변은 내세울 만한 솜씨가 아니다. 정 회장은 주제에 대한 핵심 단어 위주로 대화를 이끌어 가기 때문에 상대방이 집중하지 않으면 이해를 못하는 경우도 있다. 적어도 정 회장은 애플의 스티브 잡스처럼 깔끔한 외모와 막힘없이 술술 흐르는 말솜씨의 소유자는 아니다. 이는 비즈니스에서 절2010대적으로 불리한 조건이다. 최고경영자가 나서서 협상을 성사시켜야 할 때 정 회장과 같은 어눌한 말솜씨는 상대방으로 하여금 부정적 이미지를 갖게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 회장의 말솜씨에 다소 실망했던 이들도 경영능력을 보곤 자신의 판단이 섣부른 것이었음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과거 현대차에서 CEO를 역임한 한 인사의 말을 들어보자.
“인사철이 다가와 100여 명의 승진과 이동 간부의 명단을 가지고 갔어요. 그 많은 사람들을 다 알지는 못할 테니 대충 서류에 도장을 찍어줄 거라 생각했는데 웬걸. 한 사람 한 사람 너무나 정확히 알고 있는 거예요. 놀라 자빠질 뻔했습니다. 인사안 중 절반은 가위표를 받았고 다시 작성해야 했어요. 제가 정 회장을 너무 쉽게 봤구나 하는 자책이 들더군요.”
정 회장은 회사에서 벌어지고 있는 현안 모두를 파악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심지어 직원 개개인의 성향까지 꿰뚫고 있다고 한다면 과장일까. 현대차의 미국 앨라배마공장 건설 당시 일화도 있다. 당시 정 회장을 수행했던 한 미국인은 “무척 어눌한 말씨에다 평범한 한국 노인 같은 모습 때문에 처음엔 쉽게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일주일 정도 수행하며 설명하고 대화하면서 깜짝 놀랐습니다. 도대체 모르는 게 없었으니까요. 그 동안의 생각이 확 바뀌었습니다.”
정 회장은 임직원들과 함께 토론을 거쳐 합의에 따라 의사결정을 하는 스타일도 아니다. 물론 의견 수렴 과정은 거치지만 대부분 스스로 판단하고 스스로 옳다고 생각하는 일은 밀어붙인다. 그룹 내 임원 및 CEO 인사는 대표적이다. 정 회장의 예측 불가능한 인사는 줄곧 재계의 뒷말을 낳았다. 계열사 CEO는 물론 측근으로 분류되는 사람까지도 단번에 내치는 경우도 비일비재하다. 심지어 임명한 지 몇 개월 되지 않았는데도 불쑥 경질인사를 단행하기도 한다. 시도 때도 없는 인사라고 해 재계에서는 ‘수시인사’, ‘돌발인사,’ ‘벼락인사’라고까지 말하기도 한다.
마치 고 정주영 명예회장 시절의 현대그룹 인사를 보는 것 같다는 게 재계 관계자들의 시각이다. 1980년대까지 일선에서 경영을 지휘했던 고 정 명예회장은 퇴근시간을 앞두고 갑작스럽게 사장단 인사를 발표해 임직원을 놀라게 하곤 했다. 또 며칠 뒤에는 이를 뒤집는 인사가 발표되기도 했다. 때문에 승진은 물론 해고통보도 사무실이 아닌 외부에서 느닷없이 전해들은 경우가 허다했다.
현대차의 모 고위 임원 사례를 보자. 정 회장의 최측근이었던 그는 연고가 있는 후배 직원들을 모아 회사가 필요로 하는 각종 정보를 수집하는 등의 업무를 맡겼다. 훗날 이 사실을 알게 된 정 회장은 비록 회사 발전을 위한 일이라지만 사조직을 운영했다는 이유Magazine로 비서가 대신 전화로 그를 내쳤다. 그러나 현재 해당 임원은 정 회장과 멀리 떨어진 부서에서 근무하고 있다.
기아자동차 출신으로 현대·기아차그룹의 고위 임원을 지냈던 한 인사는 “방법론적으로 최고경영자의 리더십은 크게 인사권과 동기부여 두 가지로 나타난다”며 “정 회장의 경우 동기부여보다는 인사권 쪽에 무게가 실려 있다”고 말했다. 그 인사권이 다른 그룹 회장보다 좀 더 강력하다 보니 안팎에서 여러 부정적인 말들이 나오는 것일 뿐이라고 해석했다. 이를 두고 현대차 출신의 또 다른 인사는 이렇게 말한다. “간부나 측근으로 생각되던 사람도 주저하지 않고 인사조치하는 데에는 다 이유가 있습니다. 정 회장은 기본적으로 의리가 강한 분이에요. 몸 바쳐 충실하게 일한 사람에게는 반드시 보답합니다. 심지어 현찰을 듬뿍 쥐어주기도 합니다. 비록 자리에서는 물러나도록 하지만 먹고살 걱정은 하지 않도록 해주지요.”
김승년 구매총괄사장 빈소에서의 일화는 정 회장의 정과 의리가 가장 잘 드러난 사례다. 지난 7월18일 갑작스레 세상을 떠난 김 사장의 빈소를 정 회장은 19일 아침과 저녁 두 차례나 찾았다. 김 사장은 1977년 정 회장이 설립한 현대정공(현 현대모비스) 시절부터 정 회장을 보필해왔다. 충직한 부하직원을 잃은 안타까움을 정 회장은 두 차례 조문이라는 행동으로 보여주었다. 잠깐 다녀간 것이 아니라 오랜 시간 빈소에 머물며 유가족들과 함께 고인의 죽음을 안타까워했다.
지난해 초에는 현대제철 기술고문 자격으로 일관프로젝트 팀에 참여한 바 있는 독일인 기술고문이 사망했다는 소식을 자신에게 알리지 않았다는 이유로 불같이 화를 낸 일도 있다. 정 회장은 뒤늦게 유가족들에게 애도의 편지를 보내고 한국으로 초청해 극진히 대우했다고 한다. 정 회장의 이러한 면은 서구식 리더십에서는 찾아보기 힘들 뿐더러 서구적 사고방식으로는 이해하기도 힘들다. 교과서적인 리더십과도 거리가 멀다. 한국적·동양적 리더십이라고 할 수 있다. 만일 현대·기아차의 실적이 부진했거나 그저 그런 자동차 회사로 계속 남아 있었다면 정 회장의 리더십은 혹평을 받았을 것이다. 하지만 현대·기아차는 세계시장에서 고공행진하고 있다. 단점투성이처럼 보이지만 대단한 성과를 이뤄내고 있다는 것은 분명 그만의 힘과 장점이 있다는 것을 방증한다. 따라서 미국이나 유럽 등 해외 기업과 리더십 전문가들에게 정 회장의 리더십은 훌륭한 케이스 스터디감이다.
현장경영, 품질경영, 기술투자라는 3박자 리더십
현대·기아차는 그룹 출범 10년 만에 세계 빅 5에 올라섰다. 세계시장에서 점유율 5%를 넘기는 게 꿈이었던 것이 언제였느냐는 듯 현대·기아차의 세계시장 점유율은 이미 7%를 훌쩍 넘어섰다. 특히 2008년부터 글로벌 금융위기가 전 세계를 휘몰아치던 가운데서도 현대·기아차는 위축되지 않고 오히려 성장을 거듭해 왔다는 점에서 정 회장의 리더십은 한층 높이 평가받고 있다. 미국 자동차 회사 빅 3가 휘청거리고, 잘 나가던 도요타마저 리콜 사태와 경영난 등으로 어려움을 호소할 때 현대·기아차는 큰 폭으로 전진해나갔다. 정 회장의 리더십을 말할 때 현장경영과 품질경영은 빠지지 않는다. 여기에다 기술투자가 더해진다.
정몽구 회장의 현장경영은 오래전부터 몸에 밴 것이다. 1970년 나이 33세 때 현대자동차 서울사무소 과장으로 처음 일을 시작하면서부터 현장의 중요성을 체득한 정 회장은 지금까지 40년 동안 단 한 번도 ‘현장’을 소홀히 하지 않았다. 국내는 물론 해외출장도 한 달에 한 번꼴로 꼬박꼬박 갈 정도다. 정 회장은 현장을 찾아다니며 자연스럽게 많은 것을 얻었다. 현장 직원들과 스킨십을 하면서 그들을 격려할 수 있었고, 현장 상황과 품질을 직접 체크할 수 있었다. 또 현장의 다양한 의견도 들을 수 있었다.
정 회장은 생산직, 연구직 가릴 것 없이 전 임직원에게 기회 있을 때마다 품질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정 회장은 스스로 “품질은 우리의 자존심이자 기업의 존재 이유”라고 말할 정도로 ‘최고 품질’을 강조한다. 현대·기아차에서 신차가 나올 때면 늘 먼저 시승해보고 문제점을 지적하기도 한다. 2003년 8월, 오피러스 출시를 앞두고 남양연구소를 방문한 정 회장은 신차 오피러스에서 이상한 소음을 들었다. 임원들은 별것 아니라며 소음을 잡자면 예상보다 출시 시기가 훨씬 늦어질 것이라고 보고했다. 그러나 정 회장은 “이렇게는 못 팔아”라며 개선을 지시했다. 곧바로 오피러스 미세소음 제거 프로젝트 팀이 꾸려졌다. 비록 수출 일정이 40일이나 지연됐지만 결국 소음을 잡아냈다.
정 회장은 누구보다 연구·기술 인력에게 최고 대우를 해준다. 또 연구·기술 인력은 최고 브레인만 채용하며, 최고 브레인이라면 숫자에 상관없이 채용하는 데 아낌이 없다고 한다. 최고 품질은 최고 연구·기술에서 나온다는 신념이다. 정 회장이 품질을 얼마나 중요하게 생각하는지 단적으로 보여준다. 올 초 도요타 리콜 사태로 전 세계 자동차 시장이 떠들썩했을 때 정 회장은 “최고 품질의 차를 만들라”며 임직원들을 더욱 독려했다.
정 회장의 현장·품질경영은 스스로 부지런하지 않으면 불가능하다. 정 회장은 지금도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어김없이 오전 6시쯤이면 양재동 사옥으로 출근한다. 특별한 취미도 없이 늘 일에만 몰두한다. 뉴스를 꼬박꼬박 챙기면서 자동차 산업의 현황과 미래를 점검한다. 주말이나 휴일에도 정 회장은 항상 일만 생각한다고 한다. 회사의 모든 것을 알고 있고 직원들의 성향까지 전부 파악하고 있다는 것은 정 회장이 그만큼 부지런하고 공부를 많이 한다는 것을 증명한다. 직원들을 전부 파악하고 ‘수시인사’가 가능한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정 회장의 좌우명이 왜 ‘일근천하무난사(一勤天下無難事; 부지런하면 세상에 어려울 것이 없다)’인지 알 수 있다.
‘하면 된다’는 추진력과 자신감, 이른바 ‘뚝심경영’도 정 회장만의 리더십 특징이다. 그렇다고 무모하게 돌진한다는 게 아니다. 판단은 신중하되 결정은 빠르게, 한번 결정한 것은 ‘할 수 있다’는 자신감으로 끝까지 밀어붙인다. 이 같은 특징이 잘 나타난 예가 당진 일관제철소 준공이다.
부실기업 정상화 미다스의 손
정 회장은 쓰러져가는 기업을 인수해 정상화시키는 데도 탁월한 능력을 발휘했다. 1999년 회복 불능 상태에 빠져 있던 기아차를 인수해 지금과 같은 위치에 올려놓았다. 기아차는 현재 다양한 모델을 출시하며 세계시장에서 인정받고 있다. 기아차의 일부 모델은 현대차의 동급 모델보다 더 팔리기도 한다.
기아차 인수와 관련한 뒷이야기가 있다. 지금까지는 1998년 8월 당시 김대중 대통령이 정주영 현대그룹 회장을 불러 기아차 인수있다. 그러나 당시 기아차 인수 관련 업무라인에 있었던 한 관계자는 초기만 해도 현대차는 기아차 인수에 전혀 관심이 없었다고 했다.
“포드자동차와 대우그룹을 컨소시엄으로 삼성그룹이 기아차 입찰에 참여하게 된다는 사실에 정주영 회장과 정몽구 회장이 불같이 화를 냈습니다. ‘삼성이 기아차를 인수할 경우 현대차는 삼성과 경쟁해야 하고, 이때 발생하게 될 마케팅 비용은 엄청날 것이다. 또 현대차는 모든 역량을 국내 시장에 쏟아야 하고 글로벌 시장은 엄두도 내지 못한다’는 논리였습니다.” 만약 삼성이 기아차를 인수했다면 오늘날 현대차의 글로벌 빅 5 진입이 가능했을까.
정 회장은 또 2004년 한보철강을 인수해 지금의 현대제철로 성장시켰다. 한보철강 인수 당시 포스코와 경쟁에서 정 회장이 임원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인수 가격을 과감하게 높인 일화는 유명하다. 결국 정 회장은 한보철강을 인수하면서 꿈에 그리던 철강 사업을 시작했다. 또 일관제철소 준공으로 ‘철강-부품-자동차’라는 완성차업체 라인업을 구축했다.
최근 몇 년간 현대·기아차 노조가 잠잠한 것도 정몽구 회장의 리더십에서 기인한다고 해석하는 사람이 있다. 강성노조의 대명사격인 현대차 노조가 불과 몇 년 사이 조용해진 것은 무슨 이유에서일까. 현대차는 올해까지 2년 연속 ‘무분규 임금협상 타결’까지 이끌어냈다. 이상호 금속노조 연구위원은 “실리주의 성향의 노조집행부와 무엇보다 사회 분위기를 비롯해 강성노조 활동에 대한 상황이 좋지 않다”며 “노조 활동을 직접적으로 정 회장의 리더십과 연결 짓는 것은 무리”라고 말했다.
숙제로 남은 차세대 친환경·전기차 개발
현대·기아차의 앞날은 여전히 밝다. 이대로라면 2020년쯤에는 글로벌 빅 3도 가능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정 회장도 전 세계 유력 언론의 극찬을 받고 있다. <뉴욕타임스>는 “지구는 평평하다”며 정 회장의 리더십을 크게 다룬 바 있고 <포브스>도 “정 회장이 현대·기아차 성공의 원동력”이라며 추켜세웠다. <포춘> 역시 “신속한 의사결정이 현대·기아차의 성공요인”이라며 정 회장의 경영 스타일과 리더십을 소개했다. 그런가 하면, 미국 자동차 전문지 <모터트렌드>가 올해 초 발표한 ‘2010년 파워리스트’에서 정 회장은 3위를 차지했다. 파워리스트란 ‘자동차 산업에서 영향력 있는 인물’을 선정해 순위를 매긴 것이다. <오토모티브 뉴스>는 정 회장을 ‘2010년 아시아 최고 CEO’로 선정하기도 했다.
우려스러운 점도 있다. 차세대 친환경·전기차 분야에 대한 개발·발전 속도가 다른 글로벌 업체에 비해 느리다는 평가가 그 것이다. 현대·기아차는 지난 9월9일 전기차 ‘블루온(Blueon)’을 공개하며 2012년 말까지 2500대를 양산, 보급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차세대 친환경·전기차 분야에 상대적으로 투자가 소홀했다는 비판은 피할 수 없다. ‘글로벌 빅 5’라는 위상에 걸맞지 않다.
이와 관련, 강철구 한국자동차공업협회 이사는 “전혀 그렇지 않다”며 “차세대 친환경·전기차는 피해갈 수 없는 분야”라고 말했다. 김필수 대림대 자동차과 교수도 “아직 개발 속도가 늦지 않다”고 평가했다. 김 교수는 “전기차 쪽은 상용화되기까지 시간이 오래 걸린다”며 “이 때문에 늦어 보일지 모른다”고 덧붙였다. 현대·기아차가 글로벌 빅 5에 만족하지 않고 세계 자동차 산업을 주도하기 위해서는 차세대 친환경·전기차 분야의 개발 역시 결코 소홀히 할 수 없다. 정 회장은 물론 현대차 스스로도 잘 알고 있다. 정 회장의 리더십이 차세대 친환경·전기차 분야에서는 또 어떻게 발휘될지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