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이크 인 인디아’ 정책에 드라이브를 걸고 있는 인도는 세계 3위 경제 대국으로 떠오르면서 우리나라 기업들에 ‘기회의 땅’으로 여겨지고 있다. 이에 인도의 시장을 면밀하게 파악하는 것은 물론, 현지 맞춤형 전략이 무엇보다 중요해졌다. 하지만 인도에 진출한 모든 기업이 흥하는 건 아니다. 인도 정부의 보고서를 살펴보면 2014년부터 2021년까지 약 1만1000개의 외국 기업이 인도에 진출했고, 같은 기간 2783개의 기업이 인도를 떠나거나 폐업했다. 성장속도가 빠른 인도의 경제규모를 고려하면 꽤 많은 수의 기업이 실패를 맛본 셈이다.
삼성전자와 LG전자의 인도법인 실적은 최근 3년 연속으로 상승세를 그리고 있다. 인도 기업등록청(ROC) 자료에 따르면 삼성전자 인도법인(SIEL) 매출은 2020년 회계연도(2020년 4월~2021년 3월) 기준 10조9433억원, 2021년 12조2226억원에 이어 2022년 16조1804억원으로 대폭 증가했다. LG전자 인도법인 매출 역시 2020년 2조1731억원에서 2021년 2조6255억원, 2022년 3조1879억원을 기록했다. 3년 새 약 1.5배 가량 증가한 셈이다.
두 기업은 1990년대 중반 인도 시장에 진출한 이후 지속적으로 매출을 확대해왔다. 이미 가전과 스마트폰 시장에서 굳건한 1위를 지키고 있다. 두 기업의 성공에는 일본, 중국 등 경쟁기업보다 한발 빠른 시장 진출이 있다. 삼성전자의 한 관계자는 “일본 전자업체들은 인도에 진출했다가 상황이 여의치 않자 사실상 철수한 전례가 있지만, 한국 기업들은 인도 시장을 떠나지 않고 꾸준한 투자를 이어왔다”면서 “이런 사정이 인도인들의 마음을 사로잡은 배경”이라 설명했다.
실제 삼성전자는 1995년 국내 대기업 중 처음으로 인도 시장에 진출, 이후 30년간 꾸준한 투자와 생산능력 확대를 통해 현지 가전·스마트폰 시장에서 높은 점유율을 차지하고 있다. 현재는 뉴델리 인근 노이다와 스리페룸부두르에 최첨단 제조공장 2곳을 가동 중이다. 또 5개의 연구개발(R&D)센터, 삼성반도체인도리서치(SSIR), 디자인센터 등도 운영하고 있다. 일자리 창출도 인도 기업 최고 수준이다. 마케팅, 영업, R&D, 제조 등 다양한 분야에 약 1만8000명의 인력을 고용하고 있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인도 가전 시장 규모는 2018년 약 16조원 규모에서 2025년 28조600억원대로 성장이 예상된다”며 “중산층이 늘며 프리미엄 가전에 대한 수요도 높아지는 추세”라고 현지 상황을 전했다. 삼성전자는 인도 정부의 ‘Make in India’ 전략에 맞춰 연구개발, 생산시설을 갖추고 함께 성장하고 있다. 올 1분기 인도 스마트폰 시장 1위는 갤럭시. 2022년 4분기에 샤오미를 제친 이후 6분기 연속 1위를 수성하고 있다. 지난해 5G 스마트폰 시장점유율은 21%나 된다.
다만 2위인 중국 샤오미와의 격차는 단 1%포인트에 불과하다. 중국 업체들은 연달아 AI 스마트폰과 저가형 제품을 출시하며 시장점유율을 확대하고 있다. 3~5위 역시 비보, 오포, 리얼미로 모두 중국 업체다. 이에 삼성전자는 인도 시장 내에서 주류인 저가형 모델과 최근 인기를 얻고 있는 프리미엄 제품들로 투 트랙 전략을 선보이고 있다. 젊은 층의 프리미엄 스마트폰 수요가 높아지면서 플래그십 모델에도 힘을 주고 있다. 실제로 올해 초 출시한 플래그십 갤럭시 S24 시리즈는 인도에서 역대 S 시리즈 중 가장 많은 사전예약을 기록했다. 사전예약 시작 후 3일 만에 25만명 이상이 사전예약을 신청한 바 있다.
삼성전자의 시장 공략 비결은 인도 소비자를 겨냥한 제품 출시. 수제 요거트인 커드와 피클 등을 선호하는 인도인의 특성을 파악해 커드 코너를 마련한 냉장고 ‘커드 마에스트로’와 피클 모드를 내장한 전자레인지를 선보였고, 힌디어 UI를 적용한 AI 에코버블 세탁기를 출시했다. 모두 인도의 연구소에서 개발한 특화 기능들이다.
인도 가전 시장에서 1위를 달리고 있는 LG전자는 1997년 인도에 진출했으며 노이다와 푸네에 생산기지를, 벵갈루루에 소프트웨어연구소를 두고 있다. LG전자의 전체 매출에서 인도법인 매출 비중은 2022년 기준 3.8%에 달한다.
LG전자의 인도법인은 내수 시장에서 판매되는 제품 외에 중동, 아프리카 등지에 수출하는 TV, 냉장고, 세탁기, 에어컨 등을 생산하고 있다. 인도 진출 첫해인 1997년과 비교하면 무려 60배나 늘어난 수치다. 품목 별로 살펴보면 지난해 LG전자는 인도 OLED TV 시장에서 64.2%의 점유율을 기록하며 수위에 올랐다. 광파 기능을 적용한 전자레인지는 40% 이상의 점유율을 올렸다. 인도 에어컨 시장 점유율도 31%로 1위. 올 1분기에는 에어컨 100만대 판매기록을 세우기도 했다. 업계에선 “LG전자의 사회공헌이 현지에서 주목받고 있다”고 평가한다. 2017년부터 진행 중인 시각장애인 무료 개안 수술 지원 캠페인 ‘카레이 로시니’, 식사를 거르는 아이들을 위한 ‘꼬르륵 소리를 없애요(Mute the Growl)’ 캠페인, 물 부족 문제 해결을 위한 저수지 개간사업 등이 주요 사업. 특히 2021년 팬데믹 시기에 인도 내 10여 개 도시 임시병원에 60억원을 지원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여기에 LG전자는 새로운 사업 거점을 설치하며 본격적인 인도 시장 공략에 나섰다. LG전자는 최근 인도 첸나이에 사업 거점인 ‘비즈니스 이노베이션 센터(BIC)’를 신설했다. 노이다·뭄바이·벵갈루루에 이어 인도에서만 4번째 BIC를 세운 것이다. BIC는 병원·학교·사무실 등에 특화된 제품을 고객이 직접 경험할 수 있는 LG전자의 B2B 쇼룸이다. LG전자는 인도에서 B2B 매출 비중을 25%까지 높이겠다는 목표도 세웠다. 시장조사업체 옴디아에 따르면 LG전자는 지난해 인도 OLED TV 시장에서 점유율 64.2%를 기록했다. 이같이 높은 점유율을 바탕으로 인도 콘텐츠 시장에서도 장악력을 키워 나가고 있다. 지난해 말에는 영어·힌디어·텔루구어 등 8개 언어로 콘텐츠 서비스를 제공하는 LG 채널을 열었다. 인도 중산층 고객을 공략하면서도 TV·콘텐츠에서 시너지를 내겠다는 목표다.
인도 자동차 시장 공략에 나선 ‘현대차그룹’의 성장세는 좀 더 드라마틱하다. 1996년 인도 시장에 진출한 현대차는 지난해 누적 판매량 824만대를 기록했다. 2019년부터 판매를 시작한 기아도 연간 20만대 판매량을 기록하며 인도 시장의 주요 완성차 브랜드로 떠올랐다. 현대차 인도법인의 판매량은 2021년 63만5413대, 2022년 70만811대, 2023년 76만5784대로 해마다 늘고 있다. 지난해 현대차의 인도 시장 점유율은 14.9%, 기아는 4.4%로 각각 3위와 6위에 이름을 올렸다. 벤츠, BMW, 아우디 등 독일 3사의 점유율 합이 약 0.5%인 점을 감안하면 27년 만에 일궈낸 괄목할 만한 성과다.
현대차그룹(현대차+기아)의 점유율은 일본과 인도 합작사인 마루티스즈키에 이어 2위를 기록 중이다. 차종별로 살펴보면 2015년 7월에 출시된 인도 전략형 SUV ‘크레타’는 올 1분기에 누적 판매량 100만대를 돌파하며 국민차 반열에 올랐다.
현대차와 기아는 인도 시장에서의 지배력을 공고히 하기 위해 현지 맞춤형 신차를 지속적으로 선보이고 있다. 지난해 7월 출시한 ‘엑스터’는 출시 후 5개월간 3만9000대 이상 팔리는 등 큰 인기를 끌었다. 현대차의 인도 전략형 모델 엑스터는 ‘2024 인도 올해의 차’로 선정되기도 했다. 박철완 서정대 자동차학과 교수는 “현대차가 인도에서 현지 맞춤형 전략을 펼치는 건 인도의 경제구조나 소득수준을 고려해 이에 적합한 모델을 상품으로 기획하는 것”이라며 “현대차·기아는 인도 시장에 특화된 상품을 기획하고 그것을 꾸릴 수 있는 개발력과 다양한 제품군이 있다”고 말했다.
현대차 인도법인의 기업공개(IPO)도 화제다. 현대차는 지난 6월 17일 “인도 현지 종속회사인 현대HYUNDAI MOTOR INDIA LIMITED(HMI)를 인도 증권 시장에 상장하기 위해 인도증권거래위원회(SEBI)에 IPO 관련 예비서류인 DRHP를 제출했다”고 공시했다. 이번 IPO를 통해 현대차는 보유 중인 인도법인 주식 8억1200만주 중 17.5%에 해당하는 1억4200만주를 매각할 전망이다. 신주 발행 없이 기존 주식을 공개 매각하는 방식이다. 현대차가 조달할 수 있는 금액은 약 30억달러(약 4조원)로 예상되고 있다. 현대차는 이번 IPO를 통해 향후 인도를 대표하는 모빌리티 기업으로 도약한다는 구상이다. 지난 1996년 인도법인을 설립한 현대차는 첸나이 제1·2공장에 이어 지난해 8월 제너럴모터스(GM)로부터 푸네 공장을 인수해 설비 개선을 진행 중이다. 올 5월에는 수소자원센터(HRC) 설립과 전기차(EV) 개발 등에 618억루피(약 9800억원) 규모의 투자도 단행키로 했다. 지난 4월 현대차 인도권역본부 델리 신사옥을 방문한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은 “아시아, 중동, 아프리카 등으로 사업을 확장하는 과정에서 인도를 글로벌 수출 허브로 육성할 것”이라며 “인도의 중요성을 고려해 앞으로 더 큰 역할을 해낼 수 있도록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고 밝혔다.
평균 연령 28세, 25세 미만의 젊은 인구가 전체 인구(14억4000여만명)의 40%를 차지하는 인도는 저출산으로 내수 성장 한계에 직면한 국내기업들에는 매력적인 시장이다.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국제문화교류진흥원이 26개국 현지인 중 한류 경험자를 대상으로 한 ‘2024 해외 한류 실태조사(2023년 기준)’를 보면 한류 경험자의 1인당 월평균 한국 문화콘텐츠 소비량은 11.6시간이었으며 국가별로 보면 인도(18.6시간)의 평균 소비시간이 가장 길었다. 이처럼 최근 K-팝, K-드라마와 같은 한류 콘텐츠의 인기 등 우호적인 시장 환경이 조성되면서 인도에 진출하거나 진출을 준비 중인 기업이 늘고 있다. 식음료업종이 대표적이다. 글로벌 통계 플랫폼 스태티스타에 따르면 2024년 인도 식품 시장은 9973억달러(약 1373조원)에 달할 것으로 전망된다.
국내 식품업계에서는 롯데웰푸드가 가장 먼저 인도에 진출했다. 롯데웰푸드는 2004년 현지 제과업체인 패리스를 인수하고 건과 법인 롯데인디아를 설립해 운영하고 있다. 롯데웰푸드는 현지 식문화를 반영해 마시멜로에 사용되는 동물성 젤라틴을 식물성 원료로 대체해 채식주의자용 초코파이를 개발해 판매했다. 이에 따라 인도 현지에서 초코파이 시장 점유율 약 70%로, 1위를 차지하고 있다. 최근에는 글로벌 시장 매출이 2000억원에 달하는 롯데의 빼빼로 브랜드 첫 번째 해외 생산기지로 인도를 선정하고, 하리아나 공장에 빼빼로 생산을 위한 약 330억원의 신규 설비 투자를 결정했다. 오리온도 인도 시장에 진출해 사업 영역을 넓히고 있다. 오리온은 2018년 인도법인 설립 후 2021년 라자스탄 공장을 세우며 사업을 본격화했다. 오리온 인도법인 매출은 2021년 31억원에서 2022년 136억원으로 크게 늘었고 지난해 205억원으로 계속해서 성장하고 있다. 인도 식문화를 반영한 꼬북칩 5종을 출시해 좋은 반응을 얻고 있으며 지난 2월에는 현지 K-문화 열풍에 발맞춰 ‘K-스낵’ 김치맛, 불닭맛 2종을 내놨다.
라면 등 국내 가공식품 기업들도 인도 시장 진출을 위한 발판 마련에 나서고 있다. 농심은 지난해 수출 전용 제품인 신라면 치킨을 인도에 선보였다. 신라면 치킨은 소고기를 베이스로 만들어진 기존 신라면과 달리 닭고기를 베이스로 만들어진 제품으로, 힌두교의 영향으로 소고기를 먹지 않는 현지인을 고려해 출시됐다. 앞서 오뚜기는 2018년 소고기 등 육류 성분을 완전히 빼고 채소 등 식물성 재료만 사용한 채식주의자용 진라면을 만들어 인도에 수출하기 시작했다. 또 한국 식품으로는 처음으로 인도 홈쇼핑 채널에 진출해 진라면을 판매했다. 더불어 오뚜기 진라면은 모델인 방탄소년단(BTS) ‘진’ 효과로 현지에서 최근 큰 인기를 끌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삼양식품은 인도에 불닭볶음면 등 다양한 제품을 수출하고 있다. 식품업계 관계자는 “인도는 한류의 영향으로 한식에 대한 관심도가 계속 높아지고 있는 곳이고 한국 식품에 대한 우호적인 환경이 조성된 만큼 현지화 전략을 잘 마련해 진출하면 미래 성장 동력 확보가 가능한 곳”이라고 말했다.
SK텔레콤의 메타버스 서비스 ‘이프랜드’의 해외 이용자 비중이 가장 높은 국가는 인도다. 이는 인도의 K-팝 선호도, 문화의 영향이 큰 것으로 분석된다. 이에 SK텔레콤 이프랜드는 한국, 인도, 인도네시아 출신 현역 K-팝 아이돌 3인을 뽑아 만든 유닛 그룹 ‘트리플 아이즈’를 선보였다. 지난 2월부터 인도네시아, 인도, 미국, 필리핀 등 각국 유저들이 팬클럽명, 음원 콘셉트 등 트리플 아이즈의 제작 과정에 참여했다.
크래프톤과 데브시스터즈 등 국내 게임업계도 인도 시장 진출에 열을 올리고 있다. 인도의 경우 많은 인구수와 젊은 층이 많다는 것이 이점으로 작용한다. 크래프톤은 핵심 지적재산권(IP)인 배틀그라운드를 현지화해 배틀그라운드 모바일 인디아(BGMI)를 출시했다. BGMI에 발리우드 인기 배우 ‘란비르 싱’ 캐릭터를 추가하거나 협업을 통해 발리우드 영화 콘텐츠를 게임에 담는 등 맞춤형 전략을 구사한 것이 특징이다. 크래프톤은 인도 현지에서 저사양 스마트폰 게임의 수요가 높다는 것을 파악해 데브시스터즈와 ‘쿠키런’ 퍼블리싱 계약을 체결하기도 했다.
KB·신한·하나·우리·농협 등 5대 시중은행은 인도에 지점을 내고 영업을 이어오고 있다. 은행들은 인도에 진출한 국내 기업의 자금 공급 지원에 주력하며 강점인 디지털금융 서비스 등으로 현지 리테일 영업도 확대할 계획이다. 은행권 관계자는 “한국 기업의 대인도 투자가 크게 증가하는 상황으로 인도를 서남아시아 진출의 거점 점포로 삼고 나아가 중동, 북아프리카 및 유럽 시장을 향하는 교두보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고 말했다.
5대 은행 중 가장 진출이 빨랐던 은행은 신한은행이다. 신한은행은 1996년 인도 뭄바이에 첫 지점을 내고 영업을 시작했다. 국민은행은 2019년 구루그람 1개 지점을 열었으며 첸나이, 푸네 지점 신설을 추진하고 있다. 농협은행은 지난해 노이다지점을 개점하며 영업을 시작했다. 신한은행은 국내 시중은행 중 처음으로 인도 기업에 대한 지분투자를 단행했다. 비은행 금융 시장에서 학자금대출 1위 기업인 HDFC 크레딜라와 지분인수 계약을 체결했다. 하나은행은 인도 최대 은행과의 업무협약으로 투자은행(IB)·무역금융 협업 등 다양한 글로벌 사업을 추진할 수 있게 됐으며 성장하는 인도 내에서 선제적으로 시장을 선점하겠다는 계획이다. 우리은행은 각 지역의 장점을 활용해 현지 영업력을 강화한다. 우리나라 제조업체가 진출한 푸네와 인도 수출 점유율 1위 항만 지역인 아마다바드에 지점을 준비하고 있다. 농협은행은 인도 진출이 가장 늦었지만 강점인 농업과 공공금융 능력을 활용해 차별화한다.
스타트업으로 출발해 현지 소액 대출 1위를 달성한 기업이 있다. 밸런스히어로는 지난해 매출 845억원, 영업이익 160억원을 낸 토종 스타트업이다. 특히 매출이 발생하기 시작한 2020년부터 지난해까지 밸런스히어로의 매출 성장률은 904%에 이른다. 게다가 2년 연속 흑자를 기록했다.
[김병수 기자 · 안재형 기자]
[본 기사는 매경LUXMEN 제166호 (2024년 7월)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