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내내 이어질 빡빡한 선거 일정 가운데서도 가장 주목받고 있는 것은 단연 미국 대선이다. 대통령 선거는 11월로 예정돼 있지만 대통령 후보를 선출하고 선거운동을 하는 과정에서 1년 내내 글로벌 경제를 뒤흔들 이슈가 될 것이다.
미국 대선이 특히 주목받는 분명한 이유가 있다.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 때문이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공화당 예비선거에서 압도적 우위를 점하며 강력한 대선 후보로 떠올랐다. 더욱이 트럼프 전 대통령은 이미 91개의 범죄 혐의로 4건의 형사사건에 기소돼 있다. 11월 대선까지 선거 기간 내내 ‘사법 리스크’가 트럼프 전 대통령을 따라다닐 수밖에 없다. 하지만 각종 미국 대선 가상 대결 조사에서 조 바이든 대통령이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에게 전국 평균 2%포인트가량 뒤지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지난 12월 15일 의회전문매체 ‘더힐’이 전국 단위에서 실시된 497개 여론조사의 평균을 집계한 결과, 바이든 대통령 평균 지지율은 41.8%로 트럼프 전 대통령(43.7%)보다 1.9%포인트 낮았다. 바이든 대통령은 공화당의 또 다른 경선 주자인 론 디샌티스 플로리다 주지사와 대결 시에는 평균 42.2%의 지지율로 디샌티스 주지사(40.9%)를 1.3%포인트 앞섰다. 가장 최근 이뤄진 이코노미스트와 유고브의 12월 9~12일 조사의 경우 바이든 대통령과 트럼프 전 대통령 지지율은 나란히 43%로 동률을 기록했다. 라스무센리포트가 지난 12월 6~10일 실시한 조사에서는 트럼프 전 대통령이 48%의 지지율로, 바이든 대통령(38%)을 무려 10%포인트 앞섰다.
대선에서 리턴 매치가 유력한 바이든 대통령과 트럼프 전 대통령은 그간 각종 조사에서 엎치락뒤치락하는 지지율 추이를 보이다, 최근 들어서는 공화당 경선에서 다른 주자들을 압도적으로 따돌린 트럼프 전 대통령이 기세를 몰아 바이든 대통령에게 우위를 점하는 경우가 빈번해지고 있다. 이번 여론조사 결과는 특히 2024년 1월 15일 치러질 아이오와 코커스를 몇 주 남겨놓지 않은 상황이어서 더욱 주목을 받고 있다. 경선 초반의 흐름이 공화당 전체의 여론을 형성하는 데 매우 강력한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워싱턴포스트(WP)는 “최근 43년 동안 트럼프 전 대통령만큼 여론조사에서 당내 경선을 리드한 후보는 없었다”며 “트럼프 전 대통령의 입지는 이례적으로 강력하다”고 분석했다.
이와 같은 상황에서 조 바이든 대통령 또한 ‘나이 리스크’가 부각되며 재선 가능성에 먹구름이 드리워지고 있다. 현재 바이든 대통령은 81세다. 트럼프 대통령도 77세이긴 하지만 ‘나이’를 부각할 경우 바이든 대통령이 불리할 수밖에 없다. 특히 바이든 대통령의 재선 가능성을 가장 어둡게 만들고 있는 요인은 다름 아닌 경제다.
다른 선진국과 비교해 경제 지표는 상대적으로 양호하고, 일자리 창출로 실업률 또한 매우 낮지만, 유권자들의 평가는 상반된다. 지난 11월 초 블룸버그의 여론조사에 의하면 바이든의 경제 정책을 지지한다는 답변(35%)은 트럼프 전 대통령의 경제 정책에 대한 지지(49%)보다도 낮은 것으로 나타난다.
1기 때의 학습 효과를 바탕으로 2기에는 베테랑 직업 관료 대신 충성파인 ‘마가(MAGA)’ 위주로 내각을 채울 가능성이 크다는 전망이 제기되고 있다. 마가는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Make America Great Again)’의 앞 글자를 딴 말로 극렬 트럼프 지지자들을 일컫는다.
이렇게 되면 지난 2017~2021년 집권 당시의 ‘주고받기식 동맹관계’ ‘보호무역주의’ ‘인권 및 민주적 절차에 대한 경시’와 같은 성향은 더욱 거리낌 없이 드러나게 될 것이다. 이는 필연적으로 미국과 세계에 큰 혼란을 야기하게 될 것이라는 분석이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재선에 성공해 47대 미국 대통령이 되기 위해 ‘어젠다 47’이라는 공약을 발표했다. 트럼프는 어젠다 47을 통해 바이든 행정부가 추진해온 자동차 연비 규제 및 전기차 의무판매 비중을 없애겠다고 밝혔다. 이어 IRA를 통해 중국 배터리 회사가 보조금을 받는 일이 생기지 않도록 하겠다고 강조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의 재선 공약인 ‘어젠다 47’의 핵심은 미국 중심주의다. 경제 정책 면에선 자국 산업과 소비자를 보호하고 중국을 견제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 경제적 효율성을 중시하면서 조 바이든 행정부의 친환경 정책을 폐기하겠다는 점도 분명히 했다.
당장 가장 먼저 변화가 예상되는 건 바이든 대통령의 핵심 경제 정책인 IRA와 기후 관련 정책이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재집권하게 되면 IRA를 백지화하고 화석연료 생산을 극대화할 것이라고 호언장담하고 있다. 한국은 IRA 이후 미국에 가장 많이 투자한 국가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가 보도한 바에 따르면 2022년 8월 이후 현재까지 발표된 미국에 대한 해외 기업의 투자 계획 중 1억달러(약 1340억원) 이상 규모를 집계한 결과 한국이 20건으로 가장 많았다.
EU 회원국 기업들의 프로젝트가 19개로 한국의 뒤를 이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의 승리는 전기차 시장에도 악재다. 2030년까지 미국에서 판매되는 신차의 50% 이상을 전기차로 전환하겠다는 바이든 행정부의 계획을 철회할 가능성이 높다. 가뜩이나 둔화 우려가 나오고 있는 전기차 시장에 큰 악재가 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중국뿐 아니다. 전방위적으로 미국의 보호무역주의는 거리낌 없이 그 장벽을 높여갈 것이다. 현재 미국의 평균 관세는 약 3%다. 하지만 현재 트럼프 캠프는 모든 수입품에 대해 10%의 보편적 기본 관세를 부과하겠다는 방침이다. 이는 현재 수준과 비교해 3배가 넘는 관세를 매기겠다는 것이다. 이로 인해 수입 물가가 상승하고 인플레이션이 고조될 것이란 우려가 쏟아지고 있다. 상대국의 관세 보복 또한 한층 강력해질 수 있다. 팬데믹 이후 간신히 인플레이션을 낮추는 데 성공한 세계 경제에 한순간 ‘찬물’을 끼얹을 수 있는 정책이다.
이와 함께 트럼프 전 대통령은 “바이든 행정부가 재가입한 파리협정을 재탈퇴하겠다”고 선언했다. 또 친환경 에너지 생산을 늘리려는 바이든 행정부의 방침에 제동을 걸 예정이다. 풍력과 태양광 대신 에너지 효율성이 높은 원자력과 전통적 석유, 천연가스 생산을 늘리겠다는 방향을 세웠다. 특히 중국과의 경제 전쟁이 확대될 경우 중국과 미국뿐 아니라 글로벌 경제에도 큰 변수가 될 전망이다. 이로 인해 동맹국들까지 예측 불가능한 트럼프 전 대통령보다 중국의 시진핑을 덜 위협적으로 바라보게 된다면 미국의 안보에 심각한 위협을 끼치게 될 수 있다는 것이 그들의 경고다.
트럼프는 ‘미국의 가장 큰 적이 누구냐’는 질문에 러시아나 중국이 아니라 EU라고 답을 하는 인물이다. 미국이 유럽에서 혈세를 쓰는 것을 ‘나쁜 거래’라고 표현한 바 있다. 우크라이나 전쟁을 지지하는 미국의 입장을 하루아침에 번복하고 ‘집단 안보’를 핵심으로 하는 NATO의 약속을 깨뜨리는 상황이 실제로 벌어질 수도 있는 것이다. 영국의 이코노미스트는 “미국만을 우선하는 트럼프의 정책이 글로벌 경제에도 악재가 될 것이다”라며 “세계 무역전쟁을 촉발하고 인플레이션을 악화시킬 것이다”라고 강력하게 경고했다.
보호무역주의의 장벽을 높이는 트럼프의 경제 정책은 한국 경제에도 위기가 될 수 있다. 당장 트럼프 전 대통령이 IRA를 백지화하고 나설 경우 미국 내 투자를 늘려온 국내 기업들의 입장에선 비상이 걸리게 된다. 만약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이 장기화할 경우 트럼프 집권은 중동 정세를 더 큰 혼란으로 몰아넣을 가능성이 크다. 미국은 현재 이스라엘을 지지하는 동시에 팔레스타인 주민 피해를 막기 위한 인도적 차원의 일시 휴전을 촉구하면서, 아슬아슬하게 균형적인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 이코노미스트는 “트럼프는 중동의 분쟁이 격화할 위험을 아랑곳하지 않고 거리낌 없이 이스라엘을 지지할 가능성이 크다”고 했다. 우방을 위해 돈 쓰기를 싫어하는 트럼프는 중국·대만 문제에 연루되는 것도 꺼린다.
[김병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