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의 해라고 불릴 만큼 전 지구촌이 선거로 뒤덮일 2024년에서도 단연 돋보이는 선거 지역은 아시아다. 선거의 결과가 해당 국가에만 그치지 않고 국제 질서 자체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곳들이 많기 때문이다. 먼저 눈에 띄는 것은 2024년 1월로 예정된 대만 대선이다. 미·중 갈등이란 글로벌 패권 다툼까지 얽혀, 선거 결과에 세계가 초미의 관심을 보내고 있다. 대만 총통을 뽑는 대선은 예부터 독립파와 친중파가 대립해왔지만, 이번 선거는 그 정도가 더욱 심하다. 중국이 대만 침공을 해서라도 통일을 하겠다는 뜻을 여느 때보다 강하게 내비치는 가운데, 미국은 아시아의 전략적 요충지인 대만을 중국에 넘겨줄 수 없다며 맞대응하고 있다.
애초 대만 선거는 집권 민주진보당(민진당) 라이칭더 현 부총통이 손쉽게 승리를 따낼 것 같은 분위기로 흘러가다가 중도 성향의 민중당 커원저 후보가 선전을 하며 국민당의 허우유이 신베이 시장과 함께 3자 구도를 형성했다. 이후 야권 후보 간 단일화 논의까지 이어지며 집권 여당 후보를 위협했지만 결국 무산, 3자 구도로 선거가 진행되고 있다. 하지만 라이칭더 후보가 안심하기도 잠시, 허우유이 후보가 뒷심을 발휘하며 1, 2위 의 박빙 구도가 펼쳐지고 있다.
대만 인터넷 매체 ‘미려도전자보’가 2023년 12월 1일과 4∼5일 20세 이상 성인 176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바에 따르면 집권 민진당 라이칭더-샤오메이친 후보의 지지율은 38.3%로 국민당 허우유이-자오사오캉 후보(31.4%)를 오차범위 밖에서 앞섰다. 하지만 조사가 실시될수록 두 후보 간 지지율 격차는 계속 좁혀지고 있다. 미려도전자보가 지난 12월 12일 발표한 여론조사에서는 라이칭더 후보(35.1%)와 허우유이 후보(32.5%)의 지지율 격차가 오차범위(±2.8%포인트) 내로 좁혀졌다. 라이칭더 후보 지지율 하락의 주요 원인으로 중도 성향 커원저 후보의 선전이 꼽히고 있다.
중국으로서는 친중 후보의 선전이 반갑다. 특히 이번 선거에서 친중 후보가 막판 역전극을 펼친다면 미·중 간 간접 대결에서 승리하는 것이나 마찬가지기 때문이다. 또한 막강한 무력을 가졌을지라도 전쟁은 중국에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어 대만 지도자가 친중 성향이라면 양측 관계를 풀어나가기에 더 수월한 측면도 있다.
특히 세계 첨단 반도체 산업의 패권을 내세우며 기술 제재 정책을 통해 거세게 압박하는 미국으로부터 한숨 돌릴 계기를 마련할 수도 있다. 미국의 글로벌 반도체 지형도 재편 구상에서 대만은 핵심 위치에 있는데, 대만에 친미 정권이 계속 들어선다면 중국은 미국과의 기술 패권 전쟁에서 계속 열세를 면치 못할 수 있는 것이 사실이다.
이 때문에 중국은 대만과 통일을 이루진 못하더라도 적어도 대만에 ‘친중 정권’이 들어서야 한다는 절박감을 갖고 있다. 지난 11월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가진 정상회담에서 “대만 문제는 항상 중미 관계에서 가장 중요하고 가장 민감한 문제”라면서 “미국은 대만 독립을 지지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구체적인 행동으로 구현해야 하고, 대만 무장을 중단하고 중국의 평화통일을 지지해야 한다”고 주장한 것이 단적인 예다.
중국은 말로만 그치지 않는다. 겉으로는 중립을 표방하는 중국이지만, 사실상 전방위적으로 친중 후보를 위한 선거 지원 수단을 짜내고 있다. 대만해협의 안보 위기란 전통적 방법을 동원하는 것은 물론, 대(對)대만 무역 제재 또는 양안경제협력기본협정(ECFA) 제한·파기 위협 등 경제적 협박도 수시로 해댄다. 동시에 당근도 내민다. 중국은 최근 유해 생물 검출을 이유로 수입을 중단했던 대만산 열대과일 파인애플석가를 2년여 만에 수입키로 하는가 하면, 중국인들이 개별적으로 대만 여행을 할 수 있도록 방침을 바꿨다.
심리전도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다. 이와 관련해 외교 전문지 더디플로맷은 “모닝커피를 마시며 당신이 좋아하는 소셜미디어 플랫폼을 보고 있는데, 갑자기 대만 인플루언서가 중국과의 통일을 우호적으로 말한다면 이는 사고가 아니라 치밀하게 계획된 전략”이라고 전했다. 더디플로맷은 “2000년대 들어 중국은 대만 유권자들을 국민당으로 끌어들이기 위해 비슷한 경제적 유인책을 계속 사용해오고 있다”고 분석했다.
대만의 글로벌 고립 전략도 가속화됐다. 민진당 집권 기간 동안 대만과 수교를 맺었던 9개국이 단교를 했다. 이 같은 중국의 대만 선거 간섭 행위에 대해 미국도 가만히 있지는 않는다. 샌프란시스코 정상회담에서 조 바이든 미 대통령은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에게 “대만 선거 절차를 존중하라”며 강하게 맞받았다. 미국은 중국이 무력을 동원해 대만 위협 행위를 하면 그에 준하는 수준의 맞대응도 불사할 것이라며 으름장을 놓고 있다.
미국의 입장에서도 대만은 절대 중국에 양보할 수 없는 지정학적 요충지다. 대만에서 중국의 지배력이 높아진다면 일대일로를 통한 중국의 서진 정책은 더욱 탄력을 받을 것이고, 원유 등 국제적으로 주요한 수송로인 대만해협에서 미국의 입지는 예전보다 좁아질 수밖에 없다. 미국이 남중국해를 향해 ‘항행의 자유’를 내세우며 중국과 맞대응을 할 수 있는 것도 대만해협의 안정성이 보장되기 때문이다.
현재 대만의 선거 구도는 미·중 어느 측도 안심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 보는 것이 맞다. 여당 후보가 1위를 달리지만 언제든 뒤집히는 상황이 올 수 있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해 30년 이상 양안 관계를 연구해온 강준영 한국외대 교수는 “라이칭더 후보가 유리한 것은 맞지만 국민당 후보가 역전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분석한다. 국민당 후보와 단일화를 시도했던 커원저 후보가 변수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커원저 후보는 젊은 층의 지지세가 강한데, 선거 막판 사표를 우려한 젊은 층의 표가 국민당 후보로 쏠릴 수 있다는 것이다.
이 같은 기류는 대만의 국내 경제 상황과 무관치 않다. 반도체 대란 속에 대만의 국제적 위상은 높아졌지만, 정작 대만 젊은 층의 경제적 난관은 잘 해결되지 않고 있다. 청년 실업률이 전체 실업률을 크게 웃도는 가운데, 뛰는 부동산 가격에 대만 젊은이들의 절망감은 더 커지고 있다. 당연히 이는 현 정권에 대한 불만으로 이어지고 있다.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에 따르면 타이베이와 대만 전역의 주택 가격은 특히 1인당 국내총생산과 임금을 고려할 때 세계에서 가장 높은 수준에 속한다. 또 대만의 급여는 주거비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전체 경제 상황 또한 좋지 않다. 자유시보에 따르면 대만의 2023년 국내총생산 성장률 전망치는 1.42%로 하향 조정됐다. 이는 글로벌 금융위기가 발생한 2008년 경제성장률(–1.61%) 이후 14년 만에 최저 수준이다.
국제사회에서 대표적 친한 국가인 인도네시아서 2월에 대선과 총선이 동시에 열린다. 가장 큰 관심사인 대권 후보에는 현 국방부 장관이자 그린드라당 총재인 프라보워 수비안토, 간자르 프라노워 전 중부 자바 주지사, 아니스 바스웨단 전 자카르타 주지사의 3파전이 전개되고 있다.
현재 가장 주목을 받고 있는 이는 프라보워 수비안토 장관이다. 조코 위도도(이하 조코위) 대통령의 장남인 기브란 라카부밍 라카 수라카르타 시장과 짝(부통령)을 이뤄 대선에 나섰기 때문이다. 조코위 대통령은 3선을 금지하는 규정 때문에 출마를 하지 못하는데, 여전히 국민적 인기가 높다. 이런 그의 아들이 프라보워 장관의 러닝메이트가 되었다는 것은 사실상 조코위 대통령의 후광을 등에 업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에 힘입어 프라보워 장관의 지지율은 여론조사에서도 선두를 달리고 있다. 여론조사기관인 인디케이터폴리틱이 지난 12월 2일부터 10일까지 조사한 바에 따르면 프라보워 후보의 지지율이 37%로 1위에 올랐으며, 그 뒤를 간자르 후보(35%)와 아니스 후보(22%)가 각각 이었다.
여기서 한 가지 재미있는 포인트는 조코위 대통령이 자신이 속한 여당의 후보를 마뜩잖게 여긴다는 점이다. 실제 지지 의사를 밝힌 프라보워 장관은 집권 여당 소속이 아니다. 게다가 한때 대선에서 2번이나 맞붙은 자신의 정적이다. 여기에는 특정 정당이 우월한 지위를 가지는 못하는 인도네시아 정치 구조의 특성이 깔려 있다. 정당이 대선 후보를 내려면 하원 의석 기준으로 20% 이상의 의석을 갖고 있거나 직전 하원 선거에서 전국 득표율 25% 이상을 확보해야 한다. 하지만 인도네시아는 다수의 당이 난립해 특정 정당이 이 같은 기준을 충족시키기 쉽지 않다. 그래서 선거 결과가 나온 후 대개 합종연횡을 한 후 대선 후보를 내는데, 정치적 이해관계에 따라 정당 간 행보가 이뤄짐은 물론이다. 조코위 대통령의 행보도 이의 연장선상에서 해석할 수 있다는 것이 중론이다.
사실 국민적 지지가 높은 조코위 대통령이지만 그동안 속한 정당에서는 자신이 추진한 각종 정책에 대해 그렇게 전폭적 지지를 받지는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게다가 자신을 대권 후보로 발탁해 정치적 위상을 높여준 현 집권 여당인 투쟁민주당 대표이자 전직 대통령인 메가와티 수카르노푸트리와의 관계도 썩 좋지 못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런 가운데 조코위 대통령도 인도네시아의 다른 정치 명문가처럼 자신만의 ‘정치 왕조’를 만드려는 ‘욕심’이 있지 않느냐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그의 아들이 부통령으로 나선 후 제기되는 시각인데, 이런 연유로 자당 소속이 아닌 후보에 힘을 실어주는 행보를 하고 있다는 것이다.
프라보워는 새 수도 건설의 중단 없는 추진 등 정책 면에서 조코위 대통령의 계승자임을 내세우고 있다. 강한 보수 성향의 인물로 인도네시아판 트럼프로도 불린다. 당선이 된다면 4차산업 시대 중요성이 커진 전기차 관련 광물 자원을 두고 국수주의 성향을 내세울 가능성도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프라보워 후보의 가장 강력한 경쟁자는 간자르 후보다. 그는 현 집권당의 후보다. 그 역시 조코위 정부 정책의 영속성을 강조하며 막판 역전극을 노린다.
상대적으로 젊은 층의 지지율이 높은 간자르 후보는 2023년 초만 해도 프라보워 보다 지지율이 높았다. 하지만 지난 5월로 예정됐던 국제축구연맹(FIFA) 20세 이하(U-20) 월드컵을 앞두고 강성 무슬림 단체들의 입장을 대변한 것이 문제가 됐다. ‘이스라엘 선수단의 입국을 막아야 한다’는 이들의 입장 때문에 인도네시아의 행사 개최 유치권 자체가 박탈돼 버렸는데, 강성 무슬림의 편에 섰던 간자르에 대한 비난으로 이어졌다. 이로 인해 지지율이 떨어진 후 회복되지 못하고 있다. 여기에 여당 후보임에도 불구하고 조코위 대통령의 지지를 받지 못하는 것도 지지율 정체의 또 다른 이유로 꼽힌다. 그는 마흐푸드 엠데 정치법률안보 조정장관을 러닝메이트로 삼았다.
인도네시아 주요 대선 후보 3인의 공약 중 우리의 눈길을 끄는 부분이 있다. 여당 성향 후보들의 군 장비 현대화 공약이다. 여당 후보가 당선이 되면 우리의 인도네시아 무기 수출길에도 여전히 청신호가 켜질 것으로 보인다. 또 세 후보 모두 신재생 에너지 육성책을 공약에 담고 있어 우리 기업들이 눈여겨볼 부분이기도 하다.
미·중 갈등 속 중국의 대안 시장으로 떠오르고 있는 2024년 인도 총선도 주목할 만하다. 나렌드라 모디 현 인도 총리의 3연임 여부가 관심이다. 인도는 5년마다 하원의원 선거를 열고, 승리한 당에서 총리를 배출한다. 현재 분위기는 현 집권당인 인도국민당의 승리 가능성이 높게 점쳐지고 있다. 실제 BJP는 전초전 격인 12월 초 5개 주에서 실시된 지방선거에서 3개 주(마디아프라데시주, 라자스탄주, 차티스가르주 등)에서 승리를 거두며 당을 향한 탄탄한 민심을 확인했다. 이 지방선거 결과에 의미를 두는 것은 이곳의 투표권자가 인도 전체 유권자의 6분의 1(1억 6000만 명)에 해당되기 때문이다. 마디아프라데시주의 경우 수성에 성공했고, 라자스탄주와 차티스가르주는 이곳 집권당이었던 인도국민회의(INC)를 눌렀다.
모디 총리는 이 선거 결과에 대해 “총선 승리를 위한 발판을 마련했다”며 큰 의미를 부여했다. 승리 요인으로는 모디 정부가 추진하는 각종 정책들이 긍정적으로 평가되고 있는 것이 꼽힌다. 현 정부는 국가 내 8억 명 이상의 국민들에게 무료 급식을 제공하고 있고, 저소득층에게 매월 현금을 지급하는 등 상대적으로 사회적 지위가 열악한 여성들에 대한 지원도 아끼지 않는다. 또 국제적으로 인도는 중국의 대체 공급망지로 각광받으며, 해외 투자자들을 계속 끌어들이고 있다. 이로 인해 글로벌 제조업 중심지로서 인도의 위상은 최근 부쩍 높아졌다. 글로벌 침체 분위기와는 달리 인도의 경제 성장세도 눈에 띈다. 국제통화기금(IMF)은 2023년 인도가 6.3% 성장할 것으로 전망했는데, 이는 중국의 5%를 넘어서는 수치다.
이 같은 정책 성공 덕에 모디 총리의 인도 내 지지율은 70%를 넘나든다. INC는 이번 유세 기간 동안 일자리 문제와 소외된 카스트 차별 등을 내세워 BJP를 공격했지만 별 효과를 거두지 못했다.
글로벌데이터 TS 롬바드의 수석인도이코노미스트인 슈미타 데베스와르는 “모디 총리의 인기는 여전히 매우 높다”며 “여론조사 등을 보면 그의 3연임이 가능함을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물론 풀어야 할 숙제도 있다. 바로 실업률 문제다. 전체 실업률도 7.95%로 높지만, 고학력 실업 문제가 골칫거리다. 경제가 크게 성장하고 있지만 인도의 높은 교육열을 소화할 만큼 충분한 일자리가 확보되지 않아서 발생하는 문제다. 인디언익스프레스에 따르면 25세 미만 대학·대학원 졸업생의 42.3%가 실업 상태다.
[문수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