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에서 스타트업을 운영하는 이선호(41세, 가명) 씨는 업무차 서울에 들를 때면 1년에 한두 번 강남 도심의 한 특급호텔에 투숙한다. 3·4성급 호텔과 비교하면 숙박비 차이가 크지만 “일부러 나만을 위한 사치를 부린다”는 게 이씨의 설명이다. 업무를 마치고 들른 곳은 호텔 지하에 마련된 피트니스 클럽. 사우나, 수영장과 함께 인체를 짧은 시간 극저온에 노출시켜 근육통을 완화하는 크라이오테라피(Cryotherapy)를 이용할 수 있어 일부러 짬을 내 들르곤 한다. 이씨는 “적외선 사우나 30분 후 크라이오테라피에 몸을 맡기고 이후엔 전신 임피던스 분석으로 체지방과 근육량, 수분 분포를 수치화한다”며 “단순히 잠을 자려고 호텔에 오는 게 아니라 내 몸 상태를 알고 최적화하고 싶어서 찾게 됐다”고 덧붙였다.
호텔이 변하고 있다. 객실 수와 서비스, 레스토랑 별점으로 경쟁하던 특급호텔들이 건강을 핵심 테마로 내세우며 웰니스를 접목했다. 롱제비티 클리닉, 바이오해킹 스위트, 수면 최적화 프로그램, 명상 리트릿 등 5성급 호텔들이 제안하는 웰니스 메뉴는 웬만한 종합검진센터의 서비스 목록을 방불케 한다.
우선 숫자부터 살펴보자. 글로벌 웰니스관광 시장의 지출 규모는 2024년에 8940억 달러(약 1230조원), 2025년에는 9000억 달러를 넘어섰다. GWI는 2027년이면 시장 규모가 1조4000억 달러까지 성장할것이라고 전망한다. 일반 관광 성장률을 훨씬 앞지르는 속도다. 범위를 웰니스 호텔로 한정하면 시장 규모는 약 1816억 달러(2025년 기준). 2033년까지 연평균 8.25%의 고성장이 예상된다. 이렇듯 산업적 트렌드가 뒷받침되자 소비자의 심리도 빠르게 변하고 있다. 유럽의 PR에이전시 카를로 오토가 발표한 ‘2026 웰니스 인사이트 보고서’를 살펴보면 고액자산가(HNWI·High Net Worth Individual)의 60%가 웰니스 관련 지출을 늘렸고 패션 등 기존 럭셔리 소비는 줄였다고 조사되기도 했다. 쉽게 말해 ‘얼마나 비싸고 좋은 침대에서 잘 수 있는가’란 기준이 ‘얼마나 건강한 잠을 잘 수 있는가’로 바뀌고 있는 것이다. 해외 럭셔리(특급) 호텔들은 이미 한발 앞서 웰니스를 핵심 정체성으로 재정의하고 있다.
알프스와 레만 호수를 끼고 있는 스위스 몽트뢰의 ‘클리니크 라 프레리(CLP)’는 대표적인 웰니스 호텔이다. 이곳은 기본적인 외래 진료가 가능한 메디컬 센터를 갖추고 있다.
1931년 세포 회춘 요법 클리닉으로 닻을 올린 후 5성급 리조트를 더해 활력 회복 프로그램, 예방의학, 종합적인 건강 관리를 전문적으로 제공하고 있다. 스위스의 스킨케어 브랜드 ‘라 프레리(La Prairie)’가 탄생한 곳이기도 하다.
인터컨티넨탈 호텔 그룹 IHG의 최상위 브랜드이자 자연주의 럭셔리 리조트 ‘식스센스(Six Senses)’는 또 다른 모델을 제시한다. 스페인 이비사섬에 자리한 ‘식스센스 이비사’에선 로즈바 롱제비티 프로그램이 운영된다. 이 프로그램은 세포 최적화, 면역과 건강, 장수치료, 고압산소치료, 적외선 사우나 등을 하나의 패키지로 묶었다. 3일, 5일, 7일간 운영되는데, 몸을 끊임없이 자극하는 게 아니라 점진적으로 강화하고 재생시킨다는 게 식스센스의 철학이다.
뉴욕 ‘에퀴녹스 호텔(Equinox Hotel)’의 접근법은 피트니스 클럽과 호텔이 역전된 모델이다. 허드슨 야드에 있는 플래그십 피트니스 클럽(약 5600㎡)이 호텔과 통합 운영되며 투숙객은 체류 내내 이 시설을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다. 동시에 지역 멤버십 회원도 같은 공간을 쓰면서 웰니스 공간이 자연스럽게 커뮤니티 허브가 된다. 호텔에 피트니스가 있는 게 아니라 피트니스에 호텔이 딸려 온 역발상이다.
국내 호텔들도 이 흐름에 올라탔다. 일상 속 운동과 영양, 수면 관리에 초점을 둔 ‘저속노화(Slow Aging)’ 트렌드가 여전히 힘을 발휘하고 있다.
▶ 국내 최대 규모 피트니스 클럽, JW 메리어트 호텔 서울
강남 신세계 센트럴 지하 2~4층, 3개 층에 걸쳐 총 1만4212㎡(약 4300평). JW 메리어트 호텔 서울이 자랑하는 ‘마르퀴스 피트니스 클럽’은 국내 호텔 내 최대 규모의 웰니스 시설이다. 단순한 헬스장 수준이 아니다. 목적별 운동이 가능한 다양한 장비, 85m 길이의 실내 조깅 트랙, GX룸, 필라테스룸, 스트레칭룸, 농구장, 스쿼시장이 마련돼 있다. 25m 6레인 대형 실내 수영장, 테라피풀, 자쿠지, 탄산수탕, 히노키탕, 건식·습식·황토 사우나, 아이스 파운테인까지 구비했다. 주목할 부분은 과학적 측정과 맞춤 처방 도입이다. ‘바디랩 존(Body Lab Zone)’에선 인바디와 엑스바디를 활용한 체형 측정·분석을 바탕으로 개인 맞춤형 운동 컨설팅이 제공된다. 여기에 최첨단 국내 호텔 최초로 크라이오테라피 장비를 도입해 컨디션 회복과 퍼포먼스 관리를 지원한다. 초미세먼지 필터 산소 발생기, 자동 환기 시스템, 포토 플라즈마 이온 발생기까지, 공기 질 관리에도 공을 들였다.
▶ 멤버십·테니스·웰니스 객실까지, 롯데호텔앤리조트
롯데호텔앤리조트는 단일 시설이 아닌 전국 체인의 웰니스 생태계를 구축했다. 2025년 5월에 출시한 프리미엄 유료 멤버십 ‘트레비클럽 액티비엘(TREVI CLUB Activiel)’이 핵심이다. 시그니엘 서울·부산, 롯데호텔 서울·월드·제주·울산·부산 등 국내 7개 체인 호텔의 피트니스와 사우나를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는 국내 호텔 브랜드 최초의 복수 체인 웰니스 멤버십으로 연간 회원 수를 200명으로 제한했다. ‘액티비엘 8.0’(가입비 800만원)에는 연간 피트니스·사우나 이용권 120매, 건강주스 이용권 30매, 스위트급 객실 이용권 2매 등이 포함된다. ‘액티비엘 5.0’(가입비 500만 원)은 이용권 100매 기반으로 설계됐다. 롯데호텔 서울은 지난해 이그제큐티브 타워 일부 객실을 웰니스 전용 객실로 리뉴얼하기도 했다. 가누다 모션베드, 코웨이 안마의자, 공기청정기를 갖춘 웰니스 큐레이션 공간이다. 그런가 하면 롯데호텔 월드 5층에는 국내 호텔업계 최초로 국제 규격을 갖춘 실내 테니스 코트가 들어섰다. 약 975㎡(약 295평) 규모의 단면 코트로 천장이 아파트 6층 높이(13.8m)에 달해 시원한 개방감을 자랑한다.
▶ 도심 속 무브 웰 철학 실천, 웨스틴 서울 파르나스
서울 삼성동 파르나스 타워를 기반으로 웨스틴 서울 파르나스는 글로벌 웨스틴 브랜드의 ‘Sleep Well·Eat Well·Move Well’ 철학을 도심 환경에 구현했다. 대표 프로그램인 ‘runWESTIN with Concierge’는 시즌별로 코스를 달리하는 시그니처 러닝 프로그램이다. 올봄에는 석촌호수 ‘벚꽃 런’을 운영한다. 전문 컨시어지 동행, 소규모 정원, 투숙객 전용 모바일 앱 신청이 특징이다. 호텔 내 코스모폴리탄 피트니스 클럽에는 ‘프라임 모션 센터(Prime Motion Center)’가 운영 중이다. 독일 카이저 브랜드의 정밀 공기압 저항 시스템 기반 고기능 트레이닝 공간으로, 운동 초보부터 전문 트레이너까지 수준에 맞는 신체 활동 극대화를 지원한다. 올 5월부터는 수중 운동 기반 수영 프로그램도 선보일 예정이다.
▶ 뷰티와 웰니스의 접점, 포시즌스 호텔 서울
이그제큐티브 라운지에서 인삼차와 웰컴 디저트를 즐기고 한국 전통 한방 사우나로 피로를 푼 후 광화문 경복궁이 내려다보이는 스위트룸에서 설화수 ‘진설’ 라인 스킨케어 키트를 받아 든다. 포시즌스 호텔 서울이 올 12월 말까지 운영하는 ‘홀리스틱 헤리티지 익스피리언스’는 K-뷰티와 웰니스를 결합한 통합 여정이다. 5월까지 로비 라운지 마루에서 봄 테마 애프터눈 티 세트가, 매주 화요일에는 설화수 북촌 플래그십 스토어에서 외국인 게스트 대상 인삼 클래스가 운영된다. 단순한 K-뷰티 소비를 넘어 한국의 웰니스를 경험할 수 있는 구성이다.
▶ 관광 명소를 러닝 코스로, 조선호텔앤리조트
조선호텔앤리조트는 부산과 제주의 관광 명소를 달리는 패키지를 운영 중이다. 웨스틴 조선 부산의 ‘뉴 시즌, 뉴 웰니스: 웨스틴 웰니스’는 해운대 등 호텔 주변 러닝 코스를 달리며 휴식을 즐기는 객실 패키지다. 액티브 스테이는 패키지 한정판으로 제작된 런 웨스틴 티셔츠 2종을 제공한다. 밸런스 스테이는 아보카도 치킨 샌드위치 1개와 비트 밸런스 주스 2잔을 인룸다이닝으로 제공해 건강한 식단으로 밸런스를 갖출 수 있다. 그랜드 조선 제주는 과학적인 데이터 관리를 경험할 수 있는 ‘레디, 셋 웰니스’ 패키지를 운영 중이다. 스마트워치 브랜드 ‘가민’과 협업해 제주 여행 기간 동안 직접 자신의 심박수, 스트레스 지수 등을 실시간으로 체크할 수 있다. 러닝 고객을 위해 그랜드 조선 제주가 추천하는 러닝 맵이 제공되며 운동 후 라운지앤바에서 디톡스 주스도 마련돼 있다. 그랜드 조선 제주가 제안하는 러닝 코스를 완주하거나 5㎞ 이상의 러닝 기록을 러닝 앱 또는 스마트워치의 기록으로 직원에게 인증하면 라운지앤바 또는 조선델리의 음료와 푸드를 15% 할인된 가격으로 이용할 수 있다. 전문가와 함께 달리는 특별 러닝 세션(5월 3일, 6월 7일)도 체험할 수 있다. 오전 8시부터 9시까지 1시간 동안 조덕연 러닝 전문 코치와 함께 호텔 주변 러닝 코스를 달리는 프로그램이다.
▶ 요가 명소 된 리조트, 제주신라호텔
제주신라호텔은 시설 투자보다 ‘자연 기반 웰니스 프로그램’을 차별화 전략으로 내세웠다. 호텔이 요가 명소가 된 건 결코 우연이 아니다. 월·수·금·토 오전 8시, 야외 수영장 개장 전 열리는 아쿠아 모닝 요가는 물 위 고요함 속에서 하루를 여는 특별한 경험이다. 화·목·일 오후 8시 릴랙싱 나이츠는 제주 편백 오일 아로마 터치, 명상, 굿볼 컨디셔닝, 숙면 유도 스트레칭이 이어지는 숙면 프로그램이다. 수면의 질을 극대화하는 웰니스 트렌드 ‘슬립맥싱(Sleepmaxxing)’을 직접 실현했다.
[안재형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