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7대 대통령 선거에서 승리를 거둔 공화당 대선 주자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트럼프 2.0’ 시대를 예고한 가운데 미국 주식시장이 상승 랠리를 펼치고 있다.
트럼프의 법인세 대규모 감세 기대효과와 더불어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기준금리 인하, 크리스마스를 전후해 연말 연시 강세장(산타랠리)이 나타나는 경향이 있다는 점이 국내외 투자자들의 매수 심리를 자극하는 모양새다. 미국 주식사장 대표 주가지수인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 500 지수가 11월 11일부로 종가 기준 6000을 넘어선 가운데 오펜하이머 증권은 올해 연말 S&P500지수 전망치를 기존 5900에서 6200으로 올려잡았다.
존 스톨츠푸스 오펜하이머증권 연구원은 “미국 경제 펀더멘털을 보면 기업들 매출·수익 성장과 소비자 회복력에 더해 기준 금리 인하 사이클까지 감안할 때 연말까지 대형주 추가 상승이 S&P500 지수를 끌어올릴 것이며 중소형주 성과도 더 높아질 것”이라고 설명했다.
앞서 데이비드 코스틴 골드만삭스 수석 전략가는 “역사적으로 보면 미국 대선이 있는 해에는 11월 선거일 이후부터 연말까지 S&P500 지수가 평균 4% 올랐는데 이대로라면 지수가 연말에 6015로 마감할 수도 있다”며 긍정론을 시사했다.
미국 연방 하원도 공화당이 차지했다는 개표 결과가 나온 가운데 ‘레드 스윕’(공화당이 상·하 양원 장악) 상황에서 트럼프가 2기 집권해 법인세 인하(21→15%)가 이뤄지면 골드만삭스는 S&P500 기업들의 1주당 수익(EPS) 증가율 전망치를 4%p 더 높일 수 있다는 입장이다.
개별 종목을 보면 미국 대선 이후 트럼프 정책 친화적으로 알려진 종목에 매수세가 모이는 가운데 변동성도 커지고 있다. 일부 종목은 펀더멘털과 무관하게 주가가 급등했다가 급락하는 모양새다. 이 같은 변동성은 내년 1월 말 트럼프 취임을 전후한 시점까지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트럼프가 창업한 사회연결망(SNS) 기업 트루스소셜을 자회사로 둔 트럼프미디어는 미국 대선 전까지 주가가 폭등했지만 대선 투표가 이뤄진 11월 5일부터 일주일 여만인 13일까지 주가가 15% 하락했다.
제이 우즈 프리덤캐피털마켓츠 자본시장 담당 수석 전략가는 해당 종목에 대해 “대선 전까지 트럼프 미디어 주가는 주식이 마치 스테로이드를 맞은 것 같다”면서 “기업 펀더멘털을 보면 주식을 파는 것이 나을 것”이라고 언급했다. 트루스소셜이 직접적으로 밝히지 않았지만 데이터 정보업체들 집계를 보면 회사의 월간 활성 사용자 수는 오히려 줄고 있으며 광고 수익도 마찬가지라는 이유에서다.
회사 지분의 약 57% 를 소유한 트럼프는 보유 지분을 매각하지 않겠다고 했지만 공동 창업자인 앤드류 리틴스키와 투자자 웨스 모스 등은 해당 종목을 거의 전량 매각한 상태다.
이밖에 트럼프의 비트코인 선호 경향에 따라 비트코인 시세가 치솟자 미국 상장사 중 비트코인 최대 보유 기업인 마이크로스트래티지 주가도 급등락을 거듭하는 모양새다. 비트코인은 트럼프가 미국 정부 전략 자산 차원에서 공식 보유할 것이라는 입장을 낸 데다 마이크로소프트가 이달 주주총회를 통해 회사 차원에서 비트코인 보유 여부를 정할 것이라는 점에서 9만달러 선까지 시세가 치솟은 바 있다.
다만 마이크로스트래티지의 경우 기업 자체의 펀더멘털보다는 회사가 상장 기업 중에서 비트코인을 가장 많이 보유했다는 이유만으로 주가가 급등했고 투자 심리에 따라 급락세가 연출되기도 한다.
반면 트럼프 지지자로 유명한 일론 머스크의 테슬라나 래리 엘리슨의 오라클, 피터 틸의 팔란티어 등은 매수세가 이어진다. 테슬라는 최고경영자(CEO)인 머스크가 트럼프 2기 정부에서 정부효율성위원회 위원장에 발탁된 것을 계기로 테슬라가 추진 중인 자율주행기술 등에 대한 규제가 완화될 것이라는 기대감이 돈다. 뱅크오브아메리카(BoA)는 테슬라에 대한 매수 투자 의견을 유지하면서 12개월 목표가를 기존 265달러에서 350달러로 높였다. 존 머피 BoA 연구원은 고객 메모를 통해 “머스크와 트럼프 간 관계가 대선을 계기로 긴밀해진 점이 잠재적으로는 회사의 수익성 증가 기대를 뒷받침할 수 있다”고 평가했다.
일각에서는 테슬라 주가가 미국 대선을 전후로 지나치게 올랐다는 지적도 나온다. 영국계 헤지펀드 운용사 클린에너지트랜지션 창업자 페르 레칸더는 “현재 테슬라 주가 300달러의 약 3분의 1이 트럼프 효과이지만 트럼프 2기 정부는 앞으로 12~18개월 안에 테슬라가 이익을 봐왔던 여러 보조금을 없앨 것”이라고 지적했다.
오라클 공동창업자이자 최대 주주인 래리 앨리슨은 실리콘밸리에서는 보기 드문 친(親)트럼프 인사로 꼽힌다. 엘리슨은 ‘트럼프 지지’ 모금행사를 주최하기도 했고 트럼프는 대통령 시절 “나는 앨리슨을 매우 존경한다. 오랫동안 정말 훌륭한 사람이었다. 오라클도 매우 훌륭한 기업이다”라고 치켜세우면서 중국 틱톡의 미국 사업 인수자로 오라클을 점찍기도 했다. 이후 조 바이든 대통령이 취임하면서 오라클의 틱톡 인수 협상은 중단됐다. 다만 클라우드 서비스 및 소프트웨어 회사인 오라클은 AI 시대를 맞았다. 앨리슨은 오라클이 현재 162개의 데이터센터를 운영하고 있는데 궁극적으로는 2000개까지 늘어날 수 있으며 현재 설계 중인 한 곳은 기가와트(GW) 단위 전력이 소모돼 원자력 발전으로 가동될 예정이라고 밝힌 바 있다.
한편 미국 내에서는 AI 붐으로 전력 수요가 늘어나고 있는 가운데 바이든 정부가 원자력 발전 용량을 2050년까지 3배로 늘리겠다는 계획을 내놓은 바 있다. 신규 원전 건설과 원전 재가동, 기존 시설 업그레이드 등을 통해 지난해 100.6GW 수준인 원전 발전 용량을 2050년까지 300GW 수준으로 만들겠다는 것인데 이는 트럼프 2기 정부에서도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이밖에 팔란티어도 트럼프 2기 정부 친화적인 기업으로 꼽힌다. 회사는 머스크와 더불어 미국 벤처캐피털 업계 ‘페이팔 마피아’로 꼽히는 피터 틸이 공동 창업했다. 틸은 미국 공화당 지지자이가 큰 손 후원자로 이름을 알린 바 있다.
회사는 미국 중앙정보국(CIA)이 만든 벤처캐피털인 인큐텔(IQT)이 자금을 댄 것으로 유명하다. 주요 고객은 CIA를 비롯해 미국 연방수사국(FBI)과 국가안보국(NSA), 국방부, 영국 비밀정보국(SIS) 등 국가 정보 기관이며 민간 기업으로는 JP모건 등이 팔란티어의 고객사로 있다. 한국 기업인 HD현대도 팔란티어 한국법인 지분 25%를 가지고 있다.
이처럼 트럼프 2기 정부와 관련한 개별 종목 투자 관심이 커진 가운데, 시장 전반 수급 분위기와 관련해 투자자들은 증시 조정 여부에 촉각을 기울이는 분위기다.
주식시장 전반에 대해 브렛 켄월 e토로 연구원은 “대선 이후 주식시장이 엄청낸 랠리를 보였기 때문에 투자자들은 조정에 민감하며 어떤 일이든 조정의 말미가 될 수 있지만, 사람들이 주식 폭락 시 매수에 나선다는 입장을 점점 더 확실히 하고 있으며 펀드 매니저들도 주가가 떨어지면 매수해 연말 성과를 내려 하기 때문에 조정이 온다 해도 조정폭이 크지 않을 것”이라고 언급했다.
반면 미국 채권시장은 국채 가격 급락세가 두드러진다. 지난 2016년 대선 당시 트럼프 후보가 민주당 힐러리 클린턴 후보를 접전 끝에 승리하면서 국채 가격이 급락했던 것과 단기적으로 비슷한 흐름이다.
미국 2년물과 10년물 국채 수익률은 트럼프와 해리스의 첫 TV 대선 토론회가 열린 지난 9월 10일 이후 이달 12일까지 각각 75bp, 78bp 뛰었고 30년물 수익률은 같은 기간 71bp 상승했다. 국채는 가격과 수익률이 반대로 움직인다. 채권 시장에서는 제2의 ‘트럼프 발작’(Trump tantrum)을 우려하고 있다. 앞서 지난 2016년 뉴욕증시는 ‘트럼프 발작’을 겪은 바 있다. 당시 트럼프 후보가 예상을 깨고 대통령 당선을 확정한 2016년 11월 8일을 전후해 대선 전연 1.85% 이던 10년 만기 미국 국채 수익률이 한 달 여 만인 같은 해 12월 중순 연 2.61% 를 기록하는 등 한달 여 만에 76bp 뛰었다.
힐러리 후보에 대응해 트럼프 후보가 강조한 1조달러 규모 인프라스트럭처 투자 등 대규모 재정 지출 공약이 국채 발행 증가로 이어져 국채 가격을 끌어내릴 것(국채 수익률 상승)이라는 시장 예상이 작용한 결과였다.
국채와 관련해, 다이애나 이오바넬 캐피털 이코노믹스 연구원은 “단기적으로는 몰라도 장기적으로는 인플레를 우려할 만하며 이로 인해 국채 수익률이 더 오를 것(=국채 가격이 더 떨어질 것)으로 보인다”고 언급했다.
연방기금금리(미국판 기준금리) 향방과 관련해 린지 로스너 골드만삭스 자산관리 연구원은 “트럼프 취임 후 재정 및 무역 정책에 대한 불확실성이 높기 때문에 새해에는 연방준비제도가 금리 인하 속도를 늦출 것”이라면서 내년 1월에는 금리 동결 가능성이 크다고 봤다.
삼성자산운용은 트럼프 2기 정부 예상 정책과 그에 따른 수혜 업종을 분석해 다섯 가지 키워드 T.R.U.M.P.로 제시했다. 삼성자산운용이 제시한 지 키워드는 보호무역주의(Tradeprotectionism)와 규제완화(Regulatory relaxation), 반사이익(Unexpected benefits), 제조업 강국(Manufacturing), 그리고 전력인프라(Power) 등으로 트럼프 2기 정부가 정책적으로 강조할 분야로 예측된다.
트럼프 당선자는 선거 운동 기간 모든 수입품에 10~20% 보편 관세 적용을 추진하고, 특히 중국 수입품에 60% 관세 및 최혜국대우를 철폐할 것을 공언해 왔다. 인공지능(AI) 행정명령 폐지 등 빅테크 기업들의 자율성을 보장하고 AI투자 촉진·법인세최고세율 15% 인하도 약속했다. 뿐만 아니라 ‘자기자본 고위험 자산 투자금지·대형화 제한’ 즉 볼커룰 규제를 완화하는 등 금융산업에 적용돼 온 규제를 손보겠다고 언급한 바 있다.
트럼프는 지지층의 일자리를 확대하는 차원에서 ‘미국 제조업 르네상스’를 강조했다는 점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관세 부과, 리쇼어링 정책, 대규모 인프라 투자 약속 등과 에너지 자급자족을 위해 미국 내 화석 에너지 인프라 건설 투자를 촉진·지원하겠다는 의지 표명도 같은 맥락으로 이해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신재생에너지 확대 정책을 펼쳐온 바이든 정부와 달리 트럼프는 원전 허가취득 절차 간소화, 원자력 규제위원회 개혁, 소형모듈원자로(SMR) 투자 확대를 공언해 왔다. 제조업 건설투자와 함께 원전, 가스, 변압기, 송전망 등 전력 설비에 대한 투자를 본격화할 것으로 예상된다.
[김인오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