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4월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이 지난해 8월에 이어 다시금 인도를 방문했다. 현대차 측은 “인도의 전략적 중요성이 갈수록 커지고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인도권역본부 델리 신사옥에서 현대차·기아의 업무보고를 받은 정 회장은 양 사 인도권역 임직원들과 중장기 전략을 논의한 후 현지 직원들과 타운홀 미팅을 가졌다. 사업 현안부터 정 회장의 일상 관련 내용까지 다양한 질문이 쏟아지며 1시간으로 예정됐던 미팅은 30분 이상 연장됐다. 정의선 회장은 이 자리에서 “지난 28년간의 성공이 미래의 성공을 보증하지는 않지만 여러분들께서 성공적인 미래를 만들어 갈 것이라 확신한다”고 직원들에 대한 전폭적인 신뢰를 전했다. 2026년 인도 진출 30주년을 맞는 현대차는 ‘모빌리티 혁신기업, 그리고 그 너머(Innovator in Mobility and Beyond)’를 목표로 2030년 중장기 전략을 수립하고 있다. 단기간에 인도 주요 자동차 브랜드로 성장한 기아도 ‘기아 2.0’ 전략을 통해 양적, 질적 성장을 도모하고 있다. 정 회장의 방문 이후 현대차 인도법인의 기업공개(IPO)도 급물살을 타고 있다. 업계에선 “IPO를 통해 자금이 확보되면 인도 전기차 시장 공략이 본격화될 것”이라고 전망한다. 현대차는 올 하반기에 인도 현지에서 생산한 첫 순수전기 SUV를 선보이고 2030년까지 5개의 EV 모델을 투입한다는 전략이다. 인도권역본부와 아중동권역본부를 총괄하는 김언수 현대차 인도아중동대권역장(부사장)은 “인도 진출 초기에는 아무것도 없는 흙바닥에서 시작했지만 지금은 사랑받는 기업으로 성장했다”며 “인도 고객의 니즈를 반영한 혁신적인 상품을 적시에 제공하는 전략이 주효했다”고 성장비결을 소개했다. 김 부사장과의 인터뷰는 서면으로 진행했다. 인도법인의 IPO와 관련해 현대차 측은 “주식시장의 파장 등을 고려해 공시 이외에는 공식적으로 어떤 언급도 할 수 없다”고 전했다.
Q 현대차 인도법인의 올 1분기 실적(순이익 2673억원, 전년 대비 21% 증가)이 주목받고 있습니다.
A 괄목할 만한 성과죠. SUV 모델의 인기와 온라인 판매채널 확대가 주효했습니다. 현재 인도 경제는 중장기적으로 꾸준한 성장이 예상되고 있어요. 반면 자동차 시장은 단기적인 불확실성이 존재합니다. 경쟁사들의 공격적인 할인, 가격 인하로 인한 경쟁이 치열하죠. 결국 품질과 서비스로 승부할 수밖에 없습니다.
Q 지난해 인수한 GM 공장 등 기존 첸나이 공장에 기아 공장까지 더하면 인도 내 생산능력이 약 150만대에 육박합니다. 해외 최대 생산지로 인도를 선택한 특별한 이유가 있습니까.
A 인도는 가까운 시일 안에 미국과 중국에 이어 GDP 총액 기준 세계 3위 국가가 될 겁니다. 자동차 수요도 2023년 409만대에서 10년 내에 600만대를 넘어설 것으로 전망됩니다. 이러한 성장 추세를 감안할 때, 시장 점유율을 유지하고 확대하려면 현대차 입장에서 내수에서만 80만대 수준의 공급 능력이 필요하죠. 또 현대차 인도법인은 아중동, 중남미, 멕시코 등 신흥 시장에 대한 수출 기지 역할도 맡아야 합니다. 적어도 20만대 수준의 추가 생산 능력도 필요한 상황이에요. 결론적으로 현대차 해외 공장이 운영되는 국가 중에서 내수와 수출 물량까지 포함해 100만대 이상의 생산 능력이 요구되는 유일한 국가가 바로 인도입니다.
Q 현대차와 기아를 합치면 인도 시장점유율이 20%를 넘어섰습니다. 성장비결이 궁금합니다.
A 처음 인도에 진출할 때 여타 글로벌 브랜드는 단종 모델이나 저가 모델을 주로 출시했어요. 현대차는 인도 고객의 목소리에 집중했습니다. 높은 교육수준과 실리적인 소비패턴을 반영한 소형차를 출시했고, 대가족 문화를 반영해 좀 더 넓은 후석 공간을 확보했습니다. 도로 상황이 열악하다보니 최저 지상고도 높였어요. 날이 꽤 더워서 후석에도 에어벤트를 넣었고, 겨울철 대기 상태를 고려해 실내 공기청정기도 추가했습니다. 이런 세심한 배려가 인정받았고, 2015년 크레타의 성공으로 이어지더군요. 소형 SUV인 크레타는 단숨에 시장의 강자가 됐습니다. 이 성과가 베뉴, 엑스터로 이어지면서 SUV 패밀리의 성공적인 출시를 견인했습니다.
Q 결국 니즈 파악이 우선이다?
A 정부 정책과 고객의 니즈에 대응하려고 2006년에 인도기술연구소를 세웠습니다. 인도에 특화된 소형차를 개발하고 신기술을 접목했어요. 또 하나, 인도 시장은 관세 장벽이 꽤 높은데 합리적인 가격을 책정하려면 넘어야 할 산입니다. 현대차는 진출 초기부터 부품 협력사와 동반 진출을 추진했습니다. 현지 로컬 업체도 발굴해 원가 경쟁력을 확보했지요.
Q 팬데믹 시기엔 록다운 등 여러 고비가 있었다고 들었습니다.
A 2020년부터 팬데믹이 오면서 2019년에 68만2000대였던 생산 실적이 52만1000대로 주저앉았습니다. 그해 3월 22일에 인도 정부가 전국적인 록다운을 발표했는데 아주 엄격했어요. 국내 언론이 ‘록다운 몽둥이’ ‘코로나 지옥’이라고 표현할 정도였거든요. 차량에 문제가 발생해도 수리를 받을 수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래서 모든 고객을 대상으로 보증 수리 연장 프로그램을 진행했어요. 픽업&드롭 서비스, 이동식 서비스센터도 활성화했습니다. 2020년의 생산량이 전년 대비 16만대나 감소했는데, 그해 현대차는 역대 최고 시장점유율인 17.4%를 달성했습니다.
Q 현대차가 파악한 인도 고객의 특성이라면.
A 인도는 다양성의 상징이에요. 지역마다 언어와 문화, 고객의 선호도가 각기 다릅니다. 이러한 상황을 존중하고 반영한 접근방식이 절대적으로 중요한데, 무엇보다 가격 대비 가치를 중요시합니다. 단순히 저렴한 것보다 그 가격 안에 최대한의 가치를 담고 있는 제품을 선호하죠. 또 가격이 비싼 제품, 중요한 구매 결정을 할 때는 가족 전체가 의논하고 특히 아내와 어머니의 의견을 많이 반영합니다. AS나 사회적 책임처럼 기업의 진정성도 무시할 수 없어요. 이러한 특수성을 이해해야 포괄적인 전략을 수립할 수 있습니다.
Q 그런 이유로 크레타, 엑스터 등 인도 전용 모델이 출시되는 건가요.
A 철저한 맞춤형 상품 개발이 인도 시장 공략의 핵심 전략이에요. 우리뿐만 아니라 인도에서 판매되는 주요 차종들은 다른 시장에서는 볼 수 없는 인도 시장 전용 모델들입니다. 과거에 글로벌 차종으로 인도 시장에 도전했던 브랜드들은 시장에서 버티질 못했어요. 인도 고객의 취향에 맞춘 전용 모델을 출시한 브랜드만 살아남았습니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절대 간과해선 안 되는 게 경제성에만 치중해선 안 된다는 점입니다. 10여 년 전 ‘타타 나노’와 ‘토요타 에티오스’가 저렴한 가격을 무기로 큰 주목을 받았는데, 낮은 상품성 때문에 외면받은 사례가 있습니다.
Q 인도 정부의 전동화·관세 관련 정책이 외국 기업의 투자를 이끌고 있는데, 현대차는 어떻습니까.
A 인도는 다른 신흥개발국과 비슷하게 강력한 수입차 관세 정책을 통해 자국 내 생산을 유도하고 있습니다. 중앙정부의 ‘Make In India’ 정책이 인도에 진출한 글로벌 기업들에 다양한 혜택을 제공하고 있는데요. 외국인 투자를 100% 허용해 글로벌 기업의 직접투자를 유치했고, 생산 연계 인센티브를 통해 최대 18%의 세제 혜택을 제공하고 있어요. 인도 자동차 산업 성장의 강력한 원동력이죠. 최근엔 전동화 촉진을 위한 다양한 정책을 검토 중인데, 현대차도 2025년부터 인도 현지화 EV 모델을 출시할 계획입니다. 인도의 전동화 정책은 중요한 기회죠.
Q ‘인도는 제2의 중국이 아니다’란 분석도 나오고 있습니다. 양국에 대해 어떻게 평가하십니까.
A 그 질문에 대해 인도 현지인들도 많은 토론을 하고 있습니다. 현재 인도는 양국에 대해 경제적 성장, 인구구조, 제조업 및 기술 발전, 정치적 체제 등 다양한 요소를 고려해봐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인도는 빠른 경제성장을 지속하고 있지만, 중국만큼의 일관된 성장세를 보이진 않았습니다. 최근 몇 년간 성장률은 주목할 만한데, 특히 제조 및 서비스 산업과 정보기술 분야에서 성과가 두드러집니다. 인구 면에서 중국은 값싼 노동력이 경제성장의 중요한 요소였는데 현재는 인건비 상승과 고령화가 문제죠. 중국을 넘어선 최대 인구 국가인 인도는 여전히 젊은 노동력이 풍부해 성장 잠재력이 큽니다. 인도는 많은 면에서 제2의 중국이 될 가능성을 갖고 있습니다. 그러나 양국의 정치체제, 경제구조, 산업 발전 과정 등 차이를 고려하면, 인도가 중국의 성장 모델을 그대로 따르기보다 자체적인 성장 경로를 모색할 것이란 의견이 합리적이라고 생각됩니다.
[안재형 기자 · 사진 현대차그룹]
[본 기사는 매경LUXMEN 제166호 (2024년 7월)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