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이버는 비영어권 데이터를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이 보유한 플랫폼 회사로 꼽힌다. 이유는 단연 라인 때문이다. 라인 메신저의 전 세계 이용자는 약 2억명으로 추산된다. 일본 이용자 1억명을 제외하고도 대만(2200만명)과 태국(5500만명), 인도네시아(600만명) 등 동남아 지역에서 1억명 가깝게 라인을 사용하고 있다. 라인의 대만 시장 점유율은 90%에 달하고, 태국에서도 점유율 1위로 ‘국민 메신저’에 등극했다.
네이버가 이런 라인을 일본에 뺏길 위기에 처했다.
시작은 일본 정부다. 지난해 발생한 정보 유출 사건을 빌미로 소프트뱅크에 네이버와의 지분 관계를 정리하라고 압박한 데서 출발했다. 이어 일본 소프트뱅크는 네이버에 라인의 일부 지분을 매각할 것을 요구하고 나섰다.
일본 총무성은 지난 3월 라인야후가 시스템 업무를 위탁한 네이버에 과도하게 의존해 사이버 보안 대책이 충분하지 않다고 지적하며 ‘네이버와 자본 관계 재검토’를 포함한 경영 체제 개선을 요구하는 행정지도에 나섰다. 지난해 11월 네이버 클라우드가 사이버 공격으로 인해 악성코드에 감염돼 일부 내부 시스템을 공유하던 라인야후에서 개인정보 수십만 건이 유출된 사건을 일본 정부가 직접 문제 삼고 나선 것이다.
소프트뱅크는 네이버와 함께 A홀딩스의 지분을 반반씩 소유하고 있다. A홀딩스는 라인을 운영하는 라인야후의 지분 64.4%를 보유하고 있는 모회사로, 네이버와 일본소프트뱅크가 각각 50%씩 출자한 합작 조인트벤처다. 네이버는 사실상 라인야후의 대주주인 셈이다. 라인의 전신은 네이버의 완전자회사 네이버재팬이다. 네이버는 2011년 6월 일본에서 라인 서비스를 시작했다. 소프트뱅크와 네이버가 A홀딩스의 지분을 각각 50%씩 쥐고 있는 만큼, 소프트뱅크가 네이버로부터 A홀딩스의 지분을 1%라도 사들이면 라인야후에 대한 경영 주도권을 쥐게 된다. 일본 정부가 소프트뱅크에게 네이버의 라인 지분 매각을 촉구하는 이유다. 현재 50 대 50 지분구조에서 ‘1주’만 소프트뱅크로 넘어간다고 해도 라인야후 산하의 네이버 해외 사업 계열사들이 영향을 받는다.
라인은 일본 내 점유율 약 70%를 차지하는 현지 1위 메신저 앱이다. 네이버는 라인을 통해 일본 내 플랫폼 영향력을 확장하고, 중장기적으로 일본을 비롯한 동남아 등에서 콘텐츠, 금융, AI 등 다양한 분야 글로벌 진출을 확대할 계획이었다.
네이버의 일본 진출 배경에는 경쟁사인 카카오가 있다. 네이버와 카카오의 모바일 메신저 사업은 한때 NHN이라는 둥지 아래에서 한솥밥을 먹었던 이해진 창업자와 김범수 창업자가 진두지휘했다. 출발은 2010년 ‘카카오톡’ 서비스를 한국에서 시작한 김 창업자가 빨랐다. 카카오톡보다 1년 이상 늦게 서비스를 시작했지만 ‘라인’은 2011년 동일본 대지진 이후 일본 내에서 폭발적으로 성장하면서 일본 국민 메신저로 자리잡았다.
이 창업자는 지난 2019년 손 마사요시(손정의) 소프트뱅크 회장의 손을 잡고 라인(메신저)과 야후재팬(포털)을 통합, ‘세계를 리드하는 인공지능(AI) 테크 컴퍼니’를 꿈꿨다. 미국과 중국의 빅테크 기업에 대적한다는 포부는 지난해 말 야후재팬에서 발생한 개인정보 유출 사건으로 일본 정부가 지분 매각을 압박하면서 중대 기로를 맞은 셈이다. ‘네이버의 기술과 소프트뱅크의 자본으로 미국·중국 IT 기업에 대항한다’는 명분을 내세웠던 양 사 파트너십이 틀어진 이유는 자국 기술을 중요시하는 ‘AI 국가주의’가 영향을 미쳤을 공산이 크다. 업계 관계자는 “소프트뱅크로선 일본 정부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다”며 “소프트뱅크는 일본 정부 방침대로 움직이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2022년 말 챗GPT 등장 이후 손정의 소프트뱅크 회장의 생각이 바뀌었다는 분석이다. 네이버와 소프트뱅크는 2021년 네이버의 AI팀(클로바 CIC)을 분사해, 라인야후처럼 공동 투자하는 방안을 조율하기까지 했지만 해당 안건은 없던 일이 된다. 주목되는 것은 2022년 말 챗GPT가 등장하자, 소프트뱅크는 지난해 마이크로소프트(MS)와 전략적인 파트너십을 맺었다는 점이다. AI 기술 역시 구글과 MS를 활용하기 시작했다. 소프트뱅크는 생성 AI와 관련해 대대적인 추가 투자를 하고, 엔비디아가 올해 3월 발표한 엔비디아 최신 칩인 DGXB200을 사들여 1조 파라미터의 생성 AI를 구축한다는 목표다. 파라미터란 인간 두뇌의 시냅스에 해당하는데, 크면 클수록 연산 능력이 높다. 오픈AI GPT-4가 1조 개를 넘으니, 이에 버금가는 모델을 만들겠다는 포부다. 아울러 지난해는 310억달러(약 42조원)에 인수한 반도체 설계 기업인 ARM이 상장하면서 잭팟을 터뜨리며 투자 여유도 생겼다. ARM 시가총액은 1132억달러(약 155조원) 정도다.
이처럼 일본의 국민 메신저 ‘라인’을 글로벌 서비스로 키워놓은 네이버가 사업을 통째로 일본에 빼앗길 위기인데도 향후 계획에 대해서는 구체적인 입장을 내놓지 않고 있다. 네이버는 지난 5월 10일 입장문에서 “지분 매각을 포함해 모든 가능성을 열고 소프트뱅크와 성실히 협의해 나가고 있다”며 “결론이 내려지기 전까지는 상세한 사항을 공개할 수 없다”고 밝혔다.
업계에서는 네이버의 소극적인 자세가 사업 효율화를 위해 라인 관련 지분을 정리하는 것으로 이미 가닥을 잡은 것 아니냐는 관측을 내놓고 있다. 경영권 이슈가 본질이 아니라 네이버와 소프트뱅크 간 사업 효율화 차원에서 ‘큰 그림’이 이미 짜인 것이 아니냐는 것이다.
A홀딩스 출범 당시 이사회 구성원 총 5명 중 네이버 사람은 이해진 글로벌투자책임자(GIO)와 황인준 라인 최고재무투자자(CFO) 2명이었고, 3명은 소프트뱅크 측 인사가 채웠다. 출범 당시 경영권은 소프트뱅크, 기술개발권은 네이버가 각각 담당하기로 했다. 업계 관계자는 “A홀딩스 출범 당시 구조를 보면 네이버가 실질적인 경영권을 갖고 있지 않았다”며 “경영권 이슈가 아니라 시너지 효과가 크지 않다고 판단한 네이버가 지분 정리 수순에 착수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내다봤다. 박경서 고려대 경영대 교수는 “지분 50 대 50은 상대에 대한 무한한 신뢰를 전제로 하지만, 애초에 국적이 서로 다른 지배주주가 만난 것으로 이에 대한 대비를 미리 했어야 했다”고 지적했다.
관전 포인트는 네이버의 선택이다. 네이버가 A홀딩스 지분을 매각하지 않거나, 매각하더라도 일본 사업 지배력을 넘기고 동남아 사업권은 챙기는 방안이 최선이라는 게 업계의 시각이다.
일단 시간은 여유가 있다. 네이버와 소프트뱅크의 라인야후 지분 매각 협상은 장기전으로 흘러갈 전망이다. 대통령실과 네이버는 라인야후가 오는 7월 일본 총무성에 제출할 행정지도 관련 보고서에 네이버의 지분 매각 내용이 빠질 수 있다고 밝혔다. 네이버 관계자도 “보고서 제출이행시기(7월 1일)까지 소프트뱅크 측과 (지분 조정 관련) 협의가 마무리되지 않을 수 있다는 입장을 정부에 전달했다”고 밝혔다. 다만 “소프트뱅크와의 지분 조정 협의가 계속 이어지는 만큼 그 결과는 예측하기 힘들다”고 덧붙였다.
라인야후는 지난해 말 기준으로 자회사 119개를 두고 있다. 특히 모바일 메신저 ‘라인(LINE)’은 월 이용자 수가 1억9600만명(지난해 12월 말 기준)에 달하며, 일본 9600만명, 태국 5500만명, 대만 2200만명, 인도네시아 600만명 등 아시아 지역에선 한국의 카카오톡 같은 간판 메신저 앱으로 자리잡았다.
라인 메신저의 명성에 힘입어 모바일 간편결제 서비스 ‘라인페이’는 전 세계 6400만명(지난해 10월 기준)이 이용하는 서비스가 됐다. ‘라인뱅크’는 인도네시아, 대만, 태국에서만 약 8400만명의 고객을 확보했다.
라인야후의 지분은 네이버와 소프트뱅크가 절반씩 출자해 설립한 합작법인 A홀딩스가 100% 보유하고 있다. 라인야후의 핵심 회사는 대한민국에 소재한 라인플러스와 라인파이낸셜이다.
먼저 라인플러스는 실제 라인 등 글로벌 사업을 진두지휘하는 핵심 자회사로 2013년 2월에 설립돼 경기도 분당에 본사를 두고 있다. 라인플러스 지분은 라인야후 밑에 중간지주회사인 Z중간글로벌주식회사(Z Intermediate Global)가 100% 보유하고 있다.
라인파이낸셜은 모바일 페이·뱅킹·보험 등 라인의 금융 사업을 목적으로 2018년 3월에 설립됐으며, 경기도 분당에 본사를 두고 있다. 라인야후가 100% 지분을 갖고 있는 모회사다.
라인파이낸셜 역시 대만·태국·홍콩에 해외 자회사를 두고 라인뱅크, 라인페이 등 글로벌 금융 사업을 확대하고 있다. 결국 한국은 라인야후의 글로벌 사업 확장을 위한 전초기지 역할을 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소프트뱅크가 네이버의 A홀딩스 지분을 넘기라는 건 라인야후뿐 아니라 라인플러스 라인파이낸셜, 이에 종속된 글로벌 서비스·사업의 지배구조를 모두 달라는 얘기와 다름없다는 것이 업계의 해석이다.
정작 라인플러스 내부에서는 네이버보단 소프트뱅크와 라인야후에 회사 정체성을 더 두고 있는 분위기다. 이은정 라인플러스 대표는 지난 5월 14일 라인플러스 전 직원 대상 온라인 간담회에서 “우리는 네이버가 아닌 라인 직원”이라며 “네이버와 특수관계이긴 하지만, 별도회사”라는 입장을 밝힌 것으로 전해졌다. 실제로 라인플러스 사업보고서에는 최상위 지배기업으로 소프트뱅크가 명시되어 있다. 라인파이낸셜도 마찬가지다.
데자와 다케시 라인야후 최고경영자(CEO)도 네이버와 A홀딩스 지분 협상을 염두에 둔 듯 “(라인플러스 직원들의) 고용 안정을 보장하겠다”며 “변화는 없다”고 했다. 또 “글로벌 사업 개발과 새로운 서비스 준비는 차질 없이 진행되고 있다”고 설명한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 업계에선 라인야후의 일본 사업권은 소프트뱅크가, 나머지 해외 사업권은 네이버가 확보하는 방안이 거론된다. IT업계의 한 관계자는 “네이버가 행사할 수 있는 옵션은 해외 교두보를 남겨두도록 동남아 사업을 가져오는 것”이라고 했다.
소프트뱅크가 지분을 전량 사들이고, 네이버가 자금 중 일부를 활용해 라인야후 계열사 가운데 일본 외 해외 사업을 담당하는 계열사를 사들이는 방식이다. 관건은 Z인 터미디어트다. 해당 중간지주는 해외 담당 자회사인 라인플러스 100%, 캐릭터 담당 아이피엑스(IPX) 52.2% 등을 보유하고 있다. 해당 시나리오는 네이버가 가장 희망하는 방안이지만, 소프트뱅크가 거절할 가능성이 크다. 현재 소프트뱅크 그룹은 자체 AI모델을 구축해 라인, 야후, 페이페이 등 IT 망을 활용해 서비스를 하려고 계획 중이다. 이런 상황에서 라인야후의 해외 사업을 떼어내는 것은 받아들이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위정현 중앙대 다빈치가상대학장(IT 공정과 정의를 위한시민연대 준비위원)은 “라인의 매각을 어쩔 수 없이 해야되는 상황으로 몰리게 된다면 일본 내 사업을 포기하더라도 동남아 시장은 반드시 확보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위 교수는 “각국 사례를 살펴보면 다른 국가가 개발한 메신저 앱이 특정 국가를 장악한 경우는 거의 없다”면서 “라인이 일본과 동남아 시장을 석권했다는 것은 우리 IT 기업의 쾌거이며, 다시 이뤄내기 힘든 성취이기 때문에 반드시 지켜야 한다”고 거듭 강조했다. 라인의 동남아 시장을 확보하는 것과 관련해 “기술적으로 가능하다. 망을 분리해 한국의 서버를 두고 운영하면 된다”며 “장기적으로 플랫폼 분리까지 생각해 전략을 짜야 한다”고 주장했다.
위 교수는 “만일 페이스북이나 구글 등 다른 글로벌 IT 기업에 정보 유출 문제가 생길 경우에도 일본 정부가 우리에게 한 것처럼 ‘자본 관계 개선’이라는 잣대를 들이댈 수 있을지 되묻고 싶다”면서, 일본이 문제 삼고 있는 자국 정보의 해외 데이터 서버 저장과 관련해서도 “글로벌 IT 기업들도 데이터 저장을 위해 서버를 해외 각지에 분산해 처리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또 다른 업계 관계자는 “분명한 것은 기술력이 있는 네이버지만 아마추어 같은 경영 전략으로 전략적 실수를 한 것은 맞다”면서 “더 늦기 전에 정부가 적극 나서서 문제 해결에 도움을 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라인 매각에 따른 현금 확보로 오히려 새로운 투자 기회를 맞이할 수 있다는 분석도 있다. 오동환 삼성증권 연구원은 “라인과 야후재팬의 합병 이후 2년간 라인야후 주가도 지지부진한 상태”라며 “라인야후 지분을 팔아 확보한 현금으로 성장성이 더 높은 AI 등 분야에 투자하거나 주주환원을 강화하는 게 주가에 더 긍정적이라는 의견을 가진 투자자도 있다”고 설명했다.
[김병수·문수인 기자]
[본 기사는 매경LUXMEN 제165호 (2024년 6월)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