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의 작은 섬이지만 대한민국 정치, 금융의 중심지인 여의도. 한때 부촌의 대명사이기도 했던 이곳은 강남지역의 부동산 불패와 성수 등 신흥 부촌의 등장에 기억의 저편으로 사라지는 듯했다. 하지만 최근 여의도 분위기는 언제 그랬냐는 듯이 예전의 영광(?)을 찾는 분위기가 역력하다. 곳곳에 고층 건물이 들어서면서 스카이라인이 달라졌고, 여의도의 숙원이었던 재건축까지 허용되면서 변화의 기운이 거세게 이 일대를 휘감고 있다. 직접 눈으로도 확인할 수 있다.
IFC의 등장 이후, 파크원이 들어서면서 지역 랜드마크였던 63빌딩을 초라하게 만들었고, 그 옆에 둥지를 튼 더현대서울은 새로운 럭셔리 쇼핑의 중심지로 떠올랐다. 여기에 더해 옛 MBC 부지에 짓고 있는 공동주택단지인 브라이튼 여의도가 거의 마무리 단계에 들어서면서 이 일대의 외관은 상전벽해라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오랜만에 이 지역을 지나는 이들을 어리둥절하게 한다.
그런데 여기에 방점을 찍는 개발 계획이 하나 더 추가됐다. 서울시가 여의도공원에 제2세종문화회관을 건설하겠다고 나선 것이다. 여의도가 가진 정치와 금융 중심지란 이미지에 ‘문화’를 더하겠다는 구상을 서울시가 내세운 것이다.
여의도 제2세종문화회관 건설은 한강을 이용해 서울을 세계적인 도시 문화공원으로 만들기 위한 계획의 일환으로 오세훈 서울시장이 야심차게 추진 중이다. 원래 영등포구 문래동에 짓기로 예정돼 있었지만 같은 관내인 여의도로 부지가 바뀌었다. 애초 서울 서쪽 지역의 부족한 문화시설을 보완한다는 개념으로 출발한 제2세종문화회관의 비전이 더욱 확대된 셈이다.
제2세종문화회관이 들어서는 입지는 한강을 바라보는 기준으로 오른쪽에 LG 사옥과 파크원, 왼쪽의 국민일보와 이지스자산운용 사이에 있는 공원 부지가 될 것으로 보인다. 현재는 녹지공간이다. 물론 이 같은 구상은 바뀔 수도 있다. 시는 제2세종문화회관 여의도공원 건립을 계기로 여의도공원 전체 리모델링 작업을 진행할 예정인데, 5월 중 디자인 공모 이후 구체화할 예정이기 때문이다.
시 관계자는 “그레이트 한강 프로젝트 구상에 따라 한강과 연계한 입지가 적합할 것으로 보고 있지만 전체 설계 디자인 공모에서 더 좋은 구상이 나오면 이를 적극 고려할 계획도 가지고 있다”고 말했다. 즉 한강변과 다소 거리가 있는 공원 내 위치로 제2세종문화회관의 입지가 바뀔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것이다.
현재 알려진 대로 한강변과 가까이 짓게 된다면, 제2세종문화회관은 독일 엘프필하모니를 벤치마킹할 예정이다. 오세훈 서울시장이 지난 3월 유럽 방문에서 밝힌 구상인데, 이를 위해 직접 함부르크를 찾았다. 엘프필하모니는 함부르크 엘베강가에 있어, 한강 옆에 자리를 잡으려는 제2세종문화회관과의 입지 유사성이 있다는 점이 고려된 것으로 알려졌다.
또 낙후된 지역을 개발해 명소로 만든 개발 성공 사례인 점도 벤치마킹의 또 다른 이유다. 1963년 옛 하적장 창고를 개조해 지은 엘프필하모니는 독특한 외관으로 완공되자 지역의 명물이 됐고, 개관 이듬해 360만여 명이 찾을 정도로 인기를 끌었다. 한강을 배후로 둔 제2세종문화회관 역시 완공되면 서울의 새로운 랜드마크가 되기에 충분해 보인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견해다.
오세훈 서울시장도 자신감을 내보이고 있다. 오세훈 시장은 “엘프필하모니 하나로 도시의 브랜드 이미지가 완전히 바뀌고 관람객과 관광객 숫자가 폭증했다”라면서 “잘 지은 문화시설 하나가 도시의 브랜드도 바꾸고 먹여 살린다”라고 말했다. 물론 여의도에 들어서는 제2세종문화회관에 대해 마냥 긍정적인 시각만 있는 것이 아니다. 여의도공원의 일부를 훼손할 수밖에 없는 이 계획은 안 그래도 부족한 서울의 녹지 문제와 연계될 수 있다.
주말마다 여의도공원을 찾는다는 지역 주민 양혜주 씨는 “제2세종문화회관이 들어선다고 하는 일대는 녹지공간인데, 이를 없애면 상당한 녹지가 사라져 공원이란 말이 무색해지는 것이 아니냐”라면서 “솔직히 개인적으로는 여의도공원의 현재 모습이 더 나은 것 같다”라고 말했다.
이에 시측은 “여의도 전체 리모델링 작업을 하면서 기존 녹지 비율을 유지하거나 더 높이는 방향으로 갈 예정”이라면서 “문화공원의 콘크리트 바닥도 잔디 등으로 바꿀 수 있다”라고 밝혔다. 다만 여의도공원 내 있는 생태공원은 손대지 않는다.
지역 내 갈등이 커지는 요인도 반갑지 않은 요소다. 현재 같은 구 소속이지만 여의도를 제외한 영등포 내 다른 지역 주민들은 제2세종문화회관의 여의도 건립에 반감을 가지고 있는 이들이 꽤 많다. 애초 문래동 옛 방림방적 부지에 들어설 예정이었던 제2세종문화회관으로 인해 지역 부동산 시장 활성화에 대한 기대감 등이 컸지만 계획 무산으로 완전히 헛된 기대감이 돼버렸기 때문이다.
이에 대한 반발을 무마하기 위해 해당 부지에 구립 복합 문화시설을 조성할 예정이지만, 지역민들의 불만은 전혀 사그라지지 않고 있다. 서울시는 제2세종문화회관에서 공연을 보지 않아도 시설을 즐길 수 있게끔 할 예정이다. 제2세종문화회관은 2026년 착공해 2028년께 정식 문을 여는 것이 목표다. 대공연장 2000석, 소공연장 400석 등이 갖춰진다.
제2세종문화회관이 아직 먼 미래의 것이라면 ‘브라이튼 여의도’는 여의도의 역동적인 탈바꿈을 눈으로 직접 확인할 수 있는 대상물이다. 17년 만에 여의도에서 공급되는 새 주택단지라는 상징성에다가, 49층의 초고층 아파트란 점이 눈길을 끌고 있다. 브라이튼은 공동주택 2개 동과 오피스텔 1개 동, 오피스 1개 동으로 이뤄진 복합단지다.
브라이튼은 오는 9월 입주를 시작한다. 현재 막바지 공사 중인 브라이튼을 향한 지역의 관심은 뜨겁다. 특히 소득 수준이 높은 인근 금융맨들의 관심이 뜨겁다. 기자가 현장을 찾은 당일에도 오가는 이들 중 상당수가 마무리 단계에 들어선 건물에 관심을 보였다.
인근 증권사에서 근무한다는 A씨는 “직장도 가깝고, 각종 인프라도 좋아 꾸준히 관심을 가져왔다”라면서 “임대로 분양을 한다기에 초기 비용 부담이 덜한 것도 끌리는 이유”라고 말했다. 브라이튼은 현재 여의도 신축 아파트 중에서 최상의 입지를 자랑한다. 여의나루역과 여의도역 사이에 자리 잡은 더블역세권이란 장점도 있다. IFC몰, 더현대서울 등 쇼핑 문화 인프라도 지척에 있다.
하지만 입주가 끝나면 브라이튼도 여의도 부동산에 관심이 있는 이들에게 당분간 잊힐 존재가 될 확률이 높다. 브라이튼보다 더 대어급의 아파트들이 줄줄이 대기하고 있기 때문이다. 현재 여의도 시범, 목화, 서울 대교, 삼부 등 이 일대 노후화된 아파트들 대부분이 재건축을 추진하고 있는데, 이들은 모두 초고층 아파트로 변모하게 된다. 입지적으로 대한민국 부동산 시장의 로망인 한강을 지척에 두고 있다. 당연히 관심이 높을 수밖에 없다.
한동안 지지부진했던 여의도 재건축이 탄력을 받은 것은 오세훈 서울시장 체제가 들어서면서 시가 이곳의 낙후된 아파트들이 손쉽게 재건축을 할 수 있는 길을 열어줬기 때문이다. 신속통합기획이란 이름으로 추진되는 이 정책은 정비계획 수립 단계에서 서울시가 공공성과 사업성의 균형을 이룬 가이드라인을 제시하고 신속한 사업 추진을 지원하는 것을 말하는데, 여의도 재건축 추진 아파트 상당수가 이를 통해 속도를 내고 있다. 현재 시범·한양·삼부·대교아파트가 신속통합기획으로 재건축을 추진하고 있다.
이 지역의 재건축에 대한 의지와 열기는 초입부터 느껴진다. ‘여의도 최초 조합설립인가’(목화아파트), ‘주민제안 지구단위계획, 우리가 합심하면 달성할 수 있습니다’(서울아파트), ‘여의도 하늘을 비상하다, 여의도 공작아파트 재건축정비사업 사업시행자 지정 고시’ 등 아파트 입구와 단지 곳곳이 각종 재건축 관련 구호로 요란하다. 현재 서울시의 여의도 관련 재건축 기본 구상은 이곳의 랜드마크 격인 63빌딩과 파크원의 높이와 조화를 이루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63빌딩은 250m, 파크원은 333m 높이인데, 이를 기준으로 ‘U’자형 스카이라인을 형성하도록 계획지침을 세웠다. 이 기준에 따라 63빌딩 옆에 있는 시범아파트는 현재 최고 65층 높이의 초고층 아파트를 지을 수 있는 재건축이 확정됐다. 삼부아파트와 대교아파트도 각각 최고 56층과 59층 높이의 아파트 재건축을 추진 중이다. 공작아파트도 최고 49층 아파트를 다시 세우려 하고 있다.
LG 사옥 옆에 있는 서울아파트의 경우 77층 높이의 재건축을 다시 추진할지가 관심이다. 한강변 층수 규제를 받지 않는 전국에서 유일한 단지이기 때문이다. 서울시가 인근 아파트들의 초고층 재건축 추진에 호의적인 분위기여서 서울아파트의 행보는 일대 부동산 업계의 최대 관심사다. 서울 아파트의 재건축이 성사되면 한강 조망권이 영구적으로 확보된다.
이 한강 조망권은 여의도 일부 단지에서 재건축 추진에 걸림돌이 되기도 한다. 서울아파트의 길 건너에 있는 목화와 삼부가 통합 재건축을 시도하다 한강뷰 문제를 놓고 갈라섰다. 목화아파트는 신속통합기획을 통하지 않고 재건축 절차를 밟고 있다. 목화아파트는 50층 아파트를 추진하고 있다. 금융권과 가장 가까운 한양아파트는 금융특화 단지를 내세워 재건축을 추진하고 있다. 최고 54층 높이로 추진되고 있다.
여의도 재건축 붐에 따른 기대감은 크지만 아직 가격적인 측면에서는 강남을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강남 한강변 아파트의 대표주자 격인 아크로리버파크가 3년 전 평당 1억원을 넘겼지만 아직 여의도는 이에 미치지 못하고 있다. 특히 최근 글로벌 금융 위기 우려에 여의도도 자유롭지 못한 모양새다. 재건축 추진이 가장 빠른 시범아파트의 경우 올 3월 79.24㎡가 16억2000만원에 거래됐는데, 평당 6700만원 선이다.
지난해 5월 거래된 60.96㎡의 매매가는 17억4500만원으로 약 7300만원이었던 것을 감안하면 가격이 빠진 셈이다. 다른 아파트 사정도 마찬가지다. 올 3월 삼부아파트 135.8㎡가 23억원에 거래됐는데, 2021년 4월 거래된 같은 평형대의 매매가는 26억2500만원에 거래됐다. 지난해 삼부아파트는 3.3㎡당 7000만~8000만원에 거래됐지만, 올해 거래된 삼부아파트의 3.3㎡당 가격은 5600만원 선에 그쳤다.
광장아파트 역시 지난해에 비해 매매 가격이 내려갔다. 올 3월 광장아파트 102.35㎡는 3.3㎡당 6000만원 선인 18억8000만원에 거래됐다. 이 아파트 역시 지난해 거래 가격은 7000만원 선이었다. 이에 대해 지역 부동산 업계에서는 일시적인 현상으로 보고 있다. 재건축이 본격화되고 경기 회복이 조짐이 보이면 1억원 돌파는 시간문제라는 것이다.
한 부동산 관계자는 “재건축 과정이 마무리되고 공사가 본격화하면 시세가 다시 탄력을 받을 수 있을 것으로 본다”라면서 “그때는 경기도 흐름상 호전될 확률이 있어 만약 여의도 입성을 노린다면 지금이 기회일 수가 있다”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브라이튼 여의도가 4년 임대 분양으로 돌아선 배경도 그때쯤 되면 부동산 경기가 좋아질 수 있다는 계산이 깔린 것 아니겠냐”라고 덧붙였다. 브라이튼 여의도는 3.3㎡당 1억원에 분양하려다 경기 위축에 이를 포기하고 민간임대로 돌아섰다.
현재 서울시는 여의도를 세계 5위 안에 드는 국제 금융 중심지로 조성한다는 구상을 하고 있다. 여의도의 특징 중 하나인 ‘금융’에 더 힘을 실어주겠다는 것인데, 이를 위해 여의도 금융특정개발진흥지구 진흥계획을 지난 3월 승인했다.
계획에 따르면 ▲디지털금융지원센터 설립 ▲핀테크 기업 육성 ▲금융 중심지 브랜딩 홍보 강화 ▲금융 교육 활성화 ▲영어 친화 환경 조성 등이 추진된다. 올해부터 2027년까지 5년간 총 593억5700만원을 투입한다. 본격적인 첫걸음도 뗐다. 디지털금융지원센터 설립을 위한 설계안 공모에 나선 것인데, 심사 등을 거쳐 올 6월 말쯤 결과가 나올 예정이다.
여의도를 글로벌 금융 중심지로 키우는 데는 여야가 따로 없다. 여의도가 지역구인 김민석 민주당 정책위의장은 여의도에 국제학교가 필요하다고 보고 공청회 추진 등 적극적인 여건 마련에 나서고 있다.
여의도의 가치 재부각으로 지역 오피스 공실률도 줄어들고 있다. 한동안 이곳을 떠나기 바빴던 기업들이 최근 다시 여의도로 복귀하는 현상이 엿보이는데, 최근 다른 점은 IT 기업들이 분위기를 이끌고 있다는 것이다. 프라임오피스가 들어서는 등 관련 인프라가 크게 개선됐기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문수인 기자 사진 류준희 기자]
[본 기사는 매경LUXMEN 제152호 (2023년 5월)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