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기술의 조기 자립화와 새로운 주력 산업 창출을 위해서 민간 주도의 우주 산업 생태계를 활성화하겠습니다. 공공 우주기술의 민간 이전과 연구·개발 지원, 규제 개혁 등으로 민간이 우주개발을 선도하도록 하겠습니다.”
지난해 12월 21일 한덕수 국무총리가 제22회 국가우주위원회에서 밝힌 우주 분야 주요 정책 목표 중 하나는 민간 주도 우주 산업 생태계 활성화다. 이날 확정된 4차 우주개발진흥기본계획에 따르면 정부는 우주기본법을 제정해 우주경제 개념을 새로 규정하는 한편 우주산업법도 제정해 발사체(로켓)와 위성 등 관련 기업을 다양하게 지원하기로 했다.
갈 길은 멀다. 그동안 정부 주도로 진행된 한국의 우주 산업은 발사체와 위성 제조 역량을 확보했다. 그러나 민간 영역의 우주 기업 389곳 중 연 매출 10억원 미만의 기업이 255개(65.6%)에 달할 정도로 산업이 영세한 편이다.
정부는 이러한 현실을 타개하기 위해 우주 스타트업도 100개 이상 육성한다는 계획이다. 누리호, 다누리(한국 첫 달 탐사선) 등 그간 쌓은 공공기관의 노하우를 기업에 적극적으로 넘겨 한국 우주 시장 규모를 세계 시장의 1%(3조4200억원)에서 2045년 10%(160조원) 규모로 키우겠다는 목표를 내놨다.
우주 산업은 크게 위성 제조, 발사, 운영, 서비스 분야로 나뉜다. 위성의 제조와 발사 영역은 업스트림(Upstream)으로 분류하며, 제조에 필요한 장비와 부품 관련 기업들이 공급망에 포함되어 있다. 다운스트림(Downstream)은 우주로 발사된 위성이나 발사체를 운영하는 지상국과 이를 운영하는 솔루션, 그리고 운영 과정에서 파생되는 데이터를 활용하여 사용자에게 서비스를 제공하는 모든 분야를 의미한다. 일반적으로 우주 산업에서 업스트림 분야의 시장 규모가 클 것으로 생각하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우주 시장 조사기관인 유로컨설트(Euroconsult)의 분류에 따르면 2020년 위성 데이터를 수신하는 지상 장비와 위성 서비스 분야는 전체 시장의 68%를 차지하고 있다.
국가 주도의 올드스페이스(Old Space)에서 민간 주도의 뉴스페이스(New Space)로 주도권이 바뀌며 다양한 신산업이 등장하고 있다. 빅데이터 활용이 필수적인 자율주행, 물류 서비스 산업이 빠르게 성장하면서 기존 통신망보다 연결성과 안정성이 뛰어난 위성 통신에 대한 수요도 급증했다. 스페이스X, 아마존, 원웹 등이 인공위성 초고속 인터넷 시장에서 경쟁을 본격화하고 있다.
위성의 수가 증가하며 버려진 위성을 청소하는 우주 청소부 기업도 등장했다. 일본 스타트업 아스트로스케일(Astroscale)은 거대자석인 마그넷을 활용해 우주 부유물인 쓰레기를 수거하는 사업을 운영 중이다. 이 외에 러시아 스타트업인 스타트로켓은 우주 쓰레기를 끈적한 거품으로 위성에 붙여서 지구 대기권으로 떨어뜨려 태우는 방식을 내세워 사업을 영위하고 있다.
우주여행이 본격화할 것을 대비해 정거장 건설에 나서는 기업들도 있다. 현재 낙후된 우주정거장을 대체할 새로운 우주정거장 건설에 ‘록히드마틴&나노랙스’ ‘블루오리진&보잉’이 제안서를 제출한 것이 대표적이다. 록히드마틴 측은 연구·실험 목적인 ‘스타랩’의 모듈별로 나눠서 건설할 계획이고, 블루오리진 측은 연구·산업·관광 다목적용인 ‘오비털 리프’ 건설 계획을 발표하기도 했다. 금융기관에서 위성 데이터를 활용하는 사례도 등장했다. 인도 ICIC은행은 인공위성 이미지 데이터를 활용해 농부가 보유한 토지, 개관 및 농작물 상태 등을 평가해 이를 통해 대출을 제공해주는 상품을 선보이기도 했다.
이 외에도 4차 산업혁명 시대를 맞이하여 위성항법시스템이 주목받고 있다. 위성항법시스템은 4차 산업혁명 시대의 사회기반시설을 구축하여 개인의 편익을 증진하는 국가의 주요 인프라로 부상하고 있다. 위성항법시스템은 항법, 긴급구조 등 공공부문뿐만 아니라 스마트폰 등과 같은 국민 개개인의 생활 속까지 그 활용 영역을 급속히 확대하고 있다.
이러한 추세에 부응하여 각국은 독자적 위성항법시스템 구축에 박차를 가하는 추세이다. 미국은 GPS, 러시아는 글로나스(GLONASS), 중국은 베이더우는 GNSS(Global Navigation Satellite System)를 이미 구축하였고, 유럽의 갈릴레오(Galileo)도 GNSS를 구축 중이다. 한편, 인도의 나빅(Navic), 일본의 큐즈(QZSS)는 RNSS(Regional Navigation Satellite System)을 구축 중이고, 한국도 독자 위성항법시스템인 KPS 구축에 대한 논의를 벌이고 있다.
김상배 서울대학교 교수는 ‘우주지정학과 뉴스페이스: 복합지정학의 시각’이란 리포트를 통해 “최근 뉴스페이스 모델은 우주 발사 서비스, 위성 제작, 통신·지구 관측 이외에도 우주 상황 인식, 자원 채굴, 우주 관광 등 다양한 활용범위로 확장되고 있으며 이에 참여하는 기업의 숫자와 투자 규모도 늘어나고 있다”며 “우주 식민지 건설, 우주 자원 채굴, 우주공장(Space Factory) 등과 같이 장기적으로나 실현 가능한 불확실한 분야에까지 우주개발 투자가 확대되는 양상”이라고 밝혔다.
글로벌 우주 산업은 GDP 대비 우주개발 예산의 비중이 높은 미국과 러시아 등 전통적인 선도국가가 앞서 나가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민간 주도의 우주 산업의 생태계가 확장되고 있지만 국가 기술 이전이나 민간과 협력하는 국가의 중요성이 여전히 높은 편이다. 오랜 기간 많은 양의 자본이 투입되어야 하는 산업이기 때문이다.
유진형 DB금융투자 연구원 “2020년 기준 한국의 우주 산업 예산은 중국의 8.2%, 일본의 21.7% 규모이며 GDP 대비 우주개발 예산의 비중도 주요 국가들에 비해 낮은 수준”이라며 “다만 최근 발사체 성공으로 국민적 관심이 쏠리고 새 정부에서 우주개발 전담 조직인 우주항공청의 출범과 미래우주경제 로드맵을 발표하며 기대감이 높아졌다”라고 진단했다.
한국이 경쟁력을 가지고 있는 분야로는 지상 장비 부문의 성장 가능성이 크다고 평가받고 있다. 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 2020년 기술수준평가 보고서에 따르면 최고기술 보유국인 미국 대비 한국의 기술 수준은 ‘위성체 제작(지상 장비 포함)’ 분야는 60%, ‘위성 서비스’ 분야는 56%로 전 세계 5위의 기술역량을 보유하고 있으나 4위(중국, 80.8%)와 큰 격차를 보인다. 다만 다른 분야에 비해 상대적으로 기술 격차가 크지 않고, 세계적 업체의 벤더로 참여하고 있어 따라잡을 수 있는 여지가 있다.
뉴스페이스 시대에서 비교적 빨리 국내 기업들이 글로벌 경쟁력을 갖출 것으로 예상되는 분야로는 위성정보를 가공해서 분석하고 활용하는 비(非)위성 산업이 꼽힌다. 위성에서 발생한 정보의 가공 수준에 따라 다양한 비즈니스 모델이 창출되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이를 활용할 수 있는 기기와 환경의 증가로 위성정보를 활용하려는 기업들의 사업적 수요도 늘어나고 있다.
유진형 연구원은 “위성의 수가 많아지고 그 활용처가 넓어질수록 위성정보를 수신하려는 수요도 커지고 있다”라며 “특히 AI·딥러닝 등의 기술을 활용한 위성 영상 분석 서비스는 국내 기업이 해외 시장에서 충분히 경쟁할 만한 분야로서 다양한 산업과 연계하여 기회를 찾을 것으로 예상한다”라고 말했다.
[박지훈 기자]
[본 기사는 매경LUXMEN 제149호 (2023년 2월)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