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마를 왜 ‘귀족 스포츠’라고 할까. 화려한 승마장과 고급 승마복, 값비싼 말을 떠올렸다면 승마에 대해 아직 절반도 이해하지 못한 것이다. 승마는 동물과 인간이 함께 올림픽에 참가하는 유일한 스포츠이자 성별의 구분 없이 남녀가 함께 경쟁하는 스포츠다. 말 위에서는 누구나 평등하기 때문에 성별, 인종, 신체의 차이는 의미가 없다. 오직 말과 사람이 얼마나 혼연일체가 될 수 있는지가 승부를 가를 뿐이다. 이런 승마를 귀족 스포츠라고 하는 이유는 단순히 비용이 비싸서가 아니다. 동물과 정서적인 교류가 필요한 섬세한 스포츠이기 때문이다. 승마를 즐기려는 사람은 말의 언어를 이해하기 위해 인내하고 소통해야만 한다.
실제로 해외에서는 승마를 엘리트 스포츠가 아닌 생활스포츠로 즐기는 사례가 적지 않다. 독일은 세계 최고의 승마 강국으로 꼽히며 올림픽을 비롯한 각종 승마대회를 휩쓸고 있다. 비결은 전국에 7000여 개의 승마장에서 170만 명이 승마를 즐길 정도로 말을 타는 문화가 일상에 자리 잡은 데에 있다. 초등학생 때부터 조깅이나 배드민턴을 즐기듯 집 근처의 승마장에서 조랑말을 타는 모습은 독일에서 너무도 낯익은 풍경이다. 프랑스 역시 생활승마가 일반적이고 각 지역마다 소규모 승마장이 활성화 돼 있어 집 근처에서 저렴하게 즐길 수 있다. 미국도 1988년부터 승마가 볼링, 스키와 함께 비약적인 성장을 했고, 일본 역시 1987년 이후 승마 인구가 폭발적으로 늘어 7만 명의 인구가 1000여 개의 승마장에서 승마를 즐기고 있다.
반면 우리나라의 승마 인구는 지난해 기준으로 2만5000명에 불과하고 승마장도 전국에 300여 개가 채 안 된다. 우리나라 전체 말 산업 규모는 1조9800억원 정도. 그중 승마가 차지하는 비중은 1%를 갓 넘긴 235억원이다.
그러나 말 산업 육성법 제정에 따라 앞으로 말산업의 전체적인 규모가 늘어나면서 승마 역시 양적인 성장을 이룰 것으로 보인다. 정부가 축산발전기금을 통해 매년 승마장 설치를 지원하고 상주·영천 등 지자체 역시 직영 승마장을 운영하는 등 국내 승마장 수도 늘어나는 추세. 2014년 승마장은 500개로 늘어날 예정인데 접근성이 개선되면 승마 비용 역시 저렴해질 것으로 보인다. 승마 인구 역시 지금의 2만5000명에서 4만6000명까지 늘어날 전망이다.
1~3차 산업 아우르는 월등한 부가가치
올해 초 말 산업 육성법이 통과되면서 정부는 말 산업 육성에 대한 종합계획을 수립하고 지자체의 말 산업 육성을 지원하기 위한 특구도 지정해야 한다. 정부가 단일 축종에 대해 국내 최초로 특별법을 제정하는 등 말 산업에 지원을 아끼지 않는 이유는 말 산업의 높은 성장 잠재력 때문이다. 말 산업은 1~3차 산업을 아우르는 복합산업으로 구성된다. 말은 생산과 육성, 유통의 단계는 소·돼지·닭 등의 가축과 유사하지만 식용으로 최종 소비되지 않는다. 경마·승마 등 3차 서비스 산업으로 소비되기 때문에 부가가치 창출의 기회가 다른 가축보다 월등히 많다. 게다가 레저와 스포츠를 넘어서 맹인 안내를 위한 맹도마, 장애인 재활치료까지 그 영역도 넓어지고 있다. 또한 말의 부산물도 말고기 이외에 화장품, 약품, 퇴비 등에서 수요가 증가하고 있다.
말은 농어촌의 새로운 소득 자원이다. 특히 말 산업 육성법 통과에 따라 기존의 승마장과 달리 농어촌에서 소규모로 운영되는 ‘농어촌형 승마시설’이 널리 보급될 예정인데 농어촌형 승마시설은 승마뿐 아니라 관광승마체험, 승마 트레킹, 승용마 임대 등의 사업도 할 수 있다. 500㎡에 말 2두면 운영이 가능하기 때문에 소규모 자본으로도 경쟁력을 갖출 수 있다. 게다가 다른 반추동물과 달리 말의 분뇨는 메탄가스 배출량이 적어 친환경적인 농작물 퇴비로 적합하다. 실제로 현재 경마장에서 생산되는 마분은 연간 계약을 통해 전량이 송이버섯 재배 농가에서 퇴비로 사용하고 있다.
심리적 웰빙 지수 높이는 학생 승마
이밖에도 학교 체육과목으로 승마가 보급되고 농어촌형 승마 관광체험 상품이 활성화된다면 승마가 창출하는 새로운 부가가치는 더욱 늘어날 것이다. 특히 말 생산농가는 전체 축산농가 가운데 2.2%에 불과한데 향후 FTA 등으로 어려움이 예상되는 축산농가의 대체 소득원이 된다면 그 규모 역시 증가될 것으로 보인다. 현재 승마 강습 비용은 100분 기준으로 1회에 3만원∼5만원 수준이지만 이 역시 대폭 하락할 전망이다. 승용마의 가격이 합리적으로 조정되고 승마장의 서비스 경쟁도 치열해지면 보다 쾌적한 환경에서 승마를 즐길 수 있을 것이다.
한편 지자체, 교육청 등에서는 예산 지원을 통해 저렴한 가격으로 초중고생이 방과 후에 승마 강습을 받을 수 있는 프로그램을 운영 중이다. 앞으로는 학교에서 정식으로 승마를 배울 수 있는 길이 열릴 것으로 보인다. 이미 청심국제중, 안산 동산고 등에서는 정규 체육수업으로 승마를 채택했다. 승마는 하체근육을 균형적으로 발달시키고 어깨 높이의 불균형을 감소시켜 준다. 용인대 연구결과 12주간 승마를 배운 학생은 키가 약 1.6cm 자란 것으로 나타났다. 아울러 자기 개념의 긍정적인 변화와 학교 적응력의 향상으로 심리적 웰빙 지수도 상승했다.
승마를 통한 말산업의 선순환 구조가 정착된다면 말 산업은 우리나라 농어촌의 새로운 녹색산업(Agri-Business)으로서 국가경제 성장에 일조할 것이다. 물론 이보다 앞서 산업육성의 체계적인 지원을 뒷받침하기 위해 전문 인력 양성기관, R&D연구소, 전문 자격제도 역시 마련돼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