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본준 LG전자 부회장이 신년 초부터 연구개발, 생산, 시설투자 등 ‘제조업의 기본’을 강조하는가 하면 구인회 창업주의 어록을 인용해 ‘품질경영’을 강조하고 나섰다. 제조업이 살 길은 결국 ‘품질’이라는 의미다.
하지만 LG전자가 지난해 야심차게 출시했던 프리미엄 스마트폰 ‘옵티머스 마하’가 버그 발생으로 시끄러운 문제를 일으키면서 체면을 구겼다. 배터리를 탈부착하게 돼 있는 옵티머스 마하는 배터리를 갈아 끼우기 위해 배터리를 분리하면 사용자 데이터가 초기화되거나 아예 단말기가 미개통 상태로 돌아가면서 사용이 불가능하게 되는 것이다.
옵티머스 마하의 버그 발생은 때마침 구본준 부회장이 강조한 ‘품질경영’과 맞물리면서 눈총을 샀다. LG전자 측은 1월13일 구 부회장이 고 구인회 창업회장의 ‘품질경영어록’을 영어, 스페인어 등으로 번역해 해외법인에 전파할 것을 지시했다고 밝힌 바 있다. 그러나 곧바로 옵티머스 마하의 버그 발생 사건이 터지면서 곤혹스러움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옵티머스 마하의 버그 발생으로 구본준 부회장의 품질경영 강조가 빛이 바랬다.
“가령 100개 가운데 1개만 불량품이 섞여 있다면 다른 99개도 모두 불량품이나 마찬가진 기라. 아무거나 많이 팔면 장땡이 아니라 한 통을 팔더라도 좋은 물건 팔아서 신용 쌓는 일이 더 중요하다는 것을 느그들은 와 모르나.”고 구인회 창업회장의 어록에 실려 있는 이 문구는 LG전자와 구 부회장의 가슴에 어떻게 다가왔을까. LG전자 측은 “옵티머스 마하의 버그 발생을 구 부회장과 회사 전체의 문제로 확대해석하는 것은 무리”라고 말했다.
소비자들의 원성이 여기저기에서 터져 나오자 LG전자는 옵티머스 마하의 공급을 중단했다. 빠른 시일 내에 펌웨어를 업그레이드해 문제를 해소하고 재공급한다는 방침을 밝혔다. LG전자 측은 “피처폰과 달리 PC에 가까운 스마트폰에서 버그 발생은 빈번한 일”이라며 “다른 회사 제품도 마찬가지”라고 해명했다. 즉 문제는 인정하되 LG전자만의 문제로 몰고 가는 것은 억울하다는 것이다.
실제 스마트폰 사용자 사이에서는 갤럭시나 옵티머스나 마찬가지라는 얘기가 많다. 갤럭시S도 이런저런 문제가 빈번하게 발생한다는 것. 이따금 먹통이 되거나 아예 전원이 나가버리는 경우도 있다는 것이 갤럭시S 사용자들의 불평이다. 애플 아이폰도 마찬가지. 한때 시간이 30분 정도 지연됐는가 하면 새해 들어서면서 알람 기능 마비 등이 말썽을 빚었다. IT업계 한 관계자는 “스마트폰에서는 PC에서 일어날 수 있는 오류가 거의 다 일어날 수 있다고 봐야 한다”며 “문제가 생겼을 때 얼마나 신속하게 처리하느냐가 중요하다”고 말했다. 버그 발생이나 오류 부분은 불가피하다 해도 LG전자는 스마트폰과 관련한 문제를 처리하는 데서도 소비자들의 비난을 사고 있다. ‘다양한 기종을 잇따라 출시하려는 생각보다 하나를 출시하더라도 제때 업그레이드하고 품질이 좋은 것으로 생산하라’는 지적이다. ‘아무거나 많이 팔면 장땡이 아니라 한 통을 팔더라도 좋은 물건 팔아서 신용 쌓는 일이 더 중요하다’는 창업회장의 꾸중이 또 연상되는 대목이다.
이 같은 이유 때문인지 일각에서는 ‘LG전자가 스마트폰에 대해 조급증을 갖고 있는 것 아니냐’는 지적도 제기되고 있다. IT업계 또 다른 관계자는 “스마트폰 시장에 뒤늦게 뛰어든 만큼 빨리 따라잡아야 한다는 조급한 생각에 LG전자가 과속한 것일 수 있다”며 “자칫 이런 조급증이 부메랑이 되어 돌아올지 모른다”고 조심스레 말했다.
‘아이폰 쇼크’ 후 스마트폰 중요성 절감
LG전자의 휴대전화사업이 급속히 추락한 가장 큰 이유가 스마트폰으로의 변화에 안이하게 대처했기 때문이라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초콜릿폰’ 등으로 무서운 기세를 보이며 휴대전화 시장점유율을 늘려가던 LG전자는 스마트폰을 ‘더 좋은 일반폰일 뿐’이라고 여기며 대수롭지 않게 생각한 것이 사실이다. LG전자는 가히 ‘아이폰 쇼크’라고 불릴 만큼 스마트폰이 삽시간에 퍼진 후에야 비로소 그 중요성을 깨달았다.
현재 삼성전자가 갤럭시S로 아이폰과 대항하고 있는 데 반해 LG전자는 국내 휴대전화시장마저 팬택에 2위 자리를 내주며 고전하고 있다. 삼성과 LG의 이 같은 극명한 대비는 대처 전략과 시기에서 갈렸다는 것이 일반적인 평가다. 즉 삼성전자는 2007년부터 이미 스마트폰에 대해 고민한 반면 LG전자는 2009년에야 그 중요성을 절감했다는 것이다. LG전자 내에서조차 ‘스마트폰에 대한 명확한 개념이 없다’ ‘그저 똑똑한 폰이다’라고 했을 정도다.
IT업계 또 다른 관계자는 “어느 업종이든 마찬가지겠지만 특히 IT업계에서는 ‘누가 시장을 선점하느냐’가 중요하다”며 “선도기업과 후발기업의 차이가 극명할 뿐 아니라 후발기업이 시장점유율을 높이기 위해서는 다른 업종보다 몇 배 노력을 들여야 하고 그나마 점유율이 찔끔 올라도 다행”이라고 말했다. 즉 IT업계에서 선도기업과 후발기업의 시장점유율 변화 추이는 극히 미미하다는 것이다. 이 관계자는 또 “우리나라 IT 분야의 기술력은 세계적이며 그만큼 회사마다 기술력은 비슷하다”며 “문제는 쉴 새 없이 변화하는 트렌드를 누가 주도하느냐에 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의 말을 되새겨보면 스마트폰 시장에서 LG전자가 왜 고전하고 있는지 알 수 있다.
스마트폰에 대한 LG전자의 당초 전략은 “스마트폰에 관한 한 후발주자인 셈이기 때문에 일단 인지도를 알린 후 시장을 공략하겠다”는 것이었다. 보급형 스마트폰 ‘옵티머스 원’을 먼저 출시하고 이어서 ‘옵티머스 마하’ 등 프리미엄급 스마트폰을 출시해 기술력으로 발빠르게 움직여 나가겠다는 것이다. LG전자는 일단 옵티머스 원이 히트하면서 초기 전략에는 성공했다. 또 옵티머스 마하를 출시할 때까지만 해도 LG전자의 전체 전략이 먹혀들어가는 것처럼 보였다. 드디어 LG전자의 스마트폰 반격이 시작됐다는 평가를 받으며 환영하는 분위기도 있었다.
게다가 옵티머스 마하는 출시 전부터 관심을 끌었다. LG전자는 통신을 담당하는 칩, 멀티미디어와 애플리케이션 구동을 담당하는 칩을 각각 별도로 탑재해 통신과 멀티미디어의 속도를 동시에 높였다고 자신했다. ‘속도’에 초점을 맞춰 이름도 ‘마하’라고 붙인 것. 하지만 버그 발생과 공급 중단 사태 등으로 이미지 타격은 불가피하다.
보급형 옵티머스 원 히트하며 인지도 상승
LG전자 서초R&D 센터.
LG전자는 지난해 안드로이드 원, 옵티머스 원, 옵티머스 큐, 옵티머스 마하 등 국내에서만 4~5종의 스마트폰을 출시했다. 이는 삼성전자가 출시한 숫자와 비슷하다. 세계시장으로 따지면 ‘윈도폰7’ 등이 포함돼 더 늘어난다. 2009년에야 스마트폰의 중요성을 인식한 것 치고는 출시가 활발했던 셈이다.
최고경영자가 구본준 부회장으로 교체되고 옵티머스 시리즈가 연이어 출시되면서 LG전자의 스마트폰은 ‘대반격’의 조짐을 보였다.
구 부회장은 ‘제조업의 기본’을 강조하며 기회 있을 때마다 스마트폰 부문에 철저히 준비해 나갈 것임을 내비쳤다. 구 부회장은 올 초 “내년에는 좋은 성능에 합리적인 제품을 내놓을 수 있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구 부회장 스스로 현실적으로 올해까지 LG전자의 스마트폰 부문은 부진할 것이라고 인정한 셈이지만 그만큼 시간을 충분히 갖고 철저히 대비해 성과를 내겠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리 녹록치는 않아 보인다. 증권가에서도 LG전자 스마트폰에 대해서 부정적인 견해를 나타내고 있다. 노근창 HMC투자증권 수석연구원은 LG전자의 스마트폰사업이 성공할지 여부가 불확실함을 시사했다. 노 수석연구원은 옵티머스 원의 성공은 인정하면서도 “프리미엄 스마트폰 출시를 통해 스마트폰 가격을 올릴 경우 경쟁사 스마트폰과 가격대가 중복돼 여전히 불확실성이 크다”고 진단했다. 이 같은 분석에는 동급일 경우 같은 고가라면 LG전자의 스마트폰이 삼성과 애플의 그것에 밀릴 것이라는 얘기가 함축돼 있다. 결국 동급일 경우 LG전자는 가격경쟁력을 갖춰야 한다는 것으로 풀이될 수 있다.
그렇다고 어두운 전망만 있는 것은 아니다. 미래에셋증권 이순학 연구원은 LG전자가 스마트폰 트렌드를 주도할 것이라고 예측했다. 이 연구원은 “빠른 듀얼코어 스마트폰 출시로 트렌드를 주도할 것”이라며 “옵티머스 시리즈로 1분기 상승 반전을 기대해볼 수 있다”고 전망했다.
LG레볼루션·옵티머스 블랙… LG전자의 다음 기대주
LG전자는 4세대(4G) 이동통신 서비스인 LTE(롱텀에볼루션) 시장을 선점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LTE는 이동통신으로 초고속 무선인터넷을 즐길 수 있는 기술을 말한다. LTE는 인터넷이 3G 통신보다 최고 5배는 빠른 것으로 알려졌다. LG전자는 LTE 시장을 선점하겠다는 계획 아래 독자 개발한 LTE 통신칩을 탑재하고 4.3인치 풀터치 LCD, 안드로이드 2.2(프로요) 버전 운영체제, 500만 화소 카메라, 전면 카메라 등을 적용한 스마트폰 ‘LG레볼루션’을 공개하며 의욕을 보였다. LG레볼루션은 상반기 중 국내에 정식 출시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LG전자는 또 올해 2분기 중 세계시장에 ‘옵티머스 블랙’을 출시해 스마트폰 라인업을 더욱 강화할 예정이다. 옵티머스 블랙은 LG전자가 글로벌시장을 공략하기 위해 준비한 스마트폰이다. 두께가 6㎜에 불과하다. 가장 두꺼운 부분도 고작 9.2㎜다. 옵티머스 블랙은 올해 스마트폰의 경쟁 핵심으로 부각되는 두께와 무게 경쟁을 이끌 수 있다는 평가를 받기도 한다.
많은 전문가들이 스마트폰 부문에서 LG전자의 반격이 성공을 거두느냐 여부는 올 상반기에 결정날 것으로 보고 있다. LG전자의 반격이 성공하려면 ‘제조업의 기본’과 ‘품질’이 전제돼야 한다. 업계 관계자들의 말을 종합해보면 이 두 가지를 갖춘다 해도 후발주자로서 큰 어려움이 따른다. 하물며 이 두 가지마저 지켜내지 못한다면 결과는 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