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영의 영화로 보는 유럽사] (18) 제1차 세계대전과 서부전선 | `저니스 엔드`에 담긴 연합국 對 동맹국 생지옥 전투
입력 : 2021.05.27 16:02:32
수정 : 2021.08.11 14:24:34
914년 보스니아를 방문한 오스트리아-헝가리 황태자 부부가 러시아 지원을 받고 있던 세르비아 왕국의 한 청년에게 암살당하는 사건이 일어난다. 이에 분노한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은 세르비아에 선전포고를 하고, 러시아는 같은 슬라브족인 세르비아 보호를 이유로 총동원령을 선포한다. 이어 독일이 오스트리아-헝가리를 지원하고 영국과 프랑스가 러시아 편에 가담하면서 이 대립은 동맹국(독일·오스트리아·오스만제국)과 연합국(영국·프랑스·러시아) 간의 전쟁으로 확대된다. 4년간에 걸친 1차 세계대전이 발발한 것이다.
이 전쟁에서 벌어진 참호전의 끔찍한 모습을 생생히 담은 영화가 <저니스 엔드(Journey�칢 End, 2017>이다. 이 영화는 사람 시체로 벽을 세우고 악취가 진동하는 참호에서 전쟁이 주는 참혹함과 긴장감, 아이러니, 미쳐가는 인간의 모습을 너무도 잘 그려냈다. 영화의 원작은 1928년 로버트 케드릭 셰리프가 쓴 희곡으로, 1차 세계대전 때 영국군 장교로 참전한 그가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집필했다.
▶최전방 참호 속 4일간 전투를 생생하게 그려
영화는 연합국의 한 축인 영국이 같은 편인 프랑스의 서부전선에서 동맹국 독일군과의 전쟁 막바지 사투를 리얼하게 묘사하고 있다. 전사자 약 1000만 명에 부상자 약 2000만 명을 남긴 1차 세계대전은 그 이전의 전쟁과는 차원을 달리했다. 잠수함, 독가스, 전차, 비행기 등 신무기가 동원되고 전쟁에 관련된 국민이 모두 15억 명에 이를 만큼 참전국들은 모든 국가 체제를 투입하는 총력전을 펼쳤다. 정복과 착취에 뿌리를 둔 제국주의가 인류사에 비극을 남긴 것이다.
영화는 “1918년 프랑스 최전방, 영국 사병들 사이에선 독일군의 전면 공격이 임박했다는 소문이 돌았다”는 자막과 함께 최전방 참호 속으로 들어가는 한 영국 중대의 비장한 모습으로 시작한다. 스탠호프 대위는 오랜 공포와 불안 탓에 알코올 중독과 신경질적 증세를 보이는데 침착하고 책임감 있는 오스본 중위는 그에게 정신적 지주와도 같은 존재이다. 그리고 이곳의 오랜 친구이자 누나의 연인인 스탠호프를 찾아 막 부임한 롤리 소위가 앳된 모습으로 조국을 위해 힘껏 싸우겠다는 의욕에 가득 차 있다.
하지만 참호 속 4일간의 여정의 끝(jouney�칢 end)은 죽음으로 마무리된다. 독일군의 공격 정보 입수 작전에 투입된 오스본 중위와 5명의 병사는 정보 입수에는 성공하지만 살아 돌아오지 못한다. 이튿날 스탠호프 대위가 지휘하는 중대의 참호는 전투태세에도 불구하고 독일군의 대규모 포격으로 인해 무참히 무너진다. 스탠호프는 롤리의 싸늘한 죽음을 보며 비통해하지만 이내 그를 포함한 중대 모두가 독일의 포격 속에 몰살당한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은 롤리의 누나가 편지를 읽는 대목이다. 롤리는 스탠호프 대위가 책임감과 과로로 지쳤지만 최고의 장교라고 전한다. 그러나 바로 이어진 장면에서 모두가 주검으로 변한 참혹한 참호 모습이 비춰진다.
▶군인 사망자 100만 명 넘는 영국군과 독일군 간 ‘춘계 공세’
춘계 공세(Spring Offensive)로 알려진 이 독일군의 공격은 3개월간 지속되면서 양측 사망자가 70만 명을 넘었다. 한 달 뒤 영국군과 연합군이 재탈환했지만, 1918년 11월 종전까지 100만 명 이상이 사망했다.
영화 속에서 처절한 전투를 치르는 스탠호프 대위는 전쟁 통에 망가진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며 오스본 중위에게 왜 자신들이 프랑스에서 이렇게 싸워야 하냐고 불만을 터뜨린다. 영국인이 왜 프랑스 최전방에서 죽음의 공포를 느끼며 피폐해져 가는지를 묻고 있는 것이다. 그 논리대로라면 프랑스 역시 세르비아 청년의 총성으로 시작된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과 세르비아 간의 전쟁에 엉켜들어갈 이유가 없다. 그렇다면 세르비아 청년의 총성이 어떻게, 왜 세계대전으로 비화됐을까.
20세기 초 영국과 프랑스는 산업혁명을 거쳐 세계 각지에 많은 식민지를 보유했지만, 새롭게 떠오른 강국인 독일 제국은 통일전쟁을 거치면서 산업 발달이 늦어졌고 이로 인해 뒤늦게 식민지 쟁탈전에 뛰어들었다. 그러나 영국과 프랑스가 이미 상당한 식민지를 차지한 상태에서 독일은 이들과 대립해 식민지 빼앗기에 나설 수밖에 없었다. 1차 세계대전은 제국주의자들이 자국의 이익을 위해 충돌한 전쟁이고, 보스니아 사라예보 사건은 촉발제일 뿐이었다.
▶서부전선에서 4년간 지속된 지옥의 참호전
독일은 1914년 8월, 프랑스를 신속하게 굴복시키고 동쪽의 러시아 제국과 전쟁을 수행한다는 슐리펜 계획에 따라 서쪽으로 진군을 시작했지만 계획이 실패하고 서부전선에서 교착상태에 빠진다. 독일군은 프랑스 점령지역을 유지하고 방어하기 위해 참호를 팠다. 참호는 적의 총포탄을 막고 전투를 자유롭게 수행할 수 있도록 땅을 파서 만든 도랑. 참호에는 기관총과 철조망 등 방어에 적합한 병기들이 주를 이루었다.
연합군 또한 독일의 진격을 저지하기 위해 참호를 파기 시작하면서 서부전선에선 서로 진격도, 후퇴도 어려운 지지부진한 상황이 지속됐다. 공격군이 엄청난 손해를 입으면서 간신히 적군의 참호 하나를 점령하더라도 다시 방어군이 반격해 참호를 탈환하는 일진일퇴가 거듭되면서 4년간 돌격과 살육이 되풀이됐다.
이 때문에 참호는 생지옥이 따로 없을 지경이었다. 시체를 파먹어 뚱뚱해진 쥐가 돌아다니고, 이와 벼룩이 득실거렸다. 장병들은 대량의 배설물이 쌓인 곳에서 먹고 자고 했으며 비만 오면 참호에 물이 가득 차 온몸이 젖기 일쑤였고 참호가 무너져 매몰당하는 일까지 빈번했다. 무시무시한 추위와 더위에다 온갖 질병이 만연했다. 죽음의 공포와 불안 속에서 장교와 병사들은 전장이 아닌 지옥을 탈출하고 싶어 몸부림쳤다. 이들에게는 실제 전투나 죽음보다도 하루하루를 견뎌내는 데 따른 불안감과 공포가 더 끔찍했던 것이다.
▶참전 이유는 ‘구국의 결의’, ‘겁쟁이 매도 피하기’?
1차 세계대전에는 나라를 구하겠다는 일념에 자발적으로 참전한 젊은이도 적지 않았다. 영화에서 막 부임한 앳된 롤리 소위는 총을 직접 쏴보고, 1.5㎞ 남짓 간격을 두고 있는 독일군을 보면서 들뜬 감정을 감추지 못한다. 롤리 소위는 구국의 결의에 찬 젊은 군인을 대표하는 듯하다. 당시 낭만적인 전쟁 소설이나 시가 유행해 전쟁을 모험이나 영웅담쯤으로 각인한 측면도 일부 작용했다.
하지만 사회적으로 입대를 권장해 전쟁을 피하는 사람을 겁쟁이로 몰아간 분위기도 한몫했다. 젊은이들은 자신의 군대가 적군을 물리치고 영웅으로 금의환향할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만 했지 이 전쟁이 얼마나 참혹할지, 얼마나 오랫동안 이어질지를 제대로 내다보지 못했다.
▶전쟁터의 다른 모습… 고위급 장교 vs 하급 장교
<저니스 엔드>는 하급 장교의 시각에서 영화가 진행된다. 하급 장교들은 리더로서의 책임감뿐 아니라 부하들의 이탈이 없도록 다독거려야 하기에 안팎으로 엄청난 중압감에 시달려야 했다. 스탠호프 대위는 스트레스로 인해 술 없이 생활하기 힘들어 한다. 병원으로 보내달라고 애걸하는 부하를 막는 것이나 기습작전을 위해 아끼는 부하를 사지로 내모는 것 모두 오롯이 그의 책임이다. 오스본 중위는 부드러운 카리스마로 간부 역할을 충실하게 수행했으나 상부에서 하달된 기습작전에 투입돼 목숨을 잃는다. 의욕에 차있던 롤리 소위 역시 작전의 의미도 모른 채 작전에 투입된다.
반면 고위 장교들은 목숨을 건 전쟁터에서 상대적으로 태평스럽다. 이들은 전략과 작전을 수립하지만 위험한 작전 실행은 하급 장교와 병사들이 맡는다.
영화에서도 고위 장교인 대대장은 스탠호프 대위, 오스본 중위, 롤리 소위에게 작전을 명령하고 자신은 기습작전의 성공을 기원하며 품격 있는 건배와 만찬을 갖는다. 중대를 위해 보급품을 챙겨주지만, 보급 식량은 죽음을 앞둔 마지막 만찬일 뿐이다. 기습작전 시간도 성공 가능성이 높은 때를 기준으로 하지 않고 상부 보고 시간에 맞추는 식이다.
그 결과, 1차 세계대전 당시 일반 병사는 말할 것도 없고 공격 일선의 초급 젊은 장교들이 가장 큰 희생을 치렀다. 이들은 모범을 보여야 한다는 교육을 받고 전장에 앞장서 나갔고 명령에 따라 작전을 수행하는 총알받이로 나선 탓에 목숨을 내놓아야 했다.
▶확대 재생산되는 세계대전
1차 세계대전은 독일을 비롯한 각국의 군주제를 몰락시키는 계기가 됐지만, 희망찬 미래를 가져올 것이라고 믿었던 과학과 이성에 대한 유럽인들의 인식에 회의를 갖게 했다. 과학기술의 발전은 인류에게 풍요를 안겨줬지만 또 한편으로는 무자비한 살육 수단으로 인류의 생명에 중대한 위협을 초래했던 것이다.
그러나 아이러니한 것은 이러한 회의에도 불구하고 1차 세계대전 당시 본격적으로 관심을 갖게 된 군사 기술에 대한 연구가 급속도로 진행되면서 제2차 세계대전은 더욱 가공할 만한 무기로 무장됐다는 것이다. 1차 세계대전에서 전쟁기술자로 활약한 인물들은 2차 세계대전에 살육 전문가로 재기용됐다. 가치가 부여되지 않은 과학 기술, 통제되지 않은 인간의 욕심의 끝은 인류에게 불행만을 안겨줄 뿐이라는 생각이 든다.